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이세현 개인전
‘플라스틱 가든 (Plastic Garden)'
일 시 : 2012. 8. 29(금) - 10. 14(일), 38일간
오프닝 2012. 8. 29 (금) 17:00
장 소 : 학고재갤러리
출품작 : 회화 21점, 조각 4점
학고재갤러리에서는 2012년 8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이세현(46)의 개인전 ‘플라스틱 가든(Plastic Garden)'을 연다. 이번 전시는 ‘붉은 산수’로 알려진 이세현의 대표작 <비트윈 레드(Between Red)>연작을 비롯하여 평면 실험을 시도한 회화와 새롭게 도전하는 조각을 포함한 신작들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아름다운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이세현의 작품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디스토피아를 담는다. 멀리서는 단순한 풍경화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쓰러져가는 건물과 포탄의 흔적들이 삽입되어 한국의 아픈 기억을 역력히 드러낸다. 기존 작품들이 역사의 상처와 사라진 과거 풍경을 다시점으로 표현했다면 신작은 동시대의 아픔과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는 파편들을 모아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담아냈다.
본 전시는 이세현이 회화, 조각으로 재구성한 풍경을 통해 세계 유일 분단국가라는 현실 속에서 경제적 발전을 위해 무차별적 개발을 추구한 결과 우리가 마주하게 된 파괴된 국토라는 슬픈 현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플라스틱 가든,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
전시는 이세현의 기존 작업인 <비트윈 레드>연작과 신작인 분재 회화, 분재 조각들을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선보인다. ‘플라스틱 가든’은 인간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연의 모습을 의미한다. 본관에서는 200x300cm 대작 세 점을 포함한 <비트윈 레드> 14점을 전시한다. 이는 그동안 개별적으로만 전시되었던 작품들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둘러보며 연작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작가의 메시지를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달하는 본관의 전시 구성은 회화 연작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구성은 작품들의 비교, 분석을 통해 <비트윈 레드>연작의 붉은색 자체에만 주목했다면 볼 수 없는 내용상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한 가지 색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이 갖게 되는 제한성을 내용으로 뛰어넘고자 하는 작가의 심도 있는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신관에서는 신작인 <레인보우 (Rainbow)>연작을 전시한다. <레인보우>연작은 다양한 색의 사용과 표현 방법으로 확장된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무지개 색으로 거칠게 칠해진 작품들은 붉은색으로 섬세하게 묘사했던 기존 작품들과 외향적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 국토가 안고 있는 아픔을 역사적 흐름을 따라 일어나는 동시대 사건들을 통해 같은 내용 맥락에서 심화시켜 보여준다. 동시대에 일어났던 사건들, 즉 우리의 생각과 삶의 태도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사건들은 한국 국토에 새겨진 아픔에 대한 공감과 반성을 가능하게 한다.
회화 작품과 더불어 본관과 신관에서는 총 4점의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세현이 처음 시도하는 조각 작품들은 평면적으로만 체험 가능했던 작가의 화면 세계를 입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간의 실재감을 통한 직접적 체험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러한 직접적 체험을 통해서 관람자는 전시장을 자신이 살고 있는 국토라는 공간으로 확장, 그곳에 투영된 우리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고민하게 된다. 현대 미술에서 많은 조각들이 공장에서 기계로 제작되는 것에 반해 수작업으로 완성한 이세현의 조각들은 아날로그적인 구성의 힘을 보여준다.
분재 회화, 분재를 통해 바라보는 파괴된 국토
이번 전시에서 이세현은 <비트윈 레드>연작과 함께 역사로 인해 남은 동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보여주는 파편들을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담아낸 분재 회화와 분재 조각들을 처음 선보인다. 신작들은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 발전을 위해 무차별적 개발을 추구한 결과 우리가 마주한 파괴된 국토라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새로운 시도다.
