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은 이름만 들어도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라는데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이들 중 장욱진 화백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40년을 스승과 제자로 지내온 저자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79년부터 최근까지 쓴 글을 그림과 함께 엮었다. 장욱진을 한 마디로 ‘참 멋있는 화가’라고 평하는 저자는 애정이 어린 필체로 그와의 추억은 물론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장욱진을 떠올리게 하는 예술론을 썼다. 86세의 원로 미술가가 회상하며 본 대로 또 느낀 대로 스승의 모습을 기록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제자의 눈에 비친 스승의 예술은 어떠했는지 그림과 함께 묶어보자는 마음으로 정리된 것이다.
조각가 김종영에 관한 기록도 책으로 낸 적이 있는 저자의 글에는, 또 다른 스승 김종영과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저자에게 “너, 나한테서 떠난 걸 내가 알아!”라고 일갈했던 스승 장우성과의 일화도 담겨있다. 책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나는 심플하다” 등 그의 사고를 짐작하게 하는 인상적인 말들이 그대로 수록되었고, 이를 비롯하여 노수현ㆍ김환기 화백 등 당시 그들의 곁에 함께한 근현대 미술사 인물들이 등장한 장면이 생생하게 적혀있다.
책소개
원로 조각가 최종태가 들려주는 장욱진의 삶과 작품 세계
장욱진의 대표작 41점 올컬러 수록,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도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어린아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기이한 인생을 살다 간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욱진과 오랜 시간 사제 간의 사귐을 가져온 조각가 최종태가 스승과 함께했던 이야기, 장욱진의 예술에 대한 적확한 평가를 풀어놓는다. 86세의 원로 미술가가 회상하는 스승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장욱진이 창조한 세계로 들어가려는 이들을 위한 탁월한 안내서!
“장욱진 선생을 만나서 나는 행복했다. 그와 함께한 날들을 회상하면서 내가 본 대로, 내가 느낀 대로 나는 기록했다.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여기에 책으로 엮는다. 장욱진, 그는 누구인가. 그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무궁한 이야기를 내 어찌 다 건져내랴. 한마디로 그는 참 멋있는 화가였다.”
_서문에서
올해는 장욱진(1917.11.26.-1990.12.27.)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로 손꼽히는 장욱진은 “어린아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기이한 인생을 살다 간” 이로 잘 알려져 있다.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욱진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장욱진과 오랜 시간 사제 간의 사귐을 가져온 최종태(서울대 명예교수)가 길잡이로 나섰다. 그 자신 한국 미술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조각가 최종태는 이 책에서 자신이 만난 스승의 이야기와 그의 예술에 대한 적확한 평가를 풀어놓는다. 책에 엮인 글들은 그가 1979년부터 최근까지 40년에 걸쳐 쓴 글들로, 장욱진 선생과의 내밀한 추억, 그를 추모하는 글, 장욱진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 그리고 장욱진을 떠올리게 하는 저자 자신의 예술론 등을 담았다. 86세의 원로 미술가가 회상하는 스승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곁에서 본 화가 장욱진의 삶과 작품 세계
“너, 나한테서 떠난 걸 내가 알아!”
1970년대의 어느 날, 스승의 집을 찾은 저자 앞에 대취한 장욱진이 우뚝 서서 호통한다. 1954년 대학에 입학한 저자에게는 평생 영향을 끼친 스승이 둘 있으니, 장욱진과 조각가 김종영이 그들이다. 둘은 퍽이나 대조적인 인물이었는데, 김종영이 오랜 시간 서울대학 교수로 봉직하며 선비 같은 삶을 일군 반면, 장욱진은 몇 해만을 교직 생활을 했을 뿐 일생을 야인으로 일관했다. 김종영이 동양을 잘 이해하면서 서구의 조형사고로 행동했다면, 장욱진은 서양을 잘 이해하면서 동양적 사고로 행동했다. 저자는 두 스승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길을 찾고자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당시는 김종영 편에 기울어 있던 형편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사정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건만, 장욱진을 이를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욱진의 맏사위이면서 이 책의 기획자이기도 한 이병근(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은 저자인 최종태와 장욱진의 각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70년 무렵이었다.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 들렀을 때, 장욱진 선생과 최종태 선생이 거나하게 취해서 무엇인가 흥겨운 분위기로 흘러들고 있었다. 예의 인사가 오가고 다시 끊어졌던 흥미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장 선생은 “너의 단어가 뭐지.” 했고 “비교하지 마.” 하고 최 선생이 답을 했다. 이어서 장 선생은 “허허 단어를 아는군.”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최 선생이 “시끄러.” 하고 반말로 외치고는 “하하하.”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웃어댔다. 대학 때의 은사라면서 말이다.” _발문에서
“마음속 깊이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의 단어 이야기를 이렇게 스스럼없이” 나누는 모습이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이 모습은 이 교수에게 “일생을 붙어 다니는 장면의 하나”가 된다. 사제지간인 이 두 예술가는 서로를 정말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종태가 장욱진이라는 인물은 물론, 그의 농담 같은 말에 숨어 있는 진실한 의미, 장욱진의 예술의 지향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이 교수는 장욱진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해, 저자가 장욱진에 대해 쓴 글을 엮어 책으로 펴내자고 제안한다. 이 교수는 저자의 책들을 하나하나 뒤져, 장욱진에 관한 글들을 추려내었고, “서툰 솜씨로 컴퓨터를 두드리며 입력했다.” 꼭 필요한 글은 새로 쓰도록 부탁도 했다. 최종태가 그린 스승 장욱진의 초상은 이렇게 탄생했다.
