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대표하는 18명 화가의 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정치, 사회, 문화,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고 우리의 현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교양서이다. 옛 그림 한 점 한 점에 기록된 당시 모습들은 조선 사람들의 치열하게 살던 현장을 전달해 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준다.
책 소 개
임금, 왕족, 사대부, 무관, 유배자에서
양반가 여성, 몰락한 선비, 서얼, 기생, 행상, 책쾌까지
조선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과 만나다
“옛 그림이 우리에게 건네는
삶에 대한 위로와 해법”
조선과 21세기, 화폭으로 통하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18명의 그림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정치, 사회, 문화,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예술 교양서. 임금, 왕족, 사대부, 무관, 유배자에서 양반가 여성, 몰락한 선비, 서얼, 기생, 행상, 책쾌까지 조선 사회를 지탱했던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화가들의 필력에 의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임을 향한 기생의 연심, 난세를 관조하는 노선비의 시선, 길 위에서 사는 인생의 고단함, 사람 사이의 신의와 배신, 모순적인 신분 제도에 대한 울분,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성군이 된 왕의 위엄, 백성의 곤궁한 삶을 바라보는 관리의 고뇌, 화가의 텃밭에 담긴 격물치지格物致知 사상, 책 읽기에 빠진 양반집 여성의 작은 일탈, 조선 생태학을 나비에 집약한 선비 화가의 실학 정신 등, 이 책이 소개하는 그림들에는 당대 사람들의 고뇌와 대응 자세가 담겨 있다.
옛 그림 한 점 한 점에 기록된 당시 모습들은 조선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갔던 현장을 후세에 전달해 줄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줄 것이다.
조선 그림, 당대 사람들의 삶과 고뇌를 담다
조선 회화라고 하면 흔히들 사군자나 산수 등을 그린 문인화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이는 현대의 정규 미술 교육에서 전통 회화를 가르칠 때 문인화를 강조하고 그 외 장르를 잘 다루지 않았던 탓이며, 실제로 조선 화가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그 증거로, 저자는 임금, 왕족, 사대부, 무관, 유배자에서 양반가 여성, 몰락한 선비, 서얼, 기생, 행상, 책쾌까지 조선 사회를 지탱했던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고뇌가 담긴 옛 그림들을 찾아서 자세히 소개해 준다.
기생, 꺾이지 않는 꽃들
이 책에는 신윤복이 그린 「연당의 여인」과 그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기다림」이 실려 있는데, 두 작품 모두 기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기다림」의 기생은 고개를 화면 너머로 돌린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의 손에는 송낙 즉 스님의 모자가 들려 있다. 그녀가 사랑하고 있는 이는 속세를 떠난 스님인 것이다. 감상자에게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얼굴을 돌린 모습에서 오히려 그녀의 짙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연당의 여인」의 기생은 연꽃이 가득 핀 연못 앞의 연당에 쓸쓸히 앉아 있다. 그런데 연꽃이 기생보다 더 앞에, 그리고 더 크고 풍성하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신윤복은 그녀를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견주어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렇게 기생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에서 알 수 있듯이, 기생의 삶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사실은 사회적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녀들이 어떤 연유로 기생이 되었든지 간에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했다고 말한다. 세상은 기생을 천대했으나 기생은 가난한 가족을 위해, 위기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며, 때로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겼다.
그림, 의리와 배신을 말하다
조선 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의리와 배신도 전해 준다.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각각 정반대의 인간관계를 보여 준다.
