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풍경화가이자 미술교육자로 활동한 이동훈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책이다. 일대기 별로 정리된 생애와 작품, 자료사진, 연보 등 충실하고 다양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어,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함과 동시에 근현대 미술사 자료로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책소개
조선땅 황톳빛의 화가 이동훈의 삶과 예술
평안북도 태천 출생의 한국화가이자 교육자인 이동훈(李東勳, 1903-1984). 그는 일제강점기에 왜색이 침투하고 전통이 탈색돼 망가진 민족정기를 가장 한국적인 풍경화로 복원한 화가다. 더불어 신의주에서 교편을 잡은 이래 사십여 년간 교직생활을 했는데, 특히 대전사범학교에서 이남규(李南奎, 화가), 최종태(崔鍾泰, 조각가) 등 많은 예술가들을 길러낸 탁월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삶은 우리 근대사(近代史)와 함께하면서 한국 근대미술사를 이끌어 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동훈의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이동훈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하여 선보이는 이 책 『이동훈 평전』은, 이동훈의 삶을 일대기별로 조명한 한국미술사 연구자 김경연의 평전 외에, 그가 남긴 소묘 25점, 유화작품 70점, 자료사진 44점과 연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동훈이라는 화가를 삶과 예술세계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이동훈에 관해서는 작품집이나 도록으로 단편적인 사실만 알려져 왔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이동훈 평전』은, 이동훈이 남긴 작품과 스케치, 일기, 메모, 유품, 그리고 유족과 제자들의 증언 등 충실한 자료조사를 통해 그의 삶을 기록한 것이기에, 이동훈에 관한 일차자료로서, 그리고 우리 근현대 미술사에 관한 자료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흔다섯 점의 작품과 스케치로 본 이동훈의 예술세계
이동훈 예술의 특징 중 하나는, 당시 일본을 통해 서양화가 들어와 이를 받아들인 일세대 화가이지만 그의 그림에는 왜색이 없으며, 오히려 어느 누구보다 한국의 토속적 풍경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와 해방 후 「국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특정 주의(主義)나 계파, 형식 등에는 얽매이지 않았는데, 여기에 평생을 교사로서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삶에 대한 엄격함, 성실함, 소박함 등을 실천해 온 성품이 보태져 특유의 질박한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화려함이라든가 뛰어난 기교는 보이지 않지만, 꾸밈 없는, 황톳빛 조선땅의 진실된 화면을 따뜻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책 앞부분에는 화가 이동훈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그의 스케치와 작품 95점을 실었는데, 대부분 1950년대 이후의 작품들로, 선인장·꽃·과일 등 고전적인 주제들을 진솔하게 그려낸 정물화와, 낙화암·계룡산·한라산·북한산과 전통 농가(農家)나 목장, 전원의 모습을 담아낸 풍경화들, 그리고 충무·장승포·강화도 등 어촌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이동훈은 특히 소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1968년 제17회 「국전」에 출품했던 작품 〈목장〉은 당시 최고 가격으로 청와대가 구입한 일화가 있다. 뉴질랜드와 호주를 순방하고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이 축산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마침 한국을 방문한 뉴질랜드 수상에게 보여 주기 위해 당시 최고 가격인 백만 원에 구입한 것이다. 또한 그는 비슷한 풍경을 계속해서 그렸는데, 특별히 화려하고 이름난 명승지보다는 시골 농가의 풍경이나 전원의 들판, 소박한 어촌 마을 등이 그의 주제였다. 그런 그의 성실함과 소박함에서 우리는 화가의 자세, 그림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변을 어렴풋하게나마 얻게 된다.
일생을 미술교육과 작품제작으로 보낸 진정한 예술가
이동훈의 삶의 역정은 평북 태천에서 시작되어 이후 신의주, 경성, 대전, 서울로 이어진다. 처음 교편을 잡은 게 평북 용암포보통학교 훈도(1924-1931)로서였고, 이후 신의주보통학교(1932-1934), 경성 죽첨초등학교(1935-1941)와 미동초등학교(1941-1945), 대전의 대전공업학교(1945-1947), 대전사범학교(1947-1963), 충남고등학교(1963-1969)까지 사십육 년을 교직에 바쳤고, 이후 서울 수도여자사범대학 강사 시절(1969-1981)까지 합하면 총 오십팔 년 동안 미술교육에 매진해 온 셈이니, 그의 삶은 한국 근현대기 미술교육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이동훈 평전』 역시 이와 같은 흐름에 따라 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태천 시절’에서는 그가 태어난 집안의 배경과 당시 평북 지역의 상황에서부터 의주공립농업학교 입학과 결혼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고, ‘신의주 시절’에서는 평북공립사범학교 강습과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수업을 받으며 미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과정과 용암포보통학교 훈도 시절의 ‘모던 보이’ 이동훈을 그리고 있다. 특히 용암포악우회(龍岩浦樂友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등 문화운동가로서의 면모가 눈에 띄며, 더불어 사진에 눈을 떠 아마추어로서 사진촬영에 몰두하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키워 나갔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이 시절 특기할 만한 것은 이동훈이 신의주에서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신의주에서의 첫 전람회를 개최했다는 점이다. 그의 화가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경성 시절’에서는 새로운 도회지에서 화가로서의 꿈을 더욱 키워 나가게 되는데, 「서화협회전」 「조선미술전람회」 등에 꾸준히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화가로서 성장하는 이동훈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대전 시절’은, 그가 화가로서, 미술교육자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시기이다. 이 시절 그는 제1회 「국전」에서의 특선을 시작으로 추천작가가 되고, 또 심사위원도 역임하는 등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고, 대전사범학교 미술교사로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는 한편, 충남미술협회를 재건하고 다양한 전람회를 조직하는 등 지역미술을 활성화했다. ‘대사(大師, 대전사범학교의 준말)의 호랑이’라 불리며 학생들을 엄격하게 가르쳤던 그는 한편으로 열정과 자상함으로 학생들을 이끌어, 나중에는 ‘대사의 아버지’라고 불리게까지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울 시절’은 충남고등학교 정년퇴직 후 서울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육십대 후반에서 팔십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하루도 붓을 놓지 않은, 초심을 잃지 않은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의 영(靈)과의 합일(合一)을 꿈꾸고 만물 속에 깃든 생명의 힘을 표현하려 했던” 이동훈, 그는 “화려한 명예보다는 작고 소박한 ‘자연’의 진실을 추구했던” 화가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