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형상미술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낸, 저자의 16번째 미술평론집이다. 그림 하나 없이도 분량이 1,000쪽을 훌쩍 넘는 책은, 지역성에 갇혀 시대적•조형적 의미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산형상미술의 개념 정리와 가치 조명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1940-50년대 부산이라는 배경과 그곳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이해를 선행하며, 그들이 부산형상미술 연관 선상에 있음을 언급한다. 소수의 지역 도시 미술가들이 구상미술•추상미술•민중미술이라는 동시대 주류 흐름을 거스르고 대항하는 실행 방식의 하나였다고 판단하는 저자는, 1980-90년대 부산형상미술이 재현이 아니라 현실의 해체로써 현실을 비판했다고 옮겨 말한다. 후기를 통해 이러한 급진적이고 독특한 움직임에 관한 오해나 오독을 일일이 언급하고 바로잡으며, 한 도시가 가지는 진정성에 이해를 기대한다.
책소개
-부산 미술계에서 현장비평을 통해 지역 미술 활성화에 기여해온 미술평론가 강선학의 16번째 미술평론집
-부산이라는 지역성에 갇혀 제대로 된 시대적·조형적 의미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산형상미술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비평지원을 받아 발간
비평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 때, 자신의 계층을 향할 때조차 비평의 기능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평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아니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혈안이 된 언로를 거머쥔 세력이 그, 날 선 말들을 참조 정도라도 할까 하는 의구심을 쉽게 떨치기 힘들다.
소박하게는 내게 오는 비평의 말들에 대해 쉬 수용하거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자성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여기저기 흩어진 내 글 사이에서 부산형상미술의 개념을 정리해보려는 욕심이 정작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의 칼날, 감성의 격렬한 대응을 하찮은 말로 순치시키지나 않을는지 하는 염려가 앞선다. 왜냐하면 부산형상미술이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한 사회, 역사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금력과 권력에 기생해야만 가능했던 시절에서 맹목적 가난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언어를 가지려는 우리 세대의 가치와 태도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아트페어로 미술이 몰려가는 오늘, 부산형상미술의 감수성과 결기가 하나의 개념이나 특정 성격으로 묶어져서 한 시대의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요약
묶으면서
부산형상미술은 “집단화 없는 다양성, 어떤 범역 속에서도 조립되지 않고 상호 호환되는 하나들의 전체Tou-Uns의 순수한 광채”임을 새삼 확인한다.
1부
1980년대의 치열한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미술의 형상적 특징은 미술의 대사회적 관계에 대한 우리 미술 풍토의 의식을 일신한 것으로 중요한 평가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의식으로서의 미술이 1980년대 돌연 나타난 게 아니다. 앞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1940년대 1950년대의 사회적 격변기야말로 1980년대 미술의 기층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 시기 부산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기저로 일어난 1980년대 부산형상미술은 이들 활동과 경향에 결코 무관한 사건이 아니다.
2부
진정한 형식은 골드만의 용어를 빌면 최대한의 가능한 의식이 움직이고 있는 형식, 그 형식 속에 세계가 새롭게 포착되고 있는 형식임을 바탕으로 1980년대 미술에 대한 반성의 일단이 놓이는 것이다.
3부
더구나 참으로 희한하게도 몇 차례 광주 부산 간의 교류전이 없지 않았지만, 첨예하게 시대를 앓았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는 없었다. 그것은 은폐되었거나 기피되었던 무엇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노출 시키려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은성한 만찬과 접대는 있었어도 미술이 마땅히 해야 할, 놓쳐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서는 시종 침묵하고 있었다.
4부
카페와 바다라는 이 유혹의 여성성은 발기한 남성 성기 같은 발전소의 건물과 대조를 이루며 하루가 다르게 성시를 이룬다. 축제와 게임과 안식과 환락의 순간을 제공하는 이 바닷가의 상황은 마치 원자력발전소 근방이라는 두려움, 그 폭력을 단번에 순화시키고 만다.
문광훈은 예술가를 이렇게 말한다. ‘자각된 맹목을 선택’한 자라고, ‘맹목성의 열정 없이는 작가적 실존이 존립하기 어렵다’고.
