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많은 부분이 포개진 부부 작가의 서로 다른 책이다. 『류민자』의 저자는 작가의 출생 장소와 조부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통상적이고 진부한 영웅 서사 방식’의 의도된 글쓰기다. 여성 작가의 연구서가 ‘여성’을 때고 작가로 인정받고자 작품으로만 가득한 것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다. 『하인두』 역시 시간순이다. 저자들은 2013년 유가족의 구술 채록 작업으로 시작, 출생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와 이후부터 작고하기까지를 나누어 각각 썼다.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도 ‘뭔가 달랐던’ 뚜렷한 예술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주연이 다른 두 책의 교차점은, 그것대로 작가를 알아가는 또 다른 서사가 되어준다.
책소개
전쟁 후 상실의 시대, 한국 화단에 추상미술을 들여놓았던 사람,
한국 추상미술의 큰 자취, 화가 하인두를 만나다
1930년 8월 태어나 1989년 11월 세상을 떠난 화가 하인두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조망한 책 『화가 하인두, 한국 추상미술의 큰 자취』가 출간되었다.
화가 하인두는 해방 후 일제강점기 이후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한국 화단의 출발점부터 본격적인 추상 미술의 세계로 진입하는 모든 순간에 상수(常數)와도 같은 존재다.
명실상부 해방 후 제1세대 작가군에 속하는 그는 1956년 새로운 미술 운동의 기치를 내건 ‘청맥’ 동인을 결성하고,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에 참여한 이래 추상미술이 한국미술사에 큰 줄기를 형성하는 전 과정에 함께 있었다.
해방 이후 그를 포함한 제1세대 예술가들의 등장 이전까지 한국 화단은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해왔다. 국전에서 이름을 올리는 것이야말로 화가로서 인정 받는 거의 유일한 진입로로 여겨지던 시절, 당대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국전 중심의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한 경향에 전복적인 입장을 취함과 동시에 새로운 화풍의 구상과 경향성 획득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나갔다. 이러한 시도는 유럽에서 유입된 앵포르멜 운동으로 표면화되기 시작, 이후 이전에 볼 수 없던 실험적인 미술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추상미술은 한국미술사의 큰 줄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나아가 한국적인 추상화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세상은 그를 향해 ‘한국적 앵포르멜의 좌표’,
‘단색화 위주의 한국 화단에서 색채를 불어넣은 화가’로 부른다
화가 하인두의 예술 세계가 갖는 의미는 그러나 단지 유럽에서 유입된 화풍을 한국에 접목시킨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보수적인 기존 화단의 경향성에 대해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복을 꿈꿨다.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시도를 다양하게 추구했으나 한편 그는 화단의 주류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한국 화단 내에서 그는 대체로 늘 외로운 외길을 걸었다. 화가로서 그는 집요한 자기 성찰,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완벽함을 요구하는 면모를 가졌다. 그에게 독창성은 예술 세계 전반의 화두였다. 국가보안법 불고지죄로 공민권을 박탈당한 이래 한국 땅에 거의 갇혀 있다시피 했던 그가 마침내 떠난 세계무대에서 그가 추구한 것 역시 바로 독창성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단색화 위주의 한국 화단에서 과감한 색채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추상 회화, 색채 표현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재료는 서양의 것을 취했으나 자신의 작품에 내재한 근본 정신은 우리의 전통에서 찾았다. 그가 구현하는 추상미술의 핵심에는 불교의 원리가 늘 자리잡고 있었고, 작품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히는 원색의 색채는 전통적인 오방색을 비롯해 전통에 대한 깊은 사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고 펼쳐낸 예술 세계는 한국적 앵포르멜의 시도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에 대해 명확한 좌표가 되었으며, 그런 그가 동년배의 여러 화가에 비해 일찍 세상을 떠난 점은 애석한 일이나, 그가 남긴 의미와 자취는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화가 하인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년,
그러나 한국 현대 화단의 역사에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름
한국 현대미술의 선봉에 서 있던 화가 하인두가 198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한 사람의 존재가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잊혀지지 않았고, 역사가 되었다. 오래전 그는 떠났으나 그는 여전히 한국 현대 화단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에 실린 ‘주요 연보’에는 살아생전의 흔적은 물론, 그가 떠난 뒤 약 30여 년 동안 이 세상이 그를 줄곧 소환한 기록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국내외 곳곳에서 전시를 이어왔듯, 그가 남긴 그림은 거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세상과 꾸준히 조우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작품과 예술 세계 역시 근현대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줄곧 소환되었다. 그의 예술 세계를 대상으로 삼은 논문이 발표되고,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는 화가로서만 소환되지 않았다. 하인두는 매우 드물게 자신의 생각을 그림만이 아닌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가 그림만큼이나 숱하게 남긴 그의 기록은 후대에도 여전하고 꾸준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 연구되었다.
