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40년 전 우리의 것을 우리식으로 그려낸 예술가가 있었다. 겸재 정선이다. 그동안 겸재에 대한 연구는 진경산수화풍과 우리 그림의 정체성을 개척한 데에 집중되어 산수 영역으로만 강조된 면이 있었으나, 그가 84세라는 당시로써 비교적 오랜 세월을 살며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였음을 기억하면 그간 소홀히 되었던 겸재의 폭넓은 미술 세계가 아쉽기도 하다. 겸재정선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러한 마음을 담아 그를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용은 총 4부로 이루어지고, 다시 여러 개의 장으로 나뉜다. 각 장은 겸재의 주요 작품으로 시작해 실제의 사진과 함께 수록해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다. 풍경의 경우 당시의 위치를 현재의 위치와 겹쳐 가늠해봄으로써 전문지식이 없으면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닌 탐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이는 기존의 학회 발표문을 포함한 연구물들을 일반 대중에게 접근성 있게 전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저자는 또 겸재의 문화 형성력과 창조적 대응, 개별적 예술혼을 주목하고자 했다. 조선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급변의 시기에, 중국이나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화법과 학문을 배척하지 않고 습득하고 포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곧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을 들며 겸재에 대한 보다 폭넓은 재조명을 과제로 남긴다.
책소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라는 독특한 화풍 덕분에, 그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작품을 대부분 단번에 알아본다. 독창적이라고 해서 모두 다 인정받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겸재의 작품은 그만큼 예술성과 독창성을 함께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특별한 시선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역사와 미술을 함께 보아온 저자 이석우 교수는, 겸재가 당시 첨단문물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관상감의 천문학 겸교수로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로 그 위치에서 겸재가 서양 화법을 일부 수용해 우리 전통 화법에 적용함으로써 진경산수화풍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겸재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미술가’로 규정하며,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사회에서 서양화법의 영향을 우리식으로 재창출한 국제적 감각을 지닌 선구적 화가로 보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국가 간 기술교류와 학제(學際) 간 소통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우리 시대에, 당대의 문화 흐름을 자기 식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낸 겸재의 문화형성력·창조적 대응·개별적 예술혼에 주목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 겸재는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으로 조선 미술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며 동아시아 예술의 중심이었던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사대부 출신으로 화원(畫員)이 된 그는 숙종 대부터 영조 대까지 관상감의 천문학 겸교수를 시작으로 사헌부 감찰, 의금부 도사를 거쳤고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 한강의 수려한 경관을 화폭에 담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보 제216호 〈인왕제색〉과 국보 제217호 〈금강전도〉를 그린 것만 봐도, 이공계 전문가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한 맞춤형 인재로 손색이 없다. 영조가 겸재에게 양천현령과 청하현감을 맡긴 것은 그로 하여금 조선의 비경을 그리게 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화가로서 겸재는 최고의 반열에 든 사람이었다.
하지만 겸재의 작품에는 선비다운 품격과 위엄이 있으며, 올곧음과 여유가 저절로 배어난다. 그의 그림을 단순히 기법이나 준법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독서여가〉나 〈인곡유거〉, 〈경복궁〉 등에서 보여 준 선비다운 삶과 역사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겸재 정선이 아끼고 사랑한 주제들과 그의 역동적인 삶을 함께 그려내면서, 자연산수·인물·화훼영모에 이르기까지 수십 장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4부 16장으로 담아냈다.
이 책을 읽으며 겸재와 함께 경복궁·서촌·광화문을 거쳐 한강과 금강산을 따라 걷다 보면,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감상하는 법, 자연에 유유자적 거하는 즐거움, 선비답게 고요함과 벗하는 법 등에 대해 배우고 느끼며 생각하게 된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가 선비의 혼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하나로 담아 붓으로 그려낸 조선의 모습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조선 최고의 화가, 붓으로 조선을 그리다
84세라는 당시로서는 비교적 오랜 세월을 살다간 조선의 대표 화가 겸재 정선은, 숙종·경종·영조 대의 극심한 당쟁 가운데서 관료의 삶과 예술가의 삶을 동시에 살아냈다. 그가 두 가지를 이뤄낸 비결과 지혜는 ‘겸손할 겸’이 들어간 그의 호 겸재(謙齋)에서 볼 수 있듯이 ‘겸허·겸손의 정신’이었다. 저자는 겸재가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 한강을 품에 안았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겸재정선미술관에서 겸재의 평생을 따라가며 시대의 명작들을 기쁘게 소개한다.
