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여행 콘텐츠처럼 책을 통해 독자들과 현장감 있게 즐기는 분청사기 여행이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본 전시 중 흥미로운 것을 골라 묶어, 분청사기부터 이도다완 등 관계도 위에 있는 이야기들이 한국과 일본까지 포함하여 곁들여졌다. 저자가 들려주는 과거의 역사부터 현재의 전시 현장까지 편안하게 접하며 도자기의 매력에 빠져든다.
책소개
도자기 관람자를 위한 입문서, 분청사기 편
분청사기에 관한 대중을 위한 최초의 박물관 에세이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분청사기 여행》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분청사기의 매력을 재조명한 책으로, 일상이고고학 시리즈를 펴내온 황윤 작가가 박물관 덕후답게 그동안 관심 있게 관람했던 국내외 분청사기 전시를 중심으로 분청사기를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쉽고도 흥미롭게 소개한다.
이 책은 분청사기에 관한 대중을 위한 최초의 박물관 에세이로, 현재 분청사기 책으로는 1990년에 출간된 빛깔있는책들 시리즈가 한 권, 2000년에 예술 분야로 접근한 《백자 분청사기 1, 2》가 전부이고, 호림미술관 등에서 출간되는 몇몇 도록이 있을 뿐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므로 아주 귀하고 반가운 분청사기 책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1년 도자기실을 리모델링하면서 분청사기실 바로 옆에 기존에 간과해왔던 조선시대의 다양한 그릇들을 제작하는 공방을 설치했다. 또한 3층에 위치한 세계문화관을 재단장하면서 일본 전시실에 ‘무사와 다도’라는 코너를 선보이며 당시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다실을 그대로 재현하고 조선의 이도다완을 닮은 찻그릇까지 함께 전시함으로써 점차 넓어지고 대중화되는 분청사기에 대한 인식을 염두에 두었다. 그뿐 아니라 BTS의 RM이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실에서 분청사기와 달항아리를 관람한 것 역시 근래 분청사기 인지도에 촉발제 역할을 했다.
요즘 박물관 관람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고미술과 도자기 전시실은 쉽고 친화도가 높아 대중적 인기 또한 높다. 이 책은 한·중·일 박물관을 넘나들며 도자기를 관람하고 즐기도록 안내하는 도자기 입문서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세종~세조의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조선 전기 전성기 시절 문화에 대한 인식을 아름답고 친화력 있는 도자기 문화를 통해 널리 공유하는 일은 문화 선진국으로 부상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무척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분청사기에 대한 편견은 없는가
다시 살펴보는 분청사기의 미(美)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사이의 국내 3대 자기로서 당당히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뚜렷이 인식·확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거기에는 누가 사용한 그릇인가 하는 쟁점이 있었다. 《호암미술관에서 감상하는 교과서에서 배운 미술》이라는 책에 의하면 “형태와 장식을 살펴보면 청자는 귀족적이며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분청은 서민적이고 소박하고 어떠한 방식이나 규범에도 구애받지 않는 즉흥적인 형태와 문양을 사용한다.”라며 분청사기가 서민적이고 소박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 논점은 근현대 한국 미술철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의 “중국의 유적천목과 조선의 이도다완 모두 잡기로서 민중의 질그릇으로 거칠고 자연스러운 제작 방식으로 태어난 산물이지만, 천한 민기(民器)에서 비범한 아름다움을 간파한 것이야말로 초기 일본 다인들의 역량”이라 칭찬하며 자부심을 드러낸 표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유적천목과 이도다완이 중국과 한반도에서 민중이 사용한 일반 질그릇이 아니라 실제로도 찻그릇으로 사용된 도자기였다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장은 큰 모순에서 출발한 것이라 말한다. 아직 국내에 이도다완에 대한 문헌 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아쉬움 속에서 몇몇 문학 속에 언급되어 있는 당시 엘리트 조선 문인들의 차 문화를 통해 조선 차 문화와 찻그릇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며, 차후 학자들의 활발한 연구를 기대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분청사기의 초창기부터 전성기와 쇠퇴기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살펴보고, 표현기법과 개별 작품을 통해 분청사기를 바라보는 예술적인 안목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가적인 관리 시스템 및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분청사기의 위상과 역할 등을 확인하며 그동안 미진했던 분청사기의 미(美)에 대한 논의를 보다 담대히 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조선 전성기 시대를 상징하는 그릇
담백함으로 표출될 수 있었던 자부심의 깊이
분청사기는 동시대 주변국보다 남달리 번성했던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도자기로, 특히 세종~세조 시대에 가장 뛰어난 그릇이 제작되었다. 1468년 관요가 성립되어 질 높은 백자가 생산되기 전까지 조선에서 만드는 최고 도자기로서의 위치를 유지했다. 대략 1420년부터 1460년까지 약 50년이 그 시기다. 세종부터 세조 시대인 이때는 조선사를 넘어 한반도 역대 역사 중에서도 최소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문화적으로 활발하고 선진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이때 한반도에서는 한글이 탄생하였고, 4군 6진으로 영토가 크게 넓어졌으며, 법전인 경국대전을 만들고, 음악과 토지 및 여러 제도를 정리했다. 더 나아가 수많은 학자들과 관료들의 연구 성과로 과학 기술과 더불어 문학 수준도 높아졌으니, 오죽하면 중국에 위치한 명나라마저 조선의 실력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세조 시대에는 조선의 자주성도 남달라 원구단을 만들어 중국 황제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당시 조선인들은 자신보다 아래에 여진과 일본이 있다 여겼고, 두 지역을 적극 관리·통제하였기에 여진과 일본 역시 당연히 조선을 큰 나라라 생각했다. 따라서 당시 조선인들의 한반도 영역을 넘어서는 넓은 세계관과 더불어 자부심 역시 남달랐다. 바로 이 시점에 만들어진 분청사기는 당연히 조선 전기, 즉 조선 전성기 시대를 상징하는 그릇이었다. 이렇듯 동시대 중국의 백자와 비교하여 조선만의 독특한 미감과 격을 갖춘 도자기가 선보인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15세기에 구현된 모던함과 추상!
