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2-09-06 ~ 2012-12-16
이우환
062.613.7100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이우환>
○ 전 시 명 :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이우환>
○ 전시기간 : ’12. 9. 6(목) ~ 12. 9(일)
○ 개막행사 : ’12. 9. 6(목) 오후 3시, 1층 로비
* 하정웅 제5차기증식과 함께 진행
○ 전시장소 : 광주시립미술관 3층 제5, 6전시실
○ 작 품 수 : 35점(회화)
○ 전시취지 및 의의
- 광주시립미술관 20년의 역사를 함께해 온 하정웅컬렉션의 진수 중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이우환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코자 마련되었다.
- 하정웅명예관장의 기증작품(오는 9월초 5차기증 포함 총2,302점) 중에 이우환의 작품은 1993년 13점, 2003년 4점, 2012년 18점 등 총35점에 달한다.
- 전시는 1974년작 '점으로부터'를 비롯하여, 1979년과 1982년작 '관계항(Relatum) image', 1980년부터 1984년 사이 제작된 '선으로부터', '바람으로부터', '동풍' 시리즈, 'In the ruins'(1984), 'With winds'(1990), 'Correspondence'(1992), 'Silently'(2006), 'Dialogue'(2012) 등이다.
- 광주시립미술관의 이우환 작품 소장규모는 국내 최고수준으로서 이우환 작품은 하정웅컬렉션의 핵심으로 하정웅의 정신과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하였다.
- 이우환 40여년 회화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매우 귀한 시간이 될 것이며, 전시를 통해 이우환과 하정웅의 만남, 광주와의 만남 등 이우환의 예술세계의 핵심인 만남의 의미가 확인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만남과 조응 그리고 울림
김희랑(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만남 : 이우환과 하정웅 그리고 광주시립미술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일이다. 1992년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은 지역 원로작가들의 기증으로 겨우 미술관으로 등록할 수 있을 정도의 열악한 소장품만을 갖춘 형편이었는데, 1993년 재일교포 하정웅(현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의 기증을 통해 미술관다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1993년 7월 21일 이루어진 하정웅 제1차기증은 하정웅컬렉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일작가 6명, 전화황 곽인식 이우환 문승근 송영옥의 작품 212점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이우환의 작품은 총13점이 포함되었다. 주목할 점은 13점의 작품 안에는 1974년작 '점으로부터'를 비롯하여, 1979년과 1982년작 '관계항(Relatum) image', 1980년부터 1984년 사이 제작된 '선으로부터', '바람으로부터', '동풍' 시리즈 등 1974년부터 1984년 사이 이우환 회화의 정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우환과 하정웅의 인연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지난 2007년 우리미술관에서 개최했었던 하정웅컬렉션특선전 '재일(在日)의 꽃' 카다로그에서 하정웅이 밝힌 이우환과의 인연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0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권위 있는 미술잡지로 알려져 있는『미즈에』(『みずゑ』1980년 12월호, 현재폐간)에 이우환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한 특집기사가 실렸고, 이전까지 이우환에 대해 한국에서 건너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정도로 알고 있던 하정웅에게 그 기사는 한 민족으로서의 자랑스러움과 신선한 감동과 자극을 준다. 그리고 하정웅은 잡지사에 연락하여 재고 500부를 몽땅 구입하게 된다. 구입의 목적은 지인과 미술관계자들에게 같은 민족의 한사람으로서 이우환의 작품세계와 활약상을 알리고자함이 전부였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1984년 이우환의 프랑스 파리 전시경비를 지원하면서 이우환 작품의 수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정웅컬렉션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하정웅은 작가의 전모를 알 수 있도록 하기위해 시대별 대표작들을 요청하여 13점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9년 후 당시 수집한 전작품은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되었다. 하정웅 인생의 모토인, '인연을 소중히...'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한다.
