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도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단행본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그림, 그 사람 : 한 정신과 의사가 진단한 우리 화가 8인의 내면 풍경

추천

  • 청구기호609.1105/김25ㄱ
  • 저자명김동화 지음
  • 출판사아트북스
  • 출판년도2022년 5월
  • ISBN9788961964142
  • 가격28,000원

상세정보

보이는 ‘그림’에 드리워진, 보이진 않지만 생생하게 전달되는 ‘그 사람’을 바라본다. 20년 넘게 미술품을 수집해온 컬렉터이자 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인 저자의 본업은 정신과 의사이다. 미술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화가의 깊은 내면을 비춰내는 그림은 물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질과 생애 사건들을 작품과 함께 분석하고 구체화한다. 이중섭, 박수근, 진환, 양달석, 김영덕, 황용엽, 신학철, 서용선까지 8인의 화가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는 당시와 연관된 자료들과 연구들이 동원된다. 여기에서 영아기와 유년기의 체험, 부모와의 관계 양상과 가족사, 교육의 과정과 종교적 배경, 역경과 트라우마 등을 읽어낸다. 작품 이미지만으로 전개된 각 화가의 이야기 끝에는, 사진을 보며 일생을 다시 소개하는 연대기가 있다. 다시 살필 수 있는 부분이 눈여겨볼 만하다.

책소개

그림은 사람이다!

이중섭-박수근-진환-양달석-김영덕-황용엽-신학철-서용선

미술품 컬렉터인 현직 정신과 의사가 작성한 한국 근현대화가 8인의 그림 진단서

“그림이 나무의 결실인 열매나 꽃이라면 사람은 나무의 근원인 뿌리나 줄기다. 그러므로 그림의 양식, 내용, 미감 등의 열매나 꽃에 관해 기술하는 방식이 그림의 결과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그림을 그린 그 사람의 기질, 환경, 태도 등의 뿌리나 줄기를 탐지하는 방식은 반대로 그림의 원인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략) 그림은 화가 그 자신의 무의식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내적 심연의 반영이다.”(「머리글」에서)


정신과의사가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진단하면 어떻게 될까? 대상 화가는 이중섭(1916~56), 박수근(1914~65), 진환(1913~51), 양달석(1908~84), 김영덕(1931~2020), 황용엽(1931~), 신학철(1943~), 서용선(1951~)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이들 작고 화가와 생존 화가 8인의 작품세계를 현직 정신과 전문의가 들여다봤다. 지금까지 미술계에서 보지 못한 시각이다. 호흡도 길다. 평균 원고지 90매에서 200매 안팎의 평문이다. 각 글은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직시하되, 작품의 근원이 되는 화가의 ‘정신역동’을 통해서 작품의 의미를 추적하고 재해석한다. 정신역동은 인간 행동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무의식적인 힘을 일컫는다. 따라서 8편의 글은 정신의학적인 접근을 기본으로 화가들의 개인사와 시대사, 미술사의 맥락을 품으면서 작품의 심연을 환하게 밝힌다.


정신과의사이자 컬렉터·전시기획자·평론가인 ‘그 사람’

저자의 ‘본캐(본 캐릭터)’는 정신과의사이지만 ‘부캐(부 캐릭터)’는 20년 넘게 미술품을 수집해온 컬렉터이자 전시기획자, 미술평론집을 낸 평론가다. 이는 이 책의 평문들이 한 정신과 의사의 단순한 여기(餘技)로만 볼 수 없는, 엄정한 시각과 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 정치한 해석이 뒷받침되었음을 의미한다. 저자의 미술에 대한 내공과 전문성은 미술사 전공자를 방불케 한다. ‘부캐’가 ‘본캐’ 같다.


