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에 심취한 어느 경제학자의 30여 년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컬렉터이기도 한 그가 말하는 컬렉터와 미술시장, 한국미술의 아름다움과 그 중 특히 애정을 쏟는 ‘민예의 아름다움’ 등에 관해 적었다. 끝부분에 배치한 문화예술에서의 ‘속’과 ‘초속’에는, 그 균형을 통한 한국 문화예술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책소개
오백나한이 인도하는 아름다움과 깨달음의 세계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모으거나 한 분야에 몰입하는 마니아들은 그 행위를 할 때 삶의 고단함을 잊고 특별한 행복을 누린다. 생업과 관련이 없어도 밤낮 없이 몰두하며 그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면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말을 실천하듯이 어느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는 깊고 넓은 고미술의 세계에 심취한 어느 경제학자가 한국미술의 아름다움과 원형을 찾아 떠난 30여 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미술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았던 저자 김치호는 우연히 마주친 매화 민화 한 점을 계기로 고미술의 세계에 발을 담갔다. 이후 평범한 컬렉터들처럼 컬렉션의 열병을 앓으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하고, 위작과 정보의 불균형으로 얼룩진 미술시장의 냉철한 현실을 마주하며 아파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간 저자가 미술계에 속하지 않은 일반 컬렉터의 시선에서 바라본 미술시장의 위기와 대안, 작품 소유에 대한 지독한 욕망을 좇은 사람들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국내외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를 두루 섭렵하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도 한다. 저자가 가장 아끼는 민화와 고가구 등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민예에 대해서도 심혈을 기울여 썼다.
저자는 그간 자신의 행적을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민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고미술 사랑은 한국미술의 원형에 대한 호기심으로, 궁극의 아름다움에 대한 해탈로 이어졌다. 이 책은 이제 막 고미술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 컬렉션의 유혹을 느끼는 사람,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어줄 것이다.
컬렉터의 눈에 비친 미술시장의 흑과 백
흔히 컬렉션은 ‘제2의 창작’으로 불린다. 창작에서 시작되는 미술활동이 컬렉션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컬렉션이 감상과 애호의 차원을 넘어 작품 소유를 위한 극단적 집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는 컬렉션 유혹에 빠진 다양한 컬렉터들의 예를 제시했다. 렘브란트는 컬렉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그림을 사 모으느라 전 재산을 탕진하고 궁핍하게 생을 마감했다(113쪽). 명나라 말 「부춘산거도」를 소장했던 오홍유는 그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죽으면 그림을 태워 재와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118쪽).
“안타깝게도 작품에 대한 욕망은 자신만의, 자신만을 위한 아름다움에 탐닉하고 집착하게 만든다. 그것 또한 컬렉터의 숙명일 테지만 컬렉터가 그 욕망의 덫을 벗을 때 자신이 탐하는 아름다움은 소유의 경계를 넘어 세상을 매혹하는 아름다움으로 바뀐다.”_127쪽.
납치범에게 손자의 몸값을 보내는 일에도 돈을 아꼈던 게티는 그가 모은 미술품으로 미술관 사업을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방대하고 우수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게티미술관은 현재 미국 5대 미술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반대로 평생 모은 작품으로 게티미술관을 건립한 폴 게티와 삼성 리움을 만든 이병철 회장,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기반이 되는 소장품을 기증한 이병창 그리고 대를 이어 수집한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손씨 집안 등 아름다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도 있다.
컬렉터는 시장의 속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특히나 미술시장은 위작이 판을 치고, 정보의 교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초보 컬렉터들은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저자는 경제학자의 냉철한 눈으로 미술시장이 여타의 시장과 다른 점과 그 안에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컬렉터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말한다.
진화하는 미술품 경매시장의 장단점과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컬렉션을 말함에 있어서도 매우 솔직하다. 또한 인공지능의 발전을 소개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학과 예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화두를 던진다.
600년 전 찰흙으로 빚은 그릇이 현대성을 말하다
한국미술에는 찬란한 도자문화의 역사가 있다. 도자기는 컬렉션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도자 기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선사시대 토기, 삼국시대 수막새, 고려시대 청자와 조선시대 백자 등 다양한 도자기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가운데 특히
2018년 4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13만 달러에 낙찰된 분청 편병. 그릇의 형태와 표면 조형은 600년 전에 제작되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분청사기에 주목하며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조형에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우리 도자문화의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홀대받고 있지만 “독특하고 비범하며 역동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분청은 세계무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훌륭한 문화자산을 더 아끼고 가꿔 우리 스스로 세계를 매혹하는 미학의 옷을 입혀야 하는 이유다.
수십 년간 한국의 미에 대해 고민해온 저자는 전국에서 열리는 박물관 특별 전시를 빠짐없이 관람하는 것은 물론 일본의 전시까지 빼놓지 않고 찾아간다. 일본에는 한반도 도래인이 남긴 유물과 임진왜란 및 일제강점기를 통해 약탈한 문화재들이 상당하다. 저자는 오사카와 나라 지역을 답사하며 문화재를 관리하고 전시함에 있어 배울 점에 대해 진솔하게 언급하고, 앞으로 우리가 한국미술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대해 소신 있게 말한다.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늘 비슷하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저들의 안목이 부럽고, 찬란했던 우리 문화유산 대부분이 저들이 저지른 병화와 약탈로 사라져버린 것에 분노하고, 그럼에도 일본 곳곳의 신사와 사찰, 민간에서 우리 미술품을 신주단지 모시듯 보존해온 저들이 역설적으로 고마운 것이다.”_230쪽.
