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장신구Art Jewelry의 본격적인 시험대
본 전시회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되는 현대적이며 예술적인 장신구전시회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신구 작가 9인이 공동기획 했으며, 국내 정상의 갤러리인 ‘인사아트센타’와 ‘갤러리 포(부산)’의 초대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사로서, 실험적 현대장신구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장신구 운동은, 자국의 전통문화와 현대적 미감, 예술적 창의성을 ‘축소된 세계’속에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대미술의 한 지류로서,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문화상품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장신구작가들의 창작 작품들은 전 세계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들의 컬렉션이 되어 또 다른 관람자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1년 창립전을 가진 ‘장신구 제안’전은 전문작가들에 의한 창작 작품발표, 새로운 디스플레이 디자인, 도록제작, 강연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예술로서의 장신구에 관한 담론과 논의를 확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개최되고 있습니다.
국내 문화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귀사의 협조에 의해 이 행사가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면 새롭고 참신한 장신구예술의 저변 확산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장신구의 영토 - 9인의 시각>
장신구는 ‘작은 미술’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작음은 왜소함, 빈약함, 하찮음이기도 하지만 친근함, 예민함, 소중함이기도 하다. 장신구를 통한 발언은 대중 연설이 아니다. 마주앉아 나누는 귀엣말에 가깝다. 거기에는 메가폰이 아니라 찻잔이 있다. 예민하고 즉물적인 장신구는 뼈나 근육보다는 신경에 가깝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라는 말이 장신구에서처럼 실감되는 분야는 없다. 장신구는 몸과 결합된 미술이기 때문이다. 장신구 작품은 제작자의 분신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장한 착용자의 분신이 된다. 그래서 장신구는 개인과 개인의 사적 관계를 엮는, 주로 개인소장의 미술로 존속해 왔다.
장신구는 몸을 모태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세계는 장신구라는 물질 위에 겹겹의 상징성을 부가해왔다. 고대부터 그것은 신분, 권력, 사회적 약속의 기호로서 기능했으며 근대 이후에는 자본주의 산업과 결합하면서 부와 소비문화의 꽃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장신구의 기호성記?性은 본연의 물질성, 시각적 장식성 위에 중첩되면서 다중의 함의를 생산하며 현대사회에 이르고 있다.
20세기 후반 약 30년 동안의 현대장신구 운동은 수년천의 장신구의 역사에서 그 어떤 시기의 변화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장신구에 대한 지적 성찰은 수많은 담론을 생산했으며 장신구에서의 모더니티의 형성은 표현적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의 모태인 몸, 그리고 장식기능으로부터의 이완을,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장신구의 지평을 개념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논쟁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많은 장신구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자율적 ‘진술’ 매체로 사용하고있다. 그들의 ‘주얼리jewelry’ 를 통해 제작자인 자신을, 자신의 사회를, 그리고 이 시대의 미술적 담론들은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교육기관과 전공자들을 보유하고있는 한국의 장신구분야는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들이 그렇듯이 ‘역동성’과 ‘부실함‘이라는 두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뿌리깊은 장식 문화의 전통, 수공기술의 우수성, 현대의 일반인들에게까지 이어진 장식 선호와 패션에 대한 관심은 장신구분야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근원이다. 수많은 대학졸업자, 해외유학자 등의 열의 또한 이 분야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인적자원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하부구조는 취약하다. 전문 화랑과 저널의 취약성, 비평의 부재, 대학의 폐쇄성 등은 질적 발전을 더디게 한다. 장신구 소비자들의 제한된 취향과 유행 추종은 전업작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성의 문맥과는 거리를 갖는, 형식미에 대한 지나친 추구와 개념의 부재 등도 약점이다.
2001년 ‘장신구제안’이라는 이름으로 공동기획전를 개최한 6명의 세공가들 역시 한국적 상황 속에서 그 가능성과 문제들을 부심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3명의 작가들이 추가된 올해의 ‘장신구제안2003’ 에서 다시 이들의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이정규는 재료에 대한 직관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재질의 구사, 조합에서의 통제력이 형식미를 만들며 근작에서는 사실적 불상형태의 도입으로 정적이며 명상적인 아우라를 부가하고있다. 정체성과 관련된 서술적 장신구를 제작하는 윤성혜는 창, 이중적 공간, 개폐구조 등을 통해 작가의 시선과 내면, 개인의 영역 등을 암시하며 미니어춰의 세계속으로 시선을 끌어들인다. 강연미 역시 인간의 얼굴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자화상을 통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묻고 있다. 르네 라릭의 몽환적 얼굴을 연상시키는 인물은 풍부한 색채감과 함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도로표지판이 갖는 공공성과 평면성을 브로치의 형식으로 차용한 심현석은 텍스트의 부분적 변형을 통해 개인적 메시지를 삽입한다. 친숙한 사물과 ‘비틀기’, 몸과 관련된 텍스트가 유머를 던진다.
전해주조방식을 사용하는 전은미는 비정형적이며 물성을 강조한 장신구를 통해 원초적이고 유희적인 공간감을 추구한다. 표면의 의도적 흔적들은 재료와 완성된 작업 사이의 과정을 함께 드러낸다. 김화진의 경우는 기법에 더 무게가 실린다.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기법이며 유럽작가들에 의해 소개된 아샨티방식은 선감기에 의한 입체성형으로 강한 시각성을 만든다. 현대장신구의 세계에서도 기법은 여전히 유효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동안 철판과 접기방식에 의한 장신구를 발표해왔던 이동춘은 ‘변주된’ 연작들을 보여준다. 이전에 강조했던 조직과 구조는 다분히 해체적인 방식으로 이완되고 있으며 소뼈, 유색의 돌과 같은 재료들의 도입에 의해 색채감과 회화성이 조성되고 있다. 옵티칼한 조형미를 추구해 온 우진순은 근작에서 외부도형들을 ‘묘사’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인다. 도입된 외부 형태가 격자패턴과 마치 2진법의 디지털언어와 같은 막힘과 뚫림이라는 ‘투각透刻‘ 코드에 의해 분해되고 합성되어 있다. 전용일의 작업은 공간, 몸에 관한 것이다. 평면으로부터 돌출되고 늘어진 형상은 평면성의 부정, 중력, 공간간의 소통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들 관계가, 성기를 통한 배뇨와 같이 인간의 몸에서도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들 9인의 작업을 일반화하거나 이들로부터 한국 장신구의 특성을 살피려는 시도는 성급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젊고’ -연령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각 출품작들을 완성된 개체라기보다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장신구 분야가 아직 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신구에 대한 탐구, 이를 지속하려는 진지함이 유지된다면 이들의 시도는 한국에서 장신구 논의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일의 확장과 정착은 단계적 과정과 시간을 요구한다. 한국의 장신구는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현대의 미술적 환경에 진입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많은 개성 있는 작가들의 출현, 담론을 만들려는 지적 노력들, 치열한 자기검증, 이 같은 조건들이 성숙될 때에 비로소 이 땅의 장신구는 우리 시대 미술운동의 한 지류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장신구제안전은 우선 작가들 자신을 향한 제안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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