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가 가장 발달했던 시기인 조선왕조시대에 집중한 책이다. 신분과 상관없이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뛰어난 화가들이 뛰어들었던 것이 산수화였으며,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을 뽑을 때도 산수화는 어진을 비롯한 인물화보다 앞선 2등 과목으로 책정되어있을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산수화가 꾸준하게 많이 그려진 조선시대에서는 화풍의 뚜렷한 특징을 반영하는 작품이 많이 남아 있으며, 시대적 변화를 가장 빠르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미술사학계에서는 편년이나 시대규명의 기준을 산수화에 두기도 한다.
내용은 저자가 한국연구재단의 초청으로 진행했던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조선왕조시대(1392-1910)의 산수화’라는, 네 차례의 강연과 한 차례의 종합토론을 정리했다. 실제 강의자료들과 녹음 자료를 풀어쓴 특성을 살려 마치 실제 강연을 보고 있는 듯 구어체로 작성되었으며, 시간 제약이라는 강연의 특성상 총망라하기보다는 산수화의 시대별 특징과 그 변화 양상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서술하는 데 중점을 두어 요점 이해에 도움이 된다. 종합토론 부분 역시 실제 진행되었던 것처럼 정리해 실렸다. 대중적 성격이 짙으면서도 학술적 측면을 고려한 것은, 내용마다 각주와 별도의 인물해설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더 알고 싶은 이들과 연구하는 이들을 배려했다.
책소개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
『조선시대 산수화 특강』은 조선시대의 산수화를 통해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를 개관하는 책이다.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려진 산수화를 통해 현대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예술적 흐름을 조망하고,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인문학적 설명과 함께 500년 역사를 지닌 조선왕조를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보통 인문학이라고 하면 문, 사, 철, 즉 문학, 역사학, 철학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미술사는 역사학의 한 분야로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역사학에서는 미술사를 정통 문헌사학과는 조금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술, 예술처럼 인간의 미적 창의성과 감성을 적나라하게, 분명하게 그리고 풍부하고 다양하게 담아내는 분야를 제외하고 인문학을 논한다면, 인간의 감정적 측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인문학의 범위와 시야를 좁히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산수화 특강』은 한국연구재단이 인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진행한 ‘석학인문강좌’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해,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 그리고 인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서 ‘미술’을 제시한다. 특히 강연의 컨셉을 반영한 편안한 구어체는 조선시대의 산수화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회화의 정수, 산수화
산수화는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의 자연관과 철학, 사상을 가장 두드러지게 담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몸담고 살고 있는 대자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장강만리, 천봉만학과 같은 대자연을 제한된 크기의 그림에 담아내려면 높은 수준의 예술적 기법이 요구되기 때문에 산수화의 표현은 다양하고, 고도화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순수한 예술적 감상의 대상이었다는 점도 회화 분야 중 산수화를 가장 높게 치는 이유가 된다. 특히 조선왕조에서는 궁중의 화원을 뽑을 때 형식상의 과목인 대나무 그림을 제외하면, 산수화가 가장 중요시되었다.
산수화는 우리나라 회화의 특징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산수화가 꾸준히 그리고 많이 그려진 조선시대에서는 화풍의 뚜렷한 특징을 반영하는 산수화 작품이 많이 남아 있으며, 시대적 변화를 가장 빠르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미술사학계에서는 편년이나 시대규명의 기준을 산수화에 둘 정도로 산수화는 우리나라 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처럼 산수화는 회화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특별히 책의 주제로 산수화를 선택한 것도 이와 맥이 통한다. 다른 회화 분야로 시야를 넓히기 전, 미술사 공부의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산수화를 통해 보는 조선
조선시대는 산수화가 가장 많이 그려지고,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화가들만 해도 금세 열손가락에 꼽는다. 조선 초기(1392-약 1550)의 안견은 「몽유도원도」 등 뛰어난 실력으로 ‘안견파’라는 화풍을 창출했다. 편파구도, 확대지향적인 공간구성, 정자 등의 모티프와 같은 특징을 공유하는 ‘안견파’는 비단 조선뿐 아니라 일본의 슈분, 분세이 등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일본에도 안견파와 유사한 일련의 화풍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화풍이 중국, 조선, 일본을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이 취한 대중, 대일 교섭의 결과이기도 했다.
