책소개
궁핍한 시대, 신문지 위에 남겨진 빛바랜 ‘글·그림’
올해 구순(九旬)을 맞은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 백영수(白榮洙, 1922- ) 화백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의 빛바랜 신문 스크랩을 책으로 묶어 내 놓았다. 이는 육이오 전후, 그가 30대 초중반 시절에 한창 작업했던 것들로, 짧은 산문(散文) 또는 시문(詩文)에 그림을 곁들인 칼럼이다. 이 ‘글.그림’들은 우리 화단(畵壇) 및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뿐 아니라 백영수의 화력(畵歷)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고도 특이한 자료들이다. 우리 시대의 출판과 미술이 깊이 교류했던 사례이며, 근현대 우리 문학사(文學史), 회화사(繪畵史), 출판사(出版史), 그리고 사회사(社會史) 연구에도 소중한 일차자료다. 또한 궁핍했던 전란기에 작품활동이 어려웠던 예술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체들과 서로 의지했던 지혜로운 모습들을 증언하는 징표들이기도 하다.
“단행본과 잡지엔 으레 화가가 표지화.목차화.컷을 그렸다. 이것은 또한 유일한 화가들(특히 서양화가들)의 수입원이었다. 자연히 화가와 문인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친분이 두터웠다. (…) 다방에 갈 때는 언제나 화구통을 가지고 나갔고, 신문.잡지의 편집기자들이 그곳에 들러 ‘컷 다섯 장만 그려 줘요’‘글.그림 써야 해요’ 하는 통신과 만남과 교환이 이루어졌다. 다방에 있는 동안 나는 컷을 즉석에서 그려 주곤 하였다. 그러면 신문사는 기사를 쓰다 생긴 공백을 채우거나 편집에 모양을 내기 위해 가져간 컷을 이용했다.” ―「책 머리에」
당시 그와 함께 비슷한 작업을 했던 화가들로는 이상범(李象範), 노수현(盧壽鉉), 김환기(金煥基), 김기창(金基昶), 이중섭(李仲燮) 길진섭(吉鎭燮) 정현웅(鄭玄雄) 등 많은 이들이 있지만, 백영수는 이 분야에서 선구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업한 양을 보아도 독보적이다. 무엇보다도 매체 편집자나 데스크가 요구하는 의도를 잘 꿰뚫어보아야 하는데, 그는 이에 적절하게 응해 주는 요령을 잘 터득하고 있었다. 어느 면에서 그는 뛰어난 편집 디자이너였다. 1955년 9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산업미술가 조능식(趙能植)이 기고한 「시각의 언어: 현역 삽화가를 중심으로」라는 글은 이를 증명해 준다. “백영수 군은 김훈(金熏)과 더불어 특이한 화풍으로 이채로운 존재다. 삽화보다도 그의 컷은 청초하며 이따금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왼손의 작가인 그는 포스터, 장정, 삽화, 컷,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의 재사(才士)다.”
‘종이 액자’ 속 1950년대 한국근대사의 풍경
이 책에는 작가가 오랫동안 고이 간직해 온 스크랩북 속 모양 그대로의 신문지면이 어떠한 가공도 없이 실려 있다. 종이난(亂)이 심했던 시절의 질 나쁜 갱지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노랗게 바랬고, 가장자리는 바스러져 버렸다. 하지만 그 자체가 ‘종이 액자’로서 그 위에 담긴 글.그림과 한 몸이 되어, 우연히 지나간 칼자국 하나까지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창작의도처럼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굵은 인쇄 망점(網點), 활판인쇄의 거친 잉크 자국, 세로짜기 조판과 활자의 운용, 지면의 장식과 짜임새 등 1950년대의 일간지 편집.인쇄 상황의 일면을 엿볼 수 있으며, 사계절, 패션, 도시, 공간 등의 칼럼 소재, 웃음을 자아내는 코너 제목, 잦은 외래어의 사용 등 60년 전의 풍속과 어휘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백영수가 젊은 시절 동료 예술가들과 교우했던 ‘르네상스’ ‘돌체’ ‘모나리자’ ‘포엠’ ‘두부집’ 등 명동의 명소(名所)들이 스케치와 함께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명동 하면 돌체, 돌체 하면 명동을 생각하게끔 돌체는 오랜 세월에 걸쳐 명곡(名曲) 다방으로 명동과 운명을 함께해 온 곳. 돌체에 음악 소리가 없는 날은 명동이 적막하고 돌체에 음악 소리 높은 날은 명동이 살고 있다는 미향(美響)인 것은 오랜 풍상(風霜) 속에 우리가 느껴 온 것이니….” ―「돌체」 p.177
“밤이면 그 옛날 ‘명동장(明洞莊)’ ‘무궁원’의 향수를 안고 ‘모나리자’에서 이 집으로 찾아든다. 그 옛날의 ‘아지’ 대신 ‘두부’를 안주 삼아 정(情)과 열(熱)과 고독이 엉키어 불꽃이 되는 땐 곧잘 노래도 터져 나오고! 이곳 두부집은 명동이 낳은 생활의 서정지대(抒情地帶)이며 고향의 장날 밤 어느 술집만 같다.” ―「두부집」 p.173
한편 가난했던 시절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의 고달픔을 표현한 글에선 생활의 절박함과 함께 창작에 대한 열정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내 비록 조그만 심성의 소유자이나마 내 전 생명과 육체의 정수(精粹)를 알알이 뽑아서 죽도록 정성을 바치는데, 왜 나는 내 회화에 자신과 힘을 갖기 전에 저주를 가져야 하며 그 지리한 생활의 식한(食寒)을 수선 떨어야 하는가. 정신의 이상(理想)을 잃어버린다면 정말이지 나는 목이라도 달아매고 죽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나도 부단히 그리겠다. 그리고 그리고 있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희멀건 머리를 들고 회장으로 그림을 운반하고 있다. 뚜벅뚜벅 걸어간다. 힘있게 걸어간다.”(「화랑(畵廊)에의 화방(畵房)」 p.199.)