「세한도」에는 제주도로 유배 간 스승을 위해 중국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 먼 곳까지 부친 제자 이상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한도’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온 제목으로, 김정희는 귀양살이를 하는 자신에게 변치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신의를 지킨 제자에게 이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
반면에 안평대군의 꿈을 화폭에 펼친 기념비적인 작품 「몽유도원도」에는 사람을 귀히 여겼다는 안평대군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에게 간 배신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실 세계부터 꿈 속 도원 세계까지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이 명작에는 명사 23명의 찬문이 달려 있는데, 이들은 계유정난 때 충신과 배신자로 갈렸다. 특히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은 자신을 아낌없이 후원했던 안평대군에게 위험이 닥친 것을 알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먹 도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처투성이 가슴으로도 웃다
이 책에는 난세를 거치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었거나 불화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강희안은 작은아버지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충성을 맹세한 신하들이 변심한 계유정난을 겪으면서, 출세로부터, 명예로부터, 집착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순리대로 사는 삶을 추구했다. 넉넉한 미소를 짓고 흐르는 물을 지긋이 바라보는 노선비를 그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화가의 이러한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남인과 서인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숙종의 환국 정치기에 활동했던 윤두서는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진단타려도陳?墮驢圖」를 그렸다. 이 그림은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진단이란 학자가 이제 태평성대가 올 것이라고 기뻐하다가 나귀에서 떨어졌다는 중국 고사에 기초하고 있다. 유건을 쓴 고매하신 어른이 큰대자로 나귀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는데, 그 어른의 얼굴이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과 똑같아서 더욱 큰 재미를 준다. 주변 사람들이 귀양을 가거나 사형을 당하고 자신도 세상으로 나갈 뜻을 접은 윤두서는 무수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중인 신분이었던 최북은 세상을 관조한 강희안이나 웃음을 잃지 않은 윤두서와는 달리 모순적인 세상에 대한 울분을 그대로 표출한 경우다. 그는 한 관리가 자신에게 작품을 그려 달라고 위협하자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실명했을 정도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우귀가도騎牛歸家圖」에 드러난 최북의 진짜 속마음은 달랐다. 불가의 수행 과정을 소 찾는 10단계 과정으로 비유한 십우十牛 중 6번째 단계인 ‘기우귀가’는 길들인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결국 최북도 내적 갈등을 버리고 길들인 소를 타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다스리는 자, 어짊을 실천하다
소위 ‘조선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지는 부흥기를 이끈 영조는 천비 출신의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나 극심한 정쟁 속에서 수시로 목숨의 위협을 받은 끝에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이 책에는 영조가 연잉군이던 21세 때 그려진 초상화와 재위 20년을 맞은 51세 때 그려진 초상화가 나란히 실려 있다. 「연잉군 초상」에서 「영조 어진」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영조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복장이 사모에서 익선관으로, 단령포에서 곤룡포로 바뀐 것에 그치지 않았다. 왕자 시절의 불안한 눈빛은 나라를 이끄는 강렬한 눈빛으로, 가늘게 떨려 보이던 입술은 말씀 한마디도 무겁고 근엄한 입으로 변했다. 이렇게 영조는 고통의 경험을 피의 복수가 아닌 성군으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밑거름으로 삼아 나라를 부흥시키는 임금의 얼굴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장한종의 「책가도」는 비록 정조의 얼굴을 직접 그린 것은 아니지만 정조의 인품과 정치 철학을 대변해 주는 그림이어서 주목된다. 「책가도」는 정조가 청나라의 다보격(장식장의 일종) 그림을 보고 규장각의 차비대령 화원에게 책과 그 외 기물들을 나열한 그림을 연구하게 하여 탄생한 장르다. 완성된 「책가도」를 본 정조는 어좌 뒤에 있던 「일월오악도」 병풍을 빼고 「책가도」 병풍을 설치하라고 명한다. 이 일화는 조선의 국가관이나 왕실의 권위보다 나라의 융성을 먼저 생각한 왕의 다짐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문화 정치와 실학의 융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정조에게 「책가도」는 예술 작품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가닿다
신사임당은 집 근처의 텃밭, 연못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벌레나 꽃, 새 등을 많이 그렸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흔히들 조선 여자라는 신분적, 성별적 한계 때문으로 해석하고는 한다. 그러나 저자는 신사임당의 텃밭 그림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모든 사물의 이치를 세세하게 관찰하며 파고들면 그 이상의 깊은 앎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즉, 보이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이지 않는 것에 이르는 학문 탐구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이런 철학으로 교육을 받은 이이의 학문 체계와 정치 이념에서도 격물치지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
남계우의 나비 그림들 역시 사의화寫意畵를 주로 그리던 당시 선비 화가들과는 달리, 실제로 곤충을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로 탄생했다. 남계우가 활동하던 때는 안동 김씨 일문이 조정을 장악했던 시기로, 세도 정치의 기세에 입은 있으나 말을 할 수 없었던 많은 선비들은 실학 사상에 몰두했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지향했던 실학은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주장했다. 남계우도 조선 나비를 직접 채집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실학 사상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의 학구적 자세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그의 그림에 그려진 나비를 본 20세기 나비 박사 석주명은 나비 종류 37종과 암수까지도 구별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인생을 위한 예술, 도덕을 묻는 예술
우리의 문文, 사史, 철哲과 문화, 예술은 언제부터인가 먼 나라의 낯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옛 그림을 대할 때도 마치 서양 미술을 감상할 때처럼 양식사 위주로 살펴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위해서도, 또 고상한 지적 취미 때문에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땅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참된 관료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냉엄하게 다스리고 도덕적인 수행을 하는 방법 중 하나로 붓을 들고 선을 그었다.
