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관계가 깊은 글, 야나기 무네요시의 시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글들을 선별하고 번역해, 묶은 책이다. 야나기의 민예(民藝)미학을 엿볼 수 있는 ‘사물’ 편에서 골라낸 글들을 묶어서 1부 ‘민예’로 재구성했고, 야나기의 미학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 글들로 2부 ‘마음’을, 일본 도자를 중심으로 작가들을 평한 글들로 3부 ‘사람’을 엮었다.
책 소 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 미학과
식민지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 지식인의 고뇌를 다시 읽는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70주기와
일본민예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문고판 번역 출간!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생전에 많은 글을 남겼으며, 그 글들은 치쿠마쇼보筑摩書房가 펴낸 전집 (전22권, 1980~1992년)에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다. 2010년 치쿠마쇼보는 야나기 무네요시 70주기와 일본민예관 창립 50주년을 맞아 문고판 출판을 기획하였다. 문고판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사람ひと(1권)’, ‘사물もの(2권)’, ‘마음こころ(3권)’이란 세 가지 관점에서 글들을 추려 내어, 세 권으로 엮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 특히 조선과 관계가 깊은 글, 야나기 무네요시의 시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글들을 선별하고 번역해,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야나기의 민예民藝 미학을 엿볼 수 있는 ‘사물’ 편에서 골라낸 글들을 묶어서 1부 ‘민예’로 재구성했고, 야나기의 미학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 글들로 2부 ‘마음’을, 일본 도자를 중심으로 작가들을 평한 글들로 3부 ‘사람’을 엮었다. 이 책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관과 미학을 잘 드러내 주는, 그의 미학적 깊이와 넓이를 고찰할 수 있는 책이다.
‘민예民藝’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
그의 민예 미학을 엿볼 수 있는 「거듭 민예에 관하여」 수록
야나기 무네요시는 근대 공예 운동가, 이론가로 ‘민예 운동’을 펼쳤고, ‘일본민예관’을 설립했다. 그는 일본을 비롯해 중국, 한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민속공예품 1만 7천여 점을 수집했다. 그는 민예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 부작용이 나타나자, 이를 염려하면서 「거듭 민예에 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며 민예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를 내렸다. 그에 따르면, ‘민예지’, ‘민예 건축’, ’민예 다도회’ 같은 단어들은 ‘민예’를 특수한 것, 오히려 반反민예적인 성격으로 만들 수 있다. 그냥 평범한 ‘보통 종이’가 바로 민예품이 될 수 있는데, ‘민예적’인 종이라 하면 보통 종이가 아닌 게 되어 어딘지 특별한 종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민예 건축’을 예로 들자면, ‘보통 민가民家’가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의미로 다가오는데, ‘민예 건축’이라고 이름 짓는다면 이미 진정한 민가도 아니고 또한 올바른 건축도 될 수 없다. ‘민예적 건축’과 민가는 다르다. 자연 그대로의 민가여야만 좋은 것이지, 민예 취미로 치우친 건축은 곤란하다. ‘민民’이라는 글자는 ‘평平’이라는 글자와 결합되어야 좋은 것이지, 민예적이라는 특수한 냄새가 나는 건축이 된다면 뿌리가 얕아져 더 이상은 ‘보통 사람들의 건물’이 아니며, 민가로서의 본성조차 상실하게 된다. 민예는 민예적이기 때문에 민예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물건’이기 때문에 민예품인 것이다. 민예품의 아름다움은 민예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성질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민예 다도회’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평범한 다도회’로 충분하다. 그 이상으로 올바른 다도회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평범한 것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새삼스럽게 ‘민예 다도회’ 같은 강하고 고집스러운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평범’을 특별한 성질로 받아들이면 크나큰 과오를 범하게 된다. 평범이란 정상正常, 무사無事, 더 나아가 쉽게 말하자면 당연한 소박함이다.
야나기 무네뇨시의 조선 막사발(이도다완) 찬미!
조선 이도다완의 무사無事와 일본 라쿠다완의 작위作爲는 품격이 다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특히 조선의 막사발을 비롯해 도자에 큰 애착을 가졌다. 그는 이 책에서 조선의 ‘이도다완井戶茶碗’과 일본의 ‘라쿠다완樂茶碗’을 다도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다. 이도다완의 아름다움은 다도 취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도다완은 다도의 취향을 반영하여 만든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본연의 모습에 무한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도를 의식하여 만든 라쿠다완樂茶碗은 이차적인 아름다움을 지닐 수밖에 없다. 라쿠다완은 작위가 눈에 거슬려 언젠가는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이도다완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도다완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까지 자유롭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취향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라쿠다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이래도, 이래도?’라는 식으로 강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듯하며 작위적인 모습이 번잡스럽게 느껴진다. 이에 반해 이도다완은 고요하다. ‘아무렇지 않은’ 풍취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민예품의 아름다움은 이렇듯 ‘아무렇지 않은’ 점에 있다. 그것은 ‘무사의 미’, ‘평범의 미’다. 이도다완에는 어떠한 입장에 집착한 흔적이 없지만, 라쿠다완은 집착하는 마음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을 사랑하고 걱정했던 일본 지식인의 고뇌,
육성으로 다시 듣는 「조선의 벗에게 보내는 글」 전문 수록!