아름다움을 향한 그리움, 궁핍함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잘게 용해되어 여기저기 묻어 있는 이 스크랩들은,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총 95개의 스크랩과 함께, 책 끝에는 백영수 화백의 생애와 출판미술을 조명하고, 그가 그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화에 얽힌 사연을 기록한, 출판인 이기웅(李起雄)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광주시립미술관과 무각사(주지 청학)에서는 2012년 12월 4일부터 2013년 2월 24일까지 서 「백영수 회고전」이 열린다.
지은이 | 백영수
청당(靑唐) 백영수(白榮洙)는 1922년 수원 출생으로, 두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오사카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으며, 1945년 귀국하여 전남 목포고등여학교 미술교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해방 후 미군정청 문교부 주최로 열린 조선미술전 심사위원, 대한미술협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고, 이후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과 함께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으로 활동했다. 197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정착했으며,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국내에서 백여 회에 이르는 초대전을 가졌다. 2011년 영구 귀국한 뒤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목차
책 머리에.추억의 글, 빛바랜 그림 ― 백영수
새하얀 기쁨으로 / 일요일 같은 태양 / 봄이란 이름의 계절 / 봄비 1 / 봄비 2 / 나비는 꽃 피운다 / 춘필춘상春筆春像 / 모춘도상暮春途上 / 내 가슴에 꽃 피어야 / 후루하 히히히 / 아카시아 / 아지랑이 낀 가슴 1 / 아지랑이 낀 가슴 2 / 봄의 화첩畵帖 / 봄 봄 봄 / 봄날 / 숨 가쁜 풍경 / 글과 그림 / 희망의 녹색 / 오월의 보리밭 / 비 오는 오후 / 게 / 해녀海女 / 바다와 나비 / 송사리 떼 / 인어人魚 1 / 인어 2 / 조개랑 소라랑 / 나폴리 야화夜話 / 금붕어 / 바위틈 그늘로 / 소라 고동 조개껍질 / 풍선風船 / 이넉 아든 / 복숭아 장수 / 가로수 / 가을을 그린다 / 가을 한강 / 낙엽의 심리心理 / 나무는 가을을 먹는다 / 만추도晩秋圖 / 가을의 입체立體 / 가을은 팔아서 / 남한산성南漢山城 / 가슴은 가을에 멍든다 / 귀뚜라미 / 소야곡小夜曲처럼 / 햇빛을 싸고도는 물체 모양 / 빈손 빈 마음으로 / 재첩국 할머니 / 새콤한 귤이 먹고 싶다 / 숄을 쓴 여인 / 길목의 소녀 1 / 길목의 소녀 2 / 코스튬의 추억 / 나의 디자인 / 의상(衣裳)의 봄 / 겨울에도 투명한 옷 / 팔자라는 것 / 패션모델 / 종군화첩從軍畵帖 / 짠바람 / 회상 / 낙동강변의 달밤 / 기분을 풀어 놓을 수 있는 자하문紫霞門 밖 / 명동의 밤 / 야시夜市 / 슬픈 풍경 / 연기가 내 심정을 뿜는다 / 연통 보이는 빌딩 / 두부집 / 야래향夜來香 / 돌체 / 탄식하는 모나리자 / 모나리자 / 르네상스 / 포엠 / 경음악輕音樂과 나 / 오후 일곱 시 / 백일몽白日夢 1 / 백일몽 2 / 오후의 욕정欲情 / 난쟁이 화가 / 화랑畵廊에의 화방畵房 / 이 추억 저 상념들 / 여백餘白의 처리
백영수 화백의 출판미술을 말한다 ― 이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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