이세현은 파괴된 국토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분재에 적용, 작품을 완성한다. 흔히 분재는 자연미와 인위적인 조형미를 포함한 종합적인 미를 보여주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작가는 분재의 겉모습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보다 형태를 갖추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에 집중한다.
분재 회화는 정치, 경제로 인해 휘둘려진 역사 속에서 상처 입은 우리 국토의 모습을 화려한 색채의 왜곡된 형상 안에 담는다. 작품 속 산하는 한국전쟁 당시 군인, 피난민, 포로수용소, 감시초소, 장갑차, 포탄 등과 전후 개발 과정에서 시멘트로 지은 집, 공장 등의 구조물로 뒤덮여있다. 교전을 피해 가족이자 전 재산일지도 모르는 소를 끌고 피난길에 오른 남성의 모습과 총을 든 군인 앞에 강제 징집된 포로들의 모습은 가슴 메어지는 우리의 역사를 체감하게 하며 부식되는 시멘트로 만들어져 무너져 내리고 보수가 어려운 건물들은 빈 공간이 되어 안타까움과 함께 허망함까지 느끼게 한다.
분재 회화는 대부분 크고 거친 붓질로 마무리 되는데 이것은 내재된 인간의 폭력적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일부 작품들에는 폭죽이 터져 내리는 듯한 붓질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인공물이 오래된 자연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의 불꽃같기도 한 폭죽은 눈을 멀게 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지만 모든 것은 순간에 끝나버린다. 인위적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계속 축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법이다.
2009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작가는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황폐해진 농촌의 모습을 보았다. 전후 복구와 근대화 과정에서 새마을운동과 같은 군사독재 개발에 의해 지어진 농촌의 건물들은 꾸준한 발전을 지속한 대도시의 건물들과 달리 무너지고, 쓰러져가는 흉물로 변해있었으며 더 이상 농사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농민들을 위해 들어선 공장, 모텔, 음식점 등은 어색한 풍경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 모습들로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뼈를 뿌려드린 통영의 작은 동산이 개발에 의해 파괴되었던 것과 그때 느꼈던 아픔을 떠올리며 <비트윈 레드>연작에서 풍경 사이로 조금씩 드러냈던 한국의 안타까운 모습을 작품 전면에서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분재 조각, 고무대야에 담은 삶의 애환
이세현의 새로운 시도는 분재 회화를 거쳐 분재 조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분재 정원에 사용하는 돌을 석고로 본을 뜨고 그 위에 철물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시멘트를 덮어 조각 지지대를 만든다. 그는 지지대 위에 부러진 각목, 망가진 마네킹, 녹슨 철사, 시멘트 조각 등 버려진 것들을 수집, 조립하여 조각을 완성한다. 이 투박한 작업방식은 사람의 손을 거쳐 무엇인가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하이테크닉만을 추구하는 사회풍토에 문제를 제기, 아날로그의 힘을 중시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분재 조각은 화려하게 꾸며진 마네킹 다리가 부러진 채 나무 각목들에 의해 기괴한 형태로 세워지고, 팽창하는 감시탑이 폭발해 시멘트 철근이 연기처럼 튀어나오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이 모습들은 화려한 개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무자비함에 의해 망가진 우리 국토의 모습과 전후 드러나지 않는 감시체제 아래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의 화나고도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다.
분재 조각은 분재를 화분에 심듯이 ‘다라이’라고 불리는 고무대야에 담아 설치한다. 값이 싸고 깨지지도 않아 가난했던 시절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고무대야는 자식들을 위해 대야 행상을 했던 과거 우리 어머니들과 그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며 우리네 삶의 애환을 보여준다.
