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남송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약 500여 년 사이 동양화에 도래한 전례 없던 혁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화가 8명을 선정해 소개한다. 양해ㆍ오진ㆍ왕몽ㆍ문징명ㆍ서위ㆍ팔대산인ㆍ왕원기ㆍ정섭의 그림에 제문까지 소개해 작가의 속뜻을 살피고, 작가의 생애ㆍ정치ㆍ사회적 상황 등 작품 내용에 작용하는 복합적인 요인도 함께 본다.
책소개
왜 화가가 아닌 문인들이 그림을 그렸을까?
문인들이 보여준 문학과 회화의 추상성이
중국 화단을 지배하다
지금 왜 중국 그림을 이야기하는가
왜 문인화가 대세가 되었나
우리와 중국 그림 사이는 멀다. 심지어 우리의 옛 그림도 가깝지는 않다. 우리의 옛날 동양화는 골동품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붓과 먹을 이용해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많고, 그들이 표현하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산물이다. 곧 지금 시대의 예술을 논하기 위해서도 동양화의 전통을 알아야 하고, 그 단초가 되었던 중국의 회화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문화적 전통 아래서, 또한 유사한 제도와 사회 속에서 예술적인 수련을 했기 때문이다. 시기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한국 사이의 교감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회화도 크게 보면 동아시아 회화 전통의 일부였으며, 겸재 정선의 실경 회화 또한 중국 오파(吳派)의 회화와 무관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화의 또 다른 특색은 후반부로 올수록 문인화가 대세가 되었다는 점이다. 서양화에서도 문학가가 그림도 그린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 그림은 화가가 그리고 문사가 글을 썼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문인이 시도 짓고 그림도 그렸으며, 문인이 그린 작품을 더 높이 쳤다. 이것은 그저 문인도 붓과 먹으로 글씨를 썼다는 것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책은 그림이 언제부터 국가의 영역에서 나와 순수예술로 독립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상업화와 내면의 추상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곧 문인화로 발전한 중국과 우리의 회화는 서양의 그것과 다른 궤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국 회화의 변화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동양화는 왜 문인화가 되었을까』를 통해 중국화의 세계를 만나러 가보자.
서구에만 찬란한 문화적 흐름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문화의 중심지 강남(江南)에서 활약한 중국 대가들
『동양화는 왜 문인화가 되었을까』는 남송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약 500여 년의 시기 동안 활약했던 문인화가들과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긴 시기에는 수많은 대가들이 있었기에 저자는 책에 실린 여덟 화가를 선정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양해(梁楷), 오진(吳鎭), 왕몽(王蒙), 문징명(文徵明), 서위(徐渭), 팔대산인(八大山人), 왕원기(王原祁), 정섭(鄭燮)은 중국 동양화가 발전하는 시기 동안 혁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힘을 지닌 화가이다. 책에 수록한 여덟 명의 화가들은 모두 중국 장강(長江) 유역의 강남(江南)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순수미술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이곳 화가들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기 다른 지역에 회화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 중국의 인문과 문학, 회화의 중심은 바로 강남이었으며, 역사·정치·사회적 변동도 가장 극심했기 때문에 강남 지역에서의 회화가 전체 중국 회화의 흐름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필선(筆線)과 구도, 양식 등 기본적인 기교를 이야기하는 것 외에 여러 항목들을 살펴보며 독자에게 그림을 설명한다. 먼저 그림과 함께 제문(題文)을 소개하며 작가의 마음속 뜻을 살펴보는 형식으로 글을 전개한다. 그 후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의 생애를 함께 알아본다. 화가의 개인적인 면모는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책은 개인의 생애와 작품에 담겨 있는 정치·사회적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독자들이 작품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림에 숨어 있는 중요한 배경들을 드러내 새로운 시각으로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이다. 화가가 그림의 대상을 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것에는 수많은 것들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필선의 공력과 힘을 추구하는 중국 회화의 추상성
‘방(仿)’하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불어넣어 독특한 문인화의 영역을 개척하다
