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표구•프레임을 그림에 종속되거나, 혹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본다. 하지만 표구는 작품의 안과 바깥의 경계에서 작품 구성에 직접 관여한다.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시각이다. 구술 채록 프로젝트를 계기로 서술된 내용은, 표구•표구업의 역사를 넘어 제도적 성숙 이전의 한국 미술시장과 취향의 사회사를 동시에 들려준다.
책소개
표구(족자, 병풍, 액자)를 그림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시각을 향한 이의 제기!
이 책은 미술사에서 배제되어온 프레임의 존재를 환기한다. 우리는 흔히 ‘표구’를 그림에 종속된 존재, 혹은 그림과 별개의 것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표구는 작품의 안과 바깥 사이 경계에 위치하며, 작품의 구성에 관여한다. 그림과 프레임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주종이 명확한 관계에서 벗어나 표구까지 포함한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표구사, 미술사학자, 보존과학자의 만남!
이 책의 시작은 2021년 이른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서화사의 경영자로서 1970-80년대 한국 표구의 전성기를 가장 가까이서 체험했으며, 전통문화의 거리를 주도하며 인사동의 르네상스를 이끌기도 했던 이기웅(현재 학교법인 보영학원 이사장)의 구술채록 프로젝트가 그 계기였다. 동양화를 중심으로 전통 담론의 탄생과 변화에 관한 연구를 펼치고 있는 미술사학자 김경연(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 책임연구원)과, 표구사를 계승하고 있지만 ‘보존과학’이라는 확장된 영역에서 활약하는 김미나(국립현대미술관 지류 작품 보존 담당 학예사)가 프로젝트에 합류하며 책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증언과 구술로 만나는 뜻밖의 미술사!
‘구술’을 바탕으로 서술된 이 책은 이전의 문헌 기록에서는 담지 못했던 영역을 보여준다. 구술은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기억을 끄집어냄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기록이 가능하게 한다. 이기웅처럼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무대 뒤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인터뷰어 김경연이 “나의 미술사 공부가 놓쳐왔던 부분”이라고 말했듯 이기웅의 구술은 지금까지 미술사 서술에서 누락되어 온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억이자, 제도적으로 성숙되기 이전의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가 들려준 표구업 이야기는 ‘표구의 역사’를 넘어 미술시장과 그 속에 숨어 있던 ‘취향의 사회사’를 알려준다. 이 책의 제목이 『표구의 사회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 이 책은 이기웅의 증언을 골자로 20세기 후반기 한국 표구와 표구사(表具師), 표구업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러기 위해 먼저 1장에서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펼쳐진 표구의 유래와 서로 다른 용어 사용에 대해 개괄한다. 아울러 조선 후기 경제 발전과 도시문화의 발달에 따른 미술시장의 성장을 광통교 서화사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2장은 일제강점 이후 전통적인 미술 시스템이 와해되고 새로이 서구의 근대 미술제도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신문명의 하나로 표구가 유입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해강 김규진의 ‘고금서화관’을 통해 20세기 전반기 표구점이란 단순히 서화의 표구를 담당하는 곳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서화를 상품으로서 판매하는 장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식민지 조선에서 표구점을 개업했던 일본인 표구사와 그들에게 기술을 배웠던 1세대 조선인 표구사에 대해서 살펴보고 조선인 표구사가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인사동에 표구 거리를 형성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장과 2장이 1970년대 이전의 표구 역사를 문헌 기록, 특히 신문과 잡지의 표구 관련 기사를 통해 구성하였다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메인이 되는 3장은 이기웅 의 구술을 뼈대로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표구업의 궤적을 정리했다. 일본으로 족자를 수출하는 사업을 비롯하여 1970년대 한국의 수출용 미술품 제작과 판매 구조, 인사동 제도권 밖에서 수련받고 활동한 상업 화가의 존재가 언급된다. 아울러 가옥 구조의 현대화에 따라 족자와 병풍에서 액자로 유행이 이동하면서 생겨난 다양한 액자의 형태와 취향 등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않았던 낯선 인사동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서울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1980년대 후반 이후 인사동이 지금처럼 ‘차 없는 거리’가 되고 전통문화의 거리로 활기를 띠게 되는 모습이 생생한 구술을 통해 복원된다.
마지막으로 4장은 현재 보존과학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미나가 실제 표구 제작에서 사용하는 재료와 도구, 제작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표구에 관한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 사진과 함께 설명한다.
지은이 | 김경연
홍익대학교와 명지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근현대 한국 미술에서 전통 담론의 탄생과 변화를 한국화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현재 이응노미술관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이동훈 평전』(열화당, 2012), 공저로 『비평으로 보는 현대한국미술』(메디치미디어, 2022, 근간)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1970년대 한국현대동양화 추상 연구」, 「‘보편회화’ 지향의 역사-20세기 전반 동양화 개념의 형성과 변모에대하여」, 「이응노의 1970년대 서예적 추상과 민화 문자도」 등이 있다.
지은이 | 이기웅
194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1970년부터 아주서화사를 경영하며 표구뿐만 아니라 표구용 비단을 공급하고 족자를 수출하는 사업을 펼쳤다. 아주화랑과 아주갤러리를 열어 다수의 전시를 개최했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표구화랑협회 회장(13~15대)을 역임하며 표구업자를 위한 재교육과 표구 용어의 한글화 사업을 주도했다. ‘인사·관훈동 전통문화의 마을 추진사업회’ 부회장을 맡아 인사동을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고 올림픽 개최에 기여한 공로로 올림픽기장을 수여받았다. 종로구 청소년지구육성회 선도위원을 거쳐 50여 년간의 문화 사업을 기반으로 교육 사업에 투신해 2012년부터 학교법인 보영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이 | 김미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과를 졸업하고 공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보존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지류 작품 보존 담당 학예사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물론, 공·사립미술관 보존 지원 작품까지 다수의 미술 작품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보존처리 및 이와 관련된 재료 및 보존 방안 등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
1.표구란 무엇인가
—감상과 소장의 욕망
장황(粧䌙), 장황(粧潢), 표구(表具)
2.그림, 상품이 되다
—20세기 전반기 한국의 표구
배첩장, 장황인에서 표구사로
3.혼란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1970년대 이후 한국의 표구
이기웅과 아주서화사로 본 한국 표구업의 변화와 발전
4.표구의 방법
—표구는 어떻게 하는가
연보
참고문헌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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