하정웅과 광주시립미술관의 인연은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 이번 9월 하정웅 제5차기증이 이루어지면서 총기증작품 수는 2,302점에 달한다. 그 동안 이우환의 작품은 2003년 3차 기증에 '출항지'(1990년) 4점이 추가되었고, 5차 기증에는 1984년부터 2012년까지의 작품들 'In the ruins', 'With winds', 'Correspondence', 'Silently', 'Dialogue' 등 18점이 포함되었다. 이로써 광주시립미술관은 총35점의 이우환 작품을 소장함에 따라 명실상부 이우환 회화의 전모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사실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의 초기부터 최근까지 40여년 회화의 전시리즈와 대표작을 고루 소장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의 예산수준을 고려해 보았을 때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예산이 허락한다 하더라도 40여년전 과거 작품들은 그 희귀성 때문에 전 시대의 작품을 두루 수집한다는 것은 도저히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우환과 하정웅의 만남은 말로써 이루다 형용하기 힘든 기적을 만들어주었다. 한 민족으로서의 강한 끌림에 의한 관심과 응원이 이우환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다시 조국에 기증이라는 아름다운 정신의 발로를 통해 이우환의 예술세계는 광주사람과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우환 작품은 하정웅컬렉션의 핵심으로 하정웅의 정신과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하였으며, 우리에게 큰 감동을 체험하게 하게 함으로써 더 깊은 울림의 세계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우환 예술의 시작과 '모노하(もの派)'
1960년대 중후반 일본은 도쿄올림픽이후 '황금 1960년대'라 불릴 정도로 고도의 경제성장과 서민생활의 안정화를 이룬다. 한편 일본의 예술계는 급속한 산업화와 서구화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식 가운데 전위적인 다양한 활동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의 주요 전위적 그룹으로는 1954년 고베지역에서 결성된 구타이(具體 美術協會), 1956년 큐슈지역에 일어난 큐슈하(九州派)', 도쿄의 '네오 다다이즘 오르가나이저(Neo Dadaism Organizer)'와 '하이레드 센터(Hi Red Center)' 등이 있었다. 특히 1949년부터 시작된 요미우리 신문사 주최의 '요미우리 앙데팡당전'은 1960년대 들어 일본의 전위적 현대미술 그룹들의 전초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당시 이후환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로 전향한 후 자신의 예술관에 대한 글쓰기와 무명화가로서 당시의 일본 현대미술의 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1968년 열린 <트릭스 앤 비전(Tricks&Vision)-도둑맞은 눈>전을 이우환은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 전시는 눈속임을 주제로 시각적인 모든 것의 불확실성을 제시하였는데, 후에 '모노하(もの派)'로 불리게 될 일본의 신세대 젊은 작가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시각적 '착시효과'에 관심을 가진 이우환은 1968년 '재팬 아트 페스티벌'에 갈라진 철판과 유리를 포개놓고 돌을 올려놔 마치 유리가 깨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출품하려 했지만 국적문제로 참가하지 못했다. 그 후 1969년 도쿄도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국제청년미술가전'에 뫼비우스의 띠를 평면화한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제4의 구조A>와 <제4의 구조B>를 출품하여 일본문화포럼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트릭(Trick)'에 대한 이우환의 생각에 주목해 보자. '트릭에서 어긋남으로의 과정에서 작품의 반복성이나 관계성을 발견하고, 나아가 표현의 비대상적 세계로서의 장(場)의 문제로 뛰었다. 돌과 솜의 어울림으로부터 돌과 큐션과 라이트와 공간과의 대응관계에 이르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점에서' '선에서'라는 차이와 반복의 회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무한으로서의 장소적 전개를 탐색해갔다.'
