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알면 작품이 보인다
현대미술은 왜 어렵게만 보일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이 책은 작품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화가는 물론이고 컬렉터(수장가), 패트런(후원자), 화상(갤러리 운영자)과 미술 애호가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얻게 되고,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근엄한 미술사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랑방에서 구수한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고 느긋하게 읽으면 된다. 이는 저자의 이력이 말해준다. 저자는 평생을 미술전문기자로 보냈고, 현재도 왕성하게 취재 일선에서 활약중이다. 이 책에는 교실 속에, 미술사 책 속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서 건져 올린 살아 있는 에피소드와 정보가 가득하다.
이중섭이 인기화가가 된 배후에는 마가렛 밀러라는 외국부인의 후원이 컸고,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 사장이 기획한 전시가 계기가 되었다. 미술계에서 무시당하던 박생광을 미술계에 다시 각인시킨 이는 김이환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조정신>이라는 글씨 작품이 4천만원에 경매되었다. 강직한 성품이 드러나는 박 전 대통령의 글씨 작품은 그의 글씨 스승(소전 손재형)의 작품값보다 훨씬 비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 그 어려웠던 시절에 조선총독부 주최의 전시회에는 출품하지 않고, 3?1독립만세 운동에 가담해 옥살이를 한 화가가 있다. 도자기 그림의 명인으로 불리는 도상봉이 바로 그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과 작품 이야기를 4개 주제로 구분해서 싣고 있다.
화가를 키운 여인들 예술이라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같이 걷거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예술가를 만든 여인들이 있다.
김환기와 김향안, 이응노와 박인경, 변종하와 남정숙, 이중섭 ? 변관식과 박명자 씨가 그들이다.
김향안과 박인경은 촉망받는 화가였지만 남편을 예술가로 만드는 데 일생을 바쳤고, 남정숙은 든든한 내조자로 남편의 예술 활동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박명자는 화랑을 운영하면서 이중섭을 스타로 만들었고, 변관식이 대표작들을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화가와 패트런 예술이 후원자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도 화가와 작품을 더 사랑한 패트런들.... 그들의 있었기에 우리의 미술이 더욱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박생광을 후원하고 미술관까지 세운 김이환?신영숙 부부, 이육록에게 많은 작품을 맡긴 교보 신용호 회장, 청전 이상범의 그림을 수집한 예춘호 씨, 자료미술관을 세우려는 이동근 씨,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보고 삼성미술관 리움을 건립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우리의 소중한 서화골동을 꾸준히 수집한 기업인들이 바로 예술의 적대적 후원자들이다.
미술을 사랑한 사람들 남달리 미술을 사랑하고, 어려운 시절 우리 미술품을 지켜 낸 사람들이 있다. 이용문, 오세창, 전형필, 손재형, 이병철, 마가렛 밀러, 이용희, 최순우, 김원용, 김상옥, 조병화, 박정희..... 이들의 뛰어난 안목과 애틋한 미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 미술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에피소드로 다시 읽는 화가 이야기 도자기를 극진히 사랑했던 도상봉은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한 애국자였고, 국전 최대의 스타 안상철은 인기와 돈을 멀리하며 후진 교육과 실험적 작품에만 몰두했다. 청강 김영기 화백에 대한 재평가도 시급하다. 미수전을 준비하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종무 화백, 김종학 화백이 수집한 목기와 보자기, 1938년생 화가들의 열정, 1991년 유고에서 열렸던 한국현대회화전 비화, 60세 넘어서 벼슬길에 오른 표암 강세황의 삶과 예술이 소개된다.
- 추천사
미술 사랑방으로의 초대
- 김병종│화가, 서울대 교수
이규일 선생은 우리 미술계에 독보적인 분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독보적인 인물이 점차 사라져 가는 시대여서 선생의 존재는 더욱 돋보인다. 선생은 마치 푸성귀에 갖은 양념을 섞어 주물러 맛있는 찬거리로 내놓듯이 저술을 통해 한국 미술의 밥상을 늘 맛깔스럽고 푸짐하게 차려내 놓는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 온 이들 마저도 ?어, 그래?? 혹은 ?이런 일이 있었나?? 할 만큼 졸보기, 돋보기를 번갈아 꺼내어 우리 미술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글로 엮어 내놓는다. 그런가 하면 장강長江과 같은 도도한 흐름을 또한 놓치는 법이 없어, 산에 올라가 일별하듯 둘러보며 묵직한 저술로 엮어내 왔다. 그런 면에서 이규일 선생이야말로 걸어 다니는 한국미술사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