그동안 ‘한국 근현대미술 드로잉 미술사’라 할 작품 수장기(收藏記) 『화골(畵骨)―한 정신과 의사의 드로잉 컬렉션』(2007)과 평문을 모은 평론집 『줄탁(啐啄)』(2014)을 출간한 바 있고, 전시 <쓰리스타쑈>(2015)와 (2016)을 기획하면서 동명의 평론집(『쓰리스타쑈』, 『FROM POINT TOPENTAGON』)을 출간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자신의 드로잉 컬렉션 중 300여 점을 선별하여 소마미술관과 협업으로 <소화(素畵)―한국근현대드로잉> 전(2019)을 기획하고 작품설명을 붙인 전시도록을 펴냈다. 이들 단행본과 도록의 글들은 컬렉터이자 미술애호가로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개성적인 미술평론의 진수를 보여준다. 작품을 직접 품고,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화가들을 만나고,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를 찾는 등의 경험이 뒷받침된 작품 이해와 해석에는 미술과 미술평문 읽기의 즐거움이 함께한다. 그리고 저자의 전문성은 국공립미술관 기획전에서 화가에 관한 글을 요청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정신의학적인 관점과 미술사적인 관점을 겸비한 만큼, 저자에게는 기존의 평론가나 미술사가의 접근을 왜소하게 하는 저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이 책은 이런 강점이 발휘된 사유의 진수성찬이다. 저자의 글쓰기만큼 우리 미술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갈무리한 8편의 글 가운데 6편은 기존의 평문을 가다듬었고, 2편은 미발표 평문(박수근, 진환)이다.


뿌리(사람)를 통해 본 꽃(그림)

책의 방향은 제목에 압축되어 있다. ‘그림, 그 사람’이라 함은 ‘그림’은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이고, 사람(화가)을 통해 그림을 본다는 뜻이다. 저자는 그림과 화가의 관계는 인과적 필연성에 근거한다며, 결과인 ‘그림이 꽃’이라면 원인인 ‘사람은 꽃의 근원인 뿌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각 화가의 “영아기와 유년기의 체험들, 부모의 관계양상 및 전반적인 가족사, 교육의 과정과 종교적 배경, 개인사적 역경과 트라우마, 이들과 인과적으로 연결되는 예술세계의 형성과정 등을 살피면서 화가들의 정신역동과 작품세계”(「머리글」에서)에 밀착한다. 즉 저자는 화가의 무의식과 일체가 된 내적 심연의 반영체로서 그림에 대한 것 이상으로, 화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구체화하는 쪽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림은 과거의 어디에서 출발해 지금의 여기에 도달하게 된 것일까? 그림도 무언가의 귀결이라면 거기에는 그 귀결의 연유가 되는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림은 사람의 드러남이고 사람은 그림의 비롯됨이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실재—사람—와 표상—그림—의 관계가 된다. ‘그림’이라는 것이 물감과 화포가 만나 어우러진 물적 결정체 그 이상의 고유하고 독특한 정신의 산물이라면, 그림을 그린 바로 ‘그 사람’이야말로 정확히 그 결과물의 연원이 되는 ‘어떤 것’에 해당하며,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그 사람의 어떠함을 확인해 나가는 미지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머리글」에서)


저자는 그림의 원인에 초점을 맞춰서 8인 화가의 작품세계를 탐사하며 기존의 평문에서 볼 수 없던 득의의 결실을 끌어낸다. 본래 화가의 내면세계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어서, 이해의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는 타인이 개척한 길을 따라가지 않고 정신분석이라는 랜턴을 들고 스스로 길을 낸다.


“화가의 정신적 문제에 접근하는 순서를 설정함에 있어, 우선 발병 전후의 시기를 먼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발병 전까지 현실의 갈등과 자아의 방어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서로 평형을 이루다가, 즉 자아가 현실의 갈등을 최대치까지 감내하다가, 마침내 현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의 시점에 이르러 그 당자의 특이적 취약성(specific vulnerability)을 타격하는 직접적 촉발인(precipitant)에 의해 일어난 자아붕괴적 징후나 현상을 일러 우리는 증상(symptom) 혹은 정신병리(psychopathology)라 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증상과 유발인자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바로 그 사람에게 가장 결정적으로 취약한(vulnerable) 문제가 무엇인가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첩경이자 왕도인 것이다.”(20-21쪽)


책은 전체를 1,2부(部)로 구성하여, 각 부에는 4개의 장(章)을 배치하였다. 각 화가가 하나의 장이 되는데, 장 뒤에는 해당 화가의 일생을 옛 사진과 현재 사진으로 편집한 ‘사진으로 본 ○○○’을 배치하여서 재미와 의미를 높였다.


