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란 무엇인가
눈앞의 작품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몰라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본 경험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옆에서는 ‘이게 무슨 미술이야, 이런 건 나도 하겠네’라며 핀잔을 남기고 떠나는 이들도 보인다. 특히 19세기 전반 이후 카메라가 등장하고부터 미술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생생하게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만을 뜻하진 않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을 함께 살아가는 미술은 어떤 의미일까. 애초에 그런 미술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나름의 대답을 담은 책,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소개한다.
미학자이자 작가인 저자 레너드 코렌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에 활동한 일곱 명의 예술가와 작품을 제시하며 예술가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들이 작품을 창작해냄으로써 해내는 일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러한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불러온 일련의 예술가들은 역설적으로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던 기존 체제에 대항하며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킨 이들이었다.
마르셀 뒤샹, <샘>, 1950
저자가 말하는 예술가가 하는 일은 첫째로 예술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역시 특정한 대상을 재현한 평면 구상회화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 연주 등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때 아름다운 그림들로 가득 찰 것 같은 미술 전시회에 느닷없이 뒤집힌 소변기를 놓아둔 마르셀 뒤샹은 예술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기성품 역시 작품이 될 수 있으며, 예술가는 그 어떤 일상의 사물도 예술이라는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마르셀 뒤샹의 행보는 당대 미술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 실천의 근거로 삼고 있는 원칙이 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도널드 저드, <무제>, 1967
한편 저자는 소위 미니멀리스트로 인식되는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라는 예술가의 또 다른 역할을 말한다. 반듯하고 질서정연하게 직육면체가 반복된 모습을 보자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저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게 될지 모르지만, 이러한 도널드 저드의 작품은 작품이 설치된 전시 환경과 합쳐져 새로운 ‘제3의 무엇’을 탄생하게 만든다. 이에 저자는 도널드 저드의 작품은 작품 자체를 제외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작품에 얽힌 이야기라던가 시각적인 은유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단지 눈앞에 놓인 작품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 그 ‘존재’를 마주하는 것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것이다.
“뛰어난 예술가는 독창적이고 완고하다. 그들은 완두콩 수프에 들어 있는 자갈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보자니, 정말 그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독창적이고 완고한 자갈 같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음악가 존 케이지는 침묵과 고요를 음악이라고 말하질 않나, 크리스토와 장클로드는 분홍색 화학섬유로 섬 하나를 포장해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 예술가들의 가지각색 작품은 하나의 근본적인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처럼 보이던 기존의 규칙과 관습에 자신만의 방법대로 저항했다. 그 저항의 결과가 대중의 비난과 비판으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감내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예술가가 받아들여야 할 책임에 대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강조한다. “예술가의 가장 숭고한 의무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진실함을 지키는 데 있다.”
일곱 명의 작가들의 사례를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존재는 다음과 같다. 예술가는 자신이 풀어야 할 문제를 궁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그리고 그에 의한 결과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만의 행로에 전념한다. 이것이 바로 나와 같은 관람객들이 오늘날의 작품을 마주하고 이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현재 사회에 쌓이고 굳어지는 특정한 규범과 기준에 끊임없이 대항한다. 이는 마치 강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한 마리와 같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라는 속담은 남들이 보기에 조금 다른 사람이 한 집단이나 사회의 분위기를 어지럽힌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실 미꾸라지가 강물을 흐려놓지 않으면 물이 고여 죽어가는 강물이 된다. 이에 미꾸라지처럼 강물을 계속해서 흐려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은 필요하며, 예술가가 바로 그 미꾸라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작품을 앞에 두고 또다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게 될지언정, 한 번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이건 또 어떤 예술가의 헤엄일지 궁금해하며.
이미지 출처
∙ 『예술가란 무엇인가』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78649
∙ <샘>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fountain/1QGek4Lw6B5sBQ?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