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읽고 동물윤리와 결부시켜보면 어떨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박제된 상어를 소재로 한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불가능한 물리적 죽음>을 마르크스 주의와 유물론적 관점을 토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데미안 허스트,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불가능한 물리적 죽음>, 1991
박제란 동물의 가죽을 보존하는 기술로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겉은 보존처리로 인하여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속은 죽어있다. 이 작품은 포름알데히드라는 특수한 용액으로 보존처리를 했고 예술적 감각과 더불어 과학적 정확성이 요구되는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 이 약품을 비롯한 박제에 필요했던 과학적 기술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예술은 주변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에 뒷받침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상어는 호주에서 잡힌 상어를 사용한 것이지만 상어 사냥이 불법인 국가도 있으므로 이는 환경에 해당하는 조건으로 앞의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박제는 죽은 동물에게 새 생명을 주는 일인데 여기서 상어의 생명권으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이 작품을 제작할 때의 배경을 살펴보면 한 컬렉터인 찰스 사치의 후원으로 작가 데미안 허스트가 사람을 잡아먹기에 충분한 크기의 상어를 주문하여 제작된 것이다. 여기서 찰스 사치와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와 상어의 관계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작품 활동이라는 명목하에 상어를 잡고 방부처리하여 ‘새 생명’을 준 작가는 상어로 하여금 후원자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라는 오류가 있다. 이런 사고를 배제하고 원래대로 살아있는 형태의 상어를 상어의 무대인 바다 안에서 마주친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제는 생명권을 상어가 갖게 되는 것으로 관계가 반전된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 상어가 부패돼서 A/S를 해줬다는 재밌는 사실이 있다. 이 역시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작품이 부패가 돼서 A/S 해주는 일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보통은 어떠한 상품에 통용되는 것이다. 작품의 생산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새 상어로 바꿔줬다는 점에서 작품이 상품화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마르크스주의로 미술을 해석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껍데기는 확실한데 그에 비해 속은 부실하다고 느꼈고 마르크스로 인해 다른 방법론들이 파생됐다는 것이 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