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12-11-16 ~ 2012-12-26
료이치 구로카와, 박자현, 손정은, 송진희, 헤르만 콜겐,미하이 그레쿠
유료
+82.2.760.4602
재난학을 뜻하는 신조어인 '카타스트로폴로지'를 제목으로 일상과 공존하는 현대의 재난이 어떻게 우리의 감각을 미시적 차원에서 바꾸어놓았는지를 표현한 작가 6인의 퍼포먼스, 영상, 설치 회화 작업.
2012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전
< 카타스트로폴로지 >
(C a t a s t r o p h o l o g y) 개최
아르코미술관 2012 기획공모전
<카타스트로폴로지> 개최
불확실성과 불안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재난'에 대한 예술의 개입
‘재난의 경험은 세계를 접하는 우리의 미시적인 감각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 아르코미술관은 2012년 11월 16일부터 12월 26일까지 2012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전 <카타스트로폴로지(Catastrophology)>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독립 큐레이터에게 전시기회를 제공하여 기획 역량을 지원하고, 아르코미술관이 기획의 다원성을 위해 진행한 “2012년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 당선” 전시입니다.
□ 전시 개요
● 주 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Arts Council Korea, Arko Art Center)
● 전 시 명: 카타스트로폴로지 (Catastrophology)
● 기자 간담회: 2012. 11. 16(금) 오후 2시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
● 전 시 기 간: 2012. 11. 16(금) ~ 12. 26(수) ● 전시장소: 아르코미술관 전관
● 개 막 식: 2012. 11. 16(금) 오후 6시 아르코미술관 2층 아카이브실
● 전 시 기 획: 조선령 / 독립 큐레이터
● 참 여 작 가: 미하이 그레쿠 Mihai Grecu (루마니아 Rumania), 허먼 콜겐 Herman Kolgen (캐나다 Canada)
료이치 구로카와 Ryoichi Kurokawa (일본 Japan), 박자현 Ja Hyun PARK (한국 Korea)
손정은 Jeung Eun SHON (한국 Korea), 송진희 Jinhee SONG (한국 Korea)
● 전 시 관 람: 오전 11시 – 오후 7시 (매표마감 오후 6:3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 문 의 : 02-760-4850
□ 전시 개념
불확실성과 불안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재난'에 대해 예술이 어떻게 개입하는가를 다루는 전시. 하지만 특정한 재난을 재현하거나 재난에 대한 분석 혹은 대응방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재난의 경험이 어떻게 미시적 차원에서 세계를 접하는 우리의 감각을 바꾸어놓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전시이다.
‘재난’이라는 단어가 ‘사고’라는 단어보다 더 파괴적이고 두려운 느낌을 주는 것은, 그것이 한 개인의 죽음이나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의 붕괴를 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후쿠시마에서 온 경악스러운 영상과 사진들은 우리에게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좌표의 상실과 상식적인 인과관계의 종말을 경험하게 했다. 장난감처럼 팽개쳐져 있는 비행기들, 육지에 난파한 거대한 배의 사진은 우리 지각의 기준점을 붕괴시켰다.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물질 중 가장 치명적인 플루토늄의 반감기가 2만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 시간이 의미하는 바가 우리의 삶과 상상력 훨씬 너머에 있다는 사실에 망연해졌다.
우연히 들이닥치는 폭력적인 힘에 의해 현실의 범주와 안전한 인과관계의 틀이 무너지는 것을 재난이라고 부른다면, 오늘날 우리는 도처에서 재난에 맞닥뜨리고 있다. 몇 달 전 미국의 한 영화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에서, 관객들은 순간 영화 속의 총소리와 실제의 총소리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관객이 보고 있던 영화 그 자체가 거대한 재난과 공포를 다룬 것이었음을 상기해볼 때, 우리는 허구와 현실의 안전한 테두리가 붕괴했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물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는 재난의 당사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목격자 혹은 구경꾼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삶의 위치에서 죽음의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재난과 죽음은 도처에서 우리를 찾아내고 우리를 엄습한다. 재난의 재현과 재난 그 자체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좁혀진 시대에 살기에, 우리 생존자들과 죽은 이들 사이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다. 일상과 재난의 경계선은 무너져가고 있다.
