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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38) 보 멘데스 Beaux Mendes

이슬비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


보 멘데스의 풍경: 흔적과 경험의 재구성


이슬비

풍경을 그리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자연스러움조차 인간이 형성한 문화적 시각과 관습의 산물이다. 풍경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인식되고 구성되는 개념이다. 즉, 풍경은 나와 세계가 조우하는 순간 탄생하며,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그것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내면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풍경화는 자연을 수동적으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면한 상황을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재현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개인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하는 작업이 된다.  

뉴욕 출신 작가 보 멘데스(Beaux Mendes)는 특정한 장소를 방문하고 머물며, 그곳에서의 경험과 감각을 작업에 담아낸다.1) 그의 작업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머문 장소에서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까지 포함하며 하나의 순례의 흔적처럼 기능한다. 독일계 유대인 출신 미국인이자 랍비의 후손인 그는, 홀로코스트 이전 할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독일 지역을 여행하며 그 풍경에 몰입하게 된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에서 선보인 <검은 숲>(2021~2023)은 독일 남서부의 울창한 산림 지대인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와 드레스덴 엘베 계곡(Dresden Elbe Valley)에서 제작된 회화와 부조 연작이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자연의 울림과 그곳에 스며든 시간의 층위를 담아낸다.

그의 작업 방식은 특정한 장소에 머물며 공간과 교감하고, 깊이 있는 리서치를 병행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현장에서 직접 풍경을 그리거나 기록한 후, 그곳에서 얻은 경험과 감각을 기반으로 스튜디오에서 다시 조합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체험과 정서적 흔적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설명되지 않는 감각, 정리되지 않는 경험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사라진 것들을 소환하는 의식적 행위(ritualistic act)와도 닮아 있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특정한 풍경의 형상을 묘사한 것 같으면서도 그보다 질감과 깊이가 창조된 회화적 효과가 눈길을 끈다. 나무 그루터기, 잘려진 나무 밑동, 아치 형태의 기둥 등 구체적인 형상을 등장하지만, 뚜렷하게 고정되지 않고 흐릿한 경계를 유지하며 변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린넨과 패널 위에 유채, 아크릴, 우드스테인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마치 유령처럼 모호하고 불안정한 형태를 띤다. 

그의 작업은 존재했지만 사라진 것들, 혹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것들에 대한 탐색이다. 형태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듯한 회화와 부조는, 마치 무언가를 잡으려 하면 더 미끄러지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불안정한 표면 속에서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와의 감각적인 만남 그 자체가 작품으로 남는다.  

보 멘데스의 풍경화는 단순한 자연의 기록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풍경화가 수행해 온 역할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이다. 서양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종종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존재해왔다. 특히, 가스파르 프리드리히(Gaspar Friedrich)로 대표되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는 광대한 자연을 마주한 개인의 모습을 형상화하며 숭고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주의적 자연관은 단순한 감각적 경험을 넘어, 자연을 특정한 민족적, 정신적 의미망 속에서 바라보는 태도를 내포했다. 

이러한 전통은 이후 독일의 역사 속에서 국가적 정체성과 민족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연결되며, 자연을 특정한 민족의 근원적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과도 맞물리게 된다. 이는 곧,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자연을 이상화하고, 특정 민족의 역사적, 정신적 정체성과 결부시키는 과정과도 관련된다. 

반면, 보 멘데스의 작업은 이러한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 자체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풍경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해체되는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어떤 시대성을 띠면서도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2) 

그가 추구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기억 속에서 어딘가 모호하게 사라진 시공간을 구현하는 것에 가깝다. 역사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시간 시간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양한 풍경과 공간, 아이디어를 따라 유기적으로 휘어지는 뱀처럼 움직이는 과정”으로 설명하며,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거대한 네트워크(web)”로 비유하기도 한다.3) 

이러한 특성은 그의 작업이 고정된 의미나 형태를 갖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연결되는 흐름 속에서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는 작품을 연극에 비유하며, 각 작품이 하나의 유동적인 요소로서 서로 다른 관계 속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작품이 특정한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맥락과 연결을 형성해 나가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하나의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과 가능성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 속에서 낯설고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다. 이 경계적 공간(in-between) 공간 속에서, 시간과 장소는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관람자에게 지속적인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작업의 특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그의 성정체성(퀴어 감수성)과도 연결된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특정한 장소나 순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의미 자체가 고정되지 않는 유동적인 상태를 탐구한다. 이는 성정체성을 비롯해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이 단일한 범주로 정의될 수 없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직접 새겨나가는 과정이다. <검은 숲> 연작에 특정한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구체적인 이미지보다 회화의 일시성과 공간성을 강조하며, 관람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처럼 보 멘데스의 작업은 풍경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하며,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과 감각적인 경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험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이슬비 (1982-) 9leesb@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 학술논문으로 「매체 탐구로 구현된 박영숙의 페미니스트 사진」(2023), 공저로 『그들도 있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만든 여성들』(나무연필, 2024), 『한국 동시대 미술: 1990년 이후』(사회평론, 2017), 『메타유니버스 :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미디어버스, 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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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 멘데스(Beaux Mendes)는 19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현재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와 바드 밀턴 에이버리 예술대학원(Bard College, Milton Avery Graduate School of the Arts)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beauxmendes.com, @absalomabsalom)

2) 보 멘데스의 인터뷰, “Capitol Reef: Beaux Mendes - Featuring Mendes and Ksenia M. Soboleva”, The Brooklyn Rail, #504. 2022. 
https://brooklynrail.org/event/2022/02/28/capitol-reef-beaux-mendes

3) 위의 인터뷰. 




보 멘데스, 〈무제〉, 2023, 린넨, 반초크 바탕에 유채, 아크릴, 목탄, 43.5 × 47.5 cm



  
보 멘데스, 〈무제〉, 2021, 패널에 유채, 아크릴, 우드스테인, 76.2 × 83.8 cm. 
작가 및 캐런 앤 앤디 스틸패스 컬렉션 제공. 사진_옌스 지허.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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