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의 근대와 현대에 대해 개념적 문제를 제기하고, ‘후기 모던아트’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예술을 찾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서구’에서의 ‘모던아트’와 ‘컨템퍼러리 아트’가 국내에 수용될 때의 오류로 인해 한국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예술 담론 전개가 정교하지 못하고 모호해졌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장 진보한 형태의 예술 장르ㆍ예술 행위라고 비판 없이 간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1권에서는 그러한 선상에서 서구 중심의 근ㆍ현대 미술이 허무주의에 빠졌다는 것에 문제 제기와 비판으로 할애를 한다. 2권에서는 동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 허무주의를 극복할 예술의 지평을 어떻게 열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작가들의 작품세계에서 새로운 의미의 모더니즘과 예술을 찾는 글이 실렸다.
저자는 2권에서 특히 ‘담화’, 서예를 기반으로 하는 ‘문인화’와 영적ㆍ정신적 요소를 담은 ‘무화’ 등의 회화 담론으로 한국 작가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개한다. 1권에 이야기되었던 장욱진부터 장우성과 백수남 등 작가들이 대상이 된다. 또한, 백남준과의 대화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백남준 전위예술 실체의 해석을 내놓고, 세계 전위예술의 문제와 국내에서의 백남준 예술의 수용을 풀이하는 실마리로 비판적 해석도 시도했다.
책소개
서구 현대예술은 사기다.
저자는 서구에서의 모던아트와 컨템퍼러리 아트의 개념적 구별이 애매한 사전적 번역의 차원으로 수용되어, 한국에서의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예술담론의 전개가 정교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할 뿐 아니라, 수많은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무비판적으로 서구 중심의「현대(컨템퍼러리)아트」를 가장 진보한 예술장르 또는 예술행위로 간주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컬럼비아대학 예술철학 교수로서 뉴욕의 영향력 있는 〈네이션(The Nation)〉誌의 미술평론가로 활동했던 아서 단토의 컨템퍼러리 아트의 이론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단토보다 더 영향력 있고 권위 있는 철학자인 들레즈와 과타리, 그리고 한때 뉴욕 모던아트 담론을 주도했던 클레멘트 그린버그 등의 현대주의 미술담론과는 상반되는 현대아트에 대한 존재론적 입장에서 모던아트의 대안적 담론을 제시한다.
저자 홍가이는 모던아트의 종말론에 대해서만은 들레즈의 대안적 담론이 예술 철학적으로 훨씬 우월한 것이며, 아서 단토의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한 담론은 뉴욕과 런던 중심의 영미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이익에 부합한 담론을 펴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서구 모던아트는 허무주의다.
저자 홍가이는 서구중심부에서부터 파생되는 모던이니 컨템퍼러리니 하는 이름의 여러 행태의 예술행태들은 하나 같이 가장 악질적인 허무주의의 늪으로 귀결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서구의 가장 권위 있는 사상가들의 해석을 소개한다.
하버드대학의 스탠리 카벨이 1968년에 발표한 “모던아트의 상황을 특징지어 주는 것은 상존하는 또는 내재적인 사기의 가능성”이라는 논지를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와 대조한다. 모든 예술이 사기가 아니고 다만 서구인들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역사적 필연성을 갖고 나타난 서구 모던아트만이 그런 방향으로 진화되어 허무주의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같은 20세기 최고의 철인은 오히려 진정한 예술을 되찾아서, 모던문명의 그림자요 닮은꼴인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백남준과의 친분으로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하여 아직 한국에서 소개되지 않은 백남준 전위예술의 실체를 새롭게 해석한다. 세계 전위예술의 문제와 한국에서의 백남준 예술의 수용을 풀이하는 실마리로 비판적 해석을 시도한다.
저자 홍가이는 모던문명의 역사적 전개 또는 진화는 그 자체의 내재적 역사 논리로 자멸 또는 종말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역사 철학적 논리를 고수한다. 동일한 역사적 논리를 내재하고 있는 모던아트의 역사적 진화도 19세기 말이 되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먼저 이미 역사적 허무주의에 도달하였다. 하이데거는 이미 오래 전에 서구의 허무주의의 늪에 대해서 경고했었고, 오늘날 가장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한다는 조르조 아감벤이나 알렝 바디우 역시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만연한 허무주의로 진단하였다.
저자는 모던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그것이 문학이건, 음악이건 미술이건 다 같이 그 허무주의의 늪에서의 탈출을 위한 여러 가지의 모색이 새로운 전위예술로서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고 주장하면서, 서구인들이 처한 정신적(예술적) 허무주의의 늪은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끝이 날 수 없는 체스 게임」의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동북아 선조들의 예술정신을 되찾아 동양적 르네상스를 꽃피우자.