현대 사회의 재난은 단 한 번에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어버리는 총체적 충격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삶 속으로 스며들고 삶 자체와 공존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오늘날 재난은 잡음, 물리적 충격, 형체 없는 덩어리들로 우리에게 몰려온다. 소리도 냄새도 색깔도 없기에 도무지 대응책이 가늠되지 않는 방사능, 미처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퍼져나가는 전지구적 전염병, 이제 이상기후란 말을 붙이는 게 더 이상한 지경이 되어버린 기후변화, 가장 진부한 일상의 무대인 영화관, 지하철, 학교에서 일어나는 돌연한 폭력...
재난이 이토록 자주, 이토록 가깝게 경험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마주치는 미디어의 생생한 이미지들과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소식들이 우리의 육체를 재난의 현장으로 시차 없이 옮겨놓기 때문일 것이다. 상당수의 사건들이 우리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피부로 느껴지는 재난의 생생한 감각성을 제거하지 못한다. 통신의 발달과 고화질 미디어의 발달은 거리를 소멸시키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붕괴시킨다. 뉴스의 영상들, 인터넷의 글자들은 이미 우리의 두뇌가 아니라 신경세포에, 피부에 각인된다.
‘재난학’이라는 신조어를 제목으로 삼은 이 전시 <카타스트로폴로지>는 재난의 대책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책임 소재를 묻고자 기획된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일들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다른 분야에서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예술의 역할은 좀 다른 곳에 있다. 이 전시의 초점은 일상과 공존하는 현대의 재난이 어떻게 우리의 감각을 미시적 차원에서 바꾸어놓았는가를 동시대 미술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은 일상에 도래한 균열과 심연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환상 없이 우리의 리얼리티를 이해하도록 노력한다.
미하이 그레쿠, 헤르만 콜겐, 료이치 구로카와, 박자현, 손정은, 송진희. 이 여섯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수행한다. 퍼포먼스, 영상, 설치, 회화라는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하지만 이 작가들은 미세한 극소감각에 집중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나 불편함의 느낌을 다룬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들이 다루는 이미지나 오브제들은 그 어떤 것의 기호나 상징이 아니라 육체에 흔적을 남기는 물리적 진동이며 피부에 충격을 주는 촉각적인 사건이다. 이들의 작업은 특정한 재난이나 사건을 명시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작품들은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미세한 감각의 뒤틀림을 사물이나 이미지의 존재감 그 자체만으로 어떠한 설명도 없이 보여주는 쪽에 속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볼 때, 이 작품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틀 그 자체를 의문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과 맞닿아 있다.
□ 참여작가 및 작품소개
(1) 미하이 그레쿠(Mihai Grecu)
1981년 루마니아 세베스(Sebes) 출생. 루마니아와 파리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2005년 이래 루마니아의 프랑스, 독일에서 4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제적인 실험영화 페스티벌 및 미디어 아트 전시에 다수 초대되었으며 노르웨이 Oslo screen festival의 best video award(2008)를 비롯해서, 러시아 Volgograd의 international video festival Volgograd의 first priz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tterdam의 Tiger Awards(2009) 등을 수상했다.
