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의 제스처나 얼굴표정, 몸짓, 자세나 차림을 통해 전해지는 '내면의 태도'에 주목하여 인물, 도시, 풍경 등 주로 흑백으로 처리된 대표작으로 구성
도나타 벤더스는 1965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현재 그곳에서 활동 중이다. 베를린과 슈투트가르트에서 영화와 연극을 전공했고, 영화 촬영감독으로 여러 작품들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녀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남편인 빔 벤더스(Wim Wenders)도 이 시기에 만나게 된다. 도나타는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세계 각지에서 전시를 이어가며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작가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작가는 주로 흑백사진으로 인물, 도시풍경 등을 담아내며 사진에 대한 고전적 접근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단지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화된 고유성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도나타의 사진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얼굴의 표정, 몸짓, 또는 자세나 차림에서 전해지는 “내면의 태도(attitude of the heart)”, 빛의 반영에 따른 사물의 “내적인 울림”을 포착하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런 작가적 접근은 우리가 흔히 동네의 거리나 일상의 주변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대상들에 특별한 품위를 부여한다.
“도나타 벤더스의 방식은 이른바 환원주의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구성하는 표현적 요소는 흑(black), 백(white), 빛(light), 시간(time)이다. 모든 불필요한 묘사나 삶을 둘러싼 물리적 방해물이 제거된 채 온전히 자기 안으로 침잠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사진 속 대상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도나타의 사진들에 매료되고 공감하는 이유는 내면적 성찰의 특별한 순간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공유한다는 데 있다.” – 마크 기스본(미술비평)
Donata Wenders was born in Berlin in 1965 and now lives and works here. She studied Film and Theater in Berlin and Stuttgart from 1984 - 1989. After then, she has been made her career as a cinematographer for several years. During this period, she also met Wim Wenders who became her husband and one of artistic companion. Since 1995, she has been working as a professional photographer and expanding her activities by holding the exhibitions in the world. This will be the first solo show of Donata Wenders in Korea and it would be expected to provide a joyful chance to appreciate all aspects of her artistic world.
She has usually recognized as an artist who is not just staying in a fixed state but advancing contemporized uniqueness of her photography, while she has mainly taken the portraits or the urban landscapes by conventional manners like black and white based on her classical approach to photography. She, especially, has affections on the subject and a great sense of finding, of attitude of the heart in expressions of face, gestures, poses and clothes, of resonances within the objects which are being reflected by light. With this artistic approach, Donata specially endows the dignity with ordinary moments and places that we have easily encountered at the neighborhood and the street in the city.
“Donata’s approach is a form of reductionism, her means is that of four component and expressive elements, black and white, light and time. All the unnecessary narrative desiderata or material encumbrances of surrounding life have been stripped away, and our eyes arrest upon a sitter experiencing a moment of personal withdrawal. The fact that we are attracted to and identify with many of her photographs rests to a large extent upon shared feelings that we are looking at ourselves in particular moments of inwardness and reflection.” _ Mark Gisbourne(art critic)
부재의 현전. (By Mark Gisbourne)
부재는 시간을 초월해 있거나 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고독의 순간들을 일깨우면서 존재를 드러낸다. 또 이 순간들은 보편적인 차원에 머무는 한에서 공유될 수 있다. 도나타 벤더스의 사진들은 결정론적 시공의 한계를 넘어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내면 세계를 드러낸다. 이미지는 시간적으로 고정돼 있지 않지만 선명하게 감상자의 마음 속에 떠오른다. 어느 비평가는 이 이미지가 50년대나 60년대처럼 보이고, 거기에 그 때의 기억들을 불러오는 것 이상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회상하기를 말 그대로 시간을 통과하는 전환이 아니라 단지 회상하는 행동으로 본다면, 인과적이고도 고지식하게 내적인 회상의 순간들을 이해하는 일이 아마도 성급한 사람에게는 무용하게 느껴질 것이다.
