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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36) 마르게리트 위모 Marguerite Humeau

이수정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마르게리트 위모, 상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에 관한 질문들


이수정


지난해 7월 22일은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되었으며 전 지구 평균 지표기온이 17.6도에 달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3년 전 지구 평균 지표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45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2023년 6월부터 2024년 5월까지 12개월간 온도 상승은 1.63도에 달했다. 이는 과거 약 1천여 년의 시간 동안 지구의 기온이 1도가 상승했던 것과 비교하며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기후 변화에 따라 폭염, 집중호우, 산불, 가뭄 등 극한 기상·기후 현상이 더 빈번하고 강렬하게 발생하고 있다. 2023년 3월에 마무리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는 현재 우리의 기후 변화 대응과 정책으로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위기에 대처할 수 없음을 명백히 시사하고 있다. 1)

이례적으로 무더웠던 2024년 9월 열린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1965-)는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마르게리트 위모(이하 위모)를 꼽는다. 2) 위모는 인류세, 기후 변화, 인간 멸종 가능성의 개념과 다양한 생명체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학제 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물한 살 때 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작가는 의사에게 귀에 있는 세포가 죽었기 때문에 치유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진실에 다가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한쪽 귀로만 느끼는 진동과 파동에 예민해졌지만 이후 그 이상한 느낌이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 위모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동식물에 집중하고 그를 관찰하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3) 아울러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대학원의 디자인 인터랙션(Design Interactions) 학과에서 공부하며 인간 존재의 신비, 진화론적 생태계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추측하고 조사했던 경험은 그의 작업에 기반이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미래에 대한 예측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는 작가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을 작업에 담아낸다. 그에 따르면,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인간 너머의 다른 존재나 생명체이다. 군집을 이루어 사는 존재들을 통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는 작가는 그 안에서 인간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이를 위해 위모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고생물학자, 수렵채집가, 심령술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작가는 《광주비엔날레》에서 한국 생물학자와 협업해 생물 표본을 채집하고 고생대 한국의 환경을 복원하고자 한다. 태초에 생명이 탄생했을 때 어떤 모양이고 어떤 리듬을 가졌을지에 관한 위모의 상상은 작업을 통해 표현되었다.

본전시의 4 전시실 <처음 소리 Primordial Sound>로 들어서면 위모의 <휘젓다 Stirs>(2024) 안 크고 작은 전구들이 빛을 밝힌다(도판 1). 손으로 불어 만든 불규칙한 구 모양의 유리 전구들은 천장과 바닥에 설치되어 흰색에서 황금색까지 제각기 빛난다. 이 전구들은 여러 개의 행성이 떠있는 것 같기도 하며, 어떤 생명체의 알과 같은 모습으로 각각이 하나의 생명을 은유하는 듯이 보인다. 설치물 한가운데에는 헝겊으로 만든 유령 같은 형태의 형상이 자리하고 있다. 한복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형상의 의상은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는 재료로 만들어졌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생물 가운데 하나인 단세포 원시 미생물 위에 작은 퇴적물 알갱이가 겹겹이 쌓여 형성된 퇴적층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 형상을 ‘잠재된 기억의 보유자’라고 명명한다. 미생물이 만든 퇴적층인 스트로마톨라이트로 만들어진 유령 같은 형상이 오랫동안 지구상에 쌓여온 생명체의 역사를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해당 작업에서 눈길을 끄는 하나의 부분은 ‘잠재된 기억의 보유자’가 안고 있는 듯한 부채꼴 모양의 접시이다. 접시에는 지구상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하여 생명의 초기 기원과 연결되는 남조세균(Cyanobactéries)과 다른 광합성 미생물이 만들어 낸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인공 연못인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에서 채취한 진흙과 다양한 지역의 퇴적물, 마른 잎, 달걀노른자, 과일 껍질 등 유기물의 재료와 여과 및 과열 시스템(filtration and heating system), 혼탁도 pH 센서(turbidity and pH sensors), 태양 일주 운동에 동기화된 LED(LEDs synchronised to the daily path of the sun)라는 과학 기술이 그의 작업 안에서 공존한다. 과학과 실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완성하는 위모의 작업이 재료의 선택과 활용에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형상 안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국악 밴드 이날치의 전 멤버 권송희의 판소리 가락과 드럼 소리가 전시장을 울리며 재생된다. 권송희에게 실험적인 판소리를 작곡해 줄 것을 요청했던 작가는 태초의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의 리듬과 판소리의 기교만 활용한 새로운 음악의 리듬이 합쳐져 전시 공간에서 공명하는 풍경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로써 위모의 작업에서 판소리는 접시 안의 생태계에 대한 응답처럼 미생물 군집의 활동과 공명하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인간의 공통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한 소절씩 자아내는 듯하다.

