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의 강연을 유형의 책으로 만드는 ‘한 시간 총서’이다. 시각문화 연구자인 윤원화는 동시대 한국 예술가들의 문서가 어떻게 시간에 맞서 작동하는지를, 큐레이터 현시원은 예술ㆍ시각ㆍ이미지적 경험이 어떻게 전시와 글의 재료가 되는지를 다뤘다.
책소개
문서는 어떻게 시간과 맞서 싸우는가?
그것은 어떻게 주어진 시간에 대하여 자신의 시간을 세우는가?
매체 연구자이자 미술비평가인 윤원화는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며 글을 시작한다. 텍스트를 매개하는 다양한 형식의 매체에 대한 짧고 강렬한 사색 이후, 저자는 문서가 가진 유효기간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동시대 한국 예술가들의 문서가 어떻게 시간에 맞서 작동하는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문서는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재생해왔던 미디어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그 형식은 다른 미디어에 비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온라인 기반의 미디어가 활성화되던 2000년대 중반 서울에서는 어느 시기보다 많은 독립 출판물이 본격적으로 생산되었고, 이 문서들은 “취미와 우애와 소망의 산물”로서 자신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위상을 확장해갔다. 디자이너들은 그와 같은 제도 주변부에서 각자의 소망과 비전을 담아 문서의 생산 주체를 자처하며 단순 취미가 아닌 생업의 도구로서 문서를 다루기 시작한다. 이렇게 형성된 소규모 디자인 공동체는 미술계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미술제도 전반에 활력을 가져왔다.
그러나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간이 멈춰진 듯한 불안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6년,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문서를 시간으로 축으로 정리한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전을 개최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예술적 결과물로서의 문서라는 물질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역으로 한국 예술계의 지형을 다시 그려 보려는 시도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불확실하고도 정체된 현실 속에서 디자이너들이 만든 문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책 속에서
문서는 어떻게 시간과 맞서 싸우는가? 그것은 어떻게 주어진 시간에 대하여 자신의 시간을 세우는가?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시간을 초월해서 그 흐름을 벗어나려는 것, 변하지 않는 영속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따라잡아 그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것, 빠르게 변하는 적시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흔히 전자는 책의 미덕과 결부되고, 후자는 그와 구별되는 연속간행물(신문, 잡지)의 미덕으로 식별된다. 이것은 책이란 무릇 이렇고 연속간행물이란 대개 저러하다는 식의 매체 특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책이 영속적이고 신문이 적시적인가 생각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편에서 책이 시류에 영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 신문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반복되는 세계의 관성(이를테면 ‘아찔한 뒤태’와 ‘그녀의 비밀’) 속에 잠겨 있다. ---10쪽
소망의 성취로서 문서의 출판은 대단히 유서깊은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비 출판은 ‘배니티 프레스’, 즉 허영의 출판이라고 하여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것을 인터넷으로 발행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소망 성취는 문서의 새로운 지배적 기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미디어는—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예술과 오락은—옛날부터 현실을 우회하는 소망 성취와 환상의 공급처가 되어 왔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차이라면, 예전에는 소수의 작가들이 그런 꿈세계를 창조하고 나머지는 소비자로서 그 꿈을 공유했던 데 반해 지금은 누구나 자신의 소망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23쪽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에서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문서들은 이 같은 변화의 틈새에 끼어 있다. 그것은 미술 제도, 디자인 제도, 대중매체와 문화산업, 그 주변을 에워싼 무정형의 꿈세계와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다. 경계는 불명확하다. 한편에는 예술가의 문서들로 분류될 만한 것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애호가와 아마추어의 문서들로 분류될 만한 것들도 있으며, 이런 것들과 구별되지만 이들을 참조하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좀 더 애매한 것들도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문서들은 이렇게 불분명한 경계면 위에 번성하면서, 얼핏 비슷해 보이는 외관 아래서 여러 갈래의 방향성들과 관계망들을 내포한다. ---26쪽