결핍과 억압이 쏘아 올린 그림들

‘1부. 시대의 봄을 꿈꾸다’는 “일제강점기 타율적 근대화의 체험을 공유하면서 그로부터 해방 이후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성실한 작업을 진행”(「머리글」에서)한 화가들이다. 내면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경우로, 이중섭, 박수근, 진환, 양달석이 대상인데, 모두 작고 화가이다.


이중섭이 간절히 그리워한 대상은 아내 너머 어머니 //이중섭은 기존의 시각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그동안 이중섭이 그리워한 대상은 6·25전쟁으로 생이별한 아내와 아이들이었다는 시각이었다. “결국 화가의 발병에 가장 결정적인 인자로 작용한 것은 가족, 특히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대상인 아내와의 이별과 그녀와의 향후 재회에 대한 가능성이 전적으로 좌절된 때문이었다.”(31쪽) 저자는 발병의 인자가 이것뿐일까 라며 의문을 품은 뒤, 그 밑바탕에는 어머니를 향한 근원적인 그리움이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먼저 이중섭의 가족사와 생애 등을 일별하면서 정신분석적인 기재를 적용한다. 그리고 이중섭에게 결핍된 요소로서 사랑의 원형인 어머니를 찾아낸다. “요컨대 이중섭의 비극은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 즉 대상 상실에 대한 두려움(separation anxiety, fear of loss of object)’에 대해 남다른 취약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연유했고, 이것이 바로 그의 정신적 문제의 근원이자 핵심이었다. 사랑하는 대상의 원형(archetype)은 바로 누구에게나 자신의 일차적 양육자(primary care giver)인 어머니다. 그렇다면 그의 비극의 근원에는 어머니와의 관계의 문제가 아내와의 문제 이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을 공산이 매우 크다.”(31-32쪽) 이중섭의 정신질환이 발병할 당시, 어머니는 북에 있어서 만날 수 없었고, 일본으로 간 아내는 어머니의 유일한 대체자였다.


205매의 긴 글임에도 이중섭의 심리를 분석하고 증명하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흥미를 돋운다.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심리 분석과 작품 해석의 밀도를 높인다. 특히 저자는 이중섭의 삶을 추동한 무의식적인 핵심역동이 인생 역정과 작품들 속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깊이 들여다본다. 여기서 작품의 ‘원형구도’에 대한 해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아내와 나아가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조형적인 처방이 원형구도임을 읽어내고, 이는 결핍으로 인한 불완전한 자신을 완전하게 복원하려는 도저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적시한다.


“이중섭은 군동화를 포함하는 상당수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같은 원형구도를 즐겨 차용하고 있는데, 「세 사람」은 그의 현존 작품 중 이러한 원형구도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최초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세 명의 인물은 각각 분열된(splitted) 자기표상의 상징으로 보이며, 이 자기표상은 어머니를 상실한 고아의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자기표상을 서로 연결된 원형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결국 훼손된 자기표상을 완전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내적 열망의 투사인 것이다.”(52쪽)


이중섭에게 아내는 어머니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중섭이 죽음을 앞둔 심리적 퇴행 상태에서 아내보다 더 간절히 원했던 사람은 근원적인 모성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1956년 9월 6일)과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만날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에 목 놓아 우는, 어찌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작품 「소년」 속에 등장하는—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중략)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사랑이자 전부였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것이다. 결국, 생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 도달한 궁극적 원망(願望, wish)은 그의 핵심역동이었던 어머니와의 결합, 즉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었다.”(71쪽)


기독교적 존재론으로 본 박수근의 나무와 돌 // 정신역동을 통해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는 박수근 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수근의 타고난 기질과 생애를 살피면서, 무의식과 의식에 반영된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찾아내고 그것의 동향을 추적하며 그림을 읽는다.(이 과정에서 ‘겹’, ‘막’, ‘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톺아본 박수근 회화의 미학적 핵심도 주목된다.)