유추(analogy)가 진실은 아니지만 그것은 가끔 드러난 장소에 관해서만 위치 특정적으로 공유되는,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의 일치다. 유추는 그 출현의 원인이 이전부터 보여져 왔을 것이며, 따라서 어떤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관계의 평행적 유사성 이상이 아니다. 분명 작가가 ‘침묵의 섬들(islands of silence)’로 부르는 순간들,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감정들이나 직접적인 충동들을 막을 필요는 없다. 이런 유추된 결과를 살펴보면, 작가의 분명히 무시간적 특성을 지닌 사진들은 모델들이 그녀의 존재를 완전하게 인식하고 있는 중에 작가가 관찰하고, 기다리는 데서 비롯된다. 거기엔 결코 그녀가 마치 우연히 있는 것 같은 착각이나, 미디어를 바탕으로 한 사변적인 기록의 의도가 없다. 반대로 신중한 자세나, 인위적으로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숙련된 흑백사진은 서술적인 순간들의 채색된 양식을 벗겨내기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흑백필름은 색채의 사용이 항상 요구하는 관계적 요소의 구성과 편견을 비운다. 이는 독특한 푼크툼이 생성되는 결정적 순간의 가능성을 발산시키고, 드러낸다. 롤랑바르트에 따르면, 한 사진작품의 푼크툼은 나를 찌르는 사건이다.(또한 나를 부수고, 나에게 호소한다)
작가의 접근은 이른바 최소주의에 입각하고 있으며, 그녀의 네 가지 표현적 구성 요소는 흑과 백, 빛과 시간이다. 모든 삶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장애물들이나 불필요한 서사적 요구들은 제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아의 내면으로 침잠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눈길을 사로잡힌다. 우리는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특정의 순간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사고와 자기성찰의 느낌들의 공유로 확장되는 데 놓여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다. 이런 소중한 ‘부재들’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고, 그 언어적 특질은 관련된 망각의 단어들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것은 심리학상의 혼란기로 잘못 비춰진 깊이와 인간적 필요를, 무시되어 온 일상의 요구에 대한 관심의 열의로 확대함으로써 바람직하게 묘사한다. 따라서 약간의 놀라움은 종종 창의적인 상상의 순간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여인들은 사진적 환기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상징과 수단이 된다. 초반의 개인적인 몽상들이나 그들 스스로의 생각 속에 갇혔던 것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초상들은 결국 사회적 공간에서 깨닫게 되는 침잠의 순간이나 존재의 증발로 연결된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거나 혹은 존재의 실존적 영역을 건드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여성적 공감대가 강하게 존재한다. 하바나 발레 학교에서 찍은 한 여자가 생각을 잊은 듯 열심히 바닥을 닦고 있고, 이는 곧 뒤 따라올 어리거나, 매우 마른 발레 댄서들을 대조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있다. 두 경우에서 실루엣으로 남은 인물들은, 분명 글자 그대로 마리아와 마르다의 예지적 대비를 불러일으킨다. 모든 것은 지워진 과거 사실들의 주요한 의미를 이끌어낼 필요 없이 단지 보여지는 것으로 화한다. 이런 경우들은 항상 변경된 시간과 공간의 맥락 안에서 재현될 수 있다. 따라서 도나타의 이미지들에서 피할 수 없이 환기되는 연상들은 특정하다기 보다는 보편으로 보여질 여지가 많다. 그녀는 일단의 연상된 감정들의 공유를 드러내는 것으로 개개의 개성을 과도하게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벤더스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이는 우리 모두에 의해 공유되는 느낌이다.
거장 화가 발튀스, 안무가 피나 바우쉬, 영화 스타 제시카 랭, 앤디 맥도웰과 그 외 많은 명성과 관련 있는 사람들은 작가의 세계적인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피해 온 일이다. 그리고 역시 파리나 그 밖의 곳에서 찍은 아름다운 여인들 연작도 우리가 특별하게 패션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연상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녀들이 아름답더라도, 작가가 포착하고 표현하고자 찾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문성의 표출이나 개인적 동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기 노출의 여린 순간들로, 오로지 사진으로 포착할 수 있는 일시적 효과들, 찰나들이며 현재화된 부재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그 개입적인 특성에 힘입어 통찰을 주는 능력을 지닌 사진의 마법적, 예언적 힘을 지시한다. 모델들에 대한 섬세한 접근 작가의 섬세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는 하나는 그녀가 천사의 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대상의 개인적인 약점을 폭로해 침공하거나 의도적으로 공격하고자 하는 어떤 시도도 없다. 하지만 약점들이 거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삶에 결합될 수 있는 실제의 존재와 공유를 확인함으로써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도나타 벤더스– 작가 노트
피나 바우쉬
몇 년 전 처음으로 나의 카메라로 피나 바우쉬를 담아보려 시도했던 때에는 나만큼이나 그녀도 수줍어하고 낯을 가렸다. 그럼에도 그녀의 아우라는 내게 커다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투명망토라도 걸치고 싶은 심정이 들기까지 했다. 자신의 작업과정에 푹빠져있는이 세심하고 부드러운 여인 옆에서매번“찰칵”대는 셔터를 누르는 것마저 신경을 거스르게 할 것 같았다.그녀의 아우라는마치 자신을 망각 속에 빠뜨린 채놀기 좋아하는 조용하고 자유로운소녀의 여린 감성과 여왕의 품격을 동시에 지닌 듯했다. 그리고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그녀의 차분한 배려심은 유머와 몽환적인 매력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움직임들은 격조와 기품으로 물 흐르듯 부드러웠으며 조용한 목소리는 그녀에게쉽게 부서져 버릴듯한 이미지를 부여해 주었다. 그녀에게는 무언가 무방비적인 모습도 있어서 혹시나 나의 촬영작업이 그녀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그녀를 지탱하고 떠받치거나 어떻게든 원기를 돋게, 혹은 등뒤에 부드러운 쿠션을 하나쯤 받쳐주는 게 어떨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그 정도로 연약해 보였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만난 누구보다도 강인한 사람이었다. 사진술로는 도저히 아우를 수 없을 듯이 깊고 광활한 우주같은 그녀의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그저 감탄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스틸사진
피나와 빔이 공동 작업할 필름을 위한 계획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영화작업의 모든 과정을 동행해야겠다는 욕구가 점차 분명해 짐을느꼈다.