그래픽 디자이너의 취미와 우애와 소망은 이처럼 누군가의 손발이 되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머리가 된다는 양극단 사이에서 자기의 고유한 영역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규모로 만들어 보는 데서 출발한다. 제각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한 뭉치의 특정한 문서들을 두고 일반적인 논평을 시도하는 것은 대체로 승률이 낮은 게임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문서들을 접하면서—때로는 그에 관여하면서—꾸준히 보아온 어떤 추세는 있다. 이들은 텍스트 제작자와 이미지 제작자 사이에서 양쪽 모두와 구별되는 어떤 그래픽적인 것을 찾아 움직인다. 문자를 이용하지만 서사를 구축하지 않고, 시각적인 것의 힘을 활용하지만 무정형의 이미지로 용해되지 않으며, 분절되어 있지만 의미는 확정하지 않으면서, 그래픽 디자이너의 문서들은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텍스트 대 이미지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질서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28~29쪽
문서의 평면보다 얇다는 것은 여전히 언어로 분절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각의 문제로 여겨진다. 이를 지시하기 위해 ‘초 평면’이나 ‘인프라 플랫’ 같은 신조어가 제안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구체적인 개념이라기보다 경험의 묘사나 막연한 상상을 묶어내는 명목상의 이름에 가깝다. 일단 여기서는 종이를 기준으로 하는 고전적인 문서의 평면과 그에 누적된 관습적 질서를 초과하는 평면 작업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해 보자. 김성구의 ‹요세미티 산에서 외골수 표범이 흰 사자와 우두머리 호랑이를 뛰어넘는다›는 이 정의에 잘 들어맞는다. 이것은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작업 도구였던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의 배경 화면과 운영 체계의 이름들을 조합한 대형 간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목록이다. 그리고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지도는 아니다. 앞서 살펴본 옵티컬 레이스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알게 모르게 거쳐왔던 시공간적 배경들을 최대한 넓게 매핑한다면, 김성구는 반대로 가장 좁은 배경, 그러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작업할 때 별 의식 없이 접하는 컴퓨터 배경 화면을 한데 모아 그들 자신의 시공간적 배경, 더 정확히 말해 시간도 공간도 없는 배경으로 제시한다. ---63쪽
오늘날 우리가 놓인 시간은 기이하고도 특별하다. 한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의 문서들이 만개하던 2000년대 중반은 동시대성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끝난 곳에서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무제한의 초 평면으로, 시간의 모든 차원들이 펼쳐지고 다시 접히는 초 시간적 공간으로 상상되었다. 그런데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동시대성이 아니라 무시간성이 지배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역사적 시간뿐만 아니라 동시대적 시간 또한 이미 지나갔을지 모른다는, 시간의 차원 자체가 이제 정말로 휘발해 버렸다는 수군거림이 지난 몇 년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문서라는 형식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이전에, 우리가 시간의 궤도에서 굴러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실은 먼저 있었다. 시간이라는 차원이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시간이 멈춘 공간 속을 방황하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유령처럼 어른거렸다. ---67~68쪽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단언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미래는 이미 어른거리고 있다. 그것은 공간화할 수 없는 시간의 영역이다. 그리고 문서는 언제나 그렇게 불확실한 시간과 맞서는 도구였다. 불투명한 시간이 종이 위에 적힌 것과 아직 적히지 않은 것 사이에, 그 너머에 이미 실현된 것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 사이에 팽팽한 긴장을 부여했다. 문서는 현실과 분리된 소망 성취의 공간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도무지 틈새라고는 없어 보이는 현실 속에서 소망을 전개하고 작동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것으로서 시간을 열거나 또는 조절할 수 있다. 시간의 급류가 오래된 제도의 허약한 틈새를 침식하는 현 시점에서, 나는 우리들의 문서가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런 소망의 문서다. ---69쪽
지은이 | 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로 책을 쓰고 번역한다. 건축과 영상이론을 공부하고 미술과 시각문화, 도시와 미디어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청취의 과거, 광학적 미디어, 기록시스템 1800/1900 등을 번역했다. 퍼블릭 아트, 아트인 컬처, 건축신문, 도미노 등의 매체에 기고했으며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일민미술관, 2014)를 공동 기획했다. 저서로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워크룸프레스, 201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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