이우환의 관점에서 '트릭', 즉 '시각적 착시현상'은 우리가 기존에 익숙해 있던 일반적 세계와 질서를 뒤집어보는 하나의 장치로 다가왔을 것이다. 즉 트릭이라는 장치를 통해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한 세계와 사고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고, 트릭은 일종의 넌센스와 같은 것으로 별 의미 없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제공한다. 이는 이우환이 평생 그토록 추구했던 예술의 의미 즉 깨달음의 순간, 나와 너와 우리, 관계, 시간과 공간, 세계와의 만남과 연관된 그 순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트릭은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방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는 다시 그의 예술의 의미, 즉 창작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이우환이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 또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예술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예민한 감각으로 알아차리고 이를 재-제시하는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창작물은 어떤 의도가 개입되거나 완결성을 띠면 곤란하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재-제시되어진 예술작품이 어떠한 울림(깨달음)을 만들어냈을 때 비로서 예술작품으로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고, 훌륭한 예술작품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70년대 초는 정치 경제 문화사상면에서 큰 전환기로서 새로운 표현이 절실한 시대였다. 뜨거운 시대적 열기 속에서 이우환의 작품활동 또한 실험적이었고 자신의 예술관을 펼쳐 보이기 위해 분주한 시기였다. 1968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일미술교류전 '한국현대회화전'이 열렸고, 이우환은 채도와 명도가 다른 핑크색 물감을 분무기로 뿌려 제작한 300호 대작 3점을 출품하였다. 그의 작품은 당시 전시에 참가하였던 박서보에게 강한 충격과 인상을 주었고, 이후 이우환은 196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의 전개과정에서 '변수'이자 '동인(動因)'이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제1회 현대조각전에 출품된 세키네 노부오의 작품 <위상-대지>를 보았고, 1969년 세키네 노부오론을 발표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 무렵 많은 글들을 발표하고 있었는데, 1969년 3월에는 미술잡지 <비주츠 테초> 평론에 공모하여 '사물에서 존재로'가 입선하였고, 1971년 그의 대표적 저서 <만남을 찾아서-새로운 예술의 시작에>를 발표한다.
1960년대 말 일본은 산업사회의 급속한 도약으로 상품 제작 및 수출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미술계에서는 만드는 것에 대한 반항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회화나 조각에서 가능하면 손대는 것을 자제하는 운동, 즉 모노하 운동이 일어났고, 이우환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다카마쓰 지로(1970년대), 다나카 신타로〔田中信太郞〕(1970년대), 세키네 노부오, 스가 기시오, 고시미즈 스스무〔小淸水漸〕, 에노쿠라 코오지〔倉康二〕,다카야마 노보루〔高山登〕, 요시다 가츠로〔吉田克朗〕, 나리타 가츠히코〔成田克彦〕, 혼다 신고〔本田眞吾〕, 이누마키 겐지〔狗卷賢二〕, 노무라 진〔野村仁〕, 이마이 노리오〔今井祝雄〕, 하라구치 노리유키〔原口典之〕, 후지이 히로시〔藤井博〕……. 이들은 하나의 깃발을 내걸거나 도당을 짜거나 하지 않고, 각각 독불장군이었지만 그러나 잘 만나고 잘 토론했다.' 일반적인 미술운동 그룹과는 달리 공동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공통의 시대 비판의식과 유사한 예술관을 지닌 이들은 후에 '모노하(もの派)'라는 이름으로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고 있다. ''모노하(もの派)'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로 하는' 일, 신체를 개재시켜 거기 있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장과의 재포착을 행하는 일, 곧 사물이나 장을 가능한 한 이미지로 비뚤어지게 하거나 내면화하지 않고, 그것을 살리는 방향으로, 옮겨 놓거나 다시 짜거나 하여 지각의 상태를 꾸며내는 것이 표현의 방법인 바이다. 자연물이나 공업용재를 뉴트럴(neutral)하게 사용하여 벽, 코너, 마루 등의 공간에 맞닥뜨린 것도 세계와의 직접적이고 상호적인 걸림새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모노하(もの派)에 대한 이우환의 소견을 보면,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추구하고 있는 이우환 자신의 예술관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간자로서의 삶
'나는 조선인 작가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항상 '조선인 대(對) 작가'라는 사실을 모면하지 못한다. 외국에 적을 두고 있는 한국의 조선인이며, 도쿄에서 애태우고 있는 미술작가이기 때문에. 이건 아무래도 나의 비극적 현실이자 위극적(僞劇的) 요소인 것 같다. 암에서 깨어나면 항상 자가당착에 빠져 기쁨과 고통을 끊임없이 맛보지 않을 수 없는, 축복받은 인간이라고나 할까. ....중략... 조선이고 싶은 것과 작가이고 싶은 것을 언제까지고 끝없이 견주어 보고 정면에서 충돌시키면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삶의 방식 속에서 절대모순의 자기동일, 그 실존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고 싶다.'
