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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 (ACC) 김아영 Ayoung Kim

박윤서

《ACC 미래상 2024: 김아영 -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2024.8.30 - 2025.2.16)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



김아영1) : 동시대 미술이 동시대의 신화가 될 수 있을까


박윤서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무엇이든 신화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담론을 통해 전달된다면. 2) 바르트가 『신화론』(1957)에서 정의하는 신화는 일반적인 의미의 신화와는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는 고대의 이야기, 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거나, 어떤 현상, 국가, 혹은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서사로서, 원형적인 서사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신화는 원 저자를 특정할 수 없이 전해진다. 보편적인 이야기로서 수도 없이 반복되고 시대에 따라 변주되며 모두에게 친숙해지는 것이다. 

바르트는 반면 자신의 저서에서 신화를 문화적 가치나 사회적 이념이 ‘이차적으로 기호화’의 과정을 거쳐 정치성이 탈색되고 ‘자연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신화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대상에도 부여될 수 있다. 바르트가 든 예시로 가장 유명한 것은 ‘흑인 소년 병사가 프랑스 국기를 향해 경례하는 이미지’로 표면적으로는 애국주의를 표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차적 기호화’ 과정을 파헤치면 프랑스 식민주의의 문제를 감추고 그 관계를 조화롭고 평화로운 것으로 자연화하려는 이념이 드러난다. 이처럼 바르트가 설명하는 신화는 현대 문화 속에서 작동하며 특정 사회적 구조와 믿음을 공고히 하는 기호 체계다. 이는 통일된 언어로 정의하기 힘든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하며, 전 세계 문화권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신화의 개념들과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두 번째 작업이자, 2024년 새로 제작된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병치시켜 보는 것은 흥미롭다.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2022)의 후속작이지만 완전히 연결되는 내용은 아니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의 주인공이기도 한 <딜리버리 댄서의 구>의 주인공 에른스트 모(Ernst Mo)는 가상의 서울로 상정된 세계에서 ‘딜리버리 댄서’로서 인공지능 알고리즘 ‘댄스 마스터’의 지시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을 배달한다. 3)

그는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최고 등급의 ‘고스트 댄서’이며, 배달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시의 보이지 않는 최적의 경로로 이동하지만, 그 이동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미궁에 갇힌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에른스트 모 앞에 어느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앤 스톰이 등장하고, 그들이 마주칠 때마다 에른스트 모의 시간은 느려지며, 배달은 지연된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에서 에른스트 모와 앤 스톰의 세계는 가상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미래 세계 ‘노바리아’로 옮겨진다. 전작에서 딜리버리 댄서의 갇힌 상태와 도플갱어의 복잡한 관계성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주제가 되는 것은 시스템 자체다. 노바리아에서 그들은 단일한 시간을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의 지시에 따라 ‘시간’을 배달하는 딜리버리 댄서들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배달 물품에 아포칼립스 이전의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복원주의자들의 유물이 섞이게 된다. 그 유물들은 천상분야열차지도 등 지구의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하던 시간 체계와 달력 체계의 존재를 일깨운다. 에른스트 모와 앤 스톰은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 다중세계(multi-verse)를 넘나드는 모험을 시작한다.

각종 SF 소설과 신화를 섭렵한 작가가 인공지능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의 내용은 동시대 서사들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신화화 되어버린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아포칼립스 이후 이주한 인간이 사는 미래 세계,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사회가 통제되는 디스토피아, 시스템의 균열, 반군, 다중세계, 도플갱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행위 등 작품의 이야기 요소들은 모두 어딘가 친숙하다. 반면 등장인물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입체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27분 동안 지속되는 작품에서 분명 서사는 존재하지만 철저한 인과관계에 얽메여 진행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 신화의 서사와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술의 역사에서 신화와의 관계는 밀접하다. 서양에서 근대 이전까지 미술은 신화를 재현하는 역할을 해왔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권력과 유산을 영속화하는 수단으로 신화 속 위대한 인물 혹은 순간들을 재현했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 또한 교회와 귀족들의 요구에 맞춰 신화적 이미지를 통해 권위와 신성함을 부각했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이 겪는 시련과 성취를 재현하는 것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시련이나 타락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미술은 신화 속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철학적 탐구를 담아내는 상징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적 대상이라는 원본에 종속된 관계에 놓인 존재로서, 그 자체가 신화가 될 수는 없었다.

신화와 서사를 화면에서 쫓아낸 것은 모더니즘 미술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미술이 어떤 위대한 대상을 재현함에 그치는 것을 미술을 문학에 비해 열등한 예술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캔버스와 조각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특성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의, 미술의 자율성이 드러나는 미술 작품을 바람직한 작품으로 여겼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과거 신화 속 위대한 존재를 재현함으로써 전달했던 신성함, 숭고함 혹은 강렬한 감정의 현전을 오롯이 비재현적 조형 요소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미술 작품에 재도입되며 신화와 서사는 미술로 다시 돌아왔다. 이때의 신화는 전통적 의미의 신화보다 롤랑 바르트가 정의한 현대의 신화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신디 셔먼의 <무제 영화 스틸> 연작(1977-80)은 구체적인 영화를 지칭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작가 자신이 당대의 영화 속 여성 인물의 전형적인 모습, 전형적인 장면이 됨으로써 자아, 여성성,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신화를 드러냈다. 더불어 1980년대 이후 다원주의가 대두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들이 미술 작품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개인적 경험이나 집단의 서사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이것이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신화와 서사가 모더니즘 미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미술 작품에 귀환하였음을 뜻한다.

