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베네치아부터 스위스 브베, 로잔을 거쳐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을 돌아본 뒤 영국 런던 등 17곳의 ‘포토 루트’에 담긴 사진역사를 살펴보는 유럽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특별한 사진 여정의 기록이다. 딱딱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사진 작품과 사진기, 전설이 된 사진가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흥미진진하게 담아낸다.
책 소 개
유럽 ‘사진의 길’을 내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즐기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사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진 잘 찍는 법’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과 조언은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사진이 오늘날의 모습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의 ‘오늘’은 있되 ‘어제’는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과거를 생략해버리면 내일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눈앞의 세상을 깊이 있게 보고, 크게 느끼는 데에 역사만 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사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 보편적인 진리다. 촬영에서건, 사진작품의 감상에서건 사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 책은 사진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예술 분야는 다름 아닌 사진예술이다. 유럽 곳곳에서 근 200년 된 사진을 되돌아보려는 움직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진 역사의 ‘결정적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라면 어김없이 기념관이나 박물관, 갤러리 등이 들어서는 중이다. 과거가 곧 미래를 향한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곳 열일곱 군데를 정거장으로 삼아 ‘포토 루트’, 즉 사진의 길을 냈다. 이탈리아 피렌체, 베네치아부터 스위스 브베, 로잔을 거치며 시작된 여정은 유럽을 점점 북상하며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을 경유한 뒤, 영국 런던과 치펜햄에서 끝을 맺는다. 그 과정에서 사진작품과 사진기, 그리고 전설이 된 사진가의 이야기가 감수성 짙은 어조 아래 펼쳐진다. 교과서적이고 딱딱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장을 중심으로 한 흥미진진한 여행 에세이다. 저자가 직접 촬영한 풍부한 사진과 함께 여로를 유유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진교양이 머리와 가슴 속으로 흠뻑 스며든다. 그때 다시 바라본 사진의 세계는 더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신화가 된 사진가와 몽환적인 사진 공간
문명사를 규정한 유명한 ‘길’들이 있다. 실크로드, 누들로드…. 저자는 거기에 보태어 사진과 관련한 소박한 ‘루트’를 내보려 한다.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사진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빼어난 인물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진의 신’ 카르티에 브레송과 휴머니즘 사진의 기수 로베르 두아노는 물론, 사상 최초의 사진 발명가 니세포르 니엡스, 그리고 최초의 사진집 《자연의 연필》의 작가이자 종이사진 칼로타입의 발명가 폭스 탤벗 등이 망라되어 있다. 또 사진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던 로버트 카파나, 미국 노동자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던 루이스 하인에 대한 조명도 빼놓지 않는다. 아울러 초창기에 사진을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알리나리 형제와 카를로 나야, 카를로 폰티 등도 여행길에서 마주친다. 저자는 이렇듯 ‘사진의 전설’들이 머물렀던 현장으로 찾아가 그들의 삶과 예술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시간을 초월한 이 소중한 만남 가운데 절정은 아무래도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프랑스 파리의 앙리카르티에브레송재단을 견문하고 남긴, 짧지만 인상적인 글에서 저자는 오늘날 사진가의 원형을 브레송에게서 발견한다.
거장은 낙원에 소풍 나온 신처럼 행복해 보인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의 시대 전까지 사진가는 마치 소부대 지휘관과 같은 모습이었다. 주머니가 여럿 달린 작업복, 렌즈와 플래시가 든 무거운 가방…. 하지만 카르티에 브레송부터 한가한 산책자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평소에는 유유히 거닐지만 결정적 순간에 돌변하는, 부드러우면서도 터프한 사진가 상의 출발점이다.
유럽 사진문화의 명소들은 단지 인물을 중심으로 꾸려지지 않는다. 장소 그 자체가 인상적인 곳들이 여럿이다. 책에서 소개된 대표적인 곳을 두 곳만 꼽자면, 벨기에의 샤를루아사진박물관과 독일의 ‘카메라 옵스쿠라’를 들 수 있다. 두 곳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사진 산책자들의 넋을 놓게 만든다. 샤를루아사진박물관은 원래 성당이었던 곳을 사진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가히 ‘사진의 성소’라고 할 만하다. “수도원 특유의 차분한 기운”이 절로 관람객들을 경건하게 만드는 데다, 성당의 창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고상하기 그지없어 사진감상에 최적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성당 내부로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썼던 노력들이 오늘날 ‘빛의 예술’ 사진을 위한 “천상의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샤를루아사진박물관의 공간이 묵직함과 경건함을 자아낸다면, 독일의 ‘카메라 옵스쿠라’는 발랄함과 재미의 공간이다. 공장용수를 비축하던 버려진 물탱크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사진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내부에 소장하고 있는 렌티큘러, 황동제 마술환등기 등 요지경 장치부터 만화영화의 고전적 형태 프락시노스코프, 동영상 장치인 ‘마술 원통’ 조트로프까지 18~19세기의 환상적인 기계들이 수북하다. 압권은 물탱크 4층에 마련된 대형 영상 장치다. 큰 방을 통째로 이용해 카메라의 원리가 되는 광학현상을 재현해놓았다. 천창에 설치한 렌즈를 통해 빛이 들어오면서 30킬로미터 반경의 시내 전체 풍경이 책상 위에 놓인 둥근 원반에 쏙 담긴다. 저자는 “용의 여의주를 들여다보는 점쟁이”라도 된 양 그 몽환적인 장관에 감탄한다.
