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외롭다면 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라고 첫 장을 여는 저자는, 자신의 삶과 경험으로부터 세계로 확장해가는 방식의 글을 이어간다. 고독이라는 주제를 탐구ㆍ통달하여 상대했던 시각예술 분야 예술가들을 주로 끌어들여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1970-80년 미국의 예술계와 사회 속 인간의 고독을 읽을 수 있다.
책소개
“외로움에 대한 눈부신 경의. 타인에게 우리가 지금보다 더 다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새로운 고전.”
‘제2의 리베카 솔닛’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최고의 작가’로 주목받는
문학·예술 비평가 올리비아 랭이 탐사한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시, 에세이, 소설, 영화, 그림…… 수많은 예술작품에서 사랑 다음으로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가 바로 고독이 아닐까? 예술 비평 저술로 ‘제2의 리베카 솔닛’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작가’로 주목받는 올리비아 랭이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나섰다.
30대 중반에 사랑을 좇아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주했지만 하루아침에 실연을 당하고 철저히 혼자가 된 랭. 고립감·우울·피해망상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단서를 발견하고 뉴욕을 살아낸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 속으로 빠져든다. 호퍼에서 시작해 앤디 워홀까지 사람들 사이에 놓인 간극과 군중 속에서 고립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에 극도로 예민했던 이들, 고독을 끌어안고 고독에 저항했던 예술가들. 그들은 도시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고립감, 이민자·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낙인, 가난·학대·섹스·에이즈·죽음 같은 극복하기 어려운 고독의 원천들로부터 예술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탄생시켰다.
대도시 속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묘사해낸 호퍼의 유리벽, 팝아트의 선구자로 화려한 명성을 누렸지만 고립감이 작업의 원동력이었던 워홀의 녹음기,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의 예술적 세계를 구축했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헨리 다거의 콜라주, 동성애와 섹스를 주제로 삼고 에이즈 운동을 펼쳤던 행동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가면, 상실과 단절의 상처를 실로 꿰매고자 했던 설치미술가 조 레너드의 이상한 열매까지. 랭은 이들이 남긴 외로움의 다양한 조각을 유연하게 이어붙이며 ‘우리가 거주하는 고독이라는 도시’의 맨 얼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로부터 시작한 이 내밀하고도 대담한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외로움들의 조용하지만 눈부신 연대를 발견하게 된다.
“고독은 아주 특별한 장소. 외로운 도시에서 경이적인 것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고독이라는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타인이 아닌 예술이었다
도시에 거주한다는 것, 혼자가 된다는 것, 외롭다는 것
타인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다니면서도 홀로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 장소, 도시. 현대의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회복될 여지가 없는 만성 질병”(사회과학자 로버트 와이스) 고독을 앓는다. 저자 올리비아 랭은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후 철저히 혼자라는 감각 속에서 우울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외롭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천착했다.
적당히 즐길 만한 고독이 아닌 처절한 외로움, 그것은 “배고픔 같은 기분”이다. 주위의 모두가 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나만 굶고 있는 듯한 기분에 창피해지고 경계심이 들고, 그래서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소외되는 현상. 랭은 그 고독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건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아님을 깨닫는다. 오히려 고독을 앓았던 다른 이들이 남긴 조각을 찾아나서며, 고독이라는 미궁에서 자신을 구원해낼 지도를 그려나간다.