저자 홍가이가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간단하다. 왜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서구 예술인들이 처한 허무주의의 역사적 운명을 짊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가? 과학이나 테크놀로지와 달리 예술과 문화에서는 더 진보된 문화나 예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문화는 삶의 형식(Form of Life: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고 예술은 바로 그 삶의 형식 속에서 꽃피우는 것이므로 거기엔 더 우월하거나 더 진보된 문화나 예술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혁신적인 중국 고전학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의 최신 문화비교·비평 철학에 주목한다. 줄리앙은 서구와는 별개로 고대 중국인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사유 문법으로 거대한 문명을 일구었으며, 고대 중국인들이 추구하던 예술의 개념은 서구인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서구인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고대 중국인들은‘담(淡)’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예술담론의 전개에 있어서 서구인들과는 달리 미학(aesthetic)이란 학문이 전혀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줄리앙은 고대 중국인들의 사유 문법을 정교하게 연구하여, 그것을 거울삼아 서구인들에게 고유한 사유 문법의 문제점을 잘 볼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저자는 서구의 모던아트 -그것이‘후기모던’이나‘컨템퍼러리’나 ‘신 전위’나 또는 어떤 다른 유행어로 포장되더라도- 를 최첨단의 아트로 간주하여 서구인들이 파놓은 허무주의의 늪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것을 멈추라고 말한다. 동북아 고대 선조들의 예술정신을 되찾아 그 예술정신의 불씨를 되살려 동양적 르네상스를 꽃피우자고 주장한다. 새로운 동양적 모던문명이 서구의 모던문명을 구조조정하고 서구의 허무주의 예술을 죽음의 놀이에서 구원하여 생명과 에너지 충만한 예술 본래의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한국작가들은 이미 새로운 아트담론을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화가들 중에서 고대 선조들의 예술정신을 되살릴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 몇 명의 작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트담론을 전개한다. 요즘 유행하는 단색화라는 것은 서구의 모노크롬 페인팅의 한국적 아류에 불과하다. 저자는 담화(淡畵)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윤형근을 비롯한 몇 명의 화가를 담화 작가로 간주하여 작품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문인화」 같은 동북아시아만의 고유한 예술행위는 고루하고 낡은 예술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컨템퍼러리한 아트로 이론적으로, 예술 철학적으로 새롭게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한국인들의 심성 깊숙이 잠재된 ‘무(巫)’적인 어떤 것... 샤먼이라는 서구 인류학자들의 개념을 거부하고,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성의 중요한 영적·정신적 요소인 무(巫)를 창조의 씨앗으로 삼은‘무화(巫畵)’라는 회화의 담론을 전혁림의 작품을 중심으로 해석·전개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의 반열에 들지 않는 작가들 중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 걸 맞는 비평적 담론을 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자는 꼭 한 번 우연히 한 전시회(1987년 동산방화랑)에서 본 백수남의 작품들 몇 개를 중심으로 민족미술담론을 구성 실험한다.
또한 흙과 불 등이 핵심적인 창조 요소인 도예가 오늘날의 기술주의적 허무주의의 문명 속에서는 중심적인 스타 예술매체로 다시 탄생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친다. 현대문명은 인간들을 흙으로부터 소외시켜 버렸다. 흙의 예술인 도예가 생명의 예술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예술 철학적 담론을 구성 정리한다.
저자 홍가이는 “나는 작품 중심으로 담론을 끄집어 내지, 작가론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순수회화와 응용미술의 경계를 거부한다. 저자는 어떤 작가의 일생을 관통하는 모든 작품을 망라한 작가론은 피하고, 작가의 어떤 하나 또는 둘의 작품에 잠재된 예술적 재능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보면, 과감하게 그 작품에 담긴 예술성을 끄집어내어 해석하고 가치 부여를 한다.
지은이 | 홍가이
1963년 청소년기 한국을 떠나 1960년대의 반월남전 운동, 히피운동, Youth Culture운동 등의 미국사회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다.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인지과학에서 융·복합 인문학으로의 학문적 여정도 그런 자신의 정체성 찾기의 고뇌와 무관하지 않다. 서구문명이 내재적으로 안고 있는 허무주의에 대한 논문을 20대에 박사논문으로 쓰고 나서도, 자신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은 환갑이 넘어서도 계속되어, 북미와 유럽을 오가면서 미국의 프린스튼, MIT, 와그너, 멜릴란드대학 유럽분교, 영국의 캠브리지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연대정보통신전문대학원, 서울대 미학과, 서울예술대학, 부산의 경성대학과 동서대학 등지에서 교환, 객원교수 또는 해외초빙교수로 강의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재직했다. 한국에서는 공간잡지와 객석에 칼럼양식의 예술, 문화, 연극, 영화, 무용, 미술에 관련된 비평을 연재한 것이 책으로 묶어져서 나왔다. 정치적 행위의 일환으로서의 희곡쓰기도 하여, 여러 편의 희곡작품이 한국, 영국, 미국, 헝가리, 독일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희곡집]
〈I AM A HIBAKUSHA〉 (원작.영어 대본, 동경국제연극센터 출판, 1984년, 1985년 국립극장에서 당시 허 규 극장장의 배려로 당시 연우무대 연출가 김석만 교수에 의해 한글로 번역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이윤택, 홍유진, 제씨에 의해 연출·제작되었고, 수많은 대학에서 학생극으로 제작되었다. KBS에서는 1989년 “영주의 증명”이란 제목으로 8.15특집 2부작으로 당시 이유황 PD에 의해 제작되었다. 국제적 프레미어는 1984년 에딘버러 연극축제에서 캠브리지의 멈머서 극단에 의해서 제작·공연. (1984년1월 한 달 동안 영국 캠브리지대학 영문학부에서 워크숍으로 진행 되었던 공연으로 그해 여름 에딘버러 축제에 참가하였다.)
