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에서 뒷모습이란 키워드를, 신체ㆍ공간ㆍ행위에서 해석되고 파생된 시선으로 바라봤다. 선정된 50건의 작품에는 회화ㆍ조각ㆍ사진ㆍ벽화까지 여러 미술 장르를 넘나들고 있으며, 8세기 석굴암부터 인스타그래머 무라드 오스만의 사진까지 폭넓게 포함됐다. 저자가 감명 깊게 본 미셸 투르니에의 동명 책 오마주이기도 하다.
책소개
뒷모습은 더 집요하고 완고하게 보는 이를 붙잡는다.
뒷모습은 빚을 받으러 온 자의 얼굴이다.
뒷모습, 그 커다란 역설과 신비
뒷모습은 비밀스럽다. 관찰자는 돌아서 있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호기심을 품은 채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거나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보며 앞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비밀스러운 뒷면이 오히려 진실을 꾸밈없이 드러낸다고도 한다. 얼굴과 표정은 의식적으로 꾸미고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의 세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뒷모습이 일으키는 신비와 역설에 흥미를 가져왔다. 작품 중앙의 거울 속에 은밀하게 인물의 등뒤를 그려넣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1434년)이라든지, 회화 속에 적극적으로 뒷모습을 사용한 피터르 더 호흐, 헤라르트 테라보르흐와 같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라든지, 뒷모습은 미술의 꾸준한 관심사였다. 빌헬름 함메르쇠이나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팀 아이텔처럼 뒷모습 자체에 천착하여 그것을 주된 소재로 삼은 화가도 있다.
미술사가 이연식은 이 책에서, 의미심장한 뒷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모아 주제에 따라 선별하여 독자에게 선보인다. 오랫동안 ‘뒷모습’이라는 주제를 의식해온 그는 이미 2013년의 저작『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에서도 뒷모습을 책의 한 장에서 다룬 바 있는데, 이번에는 다양한 미술 작품과 함께 자신이 품어온 뒷모습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책 전체에 걸쳐 들려준다.
뒷모습의 매력, 상황이 표정을 결정한다
이 책에 작품을 제공해준 인스타그래머이자 러시아 출신 사진작가 무라드 오스만은 2011년부터, 현재 그의 부인이 된 당시 여자친구 나탈리의 뒤태를 SNS 계정에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는 현재 2018년 8월 기준으로 430만 명에 이른다. 굳이 유명 사진작가나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SNS에 뒤돌아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해시태그 ‘#뒷모습그램’을 달고 있는 뒷모습 사진이 2만 9천여 장 검색되며, 해외에서는 ‘#backshot’으로 약 12만 6천 장이 올라와 있다.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뒷모습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연식은 뒷모습이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눈, 코, 입이 없는 대신에 “인물이 놓인 장소와 상황에 따라 뒷모습의 표정이 결정된다”며 “뒷모습은 스스로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모든 의미를 빨아들인다”고 설명한다. 앤드루 와이어스가 크리스티나의 앞모습을 여러 차례 그렸음에도 유독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첫번째 작품인 〈크리스티나의 세계〉(1948년)이고, 함메르쇠이가 그린 부인의 앞모습이 뒷모습만큼 깊고 음울한 긴장감을 자아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저자에 따르면, 뒷모습은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감정과 의미들을 흡수한다.
또하나 저자가 포착한 속성은 ‘뒷모습의 익명성’이다. 헤라르트 테르보르흐의 〈아버지의 충고〉(1654년경)에서 뒷모습으로 등장한 여인이 〈편지를 읽는 여인〉(1650-60년경)에서 옷 주름 하나 다르지 않게 다시 등장하는 것처럼, 뒷모습은 “유일하지 않고” 어떤 뒷모습이 어떤 맥락에 들어와도 맞아떨어진다. 덕분에 뒷모습을 보는 관찰자는 앞모습이 주는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8세기 석굴암부터 인스타그래머 무라드 오스만까지,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 이야기를 이어가다
뒷모습을 다룬 동명의 책으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투르니에의 1981년작 『뒷모습Vues de dos』이 있다. 한국에서 2002년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가 세계 전역에서 촬영한 53컷의 뒷모습 사진에 투르니에가 나직한 단상을 곁들인 사진 에세이이다. 이연식은 이 아름다운 책을 펼쳐 읽으며, 여러 미술품과 이미지에 담긴 매혹적인 뒷모습에 기대어 투르니에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본서 『뒷모습』은 투르니에와 부바의 작품의 오마주인 셈이다.
