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 청구기호668.5/최38ㅈ
- 저자명최민식 사진
- 출판사현실문화연구
- 출판년도2004년
- ISBN8987057747
- 가격11000원
1957년과 2004년 또는 1996년과 2004년, 그 하등 달라진 것 없는 ‘지금, 여기’의 기록
외길 사진에 미치고, 한길 사람속에 빠져 살아온 사진작가 최민식의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가 현문서가에서 나왔다. 1996년 나왔던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 대해 글 12편을 새로 쓰고 사진 80여 장을 바꾸어 펴낸 것이다.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사람 담은 최민식의 슬픈 이야기]는 책을 찾는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1996년 절판된 같은 제목의 단순한 개정판이 아닌 새로운 ‘2004년판’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7080문화의 값싼 상업성이나 위험한 복고주의에 기댄 것이 아니다. 먼저 책이 나온 1996년의 세상이나 지금 세상, 아니 최민식이 처음 인간을 렌즈에 담아 온 1957년의 세상이나 지금의 세상이나 하등 달라진 것이 없기에, 이 책은 개정판이 아닌 ‘지금, 여기’의 의미를 갖는 ‘2004년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나의 카메라는 눈물을 삼키며 진실의 셔터를 힘차게 휘둘러 왔고, 더욱 전진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가난한 날의 행복’을 다루는 거짓 동화가 아닌, 이 땅의‘가난한 날의 진실’을 밝히는 참 기록
책은 또한 ‘가난한 날의 행복’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은 가난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해 놓고 있기에 ‘가난한 날의 진실’을 말할 뿐이다. 그 진실은 “내 사진은 밑바닥 삶에 동정이나 호기심을 보내는 게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고발”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믿음에서 나오고 있기에 농도 짙은 진실이라 할 수 있다. “밑바닥 삶에 대한 동정이나 호기심”은 ‘가난한 날의 거짓 동화’를 만들어내지만,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고발”은 올곧은 ‘진실과 정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최민식이 그동안 추구해 온 진실과 정의는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에 충실하려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나의 사진은 고난과 시련을 겪는 인간의 아픔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인간이 누리고 있는 삶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아픔”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최민식의 사진은 “인간 정신과 사회비판을 표현하는 까닭에 그 중심에 진실성을 굳게 세운 ‘시대의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사진 따로 글 따로가 아닌, 작가의 인생유전 고백록과 사진관까지 한데 담은 온전한 최민식의 이야기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는 ‘사진 찍은 사람 따로, 글 쓰는 사람 따로’가 아닌, ‘사진과 글이 한데 몸을 섞은’ 최민식의 인사동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책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뿐만이 아니라, 그 ‘슬픈 얼굴’들을 렌즈 속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최민식의 인생유전 고백록과 사진관까지 한데 담은 온전한 최민식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쌀 사놓으면 연탄 떨이지고 연탄 들여놓으면 쌀 떨어지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 빈자가 존재하는 한 나의 증언은 멈출 수가 없으며 나목이 혹한을 이겨내듯 어떤 불행도 쾌감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오기로 미소짓곤 했다.” 그 역시 가난했기에, 그의 얼굴 역시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었기에, 그의 작업은 “산 체험에 의거한” 것이었기에, 최민식의 사진은 강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으로 보는 흑백사진‘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햇살이 머무는 흑백사진, 최민식의 희망 사진관
“세상을 위해 나의 사진은 사랑을 담으려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아름다움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고통과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줍니다.
낯설고 황폐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최민식의 사진을 대하노라면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종이거울’ 속에는 분명 내 모습과 다른 ‘슬픈 얼굴’이 들어 있지만, 분명 어디선가 봤던 얼굴이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얼굴, 내 ‘가족사진첩’에 있는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 모두 고향은 다르고 성(性 혹은 姓)은 다르지만 “인간가족”이기에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최민식이 1957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해온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고발”은 ‘시대와 불화하기’가 아닌 ‘시대와 화해하기’에 다름없었다.
우리는 최민식의 흑백사진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속에서 ‘희망의 눈부심’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