새로이 짓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는 『논어』의 ‘술이부작’ 정신은 문인화로 온 뒤 더욱 심화되었다. 그림의 소재는 옛것을 따오되, 이것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불어넣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서양 미술의 개념과 달리 동아시아 미술에서 모방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흔히 ‘방고(仿古)’처럼 옛것을 살려 다시 그린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원나라 이후 문인들 사이에서 고전으로의 회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회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고전적인 주제의 재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방’이라는 개념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작가가 작품에 반영하는 주변 환경의 요소 가운데는 당시 사회의 정치·사회적 요소들 이외의 것도 많다. 그 가운데 꼽아야 할 것이 인문적 환경이고, 이것은 당시의 작가가 종교·철학·문학적 흐름 가운데 어떤 것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를 말한다. 종교의 경우 중국은 도교와 불교, 유교가 있으나 종교적인 심성의 문제는 주로 불교와 도교가 차지했고, 유교는 세상과 인간을 보는 눈을 제공했다. 특히 송나라 때의 성리학은 이런 자연과 인간을 보는 눈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인이기도 했던 화가들은 이런 세상의 인문적인 흐름에서 제외될 수 없었고, 특히 문인화가들의 일상은 늘 이런 문제를 접하며 배웠기에, 당연히 작품의 소재와 의미에서 구현될 수밖에 없었다.
문인들은 정치적 혼란기에 자연 속에 은거하며 그림을 취미 삼아 그리기도 했으며, 속세와 은일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다. 문인들은 대개 선대에서부터 벼슬을 지내 가산이 넉넉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그림은 매매의 수단이 아닌 친교와 감상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문화적인 행위였다. 물론 그 가운데는 여러 불행으로 인해 생계가 여의치 않아 그림을 팔아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에도 결코 자신이 가진 예술적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문인들이 화단에 대거 등장하면서 회화에서 순수미술로의 이행이 촉진되었고,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과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우리가 이런 문인들의 사상과 추상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눈을 가지고 작가의 마음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림의 의미에 치중할 수 있도록 이러한 중국 회화의 변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화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옛 그림 속에 숨겨진 화가의 삶과 이야기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는 이백이 시를 읊으며 걷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양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당나라 최고의 시인인 이백은 너무도 유명하여 시선(詩仙)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의 시를 아낀다. 이백이 등장하는 당시(唐詩) 관련 책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이백행음도>가 등장한다. 그러니 대개 우리는 양해가 그린 이 그림이 이백의 실제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양해는 이백보다 500년 더 지난 다음의 사람이라 이 시인을 만날 수도 없었거니와, 아마도 그의 초상화조차 구경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백의 초상화가 있다는 이야기도 없지만 설령 누가 그렸다 하더라도 양해가 이것을 보았다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지났던 탓이다. 그러나 양해는 이 절묘한 이백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림으로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백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전달한 셈이다. 그렇다면 양해는 왜 많은 시인들 중에 이백을 그렸을까? 왜 이백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까?
또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명나라 시절 가장 천재적인 화가로 꼽히는 서위의 <황갑도(黃甲圖)>는 호방한 필선과 먹의 번짐이 위력을 발휘하는 그림이다. 과감한 생략은 서위 그림의 특징인데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화가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서위처럼 수많은 사건으로 점철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불우한 청소년 시기를 보냈으며, 젊어서는 과거시험에 수차례 실패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여러 번 자살도 시도했으며, 아내를 죽여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위가 남긴 그림이 후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많은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따른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왜 많은 이들이 서위의 그림에 열광했을까?
저자는 이처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흥미를 유발한다. 여덟 화가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함으로써 독자들이 화가의 인생을, 내면의 고통과 고독을 충분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화가의 마음에 깊이 빠져들어 공감하기도 하고 그림에 담긴 뜻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더 많은 중국 회화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것이 저자가 이 여덟 장의 그림으로 회화사의 한 시기를 단면으로 잘라 보여주기로 한 이유이다.
