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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나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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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인 The Duchess

박옥생(미술평론가)

1. 자연합일(自然合一) 사상으로 조형화 하다.

작가 황나현은 얼룩말이 뛰노는 원시림에 주목한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원시 밀림이 가진 그 무공의 순수함은 지친 현대인들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원초적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이것은 동양 전통적 자연관으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천인합일(天人合一),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이다. 즉, 자연과 인간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 는 것으로, 이러한 사상은 제왕의 통치이념과 인간세계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가 그리는 ‘얼룩말의 숲’ 시리즈는 이러한 자연합일의 동양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작가는 남태평양의 강열함을 닮은 열대우림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이국적인 얼룩말을 등장시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은유(Metaphor)하며 자연에 관한 동양의 전통적 사유세계를 가시화 시킨다.

  

2. 인간을 닮은 얼룩말

밀림 속에 사는 얼룩말은 꽃잎으로 장엄한 왕관과 꽃 모자를 쓰기도 하고 화장으로 화려하게 치장한다. 즉 인간의 행위를 대표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모방이 아니라 인간 이전의 자연 그 자체가 가진 고유의 본질적 행태를 얼룩말을 대표하여 그려낸 것이다. 자연은 숨을 쉬며 대화하며 그 안의 존재하는 생명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아간다. 

인간의 눈을 오랫동안 그려왔다는 작가는 얼룩말에 인간의 눈을 그려 넣음으로써 얼룩말이 응시하는 선하고 정직한 눈빛은 보는 이들에게 솔직하게 다가온다.  타자의 눈과 나의 시선이 만나는 그 설레는 대면의 경험은 때 묻지 않은 그리운 마음의 고향, 숲의 정령이 숨 쉬는 태고의 원시성으로 환원시키는 카타르시스의 과정이기도 하다. 원시림으로 대표된 자연은 인간으로 은유된 얼룩말과 대화한다. 그 사랑의 언어는 핑크빛 색으로 노래되고 노란빛 황홀한 햇살로 조형화되기도 한다.


3. 춤추는 군상(群像)-제의적 숭고미로의 승화

또한 황나현의 밀림 속 이야기에는 춤추는 원시부족들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등장시키며 회화적 재미를 던진다. 기쁨의 몸짓으로 가득한 인간 군상들은 입을 벌리고 극적인 제스처를 통해 인간이 돌아 가야할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환희를 표현해 낸다. 태고의 인류가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 왔던 원형의 지혜를  계승한 원시부족들의 언어는 매우 주술적이고 상징적이라 할 수 있겠다. 단지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으로 인하여 그 언어를 망각하였을 뿐이리라. 작가가 그려낸 숨이 멎도록 아름다운 밀림속의 향연을 감사로 되돌리는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포즈는 황홀한 찬탄 의식의 울림을 만듦으로써, 시각으로 완성할 수 없는 청각의 요소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할 것이다. 


4. 입체와 평면의 조우(遭遇) 그리고 핑크 환타지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자연예찬은 얼룩말이 가진 조형의 아름다움을 화면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면, 측면, 부감으로 얼룩말이 가진 생김새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클로즈업된 말은 작가가 오랜 관찰을 통해 습득한 것으로 대상의 본성을 적절하게 설명해 내는 언어로 이해된다. 얼룩말의 입체적이며 사실적인 형태는 평면적이며 기하형태의 잎으로 가득히 채운 신비한 숲과 조우하게 되는데, 입체와 평면이 동시 구사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현대적인 감수성이라 할 수 있는데 면과 면이 만나는 선이 견고한 형태로 완성되어 일러스트와 같이 전체적으로 디자인화 된 조형세계를 연출하였다.

색의 섞임으로 만들어 놓은 작가의 실험적인 색의 세계는  단계적으로 시선을 끄는 명료한 색의 향연을 표현한다. 핑크는 현대 팝아트에서 가장 많은 대중성을 확보한 색으로써, 마음을 안정화시키며 고통을 이완해 주는 봄을 대표하는 색이자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강하게 시선을 잡는 작가의 분홍빛은 자연에서 건져 올려낸 환희와 희망을 가시화한 것이다.


5. 꿈과 희망의 ‘얼룩말의 숲’

작가 황나현의 화면은 현대사회의 환경파괴 심각성과 인류자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비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고민은 자연합일의 철학을 작가 고유의 경험으로 용해시킴으로써 얼룩말을 배태한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원초적 생명이 꿈틀거리는 이국적 풍경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는 신비로운 숲이 있는 에덴동산의 파라다이스와 닮았다. 이 에덴동산은 조물주가 창조한 처음의 그곳일 수도 피터 펜이 사는 네버랜드 일 수 있지만 분명코 그것은 인류가 보존하고 교감하며 돌아가야만 할 곳, 눈이 부시게 푸르른 자연이라는 것이다. 명확한 형태와 직관적인 색감으로 완성된 ‘얼룩말의 숲’은 우리들에게 동심으로 빠져 들어가 꿈과 희망이 가득한  행복한 안식처로 전해져 온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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