193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어린시절 동초(東樵) 황견용(黃見龍)으로부터 붓글씨와 그림을 익혔다. 이는 훗날 반복적으로 점을 찍고 선을 긋는 이우환 회화의 원형으로 작용한다. 음악과 문학, 미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지만 결국 다시 미술로 전향하여 일본에서 작가활동을 시작한다. 위의 글은 거의 무명이었던 시절, 일본 내 타자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정체성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지향점 사이에서 느꼈던 혼돈과 나름의 신념을 담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일본 한국 유럽 등을 왕래하며 활동하고 있는 이우환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마치 탁구공처럼 되받아쳐야 할 중간자로 몰아세워져 어느 쪽에서도 내부 사람으로 인정하려 들지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의 주제가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만남과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속에는 일본과 유럽을 옮겨 다니며 살면서 낯선 환경과의 만남에서 오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과 세계관의 확장 등 수많은 체험이 녹아 있다. 그에게 있어 '만남과 관계'의 문제는 절실하고도 치열한 문제였을 것이다.
'거리의 역학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소외성의 거리는 아픔이며, 또한 힘이다. 보거나 보이고 있다는 것은 무척 쓰리다. 그러나 이 거북한, 장소 아닌 장소야말로 살아 있는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이성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묵묵히 예술가로서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수도자와 같은 이우환, 위 글에서 힘겹지만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꿋꿋한 신념이 보인다. 존재의 의미와 형태, 내용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한 유동적인 세계 속에서 있는 자기존재를 인식하고 그대로를 겸허한 자세로 드러냄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고 무한의 세계와 만남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관의 근거이기도 하다.
현진건의 '고향'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일본 옷과 옥양목 저고리와 중국식 바지를 입어 한중일 3국의 옷을 한 몸에 감은 듯한 기이한 복장을 하고 있다. 복장으로 세 나라의 편력을 암시하고 있는 그는 일본말도 곧잘 하고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다. 일제시대의 처참한 현실을 비판적 관점에서 쓰고 있는 소설인데, 어쩌면 처한 강도가 다를 뿐 소위 글로벌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넘치는 정보와 테크놀로지의 범람 속에 위치한 오늘날의 예술가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의 조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자기 내면화'를 거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외부와의 매개 : 신체
이우환은 1970년대부터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의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그음으로서 동일성과 차이성을 통한 순환과 무한의 개념을 드러낸다. 1970년대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반복행위는 일종의 수행처럼 느껴지고, 미세한 차이를 동반하고 있지만 절제미가 돋보인다. 반면 1980년대 '바람' 시리즈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붓놀림이 화면 가득하다. '바람' 시리즈에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에 반해 작가스스로는 “나는 가능하면 뉴트럴(neutral)한 점을 찍고자 했다. 그러려면 기계처럼 철저해야 하는데 손이 떨리고 몸이 못 따라가 맘대로 안 됐다. 해서 내놓은 게 <바람으로부터>였다. 그것은 내 안이 아니고, 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누구는 ‘자유분방’이라 말했지만 나는 곤혹스러웠다.”라고 회고한다. '바람' 시리즈는 작가의 의지대로 실행되지 않아 일종의 대안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제작한 작품이지만 오히려 보는 이들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예술작품에서 작가의 의도와 개입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예술을 실행하는 매개로써 신체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이우환의 점이나 선은 흔히들 일반인들이 예술가에게서 기대하는(?) 한숨에 그어 내린 일필휘지(一筆揮之)가 아니다. 여백의 울림을 줄 수 있는 화면의 컴포지션(composition)을 만들어내기까지 이리재고 저리재고 수십번을 측량해서 점의 위치를 정한다. 그리고 점하나를 찍기까지 4-5차례의 붓질이 요구되고, 한 번의 칠이 마르기까지 일주일정도 걸리므로 점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40여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치밀한 계산과 훈련된 기술, 집적된 노동력으로 보여 지는 그의 작품은 고도의 집중력과 에너지가 응축된 절제된 행위가 동시에 요구된다.
아이디어와 개념이 예술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어시스턴트(assistant) 또는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요즘, 예술활동에 있어 '신체'의 역할은 점점 미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우환은 신체란 자신의 것이자 외계와 연결된 양의적(兩義的)인 것으로 사상이나 아이디어와 함께 표현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인식한다. '신체는 외부와 내부를 매개하며, 인간을 보다 넓게 열린 것에 눈뜨게 해준다. 의식과 신체는 상호협동하는 일은 있어도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식보다 훨씬 큰 세계와 걸려 있는 것이 신체이다. 신체는 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신체의 존재성이나 그 역할을 살림으로써 인간은 외계를 알고 초월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신체에 구애하는 이유도 이점이다.' 라고 이우환은 말한다. 그의 작품은 일정한 장소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신체의 리듬과 호흡을 조절하면서 얻어진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예술을 통해 타자, 세계 등 외부와의 만남을 추구하는 그에게 신체는 외부성과 맞닿고 외부성을 끌어들여 무한으로 안내하는 도구인 것이다.
