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불꽃같이 살다간 몽파르나스의 천재화가-모딜리아니
이 책은 모딜리아니의 36년 짧은 인생 여정을 삶의 변화와 작품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여 4기로 나누어 독자들이 모딜리아니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고 쓰여 졌다. 더불어 대표적 도판 77컷을 엄선 수록하였다.
1. 출생과 성장
1884년 7월 12일 모딜리아니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항구도시 리보르노에서 아버지 플라미니오 모딜리아니와 어머니 에우제니아 가르신의 3남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어머니는 모딜리아니를 ‘데도’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유년 시절부터 불어를 가르쳤고 단테, 페트라르카등 이탈리아의 위대한 고전 문학을 읽게 하였다. 특히, 역사와 철학을 사랑한 외할아버지 이삭에게서 과학, 철학, 예술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곡’을 줄줄 외우는 어린 소년 모딜리아니는 이후부터 랭보, 보들레르, 말라르메, 셀리 등의 시를 탐독하고 니체와 프로이드를 읽으며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정신적인 소양도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1902년 모딜리아니는 처음으로 집과 가족을 떠나 피렌체 미술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1903년 다시 피렌체를 떠나 베네치아 미술학교의 인물화 교실에 입학한다. 베네치아는 위대한 화가 틴토렌토와 티치아노의 고향으로 모딜리아니는 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색채와 초상화의 기법을 익혀 나간다. 그리고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방문하여 세잔과 고흐의 작품들을 통해 유럽 현대미술의 흐름에 접하게 된다.
2. ‘에콜 드 파리’의 고향 몽파르나스의 보헤미안 귀공자
1906년 단정하고 눈이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 모딜리아니가 22살의 나이로 파리 땅을 밟게 된다. 젊은 예술가들의 생활과 창작의 장소인 몽마르트의 쿨랭쿠르가에 아틀리에를 얻고 콜라로시 미술학교에 등록한다. 생을 마감하기 까지 14년의 파리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1907년 가을에 그의 그림을 알아주고 최초로 그의 그림을 산 의사 폴 알렉상드르를 만난다. 그의 권유로 앙데팡당의 회원이 된다. 이 해 살롱 도톤느에서 세잔의 회고전이 열리고 세잔의 작품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1910년 3월에 열린 앙데팡당전에 「리보르노의 걸인」, 「첼리스트」, 「여자 걸인」등 6점을 출품 하였고 비평가들로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브랑쿠시의 도움으로 조각에 몰두한다. 특히 아프리카의 니그로 조각에 큰 관심을 갖는다. 이 관심이 모딜리아니로 하여금 크레용과 수채, 과슈로 많은 「카리아티드」 시리즈의 작품을 제작케 한다.
3.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와 즈보로스키 부부
오랜 친구이자 시인인 막스 자콥의 소개로 경제적 도움을 주게 되는 화상 폴 기욤을 알게 된다. 이때의 기욤은 알렉상드르 박사 이후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사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들의 초상화를 시작으로 길거리의 여인들과 직업 모델들을 대상으로 많은 초상화가 제작된다. ‘에콜 드 파리’ 시대의 인물들을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기록하는 모딜리아니의 위대한 초상화의 전설이 시작된다. 영국 여류시인이자 소설가로 알려진 5살 연상의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를 만나 2년에 걸친 동거 속에서 그녀의 많은 초상화를 남긴다. 유화만도 10여 점에 달한다. 모딜리아니만의 독창적이고도 최고의 초상화들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또한 모딜리아니 작품에 매혹되어 그의 작품만을 팔아주는 전속 화상이자 친구이며 후원자가 되는 즈보로브스키 부부를 만난다. 이들 부부는 훗날 모딜리아니가 죽은 후에도 그의 명성을 위해 헌신하며 우정을 끝까지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특히 즈보로브스키의 부인인 항카는 모딜리아니가 베아트리스와 헤어진 후 그의 가장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항카는 모딜리아니를 위해 누드모델 까지도 흔쾌히 서 준다.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모델로도 많은 스케치와 초상화를 남겼다.
