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작가와 재일조선인 여성이 사랑을 키워가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이야기.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표현방식은 사진ㆍ영상ㆍ퍼포먼스 등 실제 전시되었던 작품들이다. 책 제목 역시 그 작품 중 하나에서 땄다. 내용에는 작가의 수필이자 작품과정과 설명인 글을 담았고, 그래서 이 책은 또 다른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책소개작품 작업의 기록이자 연인에 대한 사랑의 편지
이 책은 연인 K로부터 받게 된 질문, “재일코리안을 향한 당신의 혐오감은 도대체 뭐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된 작품 작업의 기록이자 K에 대한 사랑의 편지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재일코리안’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은 결국 일본인이었던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였다. 다카미네는 강제징용의 역사가 담긴 교토 인근의 망간탄광에 체재하면서 답을 찾아나간다. 사회 속에 내재된 지배와 차별, 억압의 시스템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문장으로 전개된다.
각 장의 시간적인 순서가 약간 어긋나 있고 형식도 여러 가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설치 미술 작업을 주로 하는 다카미네 작가의 실제 영상 작업을 책으로 엮으면서 책 전체를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구성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을 구입해서 읽는 독자는 하나의 독립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소장’하는 셈이다.
첫 장 <베이비 인사동>은 재일코리안 여자 친구와의 결혼식 모습을 찍은 연속 사진과 영상을 글과 함께 구성한 설치 미술 작품으로 2004년 부산 비넨날레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두 번째 장 <재일의 연인>은 2003년 교토 비엔날레에 출품한 미술 작품이었다. 강제징용의 현장이었던 단바 망간 기념관에서의 제작 과정을 일기와 영상으로 기록하여 교토예술센터에 전시하였던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출산의 과정을 담은 비디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망간 기념관에서의 작품 이후, 임신과 결혼, 출산의 과정을 담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각기 다른 세 개의 미술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음으로써 ‘자신’의 문제로부터 ‘전체’를 바라보는 확장된 시선을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아직 이름도 없는 우리 아기, Baby, Insa-dong”으로 끝맺는 첫 장에서 ‘인사동’이라는 태명으로 불렸던 아기의 이름은 책의 마지막 문장에 다시 등장한다. 자라날 아이와 함께 생각해나가고 싶다며 인류 공통(common)이란 의미인 ‘코몬’을 아이 이름으로 짓는다. 결국 여자 친구의 뜻밖의 질문에서 시작된 고민은 인류 전체를 바라보는 앞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는다.
일본의 사회파 현대미술가 다카미네 다다스
다카미네 다다스의 작업이 지닌 주요한 축은 에이즈와 동성애, 미국의 제국주의, 신체 장애인의 성과 간병 문제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펼쳐진 일본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사회에 잠재된 지배와 차별, 억압의 시스템을 재고하는 것이다. 그러한 틀에서 보면 이 책의 주제 역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로서, 지금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틀에서도 배제된 디아스포라(이산자)이자 마이너리티인 재일코리안의 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전체의 문제로 환원하여 추상적인 결론을 내리거나 ‘정치적 올바름’에 근거한 당위론에 빠지지 않고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그의 작업에 일관된 태도이다.
저자는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미술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지배, 억압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출발의 과정을 담은 책이 《재일의 연인》이라 할 수 있겠다.
지은이 |
다카미네 다다스 (高嶺格)
1968년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교토시립예술대학과 기후현립 국제정보과학예술 아카데미(IAMAS)를 졸업하고 현재 아키타 공립미술대학 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감상자와 작품 사이의 쌍방향성을 지향하는 설치 작업과 영상과 음악을 이용한 퍼포먼스, 무대 연출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한다. 제국주의, 소수자, 후쿠시마 원전 등 사회 권력과 억압적 시스템을 주제로 지배/피지배, 당사자/비당사자의 얽힌 관계를 부각시키며, 감상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통해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2011년부터 2013년에 걸쳐 일본 국내 4개 공립 미술관에서 개인전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아’, ‘다카미네 다다스의 쿨재팬’을 순회 개최했다.
http://takaminet.com/
옮긴이 | 최재혁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 및 동아시아 근대 미술을 전공했다. 근대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전개되었던 시각 문화의 경합과 교차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아트, 도쿄》(공저)가 있으며, 《무서운 그림 2》, 《나의 조선미술 순례》,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등을 번역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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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옮긴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