우리 옛 그림은 당시 화가들이 삶에서 느끼는 고뇌와 이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결 방식을 내놓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들이다. 인생을 위한 예술이고 도덕을 묻는 예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법이나 양식 위주보다는 우리네 삶과 연계하여 감상하는 것이 지적 유희와 감성적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감상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세련되게 풀어 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과 우리 사이에 놓인 정신대와 독도 문제, 대학 입시 제도에서 소외되었던 조선의 역사와 위대한 정신, 사회적으로 증가하는 자살과 왕따, 사회적인 갑을 관계 등을 옛 그림에 비추어 다시 한 번 돌아보자고.
지은이 ㅣ 이일수
독립 전시 기획자이자 작가. 대중에게 그림을 통해 지적 유희와 감성적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자 전시 기획, 글쓰기,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미술관 같은 갤러리인 하나코 갤러리를 운영했으며, 그 외의 다양한 갤러리 및 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기획한 전시로는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2014 The Out of Box Festival 초청 전시 《Hello! Genius Joseon Painters (part)》(Queensland Performing Arts Centre and Cultural Centre, South Bank), 《안녕하세요! 조선 천재 화가님》(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책을 쌓다(서유라)》(하나코 갤러리) 등 수십여 회가 있다.
저서로는 『즐겁게 미친 큐레이터』(생각의 나무), 『뜨거운 미술 차가운 미술』(인디북) 등 모두 11권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미술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대구문화재단 및 여러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큐레이터의 자질과 전시 기획, 예술 경영, 예술 마케팅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으며, 기업 강의에서는 미술과 경영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 과제는 ‘각 장르 간의 융합적 사고의 실현’ 및 ‘공익과 수익 사이에 있는 전시 기획의 올바른 방향’이며, 좋은 전시회와 책으로 관람객과 독자를 만나기 위해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의 뜻을 새기며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다.
목 차
책을 펴내며
제1전시실_화가의 마음을 따라 거닐다
전傳 신윤복의 「기다림」: 당신의 사랑은 괜찮은가요?
이암의 「모견도」: 강아지를 사랑한 왕족의 남자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시선의 미학을 보다
김홍도의 「행상」: 남부여대男負女戴, 길 위의 인생
김홍도의 「자리 짜기」: 가족의 발견
김정희의 「세한도」: 바람의 섬에 사제師弟의 바람이 분다
제2전시실_옛 그림, 세상에 말을 건네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코드
김희겸의 「석천한유도」: 어느 무신의 불편한 휴가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어느 점잖으신 어른의 소동
최북의 「금강산 표훈사도」: 화가, 자신의 눈을 찌르다
이인상의 「검선도」: 당신 모습에서 나를 본다
진재해의 「연잉군 초상」 & 채용신, 조석진의 「영조 어진」: 왕의 두 얼굴
어몽룡의 「월매도」: 깊은 밤에 걷다
제3전시실_옛 그림에서 인생을 만나다
신사임당의 「노연도」: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
윤덕희의 「책 읽는 여인」: 여자, 소설에 빠지다
남계우의 「화접쌍폭도」: 사색하는 나비의 비행
김홍도의 「죽리탄금도」: 펼침과 접힘, 그 사이에서
장한종의 「책가도」: 아름다운 기록, 조선의 서가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 왜 하필 기생 앞에 연꽃일까?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