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때로 답보다 중요하다. 대담한 질문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던지고 페미니즘 미술사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저술,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의 발표 50주년을 기념해 다시 엮었다. 2006년 저술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도 실었으며, 여성과 그 너머의 차별 문제를 포괄할,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책소개
1971년 린다 노클린이 쏘아올린 페미니즘 미술사의 신호탄
“미술사학자가 쓴 글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고 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바로 린다 노클린의 1971년 에세이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_주디 시카고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가 미술계에 일으킨 파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념비적인 논문 발표 50주년을 맞이해 아트북스에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을 발간한다. 이번 ‘50주년 기념 에디션’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의 완역본이자, 최초 논문을 발표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 이루어진 긍정적인 변화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담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2006)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 시각문화학 박사 캐서린 그랜트의 「머리글」을 실어 노클린의 연구가 갖는 미술사적 의의와 두 글 사이의 관계성을 짚어준다. 또, 마리드니즈 빌레르, 로자 보뇌르, 제니 홀저, 메리 켈리, 레이철 화이트리드 등 여성 미술가의 작품 도판을 배치하여 노클린의 메시지를 보다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5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미술사의 고전’을 새롭게 읽어보자.
린다 노클린은 미술계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계시’와도 같았던 논문 탄생을 기리는 50주년 기념 에디션
페미니즘 미술사는 역사 속 여성 미술가들이 소외되어왔고 그 이유가 미술계의 남성중심주의에 있다는 전제하에 미술사에 젠더 관점을 도입해 미술교육, 제도, 문화 전반을 재검토하는 미술사 연구의 흐름이다. 그러한 페미니즘 미술사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논문이 바로 린다 노클린이 1971년에 미술 학술지 『아트뉴스』를 통해 발표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이다. 이 글에서 노클린은 여성 미술가를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미술계의 관행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화’를 탄생시키는 사회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위대함’을 중심으로 한 미술계의 낡은 담론을 뒤흔들었다. 이후 작품과 작가에 내재하는 천재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맥락에서 미술가와 작품을 비평하는 미술사학자 세대가 배출되기 시작했고, 여성 미술가들은 ‘여성성’이라는 틀에 맞추려는 평단에 맞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노클린의 획기적인 논문 발표 50주년을 기념하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와 2006년 『밀레니엄 시대의 여성 미술가들』에 실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를 함께 소개한다. 캐서린 그랜트는 「머리글」에서 두 에세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밝힌다. 또한 본문에 배치된 컬러 도판이 독자의 이해를 돕고, 미술가 주디 시카고와 미술사학자 그리젤다 폴록의 추천사가 린다 노클린의 학문적 성과를 뒷받침한다. 특히 우리말로 처음 번역‧발표되는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는 퀴어 이론, 인종 및 포스트콜로니얼 연구와 더불어 페미니즘이 번성하는 시대에 쓰인 만큼 완전히 새로운 규범의 출현을 반영하고 있어, 페미니즘 미술사가 걸어온 길과 그 성과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위대함’의 조건은 무엇인가?
미술계의 남성중심주의를 논파한 획기적 논문, 그리고 30년 후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가 당시 화제가 된 까닭은 미술사에서 지극히 ‘당연하다’ ‘자연스럽다’라고 여겨온 가정들을 뿌리째 흔들었기 때문이다. 노클린은 미술관에는 ‘여성을 그린’ 그림은 많고 많은데 왜 ‘여성이 그린’ 그림은 없는지 질문하고, 미술사에서 명화를 가리는 기준이던 ‘위대함’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헤친 첫번째 연구자였다. 이 질문은 1960년대 말부터 진보사상과 페미니즘의 흐름이 형성되는 가운데 학계의 자기 반성적 노력과 함께 제기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논문은 명실공히 페미니즘 미술사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여성의 창작을 장려하고, 여성의 공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여성 미술가의 정당한 대우를 위해 투쟁하는 페미니즘미술운동이 부상했다. 주디 시카고, 마리엄 샤피로 등 노클린의 글에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페미니즘 미술가 외에도 많은 미술가가 작품 생산과 공적 발화를 통해 여성의 미술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깨뜨림으로써 노클린의 질문과 공명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는 ‘위대함’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배경을 추적하며 시작한다. 남성 천재 미술가 신화가 만연한 가운데 제도적으로 확립된 미술교육은 ‘자연스럽게’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미술계의 남성들은 서로를 후원하고 지지하며 여성 화가의 존재를 주변부로 소외시켰다. 여성에게 누드 드로잉 수업이 금지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유명한 앙겔리카 카우프만도 런던 왕립미술원 단체 초상화에 그림으로밖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여성 미술가들은 어렵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제도권 미술교육기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단지 예절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미술교육에서 배제되었다. 이러한 불평등에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는 대중문화도 한몫했다. 19세기에 출간된 한 조언서에는 여성은 그의 본분인 가정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창작활동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담겨 있다. 게다가 여성 미술가는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술작품의 질적인 차원을 높이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는, 단순히 소모적인 투쟁”을 겪게 된다. 내적 강박이다. 한 예로, 남성복을 입고 여성에겐 금지되었던 동물 시장, 농장 등에 출입하는 대담함을 보인 로자 보뇌르마저도 일평생 자신의 선택이 ‘여성성’에 어긋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렇게 노클린은 개인적인 경험, 정치이론, 사회사, 도상학 등을 동원한 교차적인 분석을 통해 여성 미술가가 처해온 제도적‧문화적 제약 속에서 그들이 소외되어온 맥락을 이 논문에서 낱낱이 드러낸다.
