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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부활 ― 예술생리학과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

  • 청구기호600.1/정192ㄱ
  • 저자명정낙림 지음
  • 출판사파라아카데미
  • 출판년도2024년 7월
  • ISBN9791188509782
  • 가격28,000원

상세정보

오늘날 모든 것을 예술로 포용하는 ‘예술다원주의’는 상대주의 딜레마의 늪에 빠졌다. 여기서 시작된 질문으로 확장된 예술 정신을 옹호하면서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을 찾고자 한다. 예술의 발원지로 돌아가, 니체•듀이•들뢰즈가 옹호하는 확장된 예술관을 살피고 이들의 이론을 통해 문제를 해소할 기준을 제시한다.

책소개

모든 것이 예술, 모든 인간은 예술가

오늘날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 세기 전에는 도저히 예술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것도 예술의 지위을 누린다. 돌무더기, 죽은 동물의 사체, 책 더미도 예술작품이 되며, 심지어 물질적 대상이 지속하지 않는 퍼포먼스, 물질에서 해방된 인간의 개념에 기초한 활동도 예술의 이름을 얻는다. 예술 작품을 포함한 예술활동 전체가 신체기관의 쾌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선입견도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불쾌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예술의 부분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것이 예술이다’ 또는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아방가르드의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예술지형을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예술의 지형을 가장 정직하게 설명하는 것은 ‘예술다원주의’일 것이다. 예술다원주의는 ‘이것이 예술이다’는 배타적 예술의 정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른바 ‘예술의 종말’ 선언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그러나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여 예술의 영토를 넓힌 예술다원주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예술에서 다원주의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상대주의 딜레마의 늪에 빠진 것이다. 아도르노가 지적하듯이 오늘날 예술에 대한 논의가 넘쳐나지만 ‘예술에서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만이 자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예술의 생리적 조건

예술다원주의가 표방하는 ‘확장된 예술 정신’을 옹호하면서도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할 길은 없을까? 

이 책은 예술의 발원지로 돌아가 이 문제에 도전한다. 예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어원은 아이스테시스, 즉 감각이다. 감각에서 유래하는 정서 혹은 감응을 조직하는 것이 예술활동이다. 춤과 노래가 시원적 예술양식이라는 것 역시 감각과 예술의 관계를 말해준다. 예술과 감각, 삶의 동근원성에 대해서는 예술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동의한다. 인간이 자신의 감흥을 조직하고 형상화하는 일체의 것을 예술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다원주의는 예술, 감각, 삶의 동근원성을 옹호한다. 

예술의 생리적 조건에 주목하고 자신의 예술철학을 펼친 대표적인 철학자로 니체, 듀이,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활동 시기, 철학의 배경, 철학의 목표에서 서로 다르지만, 예술을 감각과 그것의 발원지인 신체로 소급한 점에서는 일치한다. 니체의 도취, 듀이의 경험, 들뢰즈의 감각은 예술과 생리학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세 철학자는 모두 창작행위와 예술작품, 감상행위를 구분하는 근대적 태도를 거부한다. 예술의 기원이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면, 감각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조형하는 인간의 행위는 모두 예술의 지위를 가져야 마땅하다. 동시에 이들은 인간의 예술적 행위와 그 결과물을 평가하는 기준도 존재한다고 본다. ‘힘에의 의지’, ‘하나의 경험’ 그리고 ‘구성된 감각’이 바로 그것이다. 

니체, 듀이, 들뢰즈는 감각적 힘을 발휘하여 세계를 조형하는 일체의 행위를 예술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다원주의의 확장된 예술관을 옹호한다. 동시에 이들의 이론은 예술다원주의가 봉착한 상대주의의 문제를 해소할 기준도 제시한다. 따라서 세 철학자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복잡한 예술지형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즉 세 철학자의 이론은 현대미술, 현대음악, 현대무용, 매체예술까지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헤겔, 니체, 벤야민, 단토를 중심으로 예술의 자명성 상실과 예술의 종말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논의를 살펴본다. 헤겔은 예술철학사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예술의 정신사적 역할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니체 역시 오랜 세월 예술의 종말에 대해 천착했는데 헤겔과 달리 종말의 예술을 ‘데카당스’적 예술로 보았다.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로 대표되는 대량복제 시대에서는 예술의 전통적 가치와 정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선언한다. 


2부에서는 예술을 인간의 생리학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니체, 듀이, 들뢰즈의 예술철학을 살펴본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예술이 인간 삶의 근원적 조건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인간의 신체적 정동이 어떻게 창작의 욕망으로 승화되고 창작 행위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생리적 조건이 예술활동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과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도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예술생리학의 이념이 우리시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미술, 음악, 무용, 디지털매체 등에서 추적한다.