소리를 본인 작업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위모는 지금까지 소리를 담아낸 많은 작업을 이어왔다. 어떤 존재의 목소리를 담은 그의 작업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암시할 수 있게 만든다. 매머드 등 선사시대 생물의 노래를 되살려 오페라를 만들고 클레오파트라의 목소리를 재현해 9개의 멸종된 언어로 노래하기도 했으며, 죽어가는 코끼리 어미의 심장 소리를 메인 비트로 활용해 코끼리 가족 구성원이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를 작업에 담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소리를 활용한 작업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기계 지능 연구소의 연구원 피에르 랑샹탱(Pierre Lanchantin)과 협업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2023년 유목민 미술관을 표방하는 비영리 단체 블랙 큐브(Black Cube Nomadic Art Museum)의 큐레이팅과 제작하에 선보인 <기도 Orisons>(2023)는 그 대표적인 작업이다(도판 2). 작가는 콜로라도주 샌 루이스 밸리(Colorado’s San Luis Valley)에서 작은 바람으로 작동하는 악기들을 심었다. 이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잡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바람에 의해 활성화되는 악기들은 비, 식물의 성장, 심장 박동 등의 다양한 리듬을 재현한다.

위모는 사실에 기반한 과학적인 연구에 기초해 실존하는 대상을 바탕으로 ‘만약’이라는 상상에 더하여 작업한다. 작업 노트에 따르면, 그의 작업들은 보이지 않거나 멸종되었거나 혹은 우리와 평행한 세계를 프로토-타입화(Proto-typing)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위모가 탐구하는 시대와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미래의 어딘가까지, 흙과 먼지에서 우주 멀리까지 폭넓다. 다른 시대에 머물다 사라지거나 실재한 적이 없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들은 우리가 그곳에 실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결론 내릴 수 없다. 작가는 그런 것들을 현재 시공간 안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추측하며 누군가 놓쳐버린 하찮은 것들을 다시 꺼내어 그 안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소리부터 조각,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매체를 활용한 위모의 작업은 멸종된 혹은 멸종되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생명 그리고 잃어버린 물리적, 정신적 풍경처럼 아직 온전하지 않은 상상의 빈틈을 채운다. 근원에서부터 소멸까지 각 존재 고유의 대서사가 위모와 협업자들의 수집과 분석, 개발을 통해 판소리처럼 하나의 막과 장으로 나뉜 한 편의 극으로 펼쳐진다. 4) 더 나아가 판소리에서 직접적으로 영향받아 작업의 주제와 재료, 배치에 관한 작가의 탐구를 <휘젓다>의 사전 스케치(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도판 3). 이를 통해 위모가 판소리와 기억, 지구의 존재하는 생명체들에 관한 주제와 그를 위해 활용한 재료를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위모는 과거의 동식물들과 같은 하나의 작은 종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도> 프로젝트는 대지에서 작업을 설치함으로써 상상의 시공간을 넓혀 장엄한 풍경에서 펼쳤다. 그리고 이번 비엔날레에서 작가는 반대로 지구의 생태계를 전시장이라는 상상의 세계 안에 재현하였다. 부리오에 따르면, 예술은 자연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인식하도록 만든다. 5) 다시 말해 영국의 천문학자 마틴 리스(Martin Rees, 1942-)가 이야기했던 ‘우리의 마지막 시간(Our Final Hour)’과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시킬 무언가가 예술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거나 시공간적으로 먼 거리를 넘나들며 무언가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위모의 작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구상에서 왜 서로 공존해야 하는가? 우리의 상상은 계속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고를 던진다. 



- 이수정 (1991-) ph43290@gmail.com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콩세유 사립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전시 기획과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담당했다. 모더니즘이 꽃피던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미술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동시대 미술로 확장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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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eiec.kdi.re.kr/publish/naraView.do?fcode=00002000040000100001&cidx=14861 (2025년 1월 20일 최초 검색)

2) 프랑스 출신의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1986-)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로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했다.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그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며 설치, 조각, 음향, 드로잉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작가는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에 참여하였으며, 2018년 미국 뉴욕의 뉴 뮤지엄(New Museum), 2017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2016년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에 대한 정보는 인스타그램(@marguerite_humeau)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https://www.wkorea.com/2024/07/25/모든-것은-연결돼있다 (2025년 1월 21일 최초 검색)

4) https://www.artinpost.co.kr/product/detail.html?product_no=5184 (2025년 1월 26일 최초 검색)

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46205 (2025년 1월 26일 최초 검색)




마르게리트 위모 Marguerite Humeau, 〈*stirs〉, 2024,  Installation view at Gwangju Biennale, 2024. 
Photo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Foundation.




마르게리트 위모 Marguerite Humeau, 〈Orisons〉, 2023. Curated and produced by Black Cube, A Nomadic Art Museum. 
Photo: Julia Andréone and Florine Bonaventure. Courtesy the artist and Black Cube Nomadic Art Museum.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 <휘젓다>의 사전 스케치, 2023, 종이에 잉크, 
Photo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Foundation.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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