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80년대 문화판 ‘학전’이었던 서울미술관을 아시나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서울미술관, 그 외침과 속삭임’전
북한산 기슭 서울 산골 동네 구기동은 한국 현대미술 판에서 잊힌 성소다. 이곳에 1980년대 군사독재기 문화판에서 ‘학전’ 같은 구실을 했던 복합문화공간이 있었다. 미술, 음악,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를 실험적으로 융합하면서도 당대 미술 판 작가들에게 서구 근대 전위미술과 동시대 리얼리즘 미술을 소개하며 파장을 일으킨 진원지 같은 미술관이었다. 1974년 무명의 건축가 손에 지어져 2023년 철거될 때까지 49년간 존속했던 아담한 양식 빌라 형태의 서울미술관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7일 개막한 ‘서울미술관, 그 외침과 속삭임’전은 1980~90년대 한국 미술의 흐름에 끌차 구실을 했던 사립 서울미술관의 역사를 기억하고 정리해 보여주는 자리다. 김정현 학예실장이 공들여 만든 전시는 서울미술관 아카이브와 미술계 인물 인터뷰 영상으로 꾸려져 있다. 88㎡(약 27평)의 좁은 전시장에 실물 작품은 별로 없고, 1981년 개관 때부터 2001년 폐관 때까지의 전시·도록 포스터와 관련 아카이브, 원고, 건물 도면 등이 나온 건조한 이미지의 전시장이지만, 격조와 의미는 가볍지 않다.
서울미술관은 1981년 가을 서구 거장 호안 미로와 막스 에른스트, 권순철 작가의 전시를 시작으로 고고성을 울렸다. 2001년 5월 서울미술관 살리기 청년 작가전 ‘기초/전망’을 끝으로 문 닫기까지 모두 65차례 전시를 치르면서 한국 진보 미술운동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구실을 했다.
70년대 건물이 지어질 당시엔 멕시코대사관이었다가 가발 공장 사장 저택이 됐고, 이를 프랑스 유학파 화가 임세택이 사재를 털어 사들이면서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국내 리얼리즘 미술 비평의 권위자 김윤수가 초대 관장을 맡았고, 80년대 중반 이후 임세택 작가가 관장, 진보 미술 진영의 이론가 심광현이 기획실장을 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미국의 미니멀리즘이나 팝아트 유행만 쳐다보던 국내 미술계의 시야를 벗어났다. 당대 신구상주의로 이름 붙여진,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구상·추상을 아우르는 당대 유럽 현대미술의 문제작들을 대거 전시했다. 특히 1982년 연 ‘프랑스의 신구상미술전’은 생소했던 질 아요, 에로, 로베르토 마타 같은 유럽의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소개해 이후 임술년 동인 등 2세대 민중미술 그룹 태동에 물꼬를 트는 구실을 했다. 뒤샹과 만 레이 같은 20세기 초 전위미술의 거장 전시회도 국내에서 처음 열었다.
획일적인 단색조 회화류의 유사 모더니즘 미술과 대결했던 리얼리즘 민중미술의 실력파 작가들이 데뷔전과 수작전을 열면서 미술사의 대가로 등극했다. 평론가 1명이 책임지고 키우고 싶은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론을 제시하는 문제작가 전시회의 틀거지를 1980년대 초 처음 제시해 유행으로 만들기도 했다. 모더니즘 진영의 에이지그룹에서 실력파 작가로 활약하다 고립됐던 신학철의 콜라주 작품 ‘한국 현대사’ 연작을 김윤수 평론가가 재발견해 첫 개인전을 서울미술관에서 열면서 신학철은 당대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로 거듭났다.
요즘 통섭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장르를 넘나들고 녹아드는 전시+공연 무대가 음악인 김민기와 당시 소장 예술인들의 협업으로 시도되곤 했다. 심광현 기획실장이 ‘복잡계’ 기획이라고 명명한 공연들은 전위예술가 무세중과 사진가 김수남 등을 초청해 작곡가 이강숙의 음악을 들으며 미술 작품과 무대예술을 동시에 감상하는 다성적 다감각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농민운동을 하다 서울로 돌아온 김민기는 서울미술관에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드나들었다. 1985년 7월, 폭우 속에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이곳에서 열린 김민기의 결혼식 때는 몰려드는 기자들 눈길을 피하느라 식이 끝나고도 신랑 신부가 한참 미술관에 갇히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던 시기에는 프랑스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구명운동에 참여하며 당시 매각 협상을 벌이던 프랑스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끝내 2001년 폐관됐다. 이후 오상길 등 일부 미술인이 2004년 미아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재개관 전시를 치렀지만, 넉달 만에 경영난으로 다시 문을 닫으면서 맥은 영영 끊겼다.
전시는 이런 미술관의 역사를 아카이브와 인물 인터뷰 영상, 고 김윤수 초대관장의 원고 등 유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김윤수 관장 부인 김정업, 기획실장이었던 심광현, 미술관에서 근무했던 최석태, 전시 작가 민정기, 미술관 활동에 동참했던 박신의·이영욱이 인터뷰에 나와 증언한다. 전시 뒤엔 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전시 기간 구축한 기초 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다.
김정현 실장은 “유럽 68혁명 시기 이후 급변하던 문화사적 흐름에 조응한 서울미술관은 운영 체계와 전시 등 모든 면에서 선진적인 미술관 문화를 한국에 선보였다”며 “프랑스 문화예술계와 긴밀히 관계를 맺었다가 결국 폐관으로 마무리된 이 미술관의 말로는 국내 재벌 기업과 부산시 등이 프랑스 퐁피두센터 분관을 추진 중인 현 상황에서 되새겨볼 만하다”고 밝혔다. 5월2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신문 2025.03.19
출처 80년대 문화판 ‘학전’이었던 서울미술관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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