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여기, 우리의 반란이 내일을 불러오는 노래가 되어
우리의 몸과 체액이 선형의 역사에 스며들어 그 물길을 비틀어 낼지니
Here, our rebellions will be the songs that bring us tomorrow. Our bodies, droplets, will seep into linear history and shift it from its course.
조세파 응잠, Aquatic Invasion, 2020.
파리 팔레 드 도쿄 미술관, La Manutention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중
미래는 과거로부터 비롯되지만, 과거는 미래에 의해 구성된다. 이러한 역사의 순환적 인식은 헤겔이 역사가 변증법적이고 역동적인 추동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헤겔은 진보를 향한 선형적 역사를 주장하였으며, 이로부터 근대적이고 서유럽 중심적인 서사가 형성되었다. 반면,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은 역사와 시간의 선형성을 거부하고, 서유럽과 북미 중심의 역사 서술을 비판하며, 역사의 순환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양자역학에 따라 밝혀진 시간의 속성을 참조한 것이기도 한데, 과학적, 기술적, 아프리카 고유의 형이상학적 상상력을 통해 과거의 억압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읽힌다. 동시에 외부에 의해 쓰인 과거를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이용해 사변적으로 서사를 창조하고, 역사를 다시 쓰려는 자율적 시도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적’ 상상과 해방, 기술과 신화를 엮어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적 시점의 대안적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는 아프로퓨처리즘은 1993년 마크 데리(Mark Dery)에 의해 처음 명명되었다.1) 그러나 아프로퓨처리즘적 경향은 19세기 초부터 존재했다. 예를 들어 기술과 아프리카의 신화적 상상력, 형이상학, 영성 등을 결합한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E. Butler), 새뮤얼 딜레이니(Samuel R. Delany)의 SF 문학, SF와 이집트 신화를 결합하여 창조해 낸 우주 저항군의 페르소나로 재즈 음악을 만들었던 순 라(Sun Ra) 등이 대표적 예시로 꼽힌다.
아프로퓨처리즘은 2010년대에 이르러 BLM 운동, 무르익은 웹 2.0 시대, 과학과 공학의 발전, 기후 변화의 심각성 강조와 맞물려 확장되었다. 여러 예술, 특히 시각예술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며 다시 대두되기 시작한 아프로퓨처리즘의 흐름 속에 카메룬계 프랑스 출신의 작가 조세파 응잠(Josèfa Ntjam, b.1992)이 자리한다. 응잠은 예술가이자 퍼포머, 작가로, 조각, 설치, 포토몽타주, 무빙 이미지, 사운드를 활용한 작업물들을 선보인다. 인터넷, 자연과학에 관한 책, 사진 아카이브 등에서 작업을 위한 재료를 수집하는 작가는 일찍이 아프로퓨처리즘에 영감을 받아 탈식민주의적이고 신화적이며, 중첩된 시공간을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이미지, 단어, 사운드, 이야기를 조합하여 기원, 정체성, 인종에 관한 담론에서 지배적인 거대 서사를 해체하고자 한다.2)
이 가운데 초기 작업에 해당하는 미완성작 <Le Griot Du Futur(미래로부터 온 그리오)>(2017)는 작가가 현재의 작업까지 계속해서 소환하는 아프로퓨처리즘의 특정 개념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여겨질 수 있다. 두 명의 예술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이 디지털 필름 작업에서 응잠은 서아프리카의 전통에서 세습적으로 구술 전통의 전달자 역할을 했던 ‘그리오(Griot)’를 내세워 그가 물을 매개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 속 상징적 인물들을 만나게 한다. 서아프리카의 세습되는 구술 문화 전통, 그 매개자인 그리오, 물(과 유체적 몸들), 시공간의 비선형적이고 중첩되는 특성과 같은 개념들은 응잠의 가장 최근 개인전인 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부대전시 ≪swell of spæc(i)es(우주-종의 팽창)≫(2024)에서까지 꾸준히 탐구되고 있는 주제들이다.