주로 실사 영상과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미하이 그레쿠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필름과 초현실주의 영화 사이의 어딘가에 머무는 감각적이면서 몽환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그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한 풍경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부유하는 듯 느껴진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암시적인 영상은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는 심리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며 어떤 파열의 지점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레쿠의 작품은 직접적으로는 어떠한 사회적 현실도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침묵과 여백이 지배하는 조용한 화면 뒤에는 환경오염, 전쟁, 테러 등 현대의 다양한 위기들이 초래한 불안의 감정과 그에 대한 고발의 시선이 가로놓여 있다.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귀에 거슬리는 전자적 사운드가 무의식에서 솟아나오는 신경증적 감각을 적절히 표현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기가 도시를 감싸는 모습을 묘사하여 9.11을 연상시키는 <이리듐(Iridium)>(2006)(전시 출품작), 일상을 서서히 잠식하면서 호흡곤란과 불안을 일으키는 물의 파괴력을 이미지화한 <응고(Coagulate)>(2008), 대인지뢰가 묻혀 있는 칠레의 사막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횡포를 표현한 <지네 태양(Centipede Sun)>(2010) 등이 있다. <We'll become Oil>(2011)(전시 출품작)은 전쟁과 환경파괴에 대한 좀 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막에서 서로 충돌하여 추락하는 헬리콥터들, 붉게 물든 바다와 불타는 기름 등의 이미지들 뒤에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암시가 가로놓여 있지만 작가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이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은 미디어 보도가 누락한 지각의 무의식적 측면을 드러낸다.
(2) 허먼 콜겐(Herman Kolgen)
허먼 콜겐은 캐나다 출신으로 몬트리올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영상 설치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1980년대부터 선구적으로 관객참여적인 미디어 퍼포먼스 작업을 해왔으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트렌스메디알레(Transmediale), 베니스 비엔날레 등 유수의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및 비엔날레에서 초청 공연을 한 바 있다. Independent Film Festival of New York and Los Angeles에서 Best Experimental Film Award을 받았으며 Festival International Vidéoforme de Clermont-Ferrand (France)에서 Prix du Conseil Général을 수상했다. 대표적 퍼포먼스로 작품으로는 이번 전시의 오프닝 공연으로 개최되는 <더스트>와, 물 속에서 느끼는 인간 신체의 압박을 모티브로 한 <인젝트(Inject)>, 재난에 휩싸인 도시의 풍경을 담담하게 표현한 <오버랩(Overlapp)> 등이 있다.
콜겐의 대표적인 작품 경향은 고해상도와 압도적 규모를 동반하는 현장감 있는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이다. 퍼포먼스와 연관된 영상/사운드 설치 작업을 갤러리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주로 지각적 경험을 극대화 혹은 극소화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어떻게 테크놀러지가 어떻게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지각의 무의식적 차원에 접근하는가를 다룬다. 지각의 한계를 추적하는 이러한 작업들은 의미와 무의미, 현실과 허구, 신체와 정신 사이의 견고한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세계에 잠재된 공포와 불안을 가시화한다. 이를 통해 그는 미디어 아트의 매체적 특성과 사회심리학적 관심사를 연결시키며 환경과 신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는 오프닝 퍼포먼스 <더스트>(설명은 ‘부대행사’ 항목 참조)와 설치 작품 <더스트 리스트릭션>을 선보인다. 먼지의 움직임을 극도로 확대한 작품인 <더스트>와 대조적으로 <더스트 리스트릭션>은 극소 감각에 집중한다. 가벽에 구멍을 뚫고 그 뒤에 microscope와 모니터를 설치하여 관객들이 구멍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행위가 가질법한 관음적 쾌락은 관객의 눈을 파고드는 낯선 영상/사운드와의 조우로 인해 불안의 느낌으로 변한다. 눈과 영상의 근접 조우는 재현된 세계와 현실의 경계선을 흐리며 촉각적 충격을 유발한다. 안전한 거리 혹은 매개 없이 공포의 근원과 직접 마주대했다는 느낌이 주는 효과를 갖는다.
(3) 료이치 구로카와(Ryoichi Kurokawa)
료이치 구로카와는 1978년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 레코딩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Tate Modern[UK], Venice Biennale[IT], Transmediale[DE], and Sonar[ES]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2010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상(Prix Ars Electronica)의 디지털 음악 및 사운드 아트(Digital Musics & Sound Art) 부문에서 Golden Nica상을 수상했다.