지은이 | 장인용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중국미술사를 공부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다닐 때부터 출판일을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 도록을 여러 권 만들었다. 그 후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에서 근무했다. 1995년에 지호출판사를 설립해 여러 분야의 교양서를 출간했으며, 지금은 은퇴하여 자신의 글을 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관심 분야에는 미술도 있다. 그래서 『중국미술사』도 우리말로 옮겼으며, 앞으로도 미술에 관한 흥미를 잃지 않고 몇몇 미술 분야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한다.
여태까지 쓴 책으로는 중국의 고대 제도와 조선의 건국을 조명한 『주나라와 조선』, 갑골문과 금문의 유래를 통해 한자를 해설하는 『한자본색』, 음식에 관해 인문학적 탐색을 한 『식전』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중국미술사』, 『원세개』, 『그림으로 읽는 중국 신화』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여덟 장의 그림을 보기 전에
우리에게 중국화란 무엇인가
작품을 낳은 시대와 사회, 개인적 배경이 중요하다
그림이 있던 장소와 형태도 중요하다
베끼기도 예술이다
그림에는 화가만의 그 무엇이 있다
양해(梁楷)
예술의 자유를 위한 첫 발걸음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
시대를 뛰어넘은 자유로운 영혼의 만남
군주의 오락거리 예술은 싫다
금 허리띠를 문에 걸어놓은 뜻은
오진(吳鎭)
고통의 내면화 <어부도축漁父圖軸>
나라를 빼앗긴 쓸쓸함은 그림에 맺히고
그가 어부도를 그린 까닭은
색목인보다 못한 하층민, 남송인으로 보낸 일생
심주는 오진에게서 자신을 보았다
왕몽(王蒙)
산은 평안했는데, 세상은 험악했다 <청변은거도靑卞隱居圖>
왕몽에게 변산은 무엇인가
벼슬과 은둔 사이에서 고민하다
왕몽이 산만 그린 이유는
동기창은 왜 왕몽의 그림을 좋아했을까
그렇다면 왕몽은 이 그림을 왜 그렸을까
그림에서 추상의 가능성을 실현하다
문징명(文徵明)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통은 있다 <고목한천도古木寒泉圖>
행복한 화가의 힘찬 그림
이 그림을 그린 까닭은
열려 있으나 닫혀 있는 명나라 사회
아버지와 스승들
향시조차 그에게는 버거웠다
문학이 문징명 그림의 특색이다
서위(徐渭)
광인, 그림으로 울부짖다 <황갑도黃甲圖>
힘센 게가 되고 싶었던 서위
천재는 남을 모방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렇게 풀리지 않는 인생도 있다
포도와 석류에 자신을 실어
명나라에는 젊은이에게 출구가 없었다
서위를 닮고 싶은 화가들
팔대산인(八大山人)
큰 상처는 평생 남는다 <고매도古梅圖>
상처받은 몸에서 피어난 매화
왕부의 재주꾼에서 승려로 살기까지
옷을 찢고 저잣거리에서 춤추다
우울한 광기의 화가란
후대 화가를 깨우치는 종이 되다
왕원기(王原祁)
베끼기도 그냥 베끼는 것은 아니다 <망천도輞川圖>
이 그림을 왜 그리 많은 화가들이 다시 그렸을까
망천이란 어디인가
18세기에 새로이 창조한 <망천도>
왕원기는 고루한 화가가 아니다
청나라에 복고가 유행한 까닭은
정섭(鄭燮)
그에게 난과 대나무는 무엇인가 <난석도蘭石圖>
흥선 대원군은 자연에서 난을 본 적이 있었을까
그림을 팔면서도 자기 자랑을 하다
널다리 옆에 살던 가난한 서생
양주팔괴와 정섭, 그리고 완전한 미술 상업
마치면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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