투르니에의 에세이『뒷모습』에서 부바의 사진이 글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차지하듯, 본서의 또다른 주인공은 저자가 선별한 미술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총 50장의 작품이 때로는 작가의 글을 보조하거나, 때로는 단락의 주인공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일반적인 회화, 조각, 사진, 그리고 벽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미술 장르를 넘나들며, 연대순으로 살펴봐도 8세기의 석굴암부터 14세기 조토 디 본도네의 프레스코, 인스타그래머 무라드 오스만의 사진까지 매우 다양하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서 말한다. “뒷모습은 세상이 스스로를 가리면서도 드러내고, 드러내면서도 가리는 방식이다. 거꾸로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우리가 보는 사람들의 절반은 뒷모습이다. 누구나 어느 순간 부모나 스승, 연인, 또는 모르는 이의 뒷모습을 보고 뜻밖의 감정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뒷모습』은 당신이 느꼈을 그 뜻 모를 감정을 미술 작품을 통해 공유하고 풀이해주는 책이다. 비밀스럽고 내밀한 뒷모습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 제1장 보이지 않는 눈길
우리는 때로 그림 속에서, 때로는 그림 밖에서 인물의 뒤를 바라본다. 대표적인 뒷모습 그림인 〈크리스티나의 세계〉, 그리고 미술관에서 감상을 하고 있는 관객 자체를 소재로 삼은 토마스 슈트루트의 작품을 통해 뒷모습을 보이는 인물을 바라본다는 행위를 탐구한다.
● 제2장 뒷모습의 표정
뒷모습은 표정이 없다. 그래서 그림 속 상황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고, 한편으로 어떤 맥락에 놓아도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테르보르흐의 두 작품을 보며 뒷모습의 익명성을 탐구하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교황 사진을 보고 앞모습을 자유롭게 상상해본다.
● 제3장 엉덩이
뒷모습 중에서도 애욕으로 안내하는 부위인 엉덩이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엉덩이의 표정, 그 안에 담긴 여성성과 남성성 등에 대해 탐구한다.
● 제4장 다른 세상으로 난 길
뒷모습은 회화라는 공간 밖으로도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암시하는, ‘그림 속에 난 창’이라 할 수 있다. 얀 반 에이크, 디에고 벨라스케스, 피터르 더 호흐가 뒷모습을 가지고 어떻게 그림 속 공간을 확장하였는지 보여준다.
● 제5장 손의 뒷모습
엉덩이에 이어 ‘손’이라는 부위에 집중해본다. 스스로의 뒷모습은 볼 수 없지만, 손등만큼은 우리가 늘 마주하면서도 뒷모습을 암시하는 부위이다. 주로 로댕의 조각을 통해 손이 어떻게 감정이나 신념을 드러내는지 살펴본다.
● 제6장 배후
뒷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뒤, 즉 ‘배후’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을 비롯해 불상이나 프레스코와 같은 종교 미술을 통해 그 공간에 집중해본다.
● 제7장 조용한 세계
뒷모습은 눈도 입도 없으니 말도 없다. 특히 팀 아이텔이나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뒷모습 그림은 그야말로 출구 없는 침묵을 보여준다. 이 장에서는 뒷모습을 다룬 작품들을 ‘침묵’이란 키워드로 바라봐본다.
● 제8장 돌아보지 마라
돌아보는 행위는 때때로 금기로 사용된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회고 또는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늘 뒤통수를 보여주던 존재가 앞으로 돌아서는 것, 또는 그 반대로 앞에서 뒤로 돌아서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은이 | 이연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미술사가로 예술에 대한 저술, 번역,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불안의 미술관』, 『뒷모습』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레 미제라블 106장면』,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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