내 카메라의 소음이 영화촬영에 방해되지 않으면서 영화촬영 내내 스틸컷들을 찍을 수 있으려면 Blimp (카메라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카메라 덮개)의 끊임없는 사용이 불가피했으며.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스틸사진촬영을 위한 무용수들의 연기반복은 아주 가끔씩만 가능했다. 스틸컷사진가의 임무는 무용수들을 마치 영화의 정지화면을(만약 정말로 정지된 영화의 화면을 촬영한다면 인화할 수 있는정도의 높은 해상도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는 듯이 무용수들에게 부동자세를 유지하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객체의 선택이나 조리개값과 심도의 변화, 크롭핑,시점의 선택 등 모든 것은 영화의 장면과 분위기에가장 유사하게 보이도록 하였는데, 이는 내가 최대한 촬영카메라에 근접해서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크레인의 움직임이나 촬영 후반부에 등장한 스테디캠의 움직임등은내가누군가의 동선 위에 서있거나 혹은 촬영카메라의 앵글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 언제 어떻게 움직이고서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 이런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함과 동시에 장면 장면의 핵심적 요소들을 건져내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움직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것 같다.
부퍼탈탄츠테아터의 무용수들
무대 뒤에 접근한다는 것은 매번 높은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순간적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본인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려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무용단의 단원들은 자신들의 이런 반응을 스스로 극복해야만 했다. 또한, 동선을 방해하거나 탈의실을 혼잡하게 하는 행위등 그들의 집중력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은 무대위의 연기에 아주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 어떠한 것도 무대 위에서 표현돼야 할 그들의 연기를 방해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무대 위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것과 한 해를 넘도록 극단의 단원처럼 함께 움직일수 있었던 것은 무용단원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만약 이러한 배려가 없었더라면 무대뒤에서 촬영된 어떠한 사진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무대 뒤가 상당히 어두웠음에도 고감도 디지털카메라 (12,000 ASA)덕으로 촬영할 수 있었고 이러한 조건들을 갖춘 뒤에는단순한 피사체의 다큐멘터리식 촬영보다는 무대 뒤에 흐르는 대기와 현장 분위기 등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또한 무용단건물 이외의 장소에서 많은 무용수의 흑백사진을 촬영기도 했는데, 나 스스로 모델에게 영감을 줄 정도의 전문 사진가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용수들이 혼자 있는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서 함께 시간을 보낼수 있겠는지를 묻고 함께 가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통해서 작업 전에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도저히 예측하기 어려웠던 “포토그래피적 대화”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이 흑백 포트렛 들은 마치 어디로 향하는지 예측하기 불가능한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떤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한 진행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말하자면 두 사람만이 결과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말 없는 대화”같은 것이다.
인물 사진
일반적으로 나는스스로 몰아의 상태에 빠지게할 수 있고그동안에 내가 사진을 찍도록 해줄 수 있는, 집중력이 강한 사람들을 모델로 쓰기를 좋아한다. 이외에도 어떤 장소의 빛과 분위기, 모델의 자세나 움직임과 몸짓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포토그래피적커뮤니케이션을만들기를아주좋아하는데. 그 과정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모델을 관찰함과 동시에 나만의 관점을 유지하고모델들이 어떤 방식으로 주제를 받아들이고 생각을 전개하거나 그만두는지 등을 그들의 몸짓이나 습관 등을 통해서 찾아내려 한다. 이런 이유로 나와 모델이 솔직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아닌지는 나의인물 사진 작업 하나하나가만들어져 가는데 중요한 키 포인트가 되었다.
도시풍경
도시안의 사람들을 촬영하는 것은 나에게일종의 커다란 도전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포트렛 촬영이나 영화촬영 세트에 있는 “신용등급상승제도” 같은 것이 없는데,그 까닭은 내가 사진 찍으려는 모델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내가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것만으로도 몇몇 행인들은불만을 토로했고 나는 이에 대해 깊이사과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사진을 찍기 전에 모델에게 양해를 구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리가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힘겹게 포착했던 그 순간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다.사람들이 몰아의 상태속에 빠져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나의 이 두눈이채워지기를 얼마나 원했던지! 이런 매우 위난한이유때문에 나는 도시의 거리를 찍을 때 늘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떤 거리감이 사람들의 사적인 영역에가장 적은 스트레스를 주는지를 연구했고, 그 결과 가장 먼 거리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의 사람들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작업방식을 통해서 “프레스켄Fresken” (영어로는 프레스코Frescos) 연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내가 그 인화방식 때문에 그렇게 명명한 이 작업의 사진들은 현상에 필요한 적정 시간을 완전히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끄집어내어 졌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부가적으로 생겨난 형상들은 작품 안에서 하나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형상들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완결되지 않고 물이 빠져나가듯 변화의 과정에 있는, 늘 변화속에 있는 세상의 모습을 표현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정확히 바로 그것, 그것이 내가 흑백사진에 대해서 계속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이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 다른 것으로변해가는 세계에 관한 연구를 대변하는 드로잉들이나 스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잘리고 떨어져 나가버린 부분적 관점이며, 지각 가능한 거대한 전체의 생생한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