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국의 역사적 맥락에 밀착해 중국 근·현대미술의 궤적을 추적한다
『20세기 중국미술사』는 중국이 신해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서양문명을 받아들이게 된 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1910년대에 들어 중국에서 ‘미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비로소 그 개념이 확산된 이래, 일본유학파를 통해 서양미술을 습득한 대륙 본토의 1920~30년대, 1945년까지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쳐 서양미술을 배운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이 모든 상황과 아주 밀접하게 연계된 유럽까지 시야를 펼쳐 역동적으로 변화하던 중국의 근·현대사와 미술의 맥락을 연결 짓는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개혁개방 이후, 1990년대 중국미술계의 새로운 문제의식과 관점에 집중한다.
중국 현대미술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전시와 담론의 진행 과정은 물론, 사회주의 공산 체제에서 국가 주도하에 진행된 예술운동의 흐름을 개괄한다. 이후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그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체제와 예술의 관계, 전통미술과 서구상업주의 사이에서 생존해온 여러 예술 현상 등도 꼼꼼하게 짚어냈다. 중국화, 혁명, 예술교육 정책과 수많은 관련 단체들, 사회주의 현실주의의 이념 논쟁, 서구근대
미술 유입과 함께 피어나고 변형된 지적·사상적 경향들, 좌익예술, 옌안 지구와 국통지구의 이념과 갈등 등이 이 책이 포함하는 주요 키워드다. 또한 이 책은 ‘미술’이라는 범주에 서술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다. 중국미술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활용된 이전의 중국미술 관련 서적과는 서술 방식과 논의 면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자 의미다.
중국 근·현대미술을 형성한 정치적 연결고리와 배경을 이야기하다
『20세기 중국미술사』는 복잡하고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중국미술의 문맥을 파악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2008년 중국 현지에서 출간된 이후 영문판으로 수출, 발간되기도 한 이 책은 세계 각지에서 출간된 모든 중국 근·현대미술사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향후 10년 내에 이토록 방대하면서도 일목요연한 중국현대미술사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구성은 연대에 따라 정치·역사·문화적 배경을 설명하고 이 맥락을 연결해 작가와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아편전쟁 이후의 한 세기를 관통하면서 상하이 예전, 문화혁명 등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들을 낱낱이 설명한다. 다소 낯설지만 흥미로운 사례도 상당수 등장한다. 이를테면 중국의 수출회화, 여성미술, 789의 상징성 등이 그렇다. 1950년부터 1979년까지 타이완과 홍콩의 예술에 일정 부분을 할애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황융핑, 구원다, 쉬빙, 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 웨민쥔, 저우춘야 등 2000년대에 세계 미술시장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우리 미술시장까지 뒤흔든 작가들을 포함해, 약 200여 명에 달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예술 역정도 담았다. 20세기 중국 근·현대미술 현장에서 예술가 개인의 역사는 곧 국가와 체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온 만큼, 중국의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보는 데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는 곧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실마리가 된다. 중국 사회에서 긴밀하게 연계되는 지식인·정치인·상인과 예술가들의 상호관계 등에 대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정치와 이념이 예술을 주도한 중국미술의 드라마틱한 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역시 정치교육학을 전공한 미술사학자 뤼펑의 놀라운 지각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난 100년간 펼쳐진 담론의 대장정을 정리하고 중국미술의 현 위치를 정리하는 가장 정확한 서술로 인정받는 이유다.
동시대 중국미술계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뤼펑, 완벽한 역사 서술의 본보기가 되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과 600여 장에 달하는 도판, 생생한 사료 사진 역시 이 책의 강점이다. 저자 뤼펑은 지금껏 각종 중국 관련 인문서에서도 보기 힘들던 기록사진을 대거 제공했다. 기록과 자료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와 저자의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부분이다. 중국의 근·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 자료를 한눈에 업데이트할 수 있는 동시에, 이 책을 통해 미술사뿐만 아니라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냉철한 관점과 심도 깊은 분석력, 중국미술이 직면한 복잡한 주제들을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저술 재능에 이르기까지 뤼펑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다. 이미 중국의 미술현장을 오가는 이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가 않다. 뤼펑은 이 시대 중국미술을 이끌어나가는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이면서,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중국현대미술 작가들이 가장 의지하는 비평가이자 큐레이터다. 일찍이 중국 현지를 넘어 수천만에게 영향을 미쳐온 모든 맥락과 뉘앙스를 포함해, 20세기 중국 변혁기에 관한 한 완벽한 자료와 분석으로 역사를 기록해왔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언급돼온 문화·역사·정치적 논리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이것이 가능한 데는 예술가가 되려 했던 저자의 실기 경력, 이후 정치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중국에 미처 정립되지 않았던 ‘미술사’로 방향을 전환해 거시적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게 된 탄탄한 배경지식이 밑바탕이 됐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와 《상파울루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등 세계 최정상의 미술현장에서 지적·인적 자원을 축적해 권위와 실력을 인정받은 덕분이기도 하다.
미술사 연구자는 반드시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1970년대 후반, 그림을 공부하던 저자 뤼펑은 원하던 미술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이후 미술사로 눈길을 돌렸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는 ‘미술사’라는 학문적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았다. 이는 그때까지 미술 전반의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접하지 못했다는 의미였고, 그만큼 미술사라는 학문 자체에 무지하다는 뜻이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뤼펑은 1980년대에 들어설 때까지 중국에 소개된 서양미술사 관련 서적을 모두 찾아 헤맸다. 그러나 구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지식청년으로서 농촌에 파견됐을 당시에는, 농민미술운동을 위해 제작된 교육서와 지침서까지 모두 베껴 써가며 닥치는 대로 소화했다. 아주 미미하게나마 인상파의 기술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는 자료가 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 비로소 관련 번역서를 읽을 수 있었고, 1980년대 중반 무렵 뤼펑은 서양미술사를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었다.
