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통해 인류의 오랜 역사를 묶은 책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짚고, 이들이 오늘날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의 뿌리를 한옥에 두고 우리의 과거 디자인과 도출된 문화를 이해하며, 과학ㆍ철학ㆍ예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미래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찾아본다.
책소개
새로운 시각, 새로운 상상으로 디자인을 만나다
디자인(design). 그 뜻을 보면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주어진 목적’을 ‘실체화’한다는 것. 즉 반대로 생각한다면 목적(기능)이 없고 실체(형태)가 없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저자의 ‘디자인은 기능을 통한 우주의 이해’라는 말은 이 개념을 인류를 넘어 자연과 우주의 보편적 가치로 확장시키면서 탄생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디자인의 이런 특성을 핵심으로 하여 디자인의 오랜 역사와 그 이론을 살핀다. 하지만 뻔한 디자인 원론 책은 아니다. 일단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한옥연구가인 저자는 단순히 한옥을 건물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우리 한옥과 전통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보존하려면, 통합적인 사유를 통해 한옥의 가치에서 새롭고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옥연구가가 보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시각에서 바라보는 디자인의 역사와 만물의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연과 인류를 통찰하는 프레임을 만들고, 다시 인류의 역사를 하나로 볼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본질이 다른 예술과 디자인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결합하는지 살피고, 이 이론을 실제 디자인에 적용한다. 그리고 이 디자인 이론의 뿌리가 되는 한옥을 함께 고찰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과거의 디자인을 이해하고 미래 디자인을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도 디자인은 있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왠지 지성을 갖춘 인간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디자인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당장 참새 한 마리 혹은 작은 벌레 한 마리에도 디자인은 존재한다. 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해 혹은 필요에 의해, 본능적으로 살기 좋게 몸의 모양을 바꾼다. 곰의 두툼한 털, 여러 갈래의 가지를 하늘을 향해 뻗는 나무. 이것이 자연의 디자인이다.인간처럼 ‘불편하다’, ‘더 폼 난다’라는 사유를 통해 탄생하는 디자인과는 다르다. 그래서 자연이 만든 디자인의 가장 큰 덕목은 ‘기능’이다. 기능 면에서 자연의 디자인은 매우 합리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기능만 정확하게 특화한 디자인. 그래서 저자는 ‘최대의 기능과 최소의 장식’이 인간을 제외한 생명들이 스스로를 디자인하는 가장 큰 원칙이라고 말한다.인간의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기능’을 위해 디자인이 탄생한다. 옷, 집, 볼펜 심지어 음료수병 하나까지도 모두 기능을 위해 탄생된 것들이다. 다만 다른 것은 온몸을 털로 뒤덮는다거나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처럼 몸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 ‘같은 기능을 가진’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말하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LG전자의 스마트폰 ‘G5’도 탈착 식 디자인에 익숙한 인류의 보편적 디자인을 잘 담아낸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생활과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히 어떤 하나의 기능을 만족시킨다고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각각의 디자인은 생명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생활도 단순한 기능들을 합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에도 인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디자이너가 하나의 기능에 몰두하기 보다는 그 기능이 생활 속에서 다른 기능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한옥은 우수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엌과 방(대청)의 배치가 철저히 인간의 편리한 생활에 맞추어 있고 외형적으로도 장식을 위한 장식은 없다. 하나의 공간을 때에 따라 나누어 쓸 수 있는 구들과 대청은 자칫 과잉 디자인으로 흐를 수 있는 건축을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시킨 성공적인 디자인이다.
예술과 디자인은 본질에 있어서 엄연히 다르다. 디자인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예술과 구분된 자기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기능성이다. 디자인은 분명 우리 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현대와 디자인
디자인의 홍수라고 할 수 있는 현대. 하지만 현대 디자인은 과거와 성격을 달리하게 되었다. 과거 디자인은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특정됐지만, 오늘날에는 꼭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일대일 관계가 사라졌다. 장갑 디자인을 장갑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에도 쓰는 형태가 생기면서, 어떤 ‘기능’은 이런 ‘디자인(모양)’으로 구현된다는 과거의 인과관계가 없어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디자인이 포장의 개념으로 바뀌면서 디자인 과잉이 발생한 것이다. 과거 초과 생산된 제품은 기업의 창고에 재고로 쌓였지만, 지금은 디자인 재고의 형태로 전환되어 소비자의 장롱 속에 쌓이고 있다.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디자인 특허권 침해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디자인의 성격이 기능적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생산되던 집단지성에 뿌리를 둔 것이라면, 오늘날 디자인 성격은 산업화되어 독창성이 강조되면서, 디자인의 속성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디자인이 반복해서 생산되고 그것을 원형으로 끊임없는 차이를 만들어 왔지만, 현대에는 그리고 미래에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의 미래, 그리고 우리
본래 생활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 디자인이었지만, 이제는 디자인을 위해 생활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디자인을 위해 필요를 만들고 디자인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버니 말이다. 자연은 스스로를 디자인하기에 자기 자신을 볼 일이 없어 시각적인 의미가 중요하지 않지만, 인간은 몸 밖에 디자인을 만들고, 이것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면서 시각적인 가치를 매우 중시한다. 조금 더 예쁜 것, 조금 더 빠른 것, 조금 더 좋은 것을 찾으려다 보니 기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구매한다. 저자는 이를 ‘디자인이 욕망을 선도’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디자인에 의해 생활이 바뀌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유 환경에 놓이게 될 수도 있는 게 현대의 우리라는 소리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디자인은 모든 것의 출발점일 수 있다고.