폭넓게 공감하지 못했던 분청사기의 미(美)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실에서 “한국의 분청사기”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당시 미국의 한 미술 평론가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수세기 전 점토로 빚은 그릇이 현대성을 말하다”라 언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분청사기가 이미 다 했다”라는 말처럼 분청사기의 매력에 높은 평가를 하는 해외 반응은 국내의 인식과 대비된다.
분청사기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단순히 수치상으로 보더라도 고려청자는 국보, 보물 숫자를 합쳐서 무려 80개가 넘어가고, 조선백자도 국보, 보물이 60여 개에 육박하는 반면 분청사기는 국보와 보물을 합쳐 겨우 30여 개에 불과하다. 이는 분청사기가 청자와 백자 사이의 징검다리라는 단편적인 인식, 더 나아가 그동안 분청사기만의 미감을 충분히 설명하여 설득시키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의 분청사기가 일본에서는 모모야마 시대 이래로 엄청난 가치의 도자기로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현대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으로 세계 유수의 도자기들과 차별되는 미감으로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발견하게 한다.
조선 전기 전성기는 왜 분청사기를 택했고,
일본 모모야마 시대 이후 일본의 다도인들은 왜 이도다완을 택하였나
1392년 개국한 조선은 고려의 마지막 모습을 매우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원나라의 몽골인들과 한몸처럼 기생하던 고려 귀족들의 부의 독식과 사치, 그리고 조국에 대한 배신 등으로 나라가 크게 약해지고, 틈을 노린 외적들의 침입은 끊이지 않고 백성들은 생존에 급급하여 살던 터전을 버리고 유랑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조선은 개국 후 왕실부터 검약을 강조하였고, 고려시대와 달리 가능한 담담하고 화려하지 않은 예술관을 추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유교문화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제사에서조차 분청사기로 만든 제기를 사용했다. 그렇게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만든 분청사기 제기는 제사에 사용되며 고려 말 전국토가 파괴당하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무너진 상황을 극복하도록 만든다. 즉 당시 제사는 가족주의의 회복이자 마을의 회복이며, 더 나아가 국가의 회복을 위한 행사였던 것이다.
한편 일본은 무려 150년 가까이 전쟁을 벌이며 서로를 배신하고 죽이는 일로 가득했던 전국시대를 지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국의 다이묘들은 차를 통해, 더 정확히는 엄격한 형식을 강조한 다도를 통해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전란 전에 사용하던 화려한 중국 찻그릇은 점차 담담한 미감의 분청사기로 교체되었으니, 이는 전 시대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만든 문화가 아닐까 싶다. 이에 당시 기준으로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선진국인 조선이 전란 극복 후부터 사용하던 분청사기에 점차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닐까? 저자 황윤은 이처럼 일본의 초기 다인들도 분청사기가 어떤 의미를 지닌 그릇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
지은이 | 황윤
작가. 소장 역사학자이자 박물관을 사랑하는 남자. 혼자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감상하고, 고증하고,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아름다운 자연보다 잘 짜인 박물관이 더 좋은 이유는 인간이 함께 쌓아온 지식과 문화의 총체가 담긴 공간이기 때문. 박물관의 수준이 곧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기에 우리나라에 더 근사한 박물관들이 만들어지길 고대하며 역사 교양 대중화를 위한 글을 쓴다. 저서로는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 여행》《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강원도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분청사기 여행》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2 만파식적편 》 《컬렉션으로 보는 박물관 수업》 《도자기로 본 세계사》 《박물관 보는 법》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1. 분청사기 제기
2010년 여름 호림박물관
기록 속 분청사기 제기
양산시립박물관
모두 부수어 묻게 하라
2. 분청사기 속 그림
삼성 미술관 리움
분청사기의 흐름
분청사기의 표현
물고기와 분청사기
3. 시기를 알려주는 도자기
이화여대박물관
시기가 새겨진 도자기
관청명이 새겨진 도자기
전성기 분청사기 시대
4. 분청사기를 바라보는 눈
크리스티 경매
33억 원의 경매 기록
해외 전시
일본부터 시작된 해외 팬
5. 김해가 새겨진 도자기
국립김해박물관
경상도 지역명이 새겨진 도자기
일본에서 발견된 김해 분청사기
일본의 찻그릇이 된 분청사기
6. 이도다완
이도다완은 왜?
누가 사용한 그릇인가
언제 만들어진 그릇?
만들어진 장소
7. 일본의 집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과시욕
와비와 이도다완
쓰츠이즈츠
조선과 일본, 임진왜란 이전에는 어땠나
8. 분청사기의 미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 전기의 차 문화
신숙주의《해동제국기》
9. 왜 분청사기인가
다시 만난 분청사기 제기
분청사기 미감에 대한 해석
또 다시 일본에서
에필로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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