야나기 무네요시는 3?1독립만세운동을 탄압하는 조선총독부를 향해 “반항하는 그들보다 압박하는 우리들이 더 어리석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침탈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의 벗에게 보내는 글」을 1920년 『가이조改造』 6월호에 발표했다. 이 글의 앞부분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동아일보에 연재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다 중단되기도 했다.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광화문을 철거하는 것에 반대하며, 「사라져 가는 조선건축을 위해서」를 『가이조』에 발표했다. 이처럼 야나기 무네요시는 식민지 조선을 사랑하고 걱정했던 일본 지식인이었다. 이 책에는 그의 「조선의 벗에게 보내는 글」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역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며,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이 난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정반대로 받아들여져서 논란도 많았다고 한다. 그가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환경 속에서 고민하며 밝혔던, 국가관과 시국관, 조선에 대한 생각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을 사랑했던 아사카와 다쿠미,
당대 일본의 판화가 무나카타 시코와의 인연도 소개
『조선의 소반』과 『조선도자명고』를 남긴 아사카와 다쿠미(?川巧, 1891~1931)는 그가 사랑했던 한복을 입은 채로 조선인 공동묘지에 묻혔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아사카와 다쿠미가 ‘조선인의 마음’으로 살았으며, 오히려 조선인 이상으로 조선인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많은 조선인들이 통곡하며, 자진해서 관을 메고 장지까지 운구를 했다고 전한다. 당대 일본의 대표적 판화가인 무마카타 시코(棟方志功, 1903~1975)는 야나기 무네요시와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무나카타 시코는 근대기의 미술가 최영림(崔榮林, 1916~1985)에게 판화를 가르쳤다. 최영림은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나카타 시코 문하에서 판화를 배웠으며,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이 두 작가를 기리며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일본(2007년 말, 아오모리현립미술관)과 한국(2008년 초,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 책에는 무나카타 시코의 사람됨과 작품 세계, 작품 창작 과정 등이 잘 그려져 있다.
지은이 ㅣ 야나기 무네요시 (柳宗悅)
해군소장 야나기 나라요시柳樽悅의 3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가쿠슈인學習院 고등과, 도쿄제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등과 재학 중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 등과 함께 문예잡지 『시라카바白樺』를 창간하였다. 그는 근대 공예 운동가, 이론가, 수집가로 생활 속에서 쓰이는 소박한 용기들의 아름다움에 주목해 ‘민예民藝 운동’을 창시했다. ‘민예’라는 용어도 그가 창시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는 1936년 도쿄에 일본민예관을 설립해, 홋가이도나 도호쿠, 오키나와, 대만 등지의 공예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였다.
일본의 문화계 인사들이 조선의 문화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당시, 조선의 미술, 특히 도자기에 주목하여 조선의 도자기와 고미술품, 민속공예품을 수집하였고,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서울에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을 탄압하는 조선총독부를 향해 “반항하는 그들보다 압박하는 우리들이 더 어리석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침탈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의 벗에게 보내는 글」을 1920년 『가이조改造』 6월호에 발표했다. 이 글의 영문 번역 발췌문이 (June 16th 1920)에 소개되었고, 이 글의 앞부분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동아일보에 연재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광화문을 철거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라져 가는 조선건축을 위해서失はれんとする一朝鮮建築の爲に」를 『가이조』에 발표했다.
그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존중한 공로로 1984년 9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조선의 미술이나 공예에 관한 저서도 다수 출판했는데, 『조선과 그 예술』, 『종교와 그 진리』, 『신에 대하여』, 『차茶와 미美』, 『미의 법문』 등이 있다.
옮긴이 ㅣ 김명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과를 졸업했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일과 강사로 있다. 김교빈의 『힌국철학 에세이』(日本評論社, 2008), 이화여대출판부의 『전통한복의 멋 노리게』(東方出版, 2010) 등을 일어로 옮겼다.
옮긴이 ㅣ 김순희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관세이가쿠인關西學院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본어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일본 도요東洋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강사 및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학번역원 아카데미 일본어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겐지모노가타리 연구源氏物語硏究』(三彌井書店, 1995), 『韓日日韓 통역·번역의 세계』(공저, 시사일본어사, 2003)가 있고, 번역서로 『다도와 일본의 미美』(한림신서, 한림대학과학원 일본연구소, 1996),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효형출판, 2005)이 있다. 법정 스님의 수상집 『무소유』를 2001년 일본 동방출판東方出版에서 일역본으로 냈다. 이철수 목판화집 『나무에 새긴 마음』(컬처북스, 2011), 『문화재 해설사와 함께하는 창덕궁』(컬처북스, 2012) 등을 일어로 옮겼다.
옮긴이 ㅣ 김아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과 졸업했으며,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통역번역학과 강사로 있다.
옮긴이 ㅣ 이혜숙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통역번역학과 강사로 있으며,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정환기 수필집 『내 고향은 대한민국』(답게출판사, 2001), 모토야마 히로시의 『내 몸안의 신』(카피바라북스, 2003), 야기타 아키구니의 『신면역요법으로 암을 소멸시킨다』(카피바라북스, 2003), 정환기의 『세월 속에 성공을 담은 이야기』(멘토프레스, 2007) 등이 있다.
옮긴이 ㅣ 조영주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과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대학 연구 과정과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조교수이며,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Wayne A. Kirkbride의 『板門店-朝鮮半島の非武裝地帶に關する事實情報』(Hollym, 2012),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의 『600年’その歷史をたどる』(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 2013) 등을 일어로 번역하였다.
목 차
1. 민예
거듭 민예에 대하여 11
다기의 미와 선禪 24
보는 것과 아는 것 44
직관의 자유 54
조선화를 바라보며 57
오쓰에에 대하여 61
2. 마음
나의 염원 77
범인凡人과 구원 97
불이미不二美 104
3.사람
조선의 벗에게 보내는 글 121
무나카타와 나 147
아사카와 다쿠미에 대하여 179
버나드 리치에게 보내는 편지 185
하마다 쇼지의 도자 작업 206
가와이 간지로의 사람됨과 일 225
도미모토의 도기 239
세리자와에 대하여 245
새로운 마을에 대한 편지 252
오키나와인에게 호소하다 259
아이누를 바라보는 시각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