5부
조각이라면 웅장하고, 견고한 단색조의 것만 생각하다 그의 작업은 작고 연약하고, 채색된 것으로 마치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미니어처 같은 친밀함을 보여주었다. 우선 크기와 채색, 그리고 이야기라는 형식이 1980년대의 우리 미술이 지향하던 것과 거리를 가지면서 새로운 방법에의 개안과 확장된 조각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6부
그들의 작업은 평면이나 입체 모두가 미묘한 사회 계층적 문제의식과 무언가로부터-권력과 금력, 정체를 알 수 없는 익명의 감시 체제-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과 그 불안에 대한 혐오스러움, 긴장 또는 그런 상황으로부터 기피 하거나 반항하는 심리적 반응, 상징적 화면 구성을 통해 자기 방어기제를 만들고 있는 내면, 단순한 풍경적 소재에 부여하는 무거운 의미 등을 대체적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더구나 이런 특징이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업조차 모두 그들 작업 바탕이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7부
노랗고 작은 조각들은 폐기된 지하철 승차표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긴 통로의 벽면에는 노란 조각들이 이어 붙어 있다. 구겨져 부착된 조각들은 글자와 마그네틱 흔적이 반복되면서 문양이 된다. 그러나 그 벽에 기대설 수 없다. 사회적으로 폐기된 기호가 기대설 수도 들어설 수도 없는 〈타인의 공간〉을 만든 셈이다.
8부
“여성들은 그들 스스로 이름 붙이는 힘을 연습하지 않는 한 계속 무력한 채로 남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은 언어이고 언어는 힘이며, 모든 언어는 지배 질서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9부
자본과 관료에 기생해야 하는 현실에서 “사회적 관계를 갖지 않는 희생양(르네 지라르)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무능의 급진성 속에서 오롯이 걸어가는 것”이 없다면, 오늘의 논의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삶과 역사를 비판하는 그림은 없을 것이다.
10부
몸이 가려운 것은 세상이 가려운 것이다. 타자가 내게 와서 다른 세계로 이끄는 것 아닌가. 종이 위로 쓱쓱 지나는 그들의 드로잉 자국과 붓 자국은 가려운 곳을 긁어대고 지긋이 눌리는 압박감을 즐기는 것 같다. 때로 몸을 다스리는 애무 같기도 하다. 비로소 타자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리고 세계가 열릴 것이고, 몸은 생태이지만 아무도 생태라고 생각지 않은 버려진 곳이다. 모델이 없어도 가능했던 개인적 성행위의 은밀함마저 내놓여 있지만, 몸은 비루하지 않다. 우리의 관습이 비루할 뿐이다. 몸은 현학적이지 않고 감각적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후기
기존하는 재현에 대응하는 어긋나는 재현의 시도는 반재현, 혹은 비재현의 시각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감각적인 것에서의 어긋남 혹은 파괴는 재현과 일상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부산형상미술의 급진성과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급진성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해와 억측이 예사였고 한 시대, 한 도시가 가지는 진정성에 대한 어떤 이해도 불가능했다.
지은이 | 강선학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동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수학했다. 부산시립미술관 에서 10여년 일했으며, 1985년 수묵화로 첫 전시 이후 13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1989년 『형상과 사유』를 시작으로, 『그림보기의 고독 혹은 오만』(1995), 『반항과 욕망의 거처』(1997), 『현대한국화론』(1998), 『상처에의 탐닉-우리 현대미술의 정체성과 논리』(2000), 『공격적 풍경』(2003), 『현대 한국화의 해석 지평』(2010), 『은유의 도시』(2010), 『비평의 침묵』(2011), 『부산미술의 조형적 단층』(2011), 『불만의 통속성』(2012), 『불면』(2014), 『질문들』(2016), 2020년 『저항의 피아니시모』까지 총 15권의 미술평론집을 출간했다.
공저로『한국현대미술 새로보기』(2007/미진사), 『한국현대미술가 100인』(2009/사문난적), 『프리즘-한국현대미술 3인의 시각』(2012/도서출판ICAS)등이 있다.
비평과 실기, 그림과 책 사이의 접면에서 새로운 경계를 보아내려하고 있다.