붉은 산수, 사라진 풍경 속에 남은 역사의 상처
이세현은 2006년 <비트윈 레드>연작을 시작했다. 당시 영국 유학중이던 작가는 낯선 땅에서 외국인으로 생활하며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를 직접적으로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른 토양과 종자에서는 다른 꽃이 피어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고향인 한국의 환경에 대해 숙고하며 이를 붉은 산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세현은 자신의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 기억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그는 어렸을 때 자란 고향인 거제도에서 보았던 자연 환경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사라져가는 금수강산의 풍경을 붙잡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여 아름다운 장면으로 재현해낸다. 이는 관객들에게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함께 감성적 자극을 일으킨다. 또한 그는 군함, 포탄, 무너져가는 건물 등을 묘사하여 군복무 당시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하며 투시경을 통해 본 분단이라는 현실로 인해 생겨난 정치적, 사회적 환경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여 우리의 아픈 역사와 지금을 역력히 드러낸다.
군복무 시절, 나는 군사분계선 근처 전략지대에서 야간보초를 서곤했다. 그 때마다 야간 투시경을 썼는데,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나무와 숲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즉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풍경이었다. (작가인터뷰, 2008 중)
작가는 군복무를 하며 야간 투시경을 쓰고 바라본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에 산수를 표현하는데 붉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붉은 색을 문득 보면 매혹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슬퍼지고 무서워지기도 하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색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세현은 반공 교육의 철저한 대상이었으며 초고속 경제성장을 지켜보며 어지럽던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386세대다. 붉은색은 이 세대에게 레드 콤플렉스, 금기 등 적지 않은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붉은 색의 사용으로 정치적 의미를 나타내고자 하기보다는 분단국가를 겪고 지켜보는 동시에 유년 시절의 풍경이 사라져가는 현대화를 겪은 한 세대의 속절없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Plastic Garden, 자연에 역사를 입히다
윤재갑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 비주얼이 강하다. 몇 년 전 런던에서 본 전시가 그랬다. 조그만 흰 방에 붉은 산수 네 점을 걸었는데, 흰 벽에 반사된 붉은색이 영롱한 형광 색을 띠면서 방 전체가 형언할 수 없는 핑크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SF 영화에 UFO가 등장할 때처럼 비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런 몽환을 헤치고 한 발 더 다가가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사실적이고 익숙한 풍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 주변의 자연, 건물, 마을, 사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아주 현실적이다. 그 현실은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하다. 근현대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다. 그림의 어떤 부분은 마치 몸속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뽑아내어 그려 놓은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자연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이나 건축, 음악이 가지지 못한, 성공적인 회화 작품만이 누릴 수 있는 큰 장점이자 특권이다.
이런 장점들은 오래된 편견 혹은 편의적 구분을 극복한 지점에서 태어났다. 작가가 문제 삼는 가장 큰 편견은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에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화의 삼원법은 풍경의 앞면, 뒷면, 윗면을 인간이 원하는 각도로 절개해서 봉합해놓은, 자연을 억압하고 이기적으로 지배하려는, 인간이 자연에 가한 가장 큰 시지각적 폭력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동양적 사유가 절대 자연 친화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서양보다 인간적이지도 못하다. 이런 비판은 동양 지식인 계층의 취미이자 애완의 대상이었던 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분재는 인간이 자연에 가장 직접적으로 손을 댄 조작이자 조각이다. 동양이 추구한 자연미의 최고 경지라는 분재에서 그는 아름다움보다는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을 읽어내고 있다. 이런 고정관념에 대한 ‘살부 행위’를 통해서 탄생한 것이 붉은 산수와 분재 산수다. 이런 생각들은 다시 분재 조각으로 이어진다.
그의 작업은 그리기에 내재된 인간의 폭력적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자연에 각인된 역사의 상처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며,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내보인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상처 모두를 아우른다.
강한 비주얼에만 이목을 빼앗긴다면 작업 속에 녹아 있는 녹록지 않은 생각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다행인 것은 그가 자신의 작업 속에 내용과 형식의 일치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결적으로 만들어냈다. 그의 생각들은 상당히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가 일궈낸 형식에는 선배들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세현은 이런 작업들을 통해 자신만의 소화기관과 배설기관을 가진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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