무한의 제시
이우환은 회화가 성립하는 장(場)에 주목하여 점과 선 등의 조응(照應, Correspondence)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긴장감과 무한감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조각에서는 공업용 재료인 뉴트럴(neutral)한 철판과 자연물인 돌을 대응시키고, 교배시킴으로써 타자와의 만남에 추구한다. ‘관계항’ ‘조응’ ‘대화’ 등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관심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알 수 없는 부분과 아는 부분의 상호 연관성을 찾는 것, 즉 안과 밖이 관계하는 장(場)을 만드는 데 있다.
어느 날 문득 과거의 일(사건)이 확연히 떠오를 때가 있다. 그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일들의 인과관계가 술술 풀리고, 나와 대립관계였던 상대방의 마음이 선명하게 이해되는 순간이 있다. 이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잠재되어 있던 트라우마(trauma)가 치유되기도 하고, 오랜 시간 나를 짓누르고 있던 의혹이 풀리기도 한다.
매일 보거나 자주 가는 장소 혹은 풍경이 있다. 나의 경우를 보면, 광주시립미술관이 오래된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터라 매일 아침 공원의 숲길을 따라 출근한다. 매일 다니는 그 길이지만 어느 날 문득 자연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이 가슴 벅차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의 소소한 욕심과 그간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분노들에서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 순간 나는 행복감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짐을 느낀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치유의 순간이자 깨달음의 순간이다.
이우환의 말을 인용하자면 '마쓰오 바쇼의 시 중에 <오래된 연못, 개구리가 뛰어드는 소리>라는 것이 있다. 한순간의 터트려짐에서 시인은 커다란 우주의 울림을 감득하고 있다. 내 일 또한 일상의 무감각한 세계에 자극적인 터트림을 짜내려는 데 있다. 그것이 시적인 번뜩임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기를 바란다. ...중략... 어쨌든 나의 조촐한 '터트림'은 수다가 아닌, 반대로 여백에 눈길을 주고 침묵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드는 소리, 가을날 하늘하늘 내 앞에 뚝 떨어져 머릿속에 감도는 은행잎.... 우리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순간, 즉 '터트림'을 주는 순간이다. 이우환이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순간이다. 일상적인 것 혹은 흔하디흔한 상황에서 예술가는 예민한 감성으로 그러한 순간을 감지해 내고, 이를 재-제시하는 것, 이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이우환의 제시로써 대수롭지 않았던 것은 하나의 점은 여백과의 묘한 조화와 긴장감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게 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둘러싼 타자들을 만나게 한다. 공간과 장소는 무한히 확장되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게 한다. 그러한 만남과 관계맺음, 열림은 '여백의 울림'에 의해 더욱 확장되고 퍼져 나간다. 오랜 세월 자연의 체취와 흔적을 담고 있는 돌가루를 섞어 그라데이션으로 그어낸 점은 깊이 있는 절제를 드러낸다. 그 어떤 외침이나 변명과 수사(修辭)보다 정적이야말로 시공감적 깊이를 유발하고 자기를 성찰케 하는 여운을 남긴다. 고요를 품은 이우환의 여백은 정적의 시다.
이 세상에 완성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과정이고 현상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물과 자연, 불변할 것만 같은 모든 것들은 억겁의 시간과 공간 속의 어느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풍화작용으로 부식하고 모양과 색과 냄새 등 그것을 둘러싼 껍데기들은 변한다. 내용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진리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언제까지 진리가 될 수 있을까? 마음과 생각과 사상과 신념과 의지도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다. 사회와 문화가 그렇고, 자연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예술이 그렇다. 우리는 늘 가는 도중, 여행의 길목에 서있을 뿐이다.
부드럽고 두툼한 미색 바탕위에 없었던 듯 있었던 듯 떠올라 있는 점(點)은 조용한 긴장감과 묘한 여운을 남기며, 고요히 흘러가는 세계의 어느 길목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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