안견의 영향은 조선 중기(약 1550-약 1700)까지 이어졌다. 대표적인 작가가 화풍을 이끌기보다 이전의 화풍을 계승하고, 다양한 화풍을 절충했던 조선 중기의 회화는 다소 소심하게 전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부적으로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환이 겹치고, 내부에서는 사색당쟁의 심화라는 시대적 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조선 중기의 분위기는 조선 초기의 역동성과는 달랐다. 하지만 중기의 실험적 경향이 있었기에 조선 후기의 문화융성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는 ‘잠든 용’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약 1700-약 1850)는 조선 초기에 이은 문화융성기라고 이름붙여질 정도로 예술 전반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다. 주요 작가로 정선, 윤두서, 김홍도, 강세황 등 다양한 화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전개했다. 그중에서 정선을 필두로 형성된 진경산수화풍은 조선 후기를 대표할 수 있다. 진경산수화는 실학과 경제의 발전을 통해 대두된 지도제작, 여행붐이라는 요소와 관련되어 있었다.
조선 말기(약 1850-1910)의 회화는 추사 김정희로부터 나온 소치 허련파와 장승업파로 이루어진 양대화파로 양분된다. 조선의 질서가 급격히 무너지던 시기, 진경산수화의 유행은 사라지고 남종사의화적 경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산수화는 서양화 중심의 현대 화단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전통을 계승하는 유일한 회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말기의 회화는 현대의 화풍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참고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가에게 듣는 친절한 미술사 강의
저자 안휘준(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은 한국 미술사학계의 원로 학자로, 「한국 그림의 전통」, 「한국 미술사 연구」, 「한국 고분벽화 연구」 등의 저술을 통해 만년의 연구를 활발히 정리하여 발표하는, 현재 진행형의 미술사가다. 그는 비단 학술, 연구서뿐 아니라 「청출어람의 한국미술」과 같이 일반인에게 한국 미술을 쉽게 알리는 대중적 저술을 꾸준히 해왔다.
「조선시대 산수화 특강」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과 같이 연구자뿐 아니라 대중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주최한 석학인문강좌에서 저자가 맡은 강연의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강의 컨셉을 그대로 책에 옮겨 생생한 구어체를 사용하였고, 강연 당시에 사용된 그림 189개의 슬라이드를 종합하여 본문 곳곳에 배치, 글의 이해를 도왔다.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객담처럼 들릴 수 있는 부분도 오롯이 살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도 술술 읽힌다.
책 뒤쪽에 수록된 100페이지 남짓의 부록 역시 독자를 위한 저자의 배려다. 6장 종합토론은 석학인문강좌 강연에서 진행된 질의토론의 내용과 청중의 질문, 저자의 답변을 담았다. 책의 내용을 보완해 주면서도,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할 수 있을 부분까지 먼저 제시한다. 또한 용어, 인명 해설과 도판 목록, 참고문헌 목록, 찾아보기까지 책을 다각적으로 활용,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산수화 특강』은 원로 학자의 수준 높은 교양서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자연스럽게 산수화에 집중’되었다고 말한다. 한국 미술사학계의 대가가 스스로 꼽은 ‘전공’을 다룬 책인 것이다. 확실히 산수화만을 통해 조선시대의 전반을 사상적으로, 역사적으로 읽어내는 저자의 모습은 그 내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도 정작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 전통적 예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활발한 논의가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조선시대 산수화 특강」은 아름다운 산수화를 감상할 수 있으면서도,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인문학적 배경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지은이 | 안휘준(安輝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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