4. 운명의 여인 잔 에뷔테른느-이탈리아, 그리운 이탈리아
흰 피부에 파란 눈동자, 적갈색 머리칼을 가진 미인으로 ‘누아 드 코코’라 불리던 운명의 여인 잔 에뷔테른느를 만난다. 그리고 12월 생애 단 한 번의 개인전이 즈보로브스키의 노력으로 베르트 바이유 화랑에서 열리게 된다. 그러나 전시장 쇼윈도우에 걸린 두 점의 누드화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문제가 되고 이로 인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가 기간도 채우지 못한 채 끝난다. 건강이 악화되어 니스에서 잔과 1년간 요양을 하던 모딜리아니가 5월에 파리로 혼자 돌아온다. 살롱 도튼느에 회화 4점을 출품하고 런던에서 개최된 <현대 프랑스 미술 그룹전>에 유화 수점을 전시하여 높은 평가를 받는다. 리스 체류 기간에 잠시 중단했던 술과 마약으로 다시 그는 몸을 망치고 있었다. 1920년 1월 18일 병세가 악화되어 자리에 눕게 된다. 1월 22일 중증인 신장염과 결핵으로 각혈한다. 의식불명인 모딜리아니가 생 페르 거리의 자선 병원으로 옮겨진다. 1월 24일 토요일 오후 8시 50분 고국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갈 꿈은 이루지 못한 채 “이탈리아, 카라 이탈리아!(이탈리아, 그리운 이탈리아!)”를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채 자선 병원의 침대에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에콜 드 파리의 위대한 화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조국을 그리워하며 36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이튿날 새벽 임신 9개월의 잔이 양친의 집 6층에서 도로로 투신하여 남편의 뒤를 따라간다. 페르 라 쉐즈에 두 사람은 함께 묻혔고 묘비에 이탈리아어로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7월 12일 리보르노에서 태어나,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사망하다. 바야흐로 영광에 싸이려고 했을 때 죽음이 그를 앗아가다. 잔 에뷔테른느, 1898년 4월 6일 파리에서 태어나,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사망하다. 모든 것을 다 바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헌신적인 반려자.”라고. 모딜리아니는 380여 점의 유화와 30여 점의 조각 작품을 남겼다. 이제 그의 그림은 10프랑, 15프랑이 아닌 그 수백만 배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2010년 뉴욕 소더비에서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6,900만(768억원) 달러에 거래 되었다.
지은이 | 박덕흠
시인이며 저서로는 「폴 고갱」, 「에곤 실레」가 있다
목차
출생과 성장 ...05
에콜 드 파리의 고향 몽파르나스의 귀공자 ...07
베아트리스와 즈보로브스키 부부 ...13
운명의 여인 잔 에뷔테른느, 이탈리아 그리운 이탈리아 ...43
<수록 작품>
큰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느
잔 에뷔테른느
고른곤
카리아티드
아마존
첼리스트
유대 연인
폴 알렉상드르
장 꼭도
신랑과 신부
디에고 리베라
피에로 분장의 자화상
파블로 피카소
하빌랜드
키슬링의 두상
시인의 초상
모피 모자를 쓴 베아트리스
샤임 수틴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
샤임 수틴
푸른 옷의 키슬링
레푸트로의 초상
쇼클라티에
안토니아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
폴 기욤
셔츠를 입은 빨강 머리의 젊은 여자
하얀 슈미즈의 소녀
누드 시리즈
목걸이를 한 잔 에뷔테른느
즈보로브스키 부인 항카
마담 조지 반 뮈덴
쟈크 립시츠 부부
외투를 입은 여자
잔 에뷔테른느
앉아 있는 잔 에뷔테른느
레오폴드 즈보로브스키
가게 점원
소녀 초상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
아이를 안고 있는 집시
푸른 옷을 입은 소녀
어린 농부
견습생 소년
잔 에뷔테른느 - 배경에 문이 있는 풍경
자화상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느
잔 에뷔테른느
부채를 든 루냐 체코프스카
잔 에뷔테른느의 프로필
항카 즈보로브스키
루냐 체코프스카의 초상
젊은 남자
도라 클링코슈트룀
챙 달린 모자를 쓴 젊은이
흰 깃 여성의 초상
에두아르드 바라노브스키의 초상
로제의 초상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여인
젊은 여인의 초상
풍경
마리오 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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