김아영은 그간 노골적으로 서사를 작품에 도입해 온 작가다. 이전 프로젝트 <다공성 계곡> 연작(2017-2020), <수리솔> 연작(2020-2022) 등에서 김아영은 사변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 세계관에서 파생된 요소들로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김아영이 전시를 구성할 때 영상 작품과 병치시키는 설치 작품은 그가 구축한 세계에서 발굴해 온 것 같은 오브제들이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관, 명료하게 구축되지 않은 서사와 캐릭터는 전통적 의미의 신화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질문하게 한다. 실제로 김아영 작가는 이문정 평론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다공성 계곡> 작업이 신화적 서사로 읽힐 가능성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무시간성이나 시간이 용해되는 경험, 다중 시간을 엮어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신화, 설화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러한 근원적인 것들이 갖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마리오 페르니올라(Mario Perniola)가 쓴 글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나는데, 고대 문명의 도상과 미래의 도상이 거의 동시대적인 것으로 느껴져 더 이상 시간적 구분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가 적힌 오벨리스크나, 우주로 이동하는 포털 스타게이트(Stargate)와 같은 미래적 조형이 중첩되어 시대적 구분이 불가능해져 버리는 순간들이 그 예이다. 4) 

한편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은 동시에 바르트적 의미에서 근대에 발명된 시간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세계를 하나의 시간 체계, 달력 체계로 인식하게 하는 시간은 세계 시장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전 지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에서는 주인공들이 배달하는 ‘시간’에 과거 지구에 존재했던 다양한 시간과 날짜 관념을 다시 호출하는 유물들이 섞여 들어옴으로써 주인공들은 여러 시간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중세계를 넘나들며 복원주의자들의 레지스탕스에 가담한다. 김아영은 현대의 그레고리력과 국제 표준시(UTC, Coordinated Universal Time)가 현대의 신화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글로벌 시간축이라는 제도의 위치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에게 신화란 현재의 체계나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은폐하는 수단이다.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 연작에서는 배달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인 ‘딜리버리 댄서’들이 감시되고, 최적화된 사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가상의 세계에서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심층적인 해석을 기다리는 미술 작품의 형태로 제시되어 최적화와 속도의 신화를 폭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신화를 품고 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폭로하며 ‘노바리아’의 통제 사회가 붕괴될 것을 암시하는 작업을 본 관람자들은 동시에 ‘재난의 시대’라는 관념과 새로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라는 문화계의 메시지를 내면화하게 된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의 이미지가 전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와 달리 거의 실제 촬영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 또한 이 작업을 동시대의 디스토피아 서사들의 상징성을 담은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이다. 김아영은 이 작품에서 인공지능과 협업해 모든 장면을 만들었다. 모든 장면이 한 사람의 상상에서 나온 것 같지 않고, 한 작품의 일관된 그림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꿈처럼 이질적인 장면들이 뒤섞이는 특징 또한 이 작품을 단일한 서사를 갖는 작품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든다. 신화가 반복되는 서사의 각기 다른 판본이듯이, 각기 다른 작품, 각기 다른 그림체를 가진 세계관의 판본이 불연속적으로 뒤섞인 듯한 이미지들은 작품의 세계관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을 막고, 각각의 장면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따라서 필자는 영화와 현대미술의 간극에서 활동하는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가 전통적으로 읽히는 신화와 롤랑 바르트의 신화가 융합된 특성을 띤 작업으로 읽힐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다. 세계화, 생산성, 성장, 무엇보다 제국주의와 근대라는 부서진 신화에 대해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는 신화가 동시대 미술 작업을 통해 예화된다. 



- 박윤서 (1997- ) ambisis121@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재학. 《EMAP(Ewha Media Art Presentation)》≫(2024) 학예팀으로 활동했고, 손린 개인전 《IN-STRUCTION | 지침들: s를 주의하세요》(2024, 아이디어회관)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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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아영(1979~)은 사변적이고 학제적인 서사를 구축하고 이를 영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작업하는 시각 예술가이다. 김아영은 과거와 미래의 교차 지점에서 고고학, 과학 소설, 미래주의를 융합하여 이주, 자본주의, 국가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한다. 김아영은 2024년 ACC 미래상을 수상하며 미래 지향적 주제를 탐구하는 예술적 기여를 인정받았다. 2023년에는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의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뉴 애니메이션 아트 섹션에서 한국인 최초로 골든 니카상(Golden Nica Award)을 수상, 2019년에는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김아영은 서울을 기반으로 런던, 베니스, 파리, 샤르자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런던의 테이트 모던과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 등 세계적인 미술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 Roland Barthes, Mythologies, trans. Annette Lavers(New York: The Noonday Press, 1991), 107.

3) 에른스트 모(Ernst Mo)와 앤 스톰(En Storm)은 모두 ‘monster’의 철자를 재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김아영은 이전 작업들에서부터 ‘종합적으로 포섭되지 못하는 존재’로서 괴물에 주목한다.

4) 이문정, “artist 김아영”, 『리포에틱』, 2023년 8월 22일,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2024, 3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27분, 가변 크기, 대형 슬로프. 
도판 제공=박인서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2024, 3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27분, 가변 크기. 
무작위 영상 재생 및 조명 동기화 제어 프로그램, 해시계 조형물, 그래픽 시트, 원형 스크린, 대형 슬로프. 
도판 제공=박인서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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