〈The Unappeaseds: Plight of Korean Comfort Women during Japanese Occupation〉 (영어 원작으로 역시 김석만 연출가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의뢰하여 한글로 번역된바 있다. 1986년2월 영국의 캠브리지대학 영문학부의 학생들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연출은 당시 캠브리지대학 처칠칼레지의 팀 크립 교수가 맡았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영문학과 영어원어 연극제작으로 1990년 공연되었고, 계원예대의 공간연출학과에서도 이 강 교수의 연출로 1997년과 2000년에 공연된 바 있다.)
〈Nostoi: Children of Prometheus 4부작〉 (회귀: 불의 아해들) 공간사에서 1988년 출간
[평론집]
〈현대미술비평과 세계문화〉 미진사 (절판되었음)
〈세계문화비평〉, 예음사 출판 (절판되었음)
[출판 준비되고 있는 책들]
● 소설 〈운명: 히바쿠샤 소설〉 (브레히트가 희곡 “Three Penny Opera”를 〈3페니 소설〉로 재해석·번역·창작했듯이, 먼저 희곡으로 썼던 “히바쿠샤”를 소설화 시킨 것이다. 영화대본으로 각색한 것도 신종 문학 장르로 간주하여 따로 발간할 것이다. 1997년 예음사에서 출판예정이었으나, 1997년말 IMF때 회사가 부도나면서, 중단되었던 것.
● 〈한 동양 청년의 긴 내면을 향한 정체성 탐구의 여정〉
● 〈니진스키 소설〉 세계정신문화사로서의 장편소설; 니진스키 영화 대본의 소설적 새 해석
● 테크놀로지의 정치경제철학;
● 정치경제학의 신학: 우상 숭배교로서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자본주의 (Carl Schmitt의 Political Theology와 Walter Benjamin의 Capitalism as Religion의 21세기적 맥락에서의 재해석)
● 카테콘적 역사학적 접근으로서의 현대허무주의(Katechontic Historiography of Contemporary Nihilism)〈Pacific Jerusalem〉 (태평양변의 예루살렘: 인류의 집단적 운명이 LA에서 결정나다)
● 〈Pacific Jerusalem〉 (태평양변의 예루살렘: 인류의 집단적 운명이 LA에서 결정나다)
● 〈Vaslav Nijinsky: A Philosophical Portrait of an Artist〉 (1973년 이태리 우르비노의 국제언어학과 기호학 연구소에 유학할 때 우르비노 출신인 Pier Paolo Pasolini의 St. Paul: A Screenplay을 영향을 받아 시작하여 몇 년 후 뉴욕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목차
근대와 현대에 대한 개념적 문제제기
01 일본・한국, 근대・현대 그리고 단색화: 문제제기 019
•일본 미술에서의 근대와 현대 019
•한국의 근대와 현대 : 단색화에 대해서 037
02 모더니티의 역설과 그 해결책을 찾는 문제 053
•모던아트 상황의 특징 :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라는 문구에서 읽다 057
•모던아트 상황의 특징 : 모던음악의 경우 064
•모던아트 상황의 특징 : 백남준, 존 케이지 그리고 전위예술070
•전위예술의 세계적 거장으로서의 백남준 087
•역사적 아방가르드 : 다다와 네오다다 097
•End of Art : 모더니스트 미술의 역사적 전개와 귀결 111
•현대미술의 전통과 신표현주의의 허구성 119
•전후 독일식 전위예술의 슬픈 운명 183
•1986년의 서독과 2017년 독일의 현대 아트 상황 187
03 아서 단토의 Art after the End of Art 이론 비판 201
04 들뢰즈의 모더니즘 VS.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219
•들뢰즈의 코스믹 모더니즘: End of Art는 없다! 230
•카오스 이론으로 들뢰즈와 동양 기철학 아우르기 237
05 참예술 되찾기: 넓은 의미의 예술의 개념 247
06 장욱진 예술의 현시대성(現時代性) 275
•장욱진을 현시대성(contemporary) 화가로 보기 위한 방법론적 서설 275
•장욱진 예술의 진정성 293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장욱진形의 모더니즘 예술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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