료이치 구로카와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전자적 조작을 통한 퍼포먼스 및 영상 설치 작품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현대인의 지각에 내재한 불안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구로카와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는 ‘전환’과 ‘변형’이다. 그의 작품은 종종 원거리 시각과 근접 시각, 재현된 형상과 픽셀화된 컴퓨터 그래픽, 정지된 이미지와 동영상, 다채널과 단채널, 빛과 어둠 사이의 불규칙한 전환과 변형을 통해 테크놀러지에 의해 매개된 지각의 유동적이고 파편적인 특성을 표현한다.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다가 다시 조각조각 해체되고 또 다시 모여드는 이미지와 사운드들의 흐름은 우리의 지각을 구성하는 견고한 토대가 사라졌다는 현실을 은유한다.
전시 출품작인 <Ground>는 3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영상/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불규칙하게 암전과 밝아짐을 반복하는 3개의 모니터들에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풍경 같은 이미지와 더불어 여러 가지 소리들(탱크나 총에서 나는 소리, 아이들의 목소리, 개 짖는 소리, 음악 등등)이 겹쳐진다. 이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한 보도 사진가가 중동 전쟁에서 수년간 촬영한 사진들이지만, <Ground>는 특정한 전쟁의 현장을 탐구하거나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급격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기묘하게 변형되고 일그러지는 이미지/사운드의 파편적인 명멸 그 자체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감각적이고 매체적인 차원에서 기억과 지각의 불안정함을 표현하는 이러한 방식은 손쉬운 감정이입이나 상투적인 재현 태도를 배격하고 오히려 효과적으로 전쟁과 같은 재난이 우리의 감각과 정서, 기억과 지각에 미치는 파국적인 영향력을 전달해준다.
http://www.ryoichikurokawa.com/
(4) 박자현
박자현은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부산과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제10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6년 대안공간 반디에서의 첫 개인전 이래 여러 기획전에 참가하였으며 2011년 부산 KAF 미술관에서 개인전 <플리즈 릴리즈 미>를 개최하였다. 회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자현의 배경 화면을 삭제한 채 무채색으로만 구성된 단일한 인물상을 그린다. 묘사된 인물들은 다양하지만 주로 여대생이나 직장인, 주부처럼 평범한 일상 속의 인물들(특히 여성)이다. 상반신을 보이고 있거나 전신을 다 드러내고 있는 등 구체적인 포즈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허하고 생기가 없으며 마치 시체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때로는 온몸에 끈적한 액체를 뒤집어 쓰고 있거나 얼굴이 부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등 그로테스크한 모습들이지만 화면에는 그 어떤 감정의 표현도 맥락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이 지극히 건조하고 절제된 분위기 덕에 역설적으로 인물들에 가해진 알 수 없는 힘의 폭력성이 극대화된다. 얼핏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보이는 그녀의 작업은 펜으로 종이위에 10만 번 이상의 점을 찍어야만 완성되는, 고도의 끈기와 테크닉을 요하는 노동집약적인 작품이다. 그 결과 화면 속의 인물들은 형태를 갖추고는 있지만 견고한 물질성이 누락된 채 모래알처럼 흩어지거나 녹아내릴 듯 보인다. 웃고 있을 때조차 실체가 없어 보이며, 신체를 갖고 있지만 생명이 없는 인형 같은 느낌을 준다. 불안의 진원지가 특정한 사건이라면 그 사건으로부터 도피하면 되지만, 실체 없는 점들이 모여 형상을 이루는 박자현의 작품에서처럼, 세계를 이루고 있는 토대의 근거 없음 그 자체로부터 불안이 유발된다면, 피할 곳이 없다. 재난은 일상 그 자체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5) 손정은
손정은은 1969년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와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를 졸업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1998년 이래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왔으며 가장 최근의 개인전은 2011년 성곡미술관에서 개최했던 <명명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손정은은 특정한 매체나 재료에 국한되지 않은 장소 특정적인 공간 설치 작업을 하면서, 성, 사랑, 환상, 죽음, 고통 등의 주제를 다루어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다루는 고통이나 죽음은 쾌락이나 삶이라는 범주와 단순히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공존하는 혹은 그것들에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느낌의 연출을 즐겨 하지만 작업에서 부패나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카타스트로폴로지>는 통상 젠더 문제를 다룬다고만 인식되어온 손정은의 작업에 내재한 사회적 뉘앙스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자 한다. 질식과 압박, 폭력과 죽음, 찢어지고 뭉개지는 과정이나 그런 감각에 대한 그녀의 작업은 현대의 재난에 대한 감각적 표현으로 재해석된다.