겸재 정선의 대표그림을 테마로 삼아 16폭의 그림을 그리듯 담아낸 이 책에는, 조선의 화풍을 전기에서 후기로 이끌어낸 조선 미술계의 거장 ‘겸재 정선’의 삶과 예술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의 생애에 중요한 시기마다 위대한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각각의 걸작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인간답게 사는 법’에 대한 겸재의 고민이 절절이 담겨 있다.
또한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 등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 모두 겸재의 가지에서 뻗어 나왔거나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석우 저자는 겸재를 비롯해 여러 화가들의 작품들을 비교·분석하면서, 겸재가 산수화뿐만 아니라 인물화와 화훼영모화에 이르기까지 큰 획을 그었음을 밝혀냈다. 또한 겸재 그림의 미술사적 의미와 감상 포인트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곳들을 답사하여 겸재의 시선을 직접 느끼며 작품과 현장을 비교·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에는 전문가들이 인정받고 우대받는다. 사물인터넷과 3D 프린터,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wearable) 기기가 분초를 다투며 발전하는 만큼, 암기 위주의 공부보다는 자신만의 시선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이공계 중심으로 재편된 기업문화에 인문학적 소양을 융합하는 게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면서, 인간답게 사는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문화와 기술을 공유하며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적 전환기에, 우리는 어떤 자세로 우리의 삶을 준비하며 가꿔나가야 할까? 이석우 저자는 그 답을 선비이자 화가였던 겸재 정선에게서 찾았다. 그와 겸재의 만남이 낳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하고 예술을 더욱 아름답게 향유하는 길을 함께 모색해 보자.
지은이 | 이석우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으며, 현재 겸재정선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사람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는 동안 그는 역사와 미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늘 매료되곤 했다. 그에게 “미술은 역사의 표정이며,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자, 역사와 만나는 직접적인 통로”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를 만나러 미술관에 간다”라고 말한다. 또한 역사와 미술은 직관을 통해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으니, 그가 두 영역과 친구처럼 함께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학에서 정년하고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것을 그는 큰 은총이자 행운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의 전통회화들은 유사한 보편적 양식을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놀라운 차이와 개성을 드러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속에서 빛나는 현대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창조적 도약의 대표적인 인물이 겸재인데, 그는 겸재의 대담한 구도, 감출 수 없는 기운, 뜨거운 화혼과 자유정신에 매료되었다. 그는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회원이면서 개인전도 네 번 열었다.
저서로는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 《역사의 들길에서 내가 만난 화가들》(상·하), 《역사의 숨소리, 시간의 흔적》,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명화로 만나는 성경》, 《대학의 역사》,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있다. 그는 “무엇이 되려고 하기보다,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왔다”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읽고 쓰고 그리기’의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가슴에 지적 탐구의 불꽃이 타오르는 한, 그는 이 길을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목차
머리말·04
제1부 조선의 중심, 선비의 붓에 깃들다
1장 경복궁, 폐허에서 그려낸 역사·14
2장 육상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28
3장 의금부, 조선의 산수화를 이끈 겸허한 거인·54
제2부 선비의 눈과 마음, 자연에 깃들다
4장 수성동, 세상을 바꾼 한 장의 그림·78
5장 독서여가, 조선시대 선비의 하루·98
6장 인곡유거, 홀로 있고 싶은 마음·112
7장 세검정, 역사를 잉태한 곳에서 마음 씻기·132
제3부 자연의 아름다움, 진경에 깃들다
8장 삼부연, 화가와 시인의 감동이 그치지 않는 곳·156
9장 구룡폭, 현대회화보다 더 대담한 생략과 자유·172
10장 우화등선, 분단의 아픔이 새겨진 뱃놀이현장·194
11장 청하성읍, 청하에서 한가로움으로 담아낸 진경·210
12장 양화환도, 순간을 포착하는 화가의 한강유람기·234
13장 양천현아, 삶과 역사의 현장에 대한 증언·246
제4부 진경의 미학, 상징에 깃들다
14장 선인도해, 겸재가 추구했던 신선의 모습·272
15장 송림한선, 우리 나무와 곤충에 담긴 우주의 질서·290
16장 노송대설, 선비의 기풍 지닌 의연한 소나무·316
정선 연보·330
참고문헌·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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