“HTP 검사를 통해 밝혀진 박수근 나무 그림의 특징은 작품 표면에서 드러나는 단조롭고, 차분하고, 은은하고, 메마른 ‘함묵’의 화면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강렬한 생명력, 타오르는 야망, 풍부한 감수성, 적극적 목표 지향성 등의 ‘절규’로 나타나고 있다. 처해진 상황을 그저 참고 견디면서 아무리 표면의 ‘함묵’으로 내면의 ‘절규’를 지우려 애써도, 무의식적인 내면에 잠재된 강렬한 감정의 에너지는 자신이 그린 나무의 형상과 패턴을 통해 고스란히 그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야 만다.”(106-107쪽)


그리고 박수근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에 착목하여 그림이 기독교적인 상징 요소와 어떻게 연결되고, 그 심층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단한다. 특히 박수근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나무’와 마티에르로 표현된 ‘돌’에 깃든 기독교적인 영성을, 성경을 참조하며 찾아낸다. 그 결과, 나목으로 대표되는 나무에서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을 추출한다.


“박수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는 일견 천상의 표징이나 종교적 상징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평범한 일상의 도상처럼 보이지만, 그 헐벗은 겨울의 나목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사람의 몸을 입고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마치 나무가 자신의 영광스런 이파리를 바닥에 다 떨군 채 쓸쓸히 서 있는 모습처럼, 가장 낮고 초라한 모습으로 잠잠히 십자가에 못 박힌—그리스도의 케노시스(κενοσις), 자기 비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132쪽)


다음으로 나무와 짝을 이루는 돌에서도 예수의 굳건한 성품을 확인한다.


“박수근이 감명을 받았던 돌의 원형은 경주 등 우리나라 각지에서 마주쳤던 고색창연한 석물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변함없이 영원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돌과 같은 성품을 그려내고자 하는 심정을 품고 있었다. 장차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언약을 부동하는 바위 표면의 질감으로 표현한 독특한 박수근의 회화 형식은 내용에 있어서의 나목의 형상과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135쪽)


박수근은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펼쳐진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면한 무수한 어려움을 억압이라는 방어기제 하나로 시종일관 대응해 나갔다.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인내, 그 진짜 인내를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맡겨진 고난을 오래 참고 견딜 수 있었다.”(138쪽) 그것은 작품으로 숙성되었다. 요컨대 나무와 돌은 형상과 질감으로 표현한 그리스도의 인격이었다.


“그가 즐겨 그렸던 앙상한 겨울나무의 형상과 비바람에 씻긴 바위의 질감은 이제 영원한 박수근 예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것은 나무와 돌의 형상과 질감으로 표상된 그리스도의 인격을 그대로 닮고자 했던 그의 선하고 진실한 의지와 밀레와 같은 화가 되기를 소원했던 어린 시절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응답이었다.”(138쪽)


기독교적 존재론의 관점은 진환의 작품에도 적용된다. 진환은 ‘소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작품의 대부분이 소 그림이거나 소 관련 그림일 정도다. 요절하는 바람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생전에도 소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이중섭이 ‘소의 화가’로 유명하나 그 전에 진환의 소가 있었다. 더욱이 진환의 소는 날개가 달린, 초현실적인 소여서 더 관심을 끈다. 저자는 이 소에서 기독교적인 흔적을 발굴한다. 진환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근거는 없지만, 그가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을 높여준다.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도상을 조망한다면, ‘소 복합체’, ‘날개와 연기’, ‘새 복합체’ 이상의 삼자를 복음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인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영화(glorification)’에 각각 대응해 볼 수 있다. (중략) 이처럼 그의 회화는 존재(소/새)와 매개(날개와 연기/물과 바람), 시간(과거/현재/미래)과 공간(땅/천지간/하늘)이 하나의 통합적 서사 구조로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완벽하게 교직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170-171쪽)


