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산을 제대로 소비하고 있는지 되짚어보고, 이들만의 특징을 찾아 앞으로의 보존과 활용 방향까지 고민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내용은, 먼저 옛 서울역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 질문하고 근대 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요청한다. 제기된 문제의식을 토대로 2부에서는, 다양한 근대 유산을 소개하고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다시 읽어본다.
책소개
오늘의 우리와 맞닿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근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우리가 근대를 온전히 기억하고 향유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
최근 10여 년 사이 근대 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인천의 개항장 거리 일대와 차이나타운, 일제강점기 상흔이 남아 있는 군산의 도심, 군항제가 열리는 창원의 진해 도심 등지는 인기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군산의 이성당을 찾아 기꺼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는 공화춘 짜장면을 먹으며 중화요리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 경주 대릉원 옆 ‘황리단길’에선 젊은이들이 1970~1980년대식으로 꾸민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옛날 사진관에 들러 흑백사진을 찍는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1,500년 전 신라 고분과 50여 년 전 근대 풍경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모습이다.
근대 건축물을 문화공간, 카페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옛 서울역, 서울의 당인리 발전소, 대구와 청주의 연초제조창, 부산 고려제강(F1963)처럼 규모 있고 유명한 공간뿐만 아니라 제주 도심의 순아커피, 문경의 가은역 카페처럼 작고 아담한 공간도 적지 않다.
오래된 브랜드에 대한 향수도 다시 제품으로 되살아났다. 곰표 밀가루의 브랜드를 활용한 곰표 맥주, 말표 구두약의 브랜드를 활용한 말표 흑맥주, 백양 BYC 속옷 브랜드를 활용한 백양 비엔나 라거, LG의 전신인 금성전자 브랜드를 활용한 금성 맥주……. 모두 1960년대 전후 태어나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해온 브랜드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상 속에서 근대를 기억하고 경험하고 소비한다. 좀 과장하면 ‘근대가 대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의 현상을 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근대 건축물과 같은 물리적인 공간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것을 뛰어넘어 근대의 분위기나 이미지를 경험하고 소비하는 경향이다. 시각적인 유형의 흔적을 넘어 무형의 흔적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대 유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근대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비하고 향유할 것인지 등에 대해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고 우려할 만한 일도 많다. 우선, 근대 유산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꼽을 수 있다. 앞으로 50~100년이 흐르면 어엿한 문화유산으로 대접받을 텐데, 그것이 비록 사유재산이라고 해도 서둘러 미리 훼손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근대 건축물을 활용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거의 대부분은 전시장, 공연장, 카페이다. 원래 건물의 맥락이나 의미는 무시되고, 고민과 성찰이 결여된 너무나 손쉬운 활용이 아닐 수 없다. 근대 유산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도 아직은 부족한 편이다. 근대 유산은 그 양상이 워낙 다양한 데다 사회적 주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근대 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흥미로운 변화가 포착되는 상황이기에 좀 더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다. 바로 이 책이 그러한 필요에 답하고 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문화유산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근대 유산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근대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향유하고 있는지, 또한 앞으로 근대 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진지하게 성찰한다.