정치교육학을 전공한 뤼펑은 오늘날의 그를 만들어준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다. 서양 역사, 중국 역사, 철학사와 경제사, 경제와 법, 사회주의운동의 역사까지 포괄하는 여러 범주 속에서 그는 예술의 역사가 결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맥락 속에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에 영향을 미치면서 관계를 맺어온 러시아와 소련, 사회주의와 사상 관련 지식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러한 배경지식은 예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분명히 필요한 것이었고, 지금의 뤼펑을 만들어준 확고한 지적 바탕이 되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역사 기록의 의미를 환기시키다
1980년대 후반, 개방정책 이후 재편된 중국 미술의 역사에 관해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뤼펑은 거절했다. 당시 그의 관심은 서양미술에 쏠려 있었고 중국현대미술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중국미술가들은 서구미술을 직접적으로 배우지 못한 채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작가들의 조악한 화보를 보고 모방하면서 그때그때 작품이 달라지기 일쑤였다. 그것이 당시 예술가들이 거쳐온 흐름이었다. 뤼펑에게 그런 중국미술가들의 작품은 ‘배워가는 과정’일 뿐 초라해 보였다. 이러한 중국현대미술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가 과거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정서가 중국을 지배했다. 그렇다면 이전 10년 동안 진행돼온 재편 과정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국가’의 생을 기술할 때 그 10년은 과연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것이었을까?
희망도 미래도 없는 듯 암울하던 1989년에 그는 시간의 의미를 깨달았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10년은 중국인들이 지내온 어떤 10년보다 중요했다. 시간이 지워질지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감이 팽배했고, 뤼펑 역시 그 과정 속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과거 체제로 회귀하면서 사라질지 모르는 시간을 기록하고, 그 시간의 의미를 훗날 재점검하기 위해서였다.
톈안먼 사건 이후 그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곧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하게 도와주고 인류 보편의 사고를 대변하는 수많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의문의 여지도, 부인할 여지도 없는 민주주의 제도의 필요성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방법은 막연했다. 방법에 대해 구체적이고 단단한 논의도 없었다. 저자 뤼펑은 그러한 가치 혼란의 역사 가운데서 미래 세대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판단과 서술을 시도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임무라고 설명했다. 예술가를 지망하던 저자는 탄탄한 역사적·철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중국현대사 속에 자리한 미술을 기록함으로써 독자적으로 예술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 ㅣ 뤼펑 (呂澎)
중국미술학원 예술인문학원 부교수이자 청두 당대미술관 관장이다. 중국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1992년 《광저우 비엔날레》와 2010년 《역사 개조: 2000-2009 중국신예술》 전시를 기획했고,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기구 초청전, 2011년 《청두 비엔날레》 등 주요 전시를 기획한 중국의 대표적인 전시기획자이자 평론가다.
1970년대 문화대혁명 시절 지식청년의 삶을 경험했으며, 1978년 대학 입시 부활과 함께 쓰촨 사범학원 정치교육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연극과 영화』 잡지사 편집인, 쓰촨 극작가협회 부비서장을 역임했고, 1990년 잡지 『예술·시장』 주편집인으로 중국당대미술의 시장화 방안을 모색했다. 1990년대에 쓰촨 지역 최대 광고기업을 운영하며 부동산업과 연계한 민영미술관 설립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등, 민간 자본을 이용한 중국전위미술의 합법화와 미술체제 개혁에 힘써왔다. 『20세기 중국예술사』(베이징 대학교 출판사, 2006), 『예술사 속의 예술가』(후난 미술출판사, 2008), 『계산청원: 양송시대 산수화의 역사와 취미 전환』(중국인민대학교출판사, 2004), 『중국당대예술사: 1990~1999』(후난 미술출판사, 2000), 『중국현대예술사: 1979~1989』(후난 미술출판사, 1992) 등 저서 10여 권을 출간했고 이 밖에 다수의 논문과 번역서를 발표했다.
옮긴이 ㅣ 이보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 칭화 대학교 미술대학 미술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홍익대, 중앙대, 동덕여대, 상명대 등에 출강했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현지 미술계와 활발히 교류했으며, 『월간미술』 해외통신 기사로 중국당대미술의 현장을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슈, 중국현대미술』를 저술했고 논문 「류하이쑤의 초기 미술활동 연구: 1912-1935」 「1920년대 신미술운동과 천마회」 등을 발표했다.
목 차
중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다 한국어판 서문
미술 개념의 탄생과 중국당대미술의 발전 중국어판 서문
1. 계산과 해양의 만남: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영향
2. 충돌과 변이: 미술혁명과 중국화
3. 과학의 승리: 현대미술교육, 사실주의, 논쟁과 주요 화가들
4. 서쪽의 구름: 모더니즘 미술, 사상 그리고 현실
5. 시대의 칼날: 좌익미술, 옌안지구와 국통지구의 미술
6. 신중국 찬가: 사회 회복과 건설 시기의 미술
7. 필묵혁명: 국화와 국화가 개조
8. 정치 도구로서의 미술: 계급투쟁과 문화대혁명 시기의 미술
9. 분리된 후손: 타이완 예술과 홍콩 예술
10. 회의 정신의 시작: 상흔미술과 싱싱 미전 그리고 모더니즘의 출현
11. 다시 태어난 현대: ’85 미술운동과 모더니즘의 쇠퇴
12. 전통 소생: 신문인화와 실험수묵화
13. 당대를 향하여: 신예술과 그 예술가들
14. 관념 전개: 다원구도 속 예술
15. 제도와 변혁: 신세기예술
가치 혼란의 시기, 역사 속 열쇠를 찾아 떠나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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