심플한 삶
“나는 심플하다.”
장욱진은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면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장난 같아 보이는 말이지만, 흉허물 없는 제자들 앞에서만 내뱉은 이 말은 엄숙했다. 무슨 뜻이었을까? 그의 그림이 고도의 단순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실 이 말은 화가의 염결함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태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선언, 그러한 자신을 확인한 데서 오는 기쁨 같은 것이 담긴 말이라는 것이 저자가 짐작하는 바다.
장욱진은 단순한 삶을 추구했고, 극도로 단순한 삶을 살았다. 번잡한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덕소, 수안보, 용인 등 외진 곳을 찾아 들어가 화실을 만들어 작업을 이어갔다. 세상이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그림을 그렸고, 그림 그리기를 마치면 술을 마시러 갔다. 오로지 그림에 몰두한 삶이었고,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화가들이 동원되어 기록화를 생산하던 시절에도, 돈이 되는 그 일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당연히 생활은 쪼들렸다. 한 달 대폿값 정도에 불과한 교수 월급에, 생계는 부인이 도맡아 꾸려가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월급의 높낮이를 비교하는 제자들에게 “비교하지 말라!” 일갈하고, “나는 심플하다. 술 먹은 죄밖에 없다!” 절규하던 스승, 탐욕과 싸우고, 욕심 많은 사람을 경멸하던 스승의 모습을, 제자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작은 그림
“캔버스에는 물감이 최소한도로 발라진다. 그 인색함이 회화성의 아주 가장자리까지 다다르고 있다. 화면 구성의 기준선에서는 벌써 떠났다. 그가 늘 그리고 있는 나무는 나무라는 상식을 벌써 떠났다. 모든 것이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러나 장욱진 선생의 숙명은 캔버스에서 떠날 수가 없는 데에 있다.” _41쪽
장욱진의 그림은 작고 단순하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그림인 듯, 해와 달, 까치, 사람들, 집 등의 친숙한 대상을 매직마커로 슥슥 그린 것을 보면 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 그림이 어떠한 추구 뒤에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작가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장욱진은 민족적 민속주의, 미니멀리즘, 극사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민중미술 등, 그때그때 화단에 몰아친 유행의 바람과는 담을 쌓고, 자신만의 그림에 천착하며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그 속에서 그는 애초의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아랑곳하지도 않았지만 바람이 몰려올 적마다 그는 고독했다. 그럴 적마다 그는 옷깃을 여미고 보다 강해졌다. 바람이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고 그로 해서 오히려 단단해지는 것이었다”(37쪽). 장욱진의 그림에는 이러한 필사의 노력 끝에 얻은 짙은 충실성과 여유가 담겨 있는데, 그리하여 “회화적인 냄새도 씻고 인간적인 오뇌와 영욕의 냄새도 씻고 자연과 미술사로부터의 속박에서도 벗어나서 맑고 원만하고 아득히 먼 데의 고요에 이르는 그러한 참으로 고도한 상징을 구현”해내었다(51쪽).
그림이 된 화가
“외통수에다 장기 한 수를 놓고 일생을 버텼다.”
최종태는 스승의 삶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고 “육체와 정신을 소모”해가며, 삶을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통째로 불태운 장욱진은 이제 우리에게 그림으로 남아 있다. “장욱진 선생의 그림은 인간 장욱진 그 자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터이고 그래서 거기에는 그의 고독과 오뇌와 꿈과 사랑과 초월에의 의지와 그리고 마침내 자유, 그런 모든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제 우리들에게는 그것을 읽는 시간만이 주어졌다”(51쪽).
이 책에는 장욱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의 허락을 얻어 장욱진의 대표작 41점(유화 23점, 먹그림 9점, 매직마커화/판화 9점)을 올컬러 도판으로 수록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장욱진을 조명하는 많은 전시와 행사가 한 해 동안 이어질 것인데, 곁에서 본 장욱진의 모습을 오롯이 그려낸 이 책이 그를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
지은이 | 최종태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추상미술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조형 세계를 천착했고, 교회 미술의 토착화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봉직하다가 1998년에 은퇴해 현재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국민훈장동백장, 서울시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등을 받았다. 조각전, 소묘전, 파스텔화전, 목판화전, 유리화전 등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5년 대전시립미술관 초대전,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열었다. 지은 책으로 《예술가와 역사의식》 《형태를 찾아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 《최종태 교회조각》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등이 있다.
목차
서문_ 장욱진 선생을 기억하며
1장 이 사람을 보라
여기 한 화가가 있다
장욱진을 말함
그 정신적인 것 깨달음에로의 길
화가 장욱진, 그 삶의 뒷면
장욱진 이야기 토막생각
2장 동시대의 예술가들
張旭鎭 선생의 경우
수난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세 송이 꽃
희대의 천재, 장욱진과 김종영 사이에서
한국적이라고 하는 것에 관하여
민화를 생각하며
3장 스승을 기리며
스승의 노래
장욱진 선생의 추억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까치가 있는 모뉴망
발문 _이병근
출전
장욱진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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