다음은 소와 목동의 화가로 통하는 양달석이다. 부모의 부재와 학대라는 어린 시절의 불우한 성장환경, 사회적인 억압이나 차별에 따른 결핍과 그것에 대한 대응 등을 통해 그림의 심층에 다가간다. 그 결과, 화가가 부모의 대체물인 ‘소’와 어린 시절의 자신을 투영한 ‘목동’, 그리고 자신이 갈망하던 평화로운 ‘자연경’으로 어떻게 자신의 유토피아를 구축했는지를 밝혀준다.


“양달석 회화에 드리워진 독특한 정조의 기원은 영아기 발달과정에서 부모의 부재와 고통스런 유년기 체험, 이로 인한 의존욕구의 좌절을 보상해줄 수 있는 대상표상(object representation)으로서의 듬직한 ‘소’ 이미지, 그리고 마침내 그 소를 통해 자신의 고난과 불행을 보상받게 되는 자기표상으로서의 천진한 ‘목동’ 이미지 등과 깊이 연관되는데, 이 양자는 화가의 고유한 개인력상의 체험이 응축된 일련의 상징표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소와 목동이 놓인 평화로운 ‘자연경’ 이미지는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소망하고 희구했던 화가 자신의 유토피아 지향의 심리적 일단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기에, 화가의 회화작업은 목동(자기)과 소(대상)가 자연경(세계)을 배경으로 일련의 역동적 원망성취(願望成就, wish fulfillment)를 펼쳐나가는 심리 서사의 탁월한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234쪽)


시대에 상처 입은 화가들의 절규

1부가 상대적으로 화가의 내면에 기울어져 있다면, 2부는 보다 시대와 맞물려 있다. ‘2부. 시대의 상처를 그리다’는 “우리 역사의 근·현대가 교차하는 혼돈의 과도기에 출생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랑에 온몸을 부대끼며 장구한 세월에 걸친 작업을 견지”한 화가들로, 작고한 김영덕 외에 현역인 황용엽, 신학철, 서용선이 대상이다. 여기에는 2편의 구술(口述)이 들어 있다. 1931년생인 김영덕과 황용엽의 파란 많은 인생사가 육성으로 펼쳐진다. 각 100여 매의 구술은 화가들의 신산한 삶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들의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림이 그 사람’인 이유는 이 구술에서 한층 명확해진다. 물론 구술을 건너뛰고 작품세계를 분석한 글을 읽어도 된다. 하지만 구술을 접하고 작품세계에 들어가면 감동이 배가 된다. 작품 이해에서 화가는 아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저자는 김영덕을 ‘민중미술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1980년대의 민중미술 화가들의 명단에는 없는 이름이어서 이런 평가가 낯설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과정은 ‘왜 그를 민중미술의 선구자라고 하지?’라는 의문을 품고 따라가는 일이 된다. 극심한 가난과 죄익으로 몰렸던 유년기, 좌절과 공포를 체험했던 청소년기의 경험과 참여적인 연작과의 연결고리를 살펴보고, 냉철한 현실인식에 기반한 리얼리즘과 서정성에 근거한 초현실적인 낭만주의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반된 경향의 연원도 고찰한다. 그리고 1960년대 전후부터 보여준 민중미술 계열의 선구적인 작업들을 통해 ‘김영덕=민중미술의 선구자’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한다.