[책 속으로]

 예술, 종교, 철학은 절대이념을 인식하는 절대정신의 형태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즉 예술은 절대이념을 감각으로 직관(Anschauung)하고, 종교는 내면으로 표상(Vorstellung)하며, 철학은 개념으로 사유(Denken)한다. 헤겔은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절대정신의 형식들 사이에서도 변증법적 이행의 관계가 작동한다고 본다. 즉 감각적 직관 방식보다는 표상이, 표상보다는 사유가 절대이념을 보다 더 충전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이념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예술, 종교, 철학의 위계는 분명하다. 이러한 헤겔의 생각은 《미학강의》에 그대로 유지된다.  ̄ 37쪽


니체가 그리스의 예술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삶과 세계의 정당화를 위한 것, 즉 종교나 형이상학을 대신하는 것이다. 초기 니체가 그리스의 예술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본 점은 헤겔과 매우 유사하다. 헤겔이 그리스의 조각에서 ‘예술종교’를 목격했다면, 니체는 비극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비극에서 보여주는 가상은 현재의 삶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니체의 이러한 해석은 바그너의 총체극(Gesamt-Kunst)의 이념을 그리스 비극이 지향하는 목표로 이해한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의 〈자기비판을 위한 서문〉에서 “나는 당시 가장 현재적인 것을 사용함으로써 나의 첫 번째 책을 망쳤는데, 이 현재적인 것에 대한 너무 성급한 희망과 잘못된 응용들”이 그 원인이었다고 고백한다.    ̄ 69쪽


사진이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를 박탈하고 예술작품을 자신에게 더 가까이 두고 소유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현실화시켰다면, 영화는 기술적으로 더욱 발전된 형태로 집단적 향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아우라의 붕괴를 완성한 예술이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에 예술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초기 이론가들은 사진과 영화에서 여전히 제의적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초기 사진이 초상화를 대체한 것에서 그리고 초기 무성영화에서 종교적, 초자연적인 것을 구현하고 찾으려는 것에서 그러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벤야민은 이러한 태도를 기술복제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기술의 진보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 세대의 무력함”으로 비판한다.  ̄ 141쪽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구현하고자 할 때, 동반되는 대표적인 감정(정동)이 도취이다. 도취의 감정이 없이는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도취는 창조의 과정에서 자신이 온전히 세계의 중심이라는 강력한 암시 속에서 결과의 평가와 무관하게 행위를 지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도취가 없다면 인간은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조형Schaffen하려는 감흥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도취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신체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눈이 있기에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하고 도취하여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의식과 관련된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은 이차적인 것이다. 모든 예술 행위의 동력은 도취이고 도취는 몸에서 비롯된 수많은 정동 중의 하나이다. 니체가 예술을 형이상학의 일종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생리학의 차원으로 이해한 것은 그의 몸(Leib)에 대한 통찰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 231쪽


들뢰즈의 예술철학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분석한 《감각의 논리(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1981)에서 잘 드러난다. 들뢰즈에서 감각의 논리는 힘(force)이 신체(corp)에 일으키는 파동과 관계하고 회화는 이 힘의 파동을 그리는 것이고, 음악은 이 힘의 파동을 들려주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예술은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그리고 들려주는 것이다.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에서 힘과 감각의 문제는 이미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차이와 반복(Différnce et Répétition)》(1968)에서도 상론되고 있다.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가 표방하는 과제는 ‘차이 자체’를 사유하는 것이다. 들뢰즈가 볼 때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사를 지배한 것은 동일성(identité)과 재현(représentation)이다. 동일성은 이데아와 존재, 실체 그리고 신 등의 이름으로 철학사에 등장하는데, 이것은 일체의 진리와 가치의 원본의 역할을 한다. 원본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허상과 모순으로 취급되었고,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 291쪽


니체가 놀이에 서툰 자 혹은 ‘지체가 높은 자’로 비꼬는 형이상학자 혹은 도덕군자들은 웃음, 놀이, 춤을 모른다. 왜냐하면 “웃는 것은 삶을 긍정하는 것이고, 삶 속의 고통조차 긍정하는 것이다. 노는 것은 우연을 긍정하는 것이고, 우연의 필연을 긍정하는 것이다. 춤추는 것은 생성을 긍정하는 것이고, 생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웃음, 놀이, 춤은 가치 전환의 힘, 즉 니힐리즘을 전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웃음은 고통을 기쁨으로, 놀이는 필연을 우연으로, 춤은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전환시킨다. 이 모든 것은 또다시 사지가 찢어진 디오니소스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 331쪽


