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가 남긴 말과 글, 그리고 작품을 통해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소개하였다. 생활인으로서, 예술가로서, 건축가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풍부한 도판과 연대별 작품목록 등을 비롯한 다양한 참고자료도 수록되어있어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책소개
미켈란젤로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예술가의 인생과 작품 세계!
예술가가 남긴 말과 글을 통해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I, 시리즈는 2007년 《I, van Gogh》를 시작으로 2008년 《I, Goya》, 2009년 《I, Raffaello》, 2010년 《I, Tiziano》로 이어지며 애장판 특별 한정본으로 출간되어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2012년 I,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예술가는 바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더불어 르네상스 미술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뛰어난 조각가로 유명했던 그는 화가와 건축가로서도 두각을 드러낸 진정한 르네상스형 예술가였다. 《I, Michelangelo》는 250x330mm의 대형 판형으로 제작되었으며, 작품의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살린 도판들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눈앞에서 감상하는 듯한 황홀경에 빠지게 할 것이다.
천재 예술가의 탄생
15세 때 이미 조각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미켈란젤로는 청소년기를 메디치 가에 머물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그가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들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로렌초는 어린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궁 정원에 만들어 놓았던 늙은 목신상이 너무 건강한 모습이라며 지적했고, 이를 듣자마자 미켈란젤로는 목신의 이 하나를 부수고 잇몸을 파내어 완벽한 노인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그의 대표 조각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피에타>역시 2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교함과 입체감을 자랑한다. 그는 1500년에 완성한 이 작품을 자랑스러워한 나머지, 드물게도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이 작품을 만들었음’이라는 문구를 성모상의 가느다란 어깨끈 위에 새겨놓았다. 그런가 하면 <다비드>상에는 청년 특유의 야망, 과감성, 품위와 자신감을 불어넣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광장을 돌아다니던 청년들의 분위기를 치밀하게 관찰하여 조각에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깊은 산 속의 채석장에 찾아가 자신이 쓸 대리석을 직접 고를 정도로 열정적인 조각가였으며, 이후 많은 귀족들과 교황청의 의뢰를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괴팍한 성격 탓에 교황 율리우스 2세와의 관계가 틀어졌고, 이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작업을 떠맡게 되었다. 프레스코 천장화는 자신의 특기인 조각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시스티나 예배당의 그림은 이미 여러 차례 선대 화가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그림이 덧칠해지고도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런 골칫덩어리 벽화 작업을 맡게 된 미켈란젤로는 몹시 절망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이 작품은 그의 인생과 르네상스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걸작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는” 고된 작업을 묵묵히 이어갔다.
건축가로서 나아가다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조각가이면서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했다. 미술사가 바사리는 미켈란젤로 건축의 첫 번째 특징으로 바로 ‘독창성’을 꼽는다. 그가 디자인한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과 묘소, 도서관을 보면 마치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 하나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찍이 르네상스 이전부터 선배들이 이뤄놓은 각종 건축적 관습들이 있었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공간을 창조하려고 애썼다. 물론 여기에서도 중심이 된 기준은 바로 그의 본업인 ‘조각’의 개념이었다. 그는 공간의 형태를 잡을 때 무엇보다 조각적인 입체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메디치 예배당의 화려한 부조상과 아름다운 도서관 공간의 창조로 이어졌다. 마침내 미술계에서 교황에 버금가는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게 된 말년의 미켈란젤로에게 주어진 과업은 바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을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이전에 시스티나 천장화가 그러했듯이 성 베드로 성당 역시 브라만테, 라파엘로와 같은 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의 손을 거쳤으며 수없이 계획이 변경되었던 두서없는 공사 작업이었다. 그는 십자가 모양의 기존 설계를 대폭 축소하고 복잡한 형상이 아닌 커다란 돔을 통한 단일한 입체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가 조각처럼 배열한 성당의 거대한 벽기둥들은 건물 전체를 시각적으로 결합하는 동시에 건물의 수직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까지도 미켈란젤로는 그의 마지막 미완성 작품에 매달렸으며 이 고통스러운 사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고향에도 돌아가지 않은 채 로마에 머물렀다. 비록 죽음으로 인해 공사의 마지막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으나 미켈란젤로는 결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쾌한 생활인 미켈란젤로
그는 세 명의 교황을 모셨으며 말년에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칙령으로 인해 예술가로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의 삶이 젊은 시절부터 순탄하게 흘러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작업을 해야 했으며 구두 하나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고 다닐 정도로 언제나 지저분한 행색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삶의 작은 순간들을 즐기고 만끽할 줄 아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는 친한 친구들과 종종 장난스러운 파티를 벌였으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종종 애정 어린 편지와 시를 지어 보냈다. 특히 지혜로운 여성 비토리아 콜론나와 귀족 청년 토마스 카발리에리를 향한 흠모의 마음을 공공연히 자신의 시 속에 드러냈다. 또한 프레스코 벽화인 <최후의 만찬>에서 가죽이 벗겨져 껍데기만 남은 성 바르톨로메오의 모습을 자신과 닮게 그림으로써 연인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상업가이자 귀족 집안이었던 부오나로티 가문의 일원으로서 미켈란젤로는 꼼꼼한 금전 감각을 지닌 사업가였다. 자신이 소유한 토스카나 경작지에서 나온 배 한 궤짝을 받고 그 중에서 좋은 것들만 골라 교황에게 보내는가 하면, 집안의 세세한 행사와 청구서까지도 직접 챙겼다. 중년 이후에 어느 정도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되자 집안의 가장으로서 친척들의 생활비를 후원하기도 했다.
《I, Michelangelo》는 생활인으로서, 예술가로서, 건축가로서 미켈란젤로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연대별 작품 목록과 도판, 각 소장처를 수록하였으며 그와 관련된 풍부한 참고 자료를 함께 엮었다. 이 책을 읽는 미술애호가와 입문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르네상스 미술 여행을 선사할 것이다.
지은이 | 제오르자 일레츠코 Georgia Illetschko
미술사학자이며 자유기고가 겸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거주 중이다.
옮긴이 | 최기득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트워스대학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역서로는 《서양미술사》,《예술가를 위한 해부학》,《새로운 미술의 이해》,《거꾸로 그린 그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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