hisunhack@hanmail.net
목차
묶으면서
1부 부산이라는 도시
2부 형상미술의 논리
강제에 저항하는 인간들
삶의 자리 찾기와 자리 만들기
구조적 억압에 대한 대응
그림 그리기로서 삶의 경험
90년대 지방주의 양식의 가능성과 위상
삶의 일상과 그 해석적 접근
비판적 거리와 부산의 형상미술
부산의 구상미술, 그 형상적 특질
부산의 형상미술 왜곡하지 말라
80년대의 상처 - 형상미술, 그 이후
평범한 일상, 격렬한 서사
묶을 수 없는 부정의 미학
3부 부산형상미술이라는 이름Ⅰ
부산형상미술의 한 표정
부산, 80년대 형상미술전
사회의식의 회화적 변용
삶의 일상과 예술의 기능 - 그 갈등과 미해결
시간의 구조로서 만남에의 사유
재현적 이미지에의 반역
화해와 불화, 생명의 원초적 경험
내재화 되지 못하는 타자
모호성과 절박성으로서의 세계
4부 부산형상미술이라는 이름Ⅱ
한 여행자의 지도 읽기
진토(塵土)가 정토(淨土)인 세계
풍경과 자화상, 순치의 두려움
대항하고 초월하기
잡식성의 이미지 채집과 매체 활용
현대의 무속적 정경
타자의 천국에서
떠나는 사람들
익명의 개인, 익명의 사회
아름다운 가난을 꿈꾸었던 장소
얼굴 그리기와 자아의 정체성
귓가에 놓은 꽃, 혹은 화분
새로운 언어의 발견
존재감이 상실된 현대인의 초상
꿈꾸는 통나무
자연의 소재를 통한 현존성의 시각화
선택이 주는 눈
가위눌린 주체
무차별의 고통과 세계 이해
검은 회오리 숲의 위험과 혐의
타자에 의한 자화상
5부 급진적 형식, 시대의 진정성Ⅰ
대상 세계에서 내성의 세계로
집, 혹은 방
이질적 이미지와 폭력적 형상
자기 비하의 동조적 허무감
공중에 떠 있는 돌과 존재의 인식
출발을 위한 5인전
타인의 얼굴을 한 자아
부드러운 조각의 새 형상력
구체성과 추상적 본질의 변증
6부 급진적 형식, 시대의 진정성Ⅱ
이 시대의 조형성 구축을 바라며
질료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젊은 세대의 시각
당돌한 이미지의 참신성
비평 활동과 지면
입체 작업의 새 국면
현존시각, 아름다운 모습의 당위를 위해
우리 시대의 보편적 상흔
오늘·부산미술·내일 - 90년대의 예증인가
89 신인전의 의미
형식과 상상력의 굴레
화해와 불화의 세계
삶의 다양성과 방언적 대응방식
현존인식의 다양성과 현실의미
《미술지역》전
1990년 부산 미술의 현상과 진단
《페미니즘 아트》·《바다미술제》의 새 모색
시대와 삶의 양상
일상의 해체, 현실비판의 은유적 문맥
분열적 인식과 삶의 가벼움
삶의 터전, 미술의 터전
감추기와 드러내기
7부 급진적 형식, 시대의 진정성Ⅲ
해부학적 상상력의 사회적 의미
너무 작고 선명한 상처
무차별의 고통과 세계 이해
사물의 더듬기
상식의 진솔함
길에 막힌 존재, 우리는 어디 있는가
당신을 밀어내는 승차표
무 한 포기의 욕망
미끄러지는 경계의 풍경
밤에 난 길을 나서다
문에서 문을 분절해 본다
소멸을 통한 불화의 방법
8부 남자들은 몰라, 시대의 감성
페미니즘 아트, 세계 해석의 독자성
세계의 상실, 성, 그 고통의 언어
식물적 이미지를 가진 두 작가의 경우
이중의 의미 엮기, 존재의 흔들림
9부 기억의 풍경들
기억의 풍경들
사회적 생산으로서 우리의 미술
삶의 근거에 대한 전복
미의 놀이화, 놀이의 계급화
미술 대중화와 예술적 진술
칼이 양날을 잃어버리면
기사는 발로 쓴다
10부 부산형상미술의 외연과 내포- 어디까지 부산형상미술인가 -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
도저한 어긋남 - 황금벌레
여행기를 넘어서는
스타일은 현실을 지운다
기둥에 못질이 없다
얇은 풍경, 층위 없는 삶의 실체
삶을 꿰매는 기술
시선이 차단된 어떤 곳
정지된 순간, 현재를 일탈케 하는
손은 쥐면 펼 수밖에 없다
시간의 밀도, 빈 진열장의 응시
경계에 서서 존재에게
가렵고 에로틱한 몸
길 없는 동네 -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망의 놀이
사막여우 – 어디에도 없는 나 혹은 타자
‘되기’의 경계에서
분절된 구성, 내면의 지도
기억의 정물적 응시
당혹한 미열의 세계, 그리고 일상
나는 너의 의식이다
후기
한 도시의 급진성 혹은 진정성 - 부산형상미술
인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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