“화가 특유의 내용적 요소는 선배인 김경의 영향을 계승, 반영하면서도 이후에 출현하는 민중미술의 맹아를 보여주는 작업들—김경인(金京仁, 1941~), 권순철(權純哲, 1944~) 등—이나 민중미술 작업들—‘현실과발언’, ‘임술년’ 등—의 근원을 암시하고 있다.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던 민중의식이나 정치적 표현이 그 이전부터 벌써 자신의 작업 속에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한 시대 앞서서 활동했기에 그룹을 통한 미술운동으로 진행되지 못했을 뿐, 실제 내용적 성과에 있어서는 그의 작업에 대한 민중미술 이전 단계에서의 미술사적 평가가 매우 긴요할 것으로 판단된다.”(289쪽)


황용엽은 평생 ‘인간’이라는 주제를 천착하며, 이지러지고 왜곡된 인간형상을 빚어왔다. 특유의 ‘인간’ 시리즈는 단순한 조형적인 실험의 결실이 아니라 화가의 드라마틱한 생에 뿌리박은 조형적인 결정체였다.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직면한 친모와 유모라는 양육자의 분열상, 십대중반까지의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 해방과 김일성 정권의 사상적 세뇌교육, 월남과 6·25전쟁의 참전 경험 같은 강렬한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마주친 인간의 처절한 실존에 대한 고뇌와 인간 이해가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 그의 ‘인간’ 시리즈다. 이는 화가의 구술을 통해서 오롯이 확인된다. 신산한 전쟁 경험과 자신의 트라우마 극복에 대한 조형적 대응으로, 평생 작업을 일관되게 심화시켜 왔다. 화가의 체험에 기반한 조형언어이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울림이 크다는 점에서 ‘인간’ 시리즈는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가 직면한 고통의 결과물은 정신적 외상(psychic trauma)의 양상으로 화면 속에서 드러나는데, 이 정신적 외상의 조형적 발현은 그가 제작하는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형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재난 현장에서 구조 된 사람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회화적 표현이라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다.”(327쪽)


그리고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진단한다.


“고통스런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는 모습이 외적으로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피학적 양상—불쾌—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그 제작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을 긍정적으로 통합해 나가는 과정—쾌락—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오랜 세월에 걸친 작품의 제작을 통해, 화가는 가족들과의 헤어짐에서 오는 심정적 고통과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쟁 체험에서 유래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갈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유토피아적 세계로 회귀하고자 하는 부정의 방어기제 이상으로 그 자신의 뿌리 깊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절묘하게 효율적인 방어의 형식이 바로 반복강박이었던 것이다.”(334쪽)


황용엽의 작품이 시대의 패악질에 상처 입은 개인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신학철은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에 껴안고 있다. 모더니스트로 출발한 신학철은 1970년대 후반부터는 현실을 바꾸는 도구로서 미술에 관심을 두고,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개종했다. 1982년에 가진 첫 개인전에서 ‘순수’ 대신 ‘현실’을 장착한 작품으로, 그는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부상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는 현실과 역사를 다루었지만, 그가 다른 민중미술 화가보다도 미술적으로 탁월한 평가를 받게 되는 저류에는 이른바 형식미의 문제가 크게 작용 하고 있다”며,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으며 만들었던 그 자율적 형식의 세계가 그 현실적 내용의 전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388쪽)고 역설한다. 사실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교직하면서 쌓아올린 「한국근대사」 연작의 수직적·압축적 구성은 1970년대 모더니스트로서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현실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의 모더니즘에 대한 과감한 도입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머리글」에서)며,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나는 신학철이 더 이상 현실 진영에서 대(對)사회적 역할과 발언만을 지속 하는 화가로 남기를 원치 않는다. 그 자신의 미적 이상을 자유롭게 구가하는 예술가로 남은 생을 보내는 것이 이제 그에게 남은 온당한 몫이라 생각한다. 그 키(key)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나는 리얼리스트 이상으로 모더니스트로서의 풍부한 자산을 갖추고 있는 또 다른 신학철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388쪽)


서용선은 역사적인 인물과 도시인의 초상으로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구현해왔다. ‘단종’을 모델로 한 연작과 풍요로운 현대를 살아가는 상처 입은 ‘도시인’의 초상은 모두 시차를 넘어서 ‘소외’와 ‘단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해의 단서를 화가의 진술과 메모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서용선의 작품은 시대와 불화했던 아버지가 메타포였고, 작업은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일종의 정신내적 과정(intrapsychic process)으로 풀이한다.


