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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사랑은 틈

김재인

김재인 펠릭스에듀 대표


좌) 분청사기철화연당초문호, 우)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


“사랑은 틈” 김지하의 시 「틈2」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안에 벌어지는 꽃이파리 하나 / 햇살 비쳐들고 바람 불어오고” 사랑은 그런 것인가? <분청사기철화연당초문호>와 <생트 빅투아르산>에는 틈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사랑했을까? 세잔은 죽기 직전까지 생트 빅투아르산을 그렸다. <생트 빅투아르산>은 화가들의 관습적인 태도에 근본적인 회의를 가졌던, 세잔의 예술관을 보여준다. 정말 끈질기게 우리의 인식에 깊숙이 박혀 있는 클리셰를 제거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과성을 얻기 위해 분투했던 세잔. 그는 화면에 틈을 냄으로써 인간 중심의 클리셰에서 벗어나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체험된 지각을 감각적으로 실현했다. 세잔의 성취는 화면에 ‘자율성’을 부여했으며, 이러한 성취를 통해 현대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산>을 통해 추구했던 시각 너머의 진실이 기하학적 구조였다면, <분청사기철화연당초문호>의 도공이 추구했던 시각 너머의 진실은 무엇일까? 도자기 표면에서는 흑회색의 태토와 백색 귀얄붓질이 상생의 조화를 이루고 연화당초문이 생명을 빚어내고 있다. 상극의 연결을 통해 상생의 생성을 이루는 ‘생명의 운율’, 율려. 한국인의 원형적 미의식이다. 그들에게는 인간 중심의 닫힌 화면에 틈을 낼 수 있는 본성적 자유가 있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이러한 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미적 가상은 “섬세한 모든 영혼 안에 존재하며…그곳에서는 아무런 의식없이 낯선 관습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운 본성에 의해 행동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틈을 낼 수 있는 본성적 자유가 있는가? 사랑이 있는가? <분청사기철화연당초문호>를 잠잠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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