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품에 관한 평가를 정치적 키워드로만 해석해온 1세대 민중미술가 임옥상과 민중미술을 다시 해석한다. 민중미술•미술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자, 책의 물리적 구성부터 다시점•다성성으로 보기를 제안한다. 작가 임옥상을 보는 주요 관점으로, 작업에 지속해서 등장한 자전적 모티브인 땅과 원소 모티브를 이용한 발언과 서사를 자세히 읽는다.
책소개
『한국 땅에서 예술하기: 임옥상 보는 법』은 한국의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고착화되는 메커니즘을 분석⋅비판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보기 방법’(Ways of Seeing)을 제안한다.
고착화된 시선을 벗어던지고 다시 보는 한국의 미술
“민중미술가는 명예인가, 족쇄인가”
『한국 땅에서 예술하기: 임옥상 보는 법』은 한국의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고착화되는 메커니즘을 분석⋅비판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보기 방법’(Ways of Seeing)을 제안한다. 저자 박소양은 그 방법론으로서 한국의 1970~80년대 민중미술가로 활동해온 ‘시대를 정의한’ 작가 임옥상을 조명한다.
‘자유’ ‘혁명’ ‘해방’ 등의 정치적 키워드로만 해석되어온 한국 고유의 미술학파인 ‘민중미술’은 정치적 프레임에 의해 규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레임 이상의 언어로 기술되지조차 못했다. 사실 1세대 민중미술가인 임옥상이 평생에 걸쳐 말해온 바는 바로 모든 것의 근간으로서의 ‘땅’이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인위적인 국경을 넘어 대토지를 공유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까지 닿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초의 환경 시민단체가 1993년에 이르러서야 발족되었을 만큼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작품 속에 담긴 생태적 세계관은 ‘미래적’이었다. 2022년에 이른 지금, 저자 박소양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시선을 재고한다.
코즈모폴리터니즘 민중미술
1세대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그림에는 ‘땅’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땅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두 발을 딛고 살아내는 삶의 터전이자 상호 관계성의 근간이다. 최근 살갗으로 느껴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인간과 땅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고 자연을 변형시키는 관계성이 심화되면서 땅과 인간의 관계는 어느덧 일방적인 착취에 가까워졌다. 임옥상이 그린 상처 난 땅, 파헤쳐진 땅, 빨간 웅덩이가 고인 땅 등의 이미지는 이러한 암시를 불러일으킨다.
“땅은 만물의 뿌리·근본이지만, 무분별한 도시화가 이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약화시켰고,
성장 중독에 빠진 우리 사회는 땅의 내재성·생명력·반작용을 망각하고 있다.
유사한 방식으로, 이러한 성장 중독의 사회는 노동자・농민같이
사회 기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객체화시켰고, 그들의 가치를 망각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상실시킨다”_85쪽.
일방적 착취의 기제는 ‘성장’이었다. 임옥상은 성장이라는 면죄부 아래 사회가 외면하고 소외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땅의 원소적 모티브인 ‘흙’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비단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은 자본의 논리, 능력주의라는 전가의 보도 아래 이름만 달리한 ‘성장’의 변주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중이다. 임옥상의 생태적 세계관은 민중운동 시대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임옥상의 작품 안에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도리로서 토지를 바라보는 코즈모폴리터니즘적 사상이 담겨 있다.
“우리 [세계인 모두]는 ‘지구’라는 땅덩어리 [즉 거대한 흙덩어리]에 같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우리의 연결성이고 동등성인데 우리는 주로 다른 관점으로 세계[인들의] 관계를 바라보잖아요.
민족·국가·권력의 역학 관계, 권력의 지형 지도 등과 같은 관점이 우리의 관계성을
분절해서 바라보게 하고요. 다 내려놓고 보면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 모두가 ‘대지’ 위에 살고 있다는 점이에요”(임옥상)_205쪽
민중미술에 대한 오해:
인본주의에 대한 억압과 오리엔탈리즘
한국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디도 아닌 다름 아닌 ‘이 땅’이어야만 가능한 가치를 발견하고 발명해내는 것이다. 1970~80년대 고속 성장 시기의 대한민국은 국가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과정을 수반했다. 이러한 시기에 이를 비판한 민중미술은 ‘반개발주의’ ‘반산업주의’, 실효성 없는 ‘향토주의’ ‘낭만주의’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민중미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멈춰 서서 현상을 직시하고 대안을 내놓는 ‘반성’(critical reflection)이었다.