사진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군침을 흘릴 법한 사진기 컬렉션에 대한 소개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사진의 역사 200년 동안 사진기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알파, 라이카, 피네타 등 사진기의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뉴먼앤가디아 사의 기묘한 이름의 카메라 시리즈들, 그리고 초창기 대형 사진기인 콘타플렉스, ‘고딕 유물’ 간돌피, 1887년 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진화한 린호프, 보도사진의 ‘에이스 사진기’ 스피드그래픽 등 사진기의 계보와 발전상을 한눈에 훑을 수 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루쉰의 유명한 말이다. 저자가 제시한 ‘포토 루트’는 그러한 ‘길’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약도 삼아 유럽 대륙을 남북으로 종단하거나 동서로 횡단하거나, 혹은 보다 창의적으로 루트를 즐기는 사진 인구가 많아질 때, ‘사진의 길’은 점점 더 땅 위에 뚜렷하게 아로새겨질 것이다.
지은이 ㅣ 정진국
새롭게 사진의 길을 확장하고 있는 미술평론가이자 사진작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파리8대학, 파리1대학원을 졸업한 뒤, 경일대학교와 중부대학교에서 사진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그는 사진과 이미지에 관련한 외국의 다양한 책들을 국내에 소개해왔다. 《매그넘 매그넘》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를 비롯해, 뉴홀의 《사진의 역사》, 르마니의 《세계사진사》 등 사진 책의 고전을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번역했다. 아울러 이해선, 김기찬, 전민조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가들의 사진집에 서문을 썼다. 그 자신이 지은 책도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기행문집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사진가의 여행》은 예술과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며, 에세이 《이일라가 사랑한 동물 이야기》 《잃어버린 앨범》에서는 개성적인 산문의 한 절경을 보여주었다. 단지 책으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전시 기획을 통해서도 사진의 길을 터왔다. 영남대인문학연구소에서 한국민중초상사진집의 출간을 기획하고,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내외 다수의 전시장에서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그밖에 ‘오래된 사진기’(영남대박물관), ‘아네스 엘뢰’(한마당) 등의 전시회를 조직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문서보관소 등에서 자문위원을 지냈고, 최근에는 2012여수엑스포 전문위원을 맡았다. 2013년 현재 사진 집단 ‘다큐멘토Documentor’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목 차
프롤로그
1부 사진의 낙원을 탐내다
- 르네상스를 알린 의좋은 삼형제__알리나리국립사진박물관, 이탈리아 피렌체
- 베네치아 사람들의 베네치아__팔라초 포르투니, 이탈리아 베네치아
- 사진의 수호신이 사는 이미지의 도시__스위스사진기박물관, 스위스 브베
- 이상향 엘리제를 향한 여로__엘리제사진박물관, 스위스 로잔
2부 해묵은 사진의 텃밭으로
- 코트다쥐르 해안의 흥성거리는 축제__샤를 네그르 사진과 이미지의 극장, 프랑스 니스
- 사진의 첫 번째 위인, 니엡스의 고향__니세포르 니엡스 박물관, 프랑스 샬롱쉬르손
- 지구를 모아놓은 사진의 정원__알베르 칸 기념관, 프랑스 불로뉴비양쿠르
- 인간미 넘치는 인본주의 사진의 최전선__로베르 두아노 사진의 집, 프랑스 장티이
3부 인간미 넘치는 사진을 찾아서
- 신인의 등용문이 된 공놀이 체육관__죄드폼국립사진센터, 프랑스 파리
- 애도에 젖은 거장의 제단에서__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프랑스 파리
- 사진으로 놓는 우애의 다리__상트르 퐁피두 메스, 프랑스 메스
4부 창의적 사진 공간을 짓는 사람들
- 사진의 성소가 된 수도원__샤를루아사진박물관, 벨기에 샤를루아
- 해가 지지 않는 사진 산업의 왕국__포무FoMu, 벨기에 안트베르펜
- 유럽의 맨해튼에서 만난 영웅들__네덜란드국립사진센터, 네덜란드 로테르담
- 필름의 선사시대를 부활시킨 물탱크__카메라 옵스쿠라, 독일 뮐하임 안 데어 루르
5부 사진 역사의 뒤안길
- 재도약을 꿈꾸는 독립 갤러리__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영국 런던
- 해리 포터의 성이 된 사진 천재의 영지__폭스 탤벗의 장원, 영국 치펜햄
에필로그
찾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