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열두 개의 미술관과 그곳의 작품들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속 과거의 모습을 만난다. 서울시립미술관, 플라토, 학고재, 아르코, 리움 등 미술관에서 천경자, 서용선, 윤석남, 프란시스 베이컨 등의 작품을 마주하면서 저자의 기억과 만난 화가들의 작품은 새로운 옷을 입는다.
책 소 개
아름다우려 애쓰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미술 에세이 12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을 우리는 흔히 ‘작품’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미술작품을 언어로 다시 풀어쓴 또 하나의 작품이다. 미술에 대한 해설서도 아니고 그림 감상을 위한 안내서도 아닌 이 에세이는 세상에 이미 공개된 미술작품을 저자만의 문자언어로 재탄생시킨 12편의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기획은 미술 전공자인 저자가 출판사로부터 미술에세이를 의뢰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저자 개인적인 감상이나 내밀한 이야기보다는 미술에 관한 내용을 쓰는 데 목적을 두고 집필을 시작했다. 전공자로서 ‘작품에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위치를 찾아주는 데 익숙’했던 저자였지만 2년여의 시간 동안 작품을 수없이 들여다보고, 자료를 찾고 또 그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어느새 애초에 기획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길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결국 저자는 ‘스스로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체념’과 같은 고백의 글 12편으로 이 책 《혼자 가는 미술관》을 묶어내게 되었다.
“그동안 하나의 작품에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위치를 찾아주는 데 익숙했는데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15년 전 덕수궁 미술관 아르바이트, 동네 카페에서 들은 3호선버터플라이, 이사할 집을 찾다가 만난 세입자에게까지 연동되는 지극히 사적인, 그래서 누구에게는 오해에 불과한 나의 이해들을 풀어놓았다. 불안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객관성과 보편성을 찾아주는 논문보다 스스로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체념 아래 책을 묶어내게 되었다.”(여는 글 중에서)
비로소 혼자가 되는 시간
저자는 미술작품을 통해 뜻하지 않게 자신의 아주 사적인 과거의 단편들을 만나게 된다. 천경자의 그림에서 이미 8년 전에 죽은 개 ‘대추’를 만나고, 빌 비올라의 그림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자신을, 배영환의 그림에서는 1992년 노량진의 입시학원 친구들을 마주하게 된다.
“점심시간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도시락에만 집중하는데 누군가 톡톡 내 등을 두드렸다. 내 뒤에 앉은 여학생도 외톨이였다. 그날 우린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집은 어디며, 대학은 어딜 봤었는지, 무슨 과를 지원했었는지 물었는지 모른다. 기억이 나는 건 어색하게 주고받은 존댓말과 빨간 매니큐어 덕분에 우리가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속 과거의 모습들을 저자는 미술관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표현되지 않은 기억,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었던 과거의 파편들이 미술작품과 마주하는 순간을 기록하였다.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펼쳐보고 있는 것처럼.
열두 개의 미술관 그리고 아련한 기억
저자는 열두 개의 미술관과 그곳에 걸려 있는 그림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미술작품을 넘나들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플라토, 학고재, 아르코, 리움 등의 미술관에서 천경자, 서용선, 윤석남, 프란시스 베이컨, 빌 비올라, 야나기 미와의 작품과 마주하면서 저자는 과거의 기억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저자의 기억을 통해 화가의 작품들은 새로운 언어의 옷을 입고 다시금 독자에게 다가온다.
사적인 기억과 만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이었기에 저자는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권한다. 한번쯤 혼자서 미술관을 가보라고….
추천사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미술관에 혼자 간 적이 있습니까?”
학생이나 시민들에게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교양주의’의 벽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교양’의 하나로서 미술과 마주하려고 한다. “이 그림은 무슨 파에 속해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나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인가요?” “가격은 얼마나 됩니까?” 이러한 질문은 모두 미술과 대화할 때 생기는 방해물이다. 미술을 본다는 행위는 말하자면 맨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떤 그림 앞에 서서 지인에게 “이 그림, 좋은데…”라고 말했을 때 “이런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어?”라고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러움을 넘어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 자신의 고유한 감각이 부정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따분하다고 느껴지는 그림 앞에서 친구가 한참을 떠나지 못하면 빨리 다른 그림을 보러 가고 싶어 애가 타기도 한다.
그래서 미술관은 혼자 가는 편이 좋다. 조용히 작품과 대면하고, 마음을 울리는 그림이 있다면 반나절 넘게 그 앞에서 머물러도 좋으며, 지루한 그림은 10초 정도만 바라보고 떠나도 상관없다. 요컨대 자유로워지면 되는 것이다. 자유롭게 미술과 마주할 때,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작품을 만든 작가는 물론, 그 작품과 관련된 외국인이건, 과거의 사람이건, 인사 한번 나눈 적 없는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마음속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그로써 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 이런 만남이야말로 작품을 마주할 때의 커다란 기쁨이자 경이로움이다. 화가와 시대배경에 대한 조사는 진짜 흥미가 일어난 후에 시작해도 좋다.
이 책은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 혼자서 미술과 나누는 대화의 기록이자 그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며, 그녀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풍경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미술이란 갖추어야 할 교양이라기보다 이렇듯 자연스레 마주하며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이다.
-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지은이 ㅣ 박현정
서울에서 태어났다. 삼십 년 가까이 삼선교에서 살다가 2003년부터 일본 지바 현에 거주했으며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쿄 미술관 기행서 『아트, 도쿄』(공저)를 냈고 번역한 책으로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처음 읽는 서양미술사』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과정을 거쳐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목 차
01 천경자|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 되기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02 배영환|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 삼성미술관 플라토
03 오얏꽃 문양|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04 닭모양 토기|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 호림아트센터
05 서용선|1456년 그해 초여름, 사육신
- 학고재
06 윤석남|모성의 진화
- 아르코 미술관
07 정재호|시간이 사는 집
- 서울시립남서울생활미술관
08 십장생도|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 국립고궁박물관
09 프란시스 베이컨|그녀들의 방, 리스 뮤스 7번지
- 삼성미술관 리움
10 빌 비올라|시간 속에 머무르기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1 야나기 미와|대학동의 B양에게
- 서울대학교미술관
12 강덕경|아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