2006년에 발표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에서 노클린은 그동안 일어난 미술계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꺼이 축하하며 여성 미술가가 바꿔놓은 풍경을 넓게 조망한다. 이제 많은 사람이 “여성 미술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쳐다보고, 표시해”두는 시대가 온 것이다. 노클린은 루이즈 부르주아, 메리 켈리, 신디 셔먼 등의 작품을 분석하며 여성의 위치와 미술의 관계를 진단하고. 마야 린, 카라 워커, 제니 홀저, 레이철 화이트리드의 작품을 통해 여성이 어떠한 질문과 작품세계를 통해 공적 공간으로 진입하는지 정밀하게 비평한다. 이 에세이는 희망적인 전망을 가득 담고 있는 듯하지만, 노클린은 아직까지 미술계의 주요 연사는 백인 남성이고 여성이 그의 말을 듣는다는 현실을 꼬집으며 더 나아가기를 호소한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미술사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미술사의 확장된 계보를 만들어가기 위한 질문들
미술 감상자가 여성 미술가를 보는 시각도 상당히 달라졌다. 이제는 더이상 여성 미술가를 미술가에 앞서 남성의 뮤즈, 여성, 엄마, 연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여성 작가들이 에르메스상, 오늘의 작가상 등 한국 대표 미술상 수상자 목록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특히 2015년 이후 페미니즘운동이 가속화됨에 따라 미술계에서도 그에 대한 응답이나 더 나아간 질문으로 페미니즘, 젠더, 장애,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전시와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드디어 페미니즘의 물결이 남성중심적이던 미술계의 질서를 전복한 것일까? 그러나 최근까지의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여성 미술가가 겪는 불평등을 숫자로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가 영미권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현대미술은 미술시장과 분리할 수 없기에 미술시장에서의 평가는 유의미한 지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여성 작가들의 작품 거래량과 거래가가 상승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남성 작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2019년, 소더비의 자회사인 ‘아트 에이전시 파트너’의 온라인 매체 「인 아더 워즈」와 예술시장 웹사이트 「아트넷 뉴스」가 공동 조사한 통계를 보면, 가장 큰 국제 미술시장인 ‘아트바젤’의 2008년부터 2019년까지의 거래 데이터에서 여성 작가의 금전적 거래 규모는 전체의 2퍼센트가 안 되며, 그마저도 다섯 명의 스타 작가(구사마 야요이, 조안 미첼, 루이즈 부르주아, 조지아 오키프, 애그니스 마틴)의 작품이 41퍼센트를 차지한다. 또한 오직 파블로 피카소 한 사람의 작품들에 대한 시장가치의 총합은 6000여 명 여성 작가의 전 작품 거래가를 합친 것과 같다. 이외에도 미국 18개 미술관의 소장품 중 85퍼센트 이상이 남성이거나 백인의 작품이라는 점, 미국 26개 주요 미술관에서 수십 년 동안 구입한 작품 중 여성 작가의 작품은 전체의 11퍼센트에 불과하고, 시각예술 작가 중 여성 작가가 46퍼센트를 차지함에도 그들의 수입은 남성 작가에 비해 7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점 등, 미술계의 성별 불평등을 보여주는 통계는 차고 넘친다. 최근 가시화된 여성 미술가의 약진에 안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판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의 머리글을 쓴 캐서린 그랜트가 말하듯 노클린의 ‘교차적 접근’은 “출판 50년 후인 지금에 이르러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엘리자 스타인복이 ‘왜 위대한 트랜스 미술가는 없는가?’라고 노클린의 질문을 변주한 것처럼, ‘왜 위대한 OOO 미술가는 없었는가?’ ‘왜 위대한 여성 OOO은 없었는가?’와 같은 질문은 젠더퀴어, 유색인, 장애인 예술가는 물론 다른 분야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 이 질문은 제도와 문화를 구성하는 많은 영역에서 무엇이 전경이 되고 무엇이 배경이 되는지 그 암묵적인 질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는 예술을 생산하고 연구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책장에 꽂혀야 할 ‘미술사의 고전’으로, 거듭해서 읽고 논의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지은이 |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1931~2017)
미술사학자. 배서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 석사학위, 뉴욕대학교 예술대학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대학교 미술사 및 인문학과 교수, 뉴욕대학교 미술대학의 명예교수를 지내고, 국제미술연구재단(IFAR)에서 예술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노클린은 미술사에 젠더 관점을 도입했으며 미술에서의 여성 재현, 오리엔탈리즘, 리얼리즘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폭넓게 썼다. 또한 여성 미술가의 역사와 그들의 성취를 주제로 한 굵직한 기획전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여성, 미술, 그리고 권력Women, art, and power, and other essays』 『절단된 신체와 모더니티Body in Pieces』 『여성을 재현하기Representing women』 『여성 미술가들Women Artists』 등 다수의 책을 썼다.
머리글 | 캐서린 그랜트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대학 시각문화학과 강사. 현대미술에서 페미니즘 역사의 재연과 페미니즘 및 퀴어 정치의 맥락에서 비판적 글쓰기를 연구하며 그에 관한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여자! 여자! 여자!Girls! Girls! Girls!』 『창조적 글쓰기와 미술사Creative Writing and Art History』 『방법론으로서의 팬덤Fandom as Methodology』을 공동으로 편저했다.
옮긴이 | 이주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덴버대학교에서 미술사 석사학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빅토리아시대 회화 연구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이미지로 글쓰기』 『당신도, 그림처럼』 『그림에, 마음을 놓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다, 그림이다』(공저) 『미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모던 유럽 아트』 『1960년 이후의 현대미술』(공역) 등이 있다.
목차
머리글_캐서린 그랜트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
옮긴이의 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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