호퍼에서 워홀까지, 고독을 끌어안고 고독에 저항했던 예술가들
대도시 속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묘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에드워드 호퍼. 조이스 캐럴 오츠는 호퍼의 그림 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가리켜 “미국적 고독의 낭만적인 이미지 가운데 가장 통렬하고 쉬지 않고 복제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랭은 바로 그 호퍼의 그림들로 끌려갔다. “그 이미지들이 마치 청사진이고 내가 포로인 것처럼.”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호퍼는 스스로 고독을 그린 적이 없다고 말했음에도, 우리는 왜 그의 작품에서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을까? 그렇다면 호퍼가 담은 것은 무엇일까? 랭은 호퍼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단서들을 좇으며 도시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고립감의 원천을, 호퍼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호퍼 그림의 마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앤디 워홀. 그는 흔히 화려한 삶, 의미 없는 작품, 유명세에 올라탄 예술가로 평가받곤 한다. 랭 또한 자신이 외로워지기 전에는 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외로워진 후에야 그에게 매혹되었다고 밝힌다. 인터뷰 영상으로 만난 그는 “서치라이트에 붙잡힌 사슴처럼 우아하고 겁에 질린 존재”였다.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난했으며, 무도병을 앓았고, 동성애자였던 워홀. 그는 차별성의 고독, 바람직하지 못함의 고독, 무리 속에 받아들여지지 않음의 고독이 누구보다 몸에 깊이 새겨진 사람이었다. 랭은 그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모두가 모두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차라리 기계라면 좋겠어.” “너무 친밀해지고 싶지 않아.” 온갖 두서없는 말들 속에서 그의 진심을, 그가 사랑했던 것들을 건져 올린다.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지금도 간행되고 있는 “인간 발언의 심포니”로서의 잡지, 『인터뷰Interview』가 워홀의 고독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음을.
여성·게이·이민자·부랑자… 보여지지 않는 이들의 말해지지 않은 연대
랭은 호퍼와 워홀을 비롯해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예술가들까지 불러낸다. 호퍼 뒤에 가려져 있던 호퍼의 아내, 조. 호퍼와 함께 미술 공부를 하고 화가로서 활동했지만 결혼 후에는 호퍼의 모델로서만 서야 했던 사람. 당시 예술계에서 여성 작가는 설 자리가 없었고, 호퍼조차 그녀의 작품 활동을 묵살했다. 랭은 그녀의 작은 목소리조차 놓치지 않는다. 호퍼 그림의 여자들은 조의 변주였고, 그 둘 사이가 고립되어갈수록 호퍼 그림에서 고독과 침묵은 더해졌다.
급진적이고 뛰어난 페미니즘 선언서로 유명한 《스컴 선언문》과 희곡 『엿이나 처먹어라』를 썼지만 그저 ‘워홀을 쏜 여자(배우)’로만 기억되는 작가 밸러리 솔라나스는 어떨까. 호퍼도 워홀도 가난했고 고독했지만, “솔라나스는 그 두 사람이 겪어본 적 없는 주변부 세계에서 존재했다.” 지배적이고, 자신감 넘치고, 성질 나쁘고, 폭력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웠던 여자가 그들과 ‘함께’ 서 있을 자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발언하고 또 발언했다.
그리고 섹슈얼리티·폭력·마약처럼 온갖 사회적 터부를 담아냈던 사진가 낸 골딘, 잡역부로 살면서 혼자만의 방에 예술적 세계를 구축했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헨리 다거, 역시 사회에 자기 존재를 한 순간도 드러내지 않고서 사진 속에만 담은 채 사라져버린 수수께끼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듯한 독일 태생의 이민자이자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천재 가수 클라우스 노미, 증오와 차별이 신체에 가해진 생애를 살았던 흑인 가수 빌리 홀리데이, 워홀이 사랑한 또 워홀을 사랑했던 장-미셸 바스키아…….