이 책을 읽고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를 읽게 된다면, 조심스레 예측되는 우울할 수 있는 우리 미래의 모습도 바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자가 남긴 한마디의 말이 와 닿는다.
‘이제 디자인은 인간에게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지은이 | 이상현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면서 ‘집’과 인연을 맺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회사를 나왔지만, 《용평리조트 30년사》 집필에 참여하면서부터 한옥의 매력에 빠져 한옥연구가가 되었다.
그는 한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목수 일까지 배웠다.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作家)라고 하는데, 한자를 그대로 풀면 집을 짓는 이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의 집을 짓고 나무를 만지는 사람은 몸의 집을 짓는다. 즉 작가로서 몸을 담는 집과 마음을 담는 집을 함께 짓고 있는 셈이다.
한옥학 개론서 《즐거운 한옥읽기 즐거운 한옥짓기》를 세상에 내보낸 이후, 대중에게 한옥을 쉽게 안내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과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한옥이 품은 인문학적 가치를 찾는 《인문학, 한옥에 살다》 그리고 재미있는 강연 형식으로 풀어낸 미학 입문서 《깨져라 미학 유쾌하라 예술》을 출간하였다.
그는 한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틈틈이 한옥을 통해 미학 철학 문화 등 다채로운 인문학적 주제의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한옥을 통한 통합적인 사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 이용하기를 기대하며, 지금 어디선가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인문학 중심) 한옥연구소: http://blog.naver.com/eoklsh
목차
여는 말
01 자연 속으로
디자인의 어머니,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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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생명이다
디자인이 탄생하다 / 인간이 아닌 자연의 능력, 디자인 / 날개 없는 나방을 디자인하다 / 특별한 디자인, 건축 / 자연, 한옥, 그리고 디자인
디자인은 반복에서 나온다
디자인은 반복에서 태어난다 / 자연의 특징, 반복 / 반복과 차이로 그려지는 자연 / DNA를 닮은 디자인 / 한옥에서 만나는 반복과 차이
디자인의 고갱이, 기능
............................
기능은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기능, 생명을 살리다 / 과잉 디자인을 경계하다 / 과정이 있어 디자인이다 / 빌라 사보아, 빅토르 오르타, 그리고 한옥의 익공
생활은 디자인의 지향점이다
생활의 지지자, 디자인 / 한옥에서 배우는 디자인, 생활 / 생활로 들어온 현대 디자인
디자인의 성장판, 형태
............................
형태 없는 디자인은 불완전하지만, 기능 없는 형태는 위험하다
형태는 디자인의 기본이다
기능은 형태 안에 머문다 / 디자인의 첫걸음 비례와 대칭 / 한옥에서 배우는 비례
대칭을 넘어서다
자연, 대칭 너머로 가다 / 우리는 왜 대칭에 현혹될까? / 대칭에서 비대칭으로, 한옥의 변신 / 현대 디자인에서 만난 비대칭, 벨로스터
디자인의 역설, 색
.......................
디자인은 색으로 완성된다
형과 색을 다시 보다 / 기능과 인터페이스로서의 색 / 색의 두 가지 모습, 원색과 바탕색 / 색이 형태만큼 중요해지다
02 자연 밖으로
세일즈 정신의 미학
........................
생명에서 재산으로
디자인, 필요에서 판매로 / 디자인의 과잉과 오르가즘 / 디자인, 필요에서 기호로 / 뱀이 된 스티브 잡스 / 차이의 반복이 사라진 디자인
디자인 자연에서 나와 문화로 들어가다
.................................................
지성에서 본능으로
디자인 자체로 / 성형의 미학 / 디자인, 삶을 규정하다
지성에서 직관으로
다이달로스의 교훈 / 디자인에 정서를 불어넣다
03 새로운 상상력, 한옥
오래된 미래
...............
디자인은 설계가 아니다
우리 디자인의 원형, 한옥
새로운 디자인, 한옥
.........................
패키지 디자인: 마당과 쇼핑백
털가죽과 옷의 차이 / 레이먼드 로위, 디자인의 역사를 새로 쓰다 / 우리는 뉴욕으로 가야 하는가? / 디자인의 새로운 꽃, 타이포그래피
단순(융합): 아이폰과 만대루
디자인의 생명, 단순함 / 단순함, 한옥의 특징 / 융합은 단순성을 지향한다 / 시대의 아이콘, 아이폰 / 우리 건축의 아이콘, 만대루
흐름(자연): 명재고택과 맥심 그래픽 디자인
생명은 흐름이다 / 공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흐름의 디자인, 명재고택 / 맥심 디자인으로 보는 흐름의 디자인
질감(정서): 낙선재 빙열문과 노키아 메탈폰
질감으로 승부한 디자인, 빙열문 / 질감으로 승부한 디자인, 베가 아이언
예술(리듬): 개심사 심검당과 필립 스탁
디자인 예술일까? / 디자인 이제 리듬을 담아야 한다 / 우리는 왜 고흐를 좋아할까? / 흐름을 담은 디자인, 개심사 심검당 / 필립 스탁, 흐름에 악센트를 주다
04 한옥의 공간구성원리로 보는 토탈디자인
토탈디자인 한옥
.....................
영성에 관심을 가져라 / 자연에 관심을 가져라 / 사회에 관심을 가져라 / 상대에 관심을 가져라 / 정서에 관심을 가져라 / 모든 것을 담아내는 토탈디자인
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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