그 연장선상에서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 환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는 반출된 문화유산이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역시나 문화유산은 탄생지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유출의 불법성과 경로를 밝혀 국가 간 환수를 추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민간 채널과 경매시장을 통한 국내 유입을 제안한다. “맹목적인 애국심과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되면 부작용이 커지고 국외에 소재하는 문화유산은 점점 더 지하로 숨어들어 시장에서 사올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미술시장을 지켜본 저자의 통찰력이 빛나는 지점이다.
삶 속의 미술, 미술 속의 삶
한국미의 원형과 특질을 찾아 헤맨 30여 년간 저자 김치호가 끝내 놓지 않았던 화두는 ‘민예(民藝)의 아름다움’이었다. 처음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매화 민화 한 점이었으니 저자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을 수놓은 예술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셈이다.
「화조도」. 거친 붓질과 정형화되지 않은 화면 구성에서 민초들의 활력과 자유로운 심성이 넘쳐난다.
특히나 민화는 저자가 가장 애정을 쏟는 분야다. 저자는 “민화는 옛사람들의 꿈과 소망을 담은 그림이며 그 속에는 해학과 풍자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민화’하면 「까치호랑이」 그림만 떠올릴 독자들이 보면 놀랄 만큼 다양한 민화를 소개하고 있다.
민예는 민간의 삶 속에서 삶과 더불어 생육되고 발전했다. 상류층이 아닌 일반 백성의 심성을 닮아 있다. 각 지역의 지방성(地方性)도 뚜렷하다. 책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할머니 방에서 보았던 거무죽죽한 궤짝(반닫이)에 대한 추억과 함께 강화·경기·박천 반닫이의 지역적 특징과 장식을 다룬다. 독자들의 반닫이 보는 안목을 높여줄 것이다. 그 밖에 휴대용 표주박, 은장도, 조각보, 소반 등 삶이 된 미술의 평범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문화예술에서 이념과 정신을 추구하는 ‘초속’(超俗)을 나무의 ‘줄기’에,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는 ‘속’(俗)을 ‘가지와 잎’에 비유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이 균형을 이루어야 풍성한 나무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우리 한국미술이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은이 |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 출생. 연세대학교 졸업 후, 1987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여 년간 한국은행에서 거시경제 변동, 통화정책, 금융위기 관련 연구업무를 수행했고,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거쳐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 등 두 권의 경제학 책을 펴냈고, 60여 편의 연구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다른 한편으로 본업인 경제학의 경계를 넘어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인간의 내면에 관한 인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며 소통해왔다. 2009년에는 우리 고미술에 담긴 아름다움을 찾아 몰입하며 체득한 안목으로 『고미술의 유혹』(한길아트)을, 2015년에는 『오래된 아름다움』(아트북스)을 펴내는 등 한국미술의 미학적 특질과 컬렉션 문화를 탐구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목차
1.미술시장의 풍경
오래된 아름다움은 바람되어 나를 부르고
미술시장과 컬렉션 풍경
벽에 걸면 다 안다
사기도 힘들지만 팔기는 더 힘들다
미술시장의 위기, 신뢰의 위기
미술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인가
미술시장 속으로 한 걸음 더
AI가 그린 그림, 크리스티 경매에 나오다
가짜가 늘어날수록 진짜는 권력이 된다
금강안金剛眼 혹리수酷吏手
2.컬렉션의 유혹
언제나 처음처럼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 지독한 컬렉션 욕망을 좇은 사람들
컬렉터가 욕망의 덫을 벗을 때
미술품 앞에서는 자본도 열병을 앓는다
메디치와 게티를 위한 변명
이병창 컬렉션을 아십니까
도굴, 야만 또는 욕망의 실루엣
3.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고려불화 그 이름을 되찾기까지
‘신라의 미소’ 수막새에 담긴 이야기
해외 문화유산 환수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나라국립박물관에서
토기, 그 선이 아름다워 꽃이 되고
일본의 고려 건국 1,100년 특별전 기행
오사카.나라 답사 기행 뒷이야기
순백의 아름다움, 조선의 아름다움으로
600년 전 찰흙으로 빚은 그릇이 현대성을 말하다
분청, 발라드 또는 재즈
조선의 도자문화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대고려전의 감동, 그리고 남는 아쉬움
대고려전,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자
4. 삶 속의 미술, 미술 속의 삶
민예, 무심과 평심의 아름다움
규방에서 피어난 조각보의 아름다움
우리 고가구를 보는 새로운 시선들
반닫이 그 단순함의 미학
옛사람들의 꿈과 소망을 담은 민화
까치호랑이 그림 속의 해학과 풍자
말이산 토기는 가야사 복원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속俗과 초속超俗, 갈등하며 공존하는 두 가치
창령사 오백나한의 미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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