“화가는 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답답해하고 일면 부정하면서도, 종국에는 아버지의 삶의 흐름과 가치관을 수용하며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과정—아버지=도시인=단종=철암=나=도시인을 그리는 화가=사육신 및 김시습=철암 프로젝트 참여자—을 밟아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 식으로 이야기하면, 양가적 갈등 속에서도 결국은 아버지를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심리적 기저에는 모든 사람의 초자아 형성과정이 그러하듯,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된 거세불안이 개입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근대(소외와 단절)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마침내 화가가 선택한 것은, 실러가 ‘문화로 인해 야기된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파한 예술, 즉 화업(畵業)이었다.”(432쪽)


사진으로 본 화가들의 발자취

‘사진으로 본 ○○○’은 이 책의 별미이다. 화가에 관한 글을 읽기 전에 이 사진첩부터 보며 워밍업해도 좋고, 반대로 화가에 관한 글을 읽고 그 여운을 곱씹으며 사진첩을 봐도 된다. 이 사진첩은 먼저 작가에 관한 약력부터 요령 있게 소개한 뒤, 각 사진을 연대기 순서로 편집했다. 사진에는 저자가 발품을 팔아서 현장을 확인하고, 촬영하고, 조사한 자료와 정보가 자세하다. 옛사진과 현재의 사진이 흥미를 더한다. 이중섭이 머물렀던 부산,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의 현장과 박수근의 자취, 진환의 고향, 신학철의 문제작 「모내기」의 모델이 되었던 사진들 등 보고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이를 바탕으로, 각 화가의 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답사 길라잡이로 활용해도 될 만큼 정보의 정확도가 높다. 이들 사진첩은 본문을 보충하며 확장한다.


지은이 | 김동화

의학박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도한방병원(구 한도정신병원) 진료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기독정신과의사회 정회원이며 「종교적 회심경험과 자기애성 인격성향 사이의 상관관계」(1999, 연세대학교), 「소의 뇌 미세혈관 내피세포의 일차배양에서 과산화수소에 의한 치밀이음부 단백질의 변화」(2004, 연세대학교)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한국의 근·현대기 문화 전반과 이 시기의 한국미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근·현대기 작가들의 드로잉 수집을 통해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구현해 내고자 하는 거시적 기획하에, 약 20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오직 한 분야만의 컬렉션을 일관되게 구축해 왔다. 그 과정에서 『화골(畵骨)-한 정신과 의사의 드로잉 컬렉션』(2007)이라는 수장기(收藏記) 형식의 책을 출간했고, 전체 컬렉션 중 200여 작가의 드로잉 300여 점을 선별, 소마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소화(素畵)-한국근현대드로잉' 전(2019)을 기획하고 전시 도록을 펴내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국·공립미술관 및 여러 화랑의 기획전시에 다수의 평문을 기고하면서 이들 원고를 모아 미술평론집 『줄탁(啐啄)』(2014)을 출간했고, 인디프레스의 전시 '쓰리스타쑈'(2015)와 'FROM POINT TOPENTAGON'(2016)을 기획하면서 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평문집 2권을 함께 펴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집』(2016, 2017)에는 한국 근대미술사 관련 논문들을 여러 편 기고했다.


목차

머리글


1부. 시대의 봄을 꿈꾸다

이중섭/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그 뿌리 깊은 두려움

박수근/ 인고의 겨울나무와 비바람을 이긴 돌

진 환/ 기독교의 존재론적 관점으로 본 회화

양달석/ 낙원을 꿈꾸는 소와 목동


2부. 시대의 상처를 그리다

김영덕/ 민중미술의 선구자, 그 새로운 자리매김

황용엽/ 인생의 험산에서 체득한 ‘인간’ 이야기

신학철/ 다시 모더니스트, 신학철

서용선/ 시대에서 소외된 ‘아버지’라는 섬


찾아보기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