들뢰즈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사는 차이를 철학의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결정적 잘못은 차이 자체를 사유하기보다는 차이를 개념 안으로 편입시켜 사유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차이의 개념을 개념의 차이로 오해한 것이다. 차이를 개념의 차이로 오도한 결정적 잘못은 재현의 능력을 과신한 것이다. 재현은 차이를 ‘동일성, 유비, 대립, 유사성의 네 가지 끈으로 묶어 개념 안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존재는 결코 개념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일의성’, 즉 하나의 독특한 목소리를 갖는다. “‘존재는 일의적이다’ …… 단 하나의 목소리가 존재의 아우성을 이룬다.”  ̄ 346~347


디지털예술의 미적 체험은 전통적 미적 체험의 범주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 가치를 폐기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지위와 관련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는 디지털예술작품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성의 약화를 넘어 작가의 죽음을 목격한다. 디지털예술작품은 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공동의 작업으로 시작하여 익명의 인간들이 개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상황은 니체가 ‘미래예술’의 이름으로 예언한 ‘모든 것이 예술이 되고 누구나 예술가가 된다’는 언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독일의 매체 이론가인 노르베르트 볼츠(N. Bolz)는 오늘날 예술의 가치가 관조에서 놀이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단언한다. 그는 예술에게 사회비판적이고, 진리를 드러내고, 유토피아적 기능을 수행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술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 444~445


지은이 | 정낙림

현재 경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경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신오현 교수의 지도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후 독일 부퍼탈 대학교에서 귄터 볼파르트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니체의 예술 및 문화철학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비극적 사유’와 ‘디오니소스적 사유’의 형성과정과 그것이 니체 철학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연구이다.

예술과 문화철학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그중 대표적인 저서는 《Der tragischdionysische Gedanke. Eine Interpretation der Philosophie Nietzsches》, 《니체와 현대예술》,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등이 있다. 대표적인 논문은 〈니체의 예술생리학과 현대예술 ̄플럭서스 운동을 중심으로〉, 〈니체의 놀이철학과 디지털 예술의 미적 체험 ̄베나윤의 디지털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에 대한 두 가지 태도 ̄칸트의 수용미학과 니체의 예술 생리학〉, 〈니체와 현대무용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를 중심으로〉, 〈예술의 종말과 종말 이후의 예술 ̄헤겔, 니체,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 비교연구〉, 〈진리의 허구성과 허구의 진정성 ̄영화 ‘라쇼몬’과 니체의 관점주의〉, 〈예술과 생리학 ̄니체와 듀이철학을 중심으로〉, 〈매체와 예술의 종말 ̄벤야민의 이론을 중심으로〉, 〈힘과 예술 ̄니체의 예술생리학과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한국 니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동철학회 회장이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말: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은 가능할까? 


1부 예술의 자명성 상실과 예술의 종말


1부 들어가며

01 • 헤겔 _ 절대정신의 감각적 직관형식으로서 예술의 종말

1. 철학 체계와 예술

2. 진리와 예술

3. 예술의 종말


02 • 니체 _ 반자연으로서 데카당스 예술의 종말

1. 예술과 

2. 근대와 수용미학

3. 데카당스 예술의 종말


03 • 벤야민 _ 기술복제시대의 아우라 상실로서 예술의 종말

1. 기술복제 매체의 등장과 세계관의 변화

2. 기술복제 매체와 예술

3. 기술복제시대와 아우라의 종말


04 • 단토 _ 네러티브의 역사성으로서 예술의 종말

1. 네러티브와 예술

2. 〈브릴로 상자〉와 식별 불가능성

3. 예술종말론의 의미


2부 생리학으로서의 예술


2부 들어가며

01 • 니체 _ 정동의 놀이로서 예술

1. 삶과 미적 태도

2. 예술과 힘에의 의지

3. 예술생리학과 미래예술


02 • 듀이 _ 경험으로서 예술

1. 생명체의 활동과 미적 경험

2. 하나의 경험과 예술

3. 문명과 예술


03 • 들뢰즈 _ 감각의 기념비로서 예술

1. 차이와 긍정

2. 힘과 놀이

3. 감각과 예술


3부 예술생리학과 현대예술의 지형


3부 들어가며

1. 실험하는 미술

2. 불협화음과 놀이하는 음악

3. 감각의 방출과 현대무용

4. 매체와 새로운 예술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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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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