전시 출품작 <하느님의 만나, 아버지의 젖, 어머니의 정액>은 역시 특정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공간 속에 불규칙하게 설치되는 작품이다. 잘려진 머리들이 얼핏 쓰레기나 시체 더미처럼 쌓여있거나 흩어져 있다. 정체모를 분홍색 그물망들에 얽혀 있는 이 머리들은 참수를 당하거나 어떤 사고 때문에 몸에서 잘려져 나온 듯 보인다. 머리들 위에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액체들은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이 젖이나 정액 같은 에로틱한 액체인 것 같기도 하지만, 구토물 혹은 시체의 내장에서 흘러내리는 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갓 발굴된 고대의 유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의 공간은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와도 같다. 다만 이 무대는 배우도 내러티브 없는, 감각의 현존이 지배하는 드라마이다. 오브제들은 그 어떤 것의 상징이나 기호도 아니다. 어떤 고정된 의미를 재현하지 않는 이 오브제들은 다층적인 감각들 사이를 미끄러지며 명확한 규정을 거부한다. 작품 제목에 나오는 ‘만나(manna)'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비한 음식의 이름으로 모세의 지도 하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주릴 때 하느님이 내려준 양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종교적인 모티프들은 폭력 및 죽음의 감각과 결합하여,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 토대 그 자체의 폭력성과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허약함을 표현한다. 여기서 ‘재난’은 특정한 사건이기를 넘어서 세계를 유지하는 경계의 붕괴 혹은 의미의 소멸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6) 송진희
송진희는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부산에서 작업하고 있다. 주로 실험영화와 비디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독립문화공간 ‘아지트’에서 작업하였으며 무크지 ‘보일러’의 필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신미나토 마을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대안공간 반디의 기획전 <이별과 애도>, 울산 국제 사진 페스티벌 등에 참가했으며 2012년 신세계 갤러리 부산(센텀시티)의 ‘지역신진작가 지원 멘토링’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송진희의 작업은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일상에서 종종 경험되지만 사람들이 쉽게 은폐하거나 무시해버리는 작은 균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특정한 공간 속에 스며들어 있는 잊혀진 기억들이나 버려진 사물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 역시 이 작가의 관심사이다. 송진희의 작품은 사진이나 영상 기록에 대해 사람들이 통상 갖고 있는 인식, 즉 객관성을 배제한 기록성이라는 성격을 이용하여 오히려 강한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전시 출품작 <eat into>(2011)은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단채널 영상 작업이다. 이 작품은 복잡한 설명을 모두 생략한 채 암시적이고 건조한 형식을 통해 재난의 파괴적 힘과 일상의 관성이 만나서 생기는 기묘한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흰 블라인드가 드리워진 흰 벽의 실내에 역시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들어와 앉는다. 책을 읽고 물을 마시는 등 평범한 일상적 행위를 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검은 흙더미가 날아와 방을 점차 뒤엎는다. 그러나 여성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지 알 수 없는 태도로 관성적인 일상의 몸짓을 반복한다. 이 작품은 일상을 덮쳐오는 명백한 폭력과 그것이 가져오는 파국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한 채 애써 일상의 테두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허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꼬집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에 다름 아닌 사건들을 단지 ‘타자에게’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려고 애쓰면서 불안을 잠재우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영상 마지막에 시커멓게 뒤덮인 방이 암시하듯이, 그러한 시도는 좌절되며 우리는 결국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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