서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 전승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그리오는 부족의 이야기꾼이자 시인, 역사학자, 족보 전승자, 음악가로서, 전설과 문화적 지식, 역사를 구전하고, 행위를 곁들여 공연한다. 이들은 부족이 문화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게 하는 행위자들인 동시에 영적인 인도자였으며, 외교관이기도 했다. 응잠의 많은 작업에서 그리오가 드러나거나,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그리오의 역할을 하는 행위자들이 존재하거나, 작가 자신이 그리오의 역할을 한다. 과거 그리오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시적인 화법을 통해 네러티브를 전달하며, 사운드를 이용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재탐색한다. 퍼포먼스 <Aquatic Invasion(유체적 침입)>이 그 예다. 이 사운드 디제잉 퍼포먼스에서 응잠은 열한 명(그룹)의 예술가, 퍼포머, 음악가들을 초대하여 물과 그에 얽힌 신화적, 정치적, 예술적 요소들을 집단적으로 탐구했다. 퍼포먼스 전반에 걸쳐, 예술가들은 마미 와타(Mami Wata, 물의 어머니) 여신, 테크노 음악 듀오의 드렉시아(Drexciya) 신화, 고대 이집트의 ‘배 없는 자(boatless)’ 캐릭터, 중앙아프리카의 물의 정령(water spirits)과 같은 존재들을 불러냈다. 이들은 모두 과거 아프리카의 전설을 시적 언어와 사운드, 퍼포먼스를 통해 전하고, 전설을 현재로 불러와 영적 시공간을 펼쳐내는 그리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반란’과 같은 행위가 ‘내일을 부르는 노래’가 되길 희망하며, 자신들의 ‘몸과 체액’이 ‘거대 역사로 스며들어 그 물길을 비틀어’내길 바랐다.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걸어 놓은 글이기도 한 서두의 구절과 <Aqua Invasion> 작업, 그리고 작가의 다른 많은 작업에서 물의 이미지와 상징이 강하게 드러난다. 아프로퓨처리즘적 상상에서 물은 단순한 자연적 요소를 넘어 가능성의 공간으로 여겨지며, 역사적 기억, 영적 회복, 그리고 상상력의 원천으로 중요하게 다뤄진다.3) 물은 응잠의 퍼포먼스에서도 등장한 치유자이자 보호자, 파괴자인 마미 와타 여신의 전설과 같은 오래된 전설의 모티브가 된다. 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들의 삶이 강제적으로 대양을 건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실은 물을 선조들의 몸 자체로 여기게 하며,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힘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1980-90년대에 창조된 드렉시아 신화는 중간 항로(Middle Passage)를 건너는 동안 노예선에 실린 많은 임산부들이 바다에 던져지거나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신화에 따르면, 바다로 떨어진 임산부들의 아이들이 물속에서 태어나 생존하여 새로운 수중 왕국 드렉시아를 건설하였다. 아야나 잭슨(Ayana Jackson)과 같은 예술가는 이 드렉시아 신화를 기반으로 물속에서의 퍼포먼스와 비디오 작업을 선보였다.
이렇듯 아프로퓨처리즘 예술에서 영적 연결의 포탈,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경계이자 재생의 공간으로서의 물은 수많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죽게 했던 물의 억압적 현실을 초월하는 대안적 공간과 시간을 창조한다고 설명된다. 예술 작품을 통해 '호흡 가능한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물 속의 세계는 지금, 여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한 역사와 기억, 정체성을 탐구하게 한다. 이로써 과거로부터 미래를 창조하고, 미래로부터 과거를 구성하는 이중 운동을 통한 역사와 집단 기억의 재기입을 도모하는 것이다.
위의 주제들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별되어 전시된 응잠의 <미세아쿠아 비테 (수생진균 생물) Miceaqua Vitae>(2021) 작업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4) <미세아쿠아 비테>는 7분 24초 길이의 무빙 이미지 작업으로, 원시 지구의 가상 수생진균 생물 ‘미세아쿠아 비테’를 묘사하고 있다. 빛을 내는 바다 생물과 균류가 만나 탄생한 이 생명체는 해조류와 버섯이 얽힌 네트워크로 형성된 존재로 묘사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돌을 흙으로 변형시키는 힘을 지닌 미세아쿠아 비테는 오래된 세계의 흔적과 함께 지구의 진화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동시에 창조자이자 관찰자로서, 물, 암석, 우주의 힘이 서로 얽혀 있는 생명과 시간의 연결성을 상징한다.