하지만 그 누구보다 랭이 빠져들었던 이는 행동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였다. “유쾌한 무리 사이에서 아픈 손가락처럼 나 혼자 불쑥 튀어나와 있다는 느낌”에 시달리며 “익명이 되고 싶었”을 때, 그는 워나로위츠의 작품인 ‘랭보 연작’을 만난다. 뉴욕의 군중 속에서 늘 혼자인 랭보. 그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언제나 다르고 어색하게 튀어나와 보인다. 미술교육은커녕 정규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몸을 팔며 거리에서 지냈던 워나로위츠, 그는 “나는 항상 내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회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말해지지 않은 연대가 있다”고 썼다. 동시대를 살았던 장-미셸 바스키아, 사진가 낸 골딘과 함께 뉴욕 이스트빌리지 예술무대의 스타로 꼽혔지만, 1980년대 ‘게이암’으로 불리며 미국 전역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에이즈 위기 한복판에서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인터뷰』 지를 통해 낸 골딘과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몸뚱이가 스러지더라도 내 경험, 내 일부는 계속 살아갔으면 좋겠어.” “나는 사람들이 내가 경험한 소외감을 덜 느끼게 하고 싶어. 내게 제일 의미 있는 건 그거야.”
그는 떠났지만, ‘마지막까지 세상에서 배제되기를 저항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와 같이 행동하고 있다. 워나로위츠가 랭보의 가면을 썼던 것처럼, 사회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워나로위츠의 가면을 쓰고서 보여지지 않음에 저항하고, 검열에 저항하고, 혐오에 저항한다. 이처럼 워나로위츠는 그의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랭은 “예술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기묘한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리베카 솔닛 세대의 혁명적 글쓰기, 새로운 고전을 탄생시킨 용감한 작가
『뉴욕 타임스』가 “리베카 솔닛 세대의 작가로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혁명적 글쓰기”라고 평했듯, 랭은 자신의 삶과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세계로 확장하는 치열한 지적 탐구와 내밀한 감정의 진폭을 대담하고 선명한 언어로 층층이 직조해낸다.
올리비아 랭에게 ‘고독’이 비단 뉴욕의 이민자로서, 30대 중반의 실연당한 여성으로서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정체를 꽁꽁 숨긴 동성애자였고, 1980년대에 발각되어 랭과 함께 평생 살아온 동네에서 쫓겨나 도망 다니며 살았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알코올중독은 점점 심해졌으며(랭의 전작은 작가와 알코올의존증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엄마의 성정체성과는 별개로 자신이 잘못된 신체에 들어 있는 게이 소년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랭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배척되는 이들에 대한 특별한 연민과 깊은 공감을 담아, 그들이 남긴 외로움의 다양한 조각들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이어붙이는 섬세한 작업을 기묘하고도 아름답게 해낸다. 이 책 《외로운 도시》는 우리에게 ‘외로움에 대한 눈부신 경의’를 선사하며, ‘타인에게 우리가 지금보다 더 다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지옥의 얼굴을 하는 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
지은이 | 올리비아 랭 (Olivia Laing)
문학·예술 비평으로 주목받는 에세이스트. 『옵저버Observer』의 부편집장을 지냈고,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유수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세계적 예술가공동체 야도코퍼레이션과 맥다월콜리니의 펠로십을 얻었고, 대영도서관 에클스 작가상을 수상했다. 첫 저작인 《강으로》로 영국왕립문학회의 온다체 상, 올해의 돌먼 여행서 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전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두 번째 작품인 《에코 스프링으로의 여행》 또한 호평 속에서 코스타 전기 상과 고든 번 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최신작인 《외로운 도시》는 2016년 전 세계 12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고든 번 상 최종후보로도 다시 올랐다. 리베카 솔닛과 더불어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혁명적 에세이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옮긴이 | 김병화
서울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꼭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에서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나온 책이 《음식의 언어》《문구의 모험》《행복할 권리》《혼자 책 읽는 시간》《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세기말 빈》《파리, 모더니티》《장성, 중국사를 말하다》《트리스탄 코드》《신화와 전설》《투게더》《무신예찬》《웰컴 투 뉴스비즈니스》《두 번째 태양》 등 여러 권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번역자들과 함께 번역기획 모임 ‘사이에’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목차
1. 외로운 도시
2. 유리벽
3. 그대의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4. 그를 사랑할 때
5. 비현실의 왕국
6. 세계의 끝, 그 시작점에서
7. 사이버 유령
8. 이상한 열매
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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