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숙 개인展
가나아트스페이스 1층 전시장
2012. 08. 29 ~ 09. 03
소를 좋아해서, 소를 사의(寫意)하는 작가, 오경숙.
사의화(寫意畵)다. 눈에 보이는 대상의 외형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의미, 대상 내면의 정신적 세계를 조형화하는 것을 사의(寫意)라고 하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사의화라 한다. 그런데 대상의 본래적 의미, 내면의 정신적 세계라는 것이 사실 애매하다. 예를 들어 대나무를 사의한다면 그 의미, 그 세계는 대나무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사의하는 작가에게 있는 것인가? 전통적인 입장이라면 대상이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 그러니까 “절조(節操)”와 같은 대나무의 의지를 작가가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조형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나무에는 원래 절개와 지조가 있고, 또 스스로도 그러한 작가가 그 절개, 지조를 이해하며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대나무는 절조의 상징이고, 난초는 청렴함과 고결함의 상징이다. 이렇게 될 때 사의는 사실상 작가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이미 정해진 관습을 따르는 ‘죽은 사의’가 돼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관습화된 대상이 아니라면 조금은 더 진정한 사의를 추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대나무 같은 사군자(四君子) 등은 관습화가 지나쳐버린 예시일 뿐이며 보다 참신한 대상에 대한 사의라면 얼마든지 작가 스스로의 사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수긍할만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주의할 것은 참신한 대상의 사의라고 해도 여전히 관습화된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牛]를 사의한다고 하며 우직함, 충성스러움, 믿음직함 등을 생각하고 형성화한다면 이것이 소의 본래적 의미, 소 내면의 정신적 세계를 사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던 이미 죽어버린 사의로 다시 예를 들자면 도대체 대나무 자신에게 절개와 지조란 무엇인가라는 말이다. 소는 소의 삶을 사는 것이고, 대나무는 대나무의 삶을 사는 것이다. 소로부터 어떤 종류의 인간적 의미를 사의해 낸다면, 대나무로부터 어떤 인간적 가치를 사의해 낸다면 결국 그 사의는 대상이 가진 본래적, 내면적 의미를 이끌어 낸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작가의 생각을 외부 대상에 투영하여 형성화한 것, 어쩌면 서양의 표현주의에 그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사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장자(莊子)』에 나오듯 작가가 대상이 아닌데 어찌 대상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역사적으로 수 없이 등장했던 사의에 관한 화론(畵論)들 전체일 것이다. 내가 아닌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가슴속에 대나무를 담기도 하고[胸中成竹], 없애기도 하며[胸無成竹], 대상과 나를 일체화하기 위해 일획(一畫)으로 우주를 통괄하기도 한다. 역시 그렇다. 지금까지의 역대 화론들이 어려운 만큼, 진정한 의미의 사의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경숙 작가의 소 그림들은 위에서 말한 의미에서 진정한 사의화(寫意畵)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소들은 불뚝 심통을 내고(<心1>, <心2>, <心3>), 나른한 상념에 취하기도 하고(<봄을 훔치다>, <도둑맞다>), 무언가에 당황해 하기도 하며(<心4>), 주눅 들고(<心6>) 심지어 자기 해체를 하기도 한다.(<心5>) 혹은 이제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도 같다.(<心7>) 다시 말해 작가의 소들은 소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작가에게 그렇게 – 작가의 관심과 사랑을 투영 받아 읽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는 소의 본래적 의미를, 내면적 정신세계를 조형화했다기보다는 소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형성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달리 생각해보자면, 혜시의 말처럼 결국 대상은 내가 아님을 인정하고 생각해보자면, 이 또한 대상에 대한 사의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작가는 소를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 자체라는 독립된 생명체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소가 될 수 없기에 소의 본래적 의미, 내면적 정신세계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비록 내 생각의 투영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것이 소의 마음을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경숙 작가의 작품은 현실에서 가능한 실재하는 “사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사의”가 가능했던 이유가 어린 시절부터 소와 함께 지낸 작가의 기억, 그 시절로부터 이어진 소에 대한 작가의 순수한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그림만으로는 알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필자의 경우 운 좋게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사의”를 가능하게 했던 동인(動因)도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기억과 관심, 사랑으로부터 대상과 나의 근본적 분리를 뛰어넘어, 대상의 내면을, 본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의”가 – 혹은 “사의”의 최소한의 가능성이 형상화되었다고 하겠다.
오경숙 작가는 소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소를 그렸고, 또 좋아하다 보니 단순히 외형 묘사에 그치지 않고 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소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밀히는 그 마음이 진정 소의 마음인지, 작가의 마음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오경숙 작가는 소를 ‘사의’하고 있다.
동양미학 전공, 계영경.
작가노트
나의 모티브는 마음이다 어린시절부터 나와 공유해온 牛를 가지고 공간안에서 꿈틀거리는 자신의 여러힘든과정들을 거치면서 자라왔다. 살아오면서 마음은 어떤것일까?
늘 미지의 세계였다. 본연의 희노애락이 있으며 감정의 표현을 역동성, 율동감, 방향성, 균형의 조화를 효과에 형태에 미를 두었다. 동양화의 전통재료인 먹으로 주관적심상을 투여하여 대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나의 감정을 농담을 통해 담아내려고자 하였다. 작가의 자유자제로 피어나는 내면 표출의 화면성을 바탕으로 변형시켜 세상에 존제하지않는 낮선 이미지를 가지고 추상으로 牛을 표현하게 되었다.
나의 순간 기억들을 되세이기면서 보가시된 이미지들을 기억의 축적을 다양한 요소가 되어준다. 현제 일상에서 깊숙히 녹아있는 나만의 심상으로 제조형화 시켰다.
오경숙(吳景淑) Oh, kyoung sook
영남대학교 조형대학 한국회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 동양학과 대학원 졸업
개인전 및 단체전
2012.9 가나아트스페이스
2012.4 홍익현대미술관
2011:각 갤러리 (서울)이형아트센터(서울)스카이연갤러리(서울)강남문화아트(서울)바이올렛(서울)
2010;인사아트센터(서울) 서울미술관(서울)이형아트센터(서울)
2009:타블로갤러리(서울)그라우갤러리(서울)
2008:이형아트센터(서울)영남대학교서클전2회(대구)그라우갤러리(서울)영남아트센터(대구)
경산문화센터(대구) 삼성현미술대전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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