<미세아쿠아 비테>는 별이 흐르듯 운동하는 우주의 그래픽 이미지로 시작한다. 계속해서 그래픽 이미지로 행성 혹은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듯한 무지갯빛 소용돌이에 물방울 형태의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그래픽 장면이 이어진다. 렌즈 바로 앞을 지나는 듯한 그래픽 암석으로 연결되는 다음 장면에는 네 개의 발에 올려진 원형 플라스크 안에 푸른 형광 물질이 담겨 있다. 원시 지구로 보이는 듯한 화산이 배경에 스친다. 이어서 파동을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디졸브하며 몽타주된다. 리드미컬한 박자와 신호로 이루어진 사운드가 흐르고 있다. 이처럼 응잠은 자연물의 확대된 이미지와 그래픽 이미지를 자유롭게 충돌시키며 흐르는 듯한 무빙 이미지 화면을 구축해나간다.
<미세아쿠아 비테>에서 점도 높은 유체의 형태를 띠는 원시 생물 ‘미세아쿠아 비테’의 서사는 작가에 의해 신화로 쓰여 시적 언어로 리듬감 있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낭송된다. 그리오처럼 영적인 에너지로 보이지 않는 원시의 생물을 말하는 작가는 미세아쿠아 비테의 우주적 존재와 지구의 기원을 이야기한다. 캐나다의 아그네스 에서링턴 아트 센터 레지던시에서 우주입자 물리학 연구소와의 협업으로 ‘과학, 미학, 서사의 불가분 관계’를 보여주는 이 작업은 ‘어둠 물질(dark matter)과 같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각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의뢰되었다.
“하지만 난해한 세계에 은근히 스며든 물방울 하나는 어떤 장광설보다도 길이 남으리” 응잠은 그리오적 목소리와 유체적 생물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현재와 미래의 지식을 갖춘 그리오는 ‘볼 수 없는’ 기원을 이야기하고, 기원의 생물은 현재와 미래로 스며든다. 빛이 나고 끊임없이 흐르는, 바다와 우주를 소통하게 하고, 습지와 화산이 이야기하게 하는, 형태와 포착되기를 거부하는 이 생물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작가가 자신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똑 딱, 시간은 리듬에 맞춰 가고. 서두르게, 이제는 우리가 별자리가 되어야 하니.
잡히지도, 투명하지도, 반투명하지도 않지만, 넘쳐흐르는
Tic-Tac, time goes on in tune. hurry, from now on we must be constellation, intangible, neither transparent nor translucent, but overflowing
[…] 그들, 우리, 너, 나, 어떤 지칭도 우릴 붙들 수 없으니
[…] They, we, you, I, no pronoun can hold us.
조세파 응잠, 나는 무명이다, 2020
Josèfa Ntjam, I am nameless, 2020
작가가 우리를 향해 미세아쿠아 비테와 같이 ‘되기’를 요청함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가 양자적으로 중첩된 역사는 순환적임을 넘어서 납작하게 느껴진다. 이제 어느 시점에나 있는 우리는 모두 같다. 상태가 변할 수 있지만, 한 지점의 우리가 바뀌는 순간 우리는 모두 함께 변한다. 그러나 미시세계의 법칙이 아닌 거시세계의 법칙이 작용하는 현실에서 응잠의 예술이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그러는 한편, 적어도 관측할 때마다 달라지는 우리의 마음이나 인식은 미시세계의 법칙을 따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재학. ≪이마프(EMAP·Ewha Media Art Presentation)X프리즈 필름≫(2024) 페스티벌에서 학예팀으로 활동했고, 손린 개인전, ≪IN-STRUCTION | 지침들: s를 주의하세요≫(2024, 아이디어회관)를 기획했다. 온 감각에 호소하는 동시대의 총체적 예술의 지형과 계보를 좇고 있다.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