1부 ‘근대 유산과 기억의 방식’에서는 구체적으로 옛 서울역(문화역 서울 284)을 예로 들어 우리가 옛 서울역을 지금처럼 활용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옛 서울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근대 유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근대 유산은 과거이면서 현재이다. 과거의 연속이면서 거기에 새로운 변화가 축적된다.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현재의 사람들이 행위에 참여한다. 그것은 지금의 나, 우리와 연결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유산은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도 이 시대 대중들의 수용과 인식의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2부 ‘근대를 걷는다’에서는 이 같은 관점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우리가 잘 알지 못했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잘 몰랐던 근대 유산의 다양한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고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되짚어본다. 일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던 옛 궁궐과 왕릉,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옛 서울역,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극장, 빵집, 서점 등의 장소들, 산업화 시대의 공장과 굴뚝, 궁핍한 시대 속에서도 피어났던 예술혼과 가려졌던 이야기, 수탈의 아픔이 새겨진 철길과 역사, 추억의 애잔함이 묻어나는 우체국, 사연이 숨어 있는 곳곳의 건물들, 도처에 산재한 애환 가득한 생활의 흔적 등 오늘의 우리와 직접 맞닿아 있는 근대의 역사, 그 역사의 현장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근대 유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지은이 | 이광표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공부한 뒤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 협동과정(박사)을 졸업했다. 199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오랜 시간을 문화부에서 문화재 담당 기자로 일했으며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동국대학교, 국민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에서 문화재학, 박물관ㆍ미술관학, 한국미술사를 강의했고 현재는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저서로 『명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화재 가치의 재발견』, 『그림에 나를 담다』, 『명품의 탄생』, 『손 안의 박물관』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부 근대 유산과 기억의 방식
1. 옛 서울역, 어떻게 만날 것인가
경성역에서 서울역까지 / 20세기의 가장 한국적인 흔적 / 전시장에 갇힌 옛 서울역 / 옛 서울역 vs 문화역 서울 284 / 타고 내리는 것의 의미 / 옛 서울역, 어떻게 만날 것인가
2. 근대 유산의 특성
현재성과 동시대성 / 가변성
3. 근대 유산과 기억의 방식
기억의 의미 / 근대 유산과 기억의 맥락
4. 기억의 방식과 근대 유산의 보존 활용
기억의 통일 / 기억의 단절 / 맥락의 상실 / 기억의 단절과 맥락의 상실
5. 근대 유산의 향유와 소비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 1952년 인천생 곰표 / 근대와 일상, 향유와 소비
2부 근대를 걷는다
1. 근대 풍경과 우리의 시선
우리 동네 빵집들 / 단관 극장의 쓸쓸함 / 라디오스타 박물관 / 청주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2. 제국의 황혼
창덕궁 샹들리에, 근대의 두 얼굴 / 고종이 와플을 좋아했다고? / 순종 어차와 오얏꽃 / 홍릉과 유릉, 좌절된 자주권의 열망 / 건청궁 깊은 곳, 부서진 주춧돌
3. 산업화 시대, 공장의 불빛
가장 포항스러운 삼화제철 용광로 / 옛 조선내화 목포 공장과 붉은 벽돌의 꿈 / 망미동 F1963과 고려제강 와이어 / 장항제련소와 굴뚝의 미학 / 영등포공원 담금솥과 맥주의 추억 / 자동차, 일상이 되다 / 의성 성광성냥과 유황 냄새 / 포천 아트밸리와 채석장 / 금성 라디오와 소리의 상상력
4. 일상의 애환
강화도 소창과 기저귀의 추억 / 장충동 태극당과 빵집의 힘 / 충무로 인쇄 골목과 노가리, 골뱅이 / 뚝섬 정수장, 수돗물과 물장수의 명암 / 공세리 성당과 이명래 고약 / 아산 온양온천과 최불암의 신혼여행 / 진천 덕산양조장과 술 익는 마을 / 진해우체국과 그리운 편지 / 강경의 갑문과 젓갈 시장 / 관철동 삼일빌딩과 녹슮의 미학 / 을지로 옛 서산부인과와 김중업의 상상력 / 옥인동 시범아파트, 그 40년의 흔적 / 대전 대흥동 뾰족집의 눈물 / 염천교 구두 거리와 서울역 / 대구 제일모직 기숙사와 여공의 꿈 / 인천 올림포스호텔과 1호 카지노 / 남대문로 2층 한옥 상가, 조선 상인의 생명력 / 강화 교동 대룡시장과 실향의 아픔 / 대한의원과 시계탑의 정치학 / 상암동 월드컵공원과 난지도 쓰레기 9,200만 톤 / 사이렌이 울리던 시절, 보령경찰서 망루
5. 예술의 탄생
통의동 보안여관과 《시인부락》의 탄생 / 권진규 아틀리에와 예술가의 죽음 / 혜화동 동양서림과 화가 장욱진 / 예산 수덕여관과 세 여인 / 섬진강 포구 양조장과 정병욱, 윤동주 / 청운동 수도 가압장과 윤동주 우물 / 충장로 광주극장과 임검의 기억 / 옛 부여박물관과 건축가 김수근 / 배다리마을 옆 ‘잇다 스페이스’와 『표준전과』의 만남 / 진해 예술 70년의 흔적, 흑백다방 / 옛날 사진관과 동남사 사진기
6. 철도와 간이역
전차의 추억 / 381호 전차와 서울의 아침 / 부산의 전차와 온천장 / 소래철교와 수인선 협궤열차 / 익산 춘포역과 군산 임피역, 그 낭만과 상흔 / 해운대 송정역과 바닷가 간이역
7. 일제의 침략과 독립
경교장 유리창 총탄 구멍, 그 너머의 풍경 / 조선총독부 첨탑, 끝나지 않은 해원 / 서귀포 알뜨르 비행장과 제로센 / 정동교회 파이프오르간과 김란사의 꿈 / 망우묘지공원, 안창호와 유상규의 만남과 이별 / 부산기상관측소, 배 모양 건물의 비밀 / 행촌동 딜쿠샤와 권율 장군 은행나무 / 대구 청라언덕과 선교사 주택 / 양화진 외국인 묘지, 헐버트 묘비명의 비밀
8. 분단과 전쟁의 상흔
벌교 보성여관과 『태백산맥』의 상흔 / 장단역 증기기관차와 뽕나무 한 그루 / 왜관철교, 그 최후의 방어선 / 임시 수도 정부청사와 부산 야행 / 연천역 급수탑과 금강산 가는 길 / 철원 노동당사와 폐허의 역설
주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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