예술가의 삶은 어떻게 한국 화단의 역사와 맞물리는가
미술사 전공자 두 사람이 약 6년여에 걸쳐 집성한 한 사람의 일대기,
한국 현대미술사의 의미 있는 기록의 탄생
오래전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떠올리는 방식은 대부분 그와 함께 일정한 시절을 보낸 누군가의 개인적 추억과 회고의 범주 안에 머물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개인의 삶을 기록하되 감상적인 추억의 일별 또는 그가 이룩한 예술 세계를 향한 찬사의 나열이라는 전형성을 성큼 뛰어넘는다. 이 책은 화가 하인두의 개인적 삶을 반추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 사람의 화가가 걸어온 개인의 역사가 어떻게 한국 현대화단의 초창기 역사와 맞물려 커다란 변곡점을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이 그런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저자들의 고군분투 덕분이다. 우연한 기회에 화가 하인두의 삶을 자신들의 연구 텍스트로 받아들인 김경연, 신수경 두 사람은 2013년부터 화가 하인두가 남긴 모든 기록과 관련 자료를 섭렵했고, 하인두를 둘러싼 숱한 인물들과 만나 그들이 기억하는 하인두와 그 시절을 되살려냈다. 두 사람은 약 6년여에 걸쳐 축적한 기록과 집성한 자료들을 한 권의 책으로 구현하면서 일차적으로는 한 개인의 삶과 화가로서의 이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책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데 있다. 화가 하인두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저본으로 삼아 김경연, 신수경은 우리 미술사에서 화가 하인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씨줄로, 그라는 존재로 인해 우리 한국 화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날줄로 교직해냈다. 이로써 독자들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살아온 삶을 통해 한국 화단의 오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한국의 현대미술은 한 시절의 역사, 또는 연구자들끼리만 알고 있던 그 시절 낱낱의 풍경을 대중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매우 유의미한 기록이 화가 하인두를 통해 이렇게 탄생한 셈이다.
지은이 | 김경연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하인두 초기 작품세계 연구」와 「안상철 작품연구」, 「1950년대 한국화의 수묵추상경향에 대하여」, 「1970년대 한국동양화 추상연구」, 「‘한국화’에서 ‘한국의 회화’로- 1990년대 이후 한국화」, 「보편회화 지향의 역사-20세기 전반기 동양화 개념의 변모」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이동훈 평전』이 있다.
지은이 | 신수경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김용준.김주경.이쾌대.정종여.정현웅 등 월북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해방기(1945~1948) 월북미술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중섭의 표지화와 삽화: 문학과 예술의 만남」, 「북한의 역사인물 초상화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한국근대미술의 천재화가 이인성』,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공저) 등이 있다. 지금은 문화재청 평택항 문화재감정관실의 감정위원으로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 문門 앞에서
제1장 출생과 성장
가족들 이야기 | 소심담대한 아이
제2장 순수의 시대
흑석동 남관 화실 | 문학 편력의 시작 | 전쟁의 상실과 우울 | 공초와의 다방 순례 | 부산의 화가들 | 환도 후의 서울 | 세잔과 함께 | 부산화단과 ‘청맥’ 동인 활동
제3장 전위의 초상
안국동 시대 | 앵포르멜과의 만남 | 미의 유목민 | 파국의 소용돌이 | 응고된 전위예술
제4장 두 줄기의 빛
불 같은, 그리고 돌 같은 소녀 | 재도약, 서울에서의 첫번째 개인전 | 전통 종교에 대한 개안 | 전통미의 자각
제5장 정체성의 모색
첫 해외 출장 | 파리에서 만난 한국 작가들 | 파리 생활기 | 불교적 우주관을 담은 화면 | 프랑스로 간 이유 | 국제무대의 높은 장벽 | 한불미술교류를 위한 고군분투 | “로컬리즘의 심화가 곧 한국적이며 국제적인 것” | 한국미에 대한 깨달음 | 아치울에서의 행복한 나날
제6장 투병, 그리고 혼魂불
다시 찾은 붓끝의 감촉 | 20년 만의 적자 없는 개인전 | 절망의 늪에서 끌어올린 빛과 색 | 혼불, 빛의 회오리
에필로그 : 마지막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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