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 ( / 林湖 / 采兒) 1918 ~ 1974
- 분야 / 현직
서양화 >
- 상세분야
- 학력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졸
1918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부에서 수학 후 마산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한다. 1947년 경남미술연구회를 결성하여 1949년 제1회 경남미술연구회작품전을 통해 부산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서성찬 등과 함께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였으며, 1953년 영남상고 미술교사직을 계기로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1953년 서성찬, 김영교, 김윤민, 김종식, 김경 등과 “토벽” 동인회를 결성하고 1954년까지 3회의 동인전에 참가하였으며 <해바라기와 해녀> <한라산> <해변> <구두닦이 소년> <피리부는 소년> 등의 작품을 출품한다. 1955년 부산 미화당백화점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 <고등> <목동> <꽃바구니의 소녀> <선인장> <제주풍경> <관음> <돌사람> <해풍> 등 3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955년 김봉진, 성백주, 김종식 등과 부산 아포로 다방에서 “7월” 동인전(=제1회 군록회전)을 가지고, 이 외에도 “혁토사”, “흑마” 등 여러 그룹의 동인으로 활동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의 오랜 강사생활을 거쳐, 1963년부터 한성여자대학(현 경성대학교)에 재직한다. 1964년 부산공보관에서 마련한 제5회 개인전에서 <납새미와 소라> <영도다리> <명태> <여인과 식물> 등의 작품을 출품하고 이를 계기로 같은 해 부산시문화상을 수상한다. 이후에도 부산, 일본 등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 작품을 선보인다. 마지막 개인전이 된 1974년 부산탑미술관에서는 “나비와 무지개를 주제로 한 연작 및 꽃과 여인과 산악” 작품 여러 점을 출품한다. 1974년 “일요화가회” 회원들과 밀양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녀온 후 고혈압으로 쓰러져 작고한다. 여행과 사생을 즐겼고, 향토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를 그림을 통해 표출하길 원했던 임호는 자연스레 현실의 풍광을 소재로 삼았으며 특히 제주도 여행을 통해 얻은 해녀와 해변의 모습들, 소라, 명태, 납세미 등 바다의 향기를 담은 작품들은 그를 떠오르게 하는 주요 모티프로 남아있다. 만년작에서는 이질적인 소재들의 배치와 색채로 인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그림을 통해 그의 이상향을 표출하고자 했다. 작품활동뿐만아니라 미술계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강직한 성격과 언변으로 여러 그룹 활동을 주도했으며, 또한 당시 부산 미술계의 흐름과 동향을 소개하는 글들을 신문 기고를 통해 다수 남기고 있다.
전시기획
- 경남 의령 출생
- 개인전
1947-1964 개인전(서울, 부산, 마산) 10여 회
- 단체전
1941-1943 일본 교토미술대전대전 입선, 1941-1944 일본 오사카시
미전 입선, 1944 선전 입선, 1953 토벽회원전, 1972 한국근대미술60년전(국립현대미술관), 종군기록화전, 혁토사전 등
- 경력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1963-1974 부산한성여대 교수 등
- 수상
1964 부산시 문화상 미술창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