“인간의 고통, 인간적 필요, 자연의 고통, 생태적 파괴”(150쪽)를 우려하는 민중미술가들의 목소리는 한시라도 빨리 성장을 이룩해야만 하는 당국의 검열 대상이 되었고, 현대에도 여전히 근대화의 주역인 서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정세와 맞물리면서 하나의 지론이 되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다.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
이 모든 메시지를 위한 “조용한 목격자”로서의 땅, 즉 ‘흙’은 임옥상 작업의 궁극적 재료가 되기에 이른다. 1970~80년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적인 시기를 살아낸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예술 세계는 그동안 정치적 자유와 혁명이라는 틀거지 안에서 규정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가 임옥상이라는 작가에게서 취사선택한 키워드에 불과했다. 주어진 틀 바깥에서 사유할 때, 즉 우리가 ‘보는 법’을 달리할 때 세상의 장막은 걷힌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했듯 언어에 앞선 관찰, 즉 보기 방식에 대한 질문은 곧 세계에 대한 질문이자 새로운 세계를 여는 포문이 될 것이다.
“임옥상은 발언의 미술가이지 형식의 미술가가 아니다.
직업병처럼 독립적인 시각적 체계(visual system), 시각 공식(visual formula),
혹은 의미 있는 형태(significant form)를 찾는 미술평론가들에게
임옥상은 영원한 난제(conundrum)다”_157쪽
작가 | 임옥상 (Oksang Lim, 1950~ )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 및 프랑스 알굴렘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미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최근 갤러리 나우 ‘나는 나무다’전(2021)까지 24회의 개인전을 포함해 수백 회의 그룹전을 열었다. 그밖에 청계천 ‘전태일거리’, 난지하늘공원 「하늘을 담는 그릇」 등 다양한 공공미술 활동을 하고 있다.
임옥상은 작업을 통해 스스로 혁명가가 되었으며 그 표현 중심에는 ‘흙’이 있다. 흙을 통해 땅의 실체와 인간의 실존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캔버스 삼아 대지에 붓으로 자유를 혁명하는 것이다.
가나미술상(1992), 토탈미술상(1993), 국토대전 대통령상(2019) 등을 수상했고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광주비엔날레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벽 없는 미술관』 『누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 않으랴』 등이 있다.
지은이 | 박소양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학사학위를 받은 후 1997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1999년 런던대학 골드스미스칼리지에서 20세기 미술문화사 석사를 마쳤다. 2004년 동대학에서 한국의 아방가르드 예술과 문화 운동(80년대와 90년대의 민중 예술과 문화)에 관한 연구로 20세기 역사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개의 포닥 펠로십(postdoctoral fellowship)을 수상하는데, 2005년 1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주니어 연구 펠로우(junior research fellow)로 선출되어 집필과 강의 연구를 진행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사회를 위한 예술’(Center for the arts in society)과 인문학 연구소(Humanities Center)에서 포닥 펠로우로 활동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예술디자인대학(Ontario College of Art and Design University)의 인문과학대 및 대학원 부교수다. 미술기자·큐레이터·사회 활동가·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세기 미술사와 이론, 시각 문화, 문화사, 비판 이론, 현대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를 연구한다.
목차
다성성과 다시점 보기를 위한 미술 비평 | 프롤로그
낯선 긴장이 느껴지는 상징성 가득한 이미지
1 보는 방법의 탈식민지화
2
3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재를 추구하다
4
5 의미 있는 형식에 대하여 | 임옥상 작가와의 인터뷰
6
7 임옥상 예술하기 | 작가의 말
8
내 평생의 화두는 ‘다른 보기 방법’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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