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한지와 색으로 피어난 유토피아
차영규 <꽃과 산에서 노닐다>
닥나무를 직접 갈아 만든 한지 위에 담아 낸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동경
직접 빚어 낸 한지 위에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며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차영규 작가의 <꽃과 산에서 노닐다>가 오는 12월 5일부터 2주일 간 공아트스페이스 전관에서 열린다.
차영규는 특유의 깊이 있는 색감과 섬세한 필치, 몽환적 분위기가 어우러진 전통 진채화를 선보이며 오랜 내공을 이어 온 작가이다. 작품으로 사용되는 모든 재료들은 화면의 기본이 되는 한지부터 손수 작가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제작방법을 통해 정형화된 틀을 깨고 색채를 담아내는 화면부터 자연을 닮은 형태를 만들어 내어 평면과 입체의 간극에서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이물감 없이 순수한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은 생명이 가장 충만한 모습을 담아 내는 듯 보이며, 휴식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꽃이 좋아 꽃을 따라갔습니다.
냇물이 좋아 돌밭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왔습니다.
산이 좋아 산을 바라보면서 산촌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맑은 자연의 품이 좋아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장작골에 들어왔습니다.
나의 작업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파한지를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소박하게 자연 속에서 숨쉴 수 있고, 그릴 수 있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에 오직 감사할 뿐이지요.
2011년 5월 장작골에서<작가노트中>
자연에의 동경으로 도시를 떠나 강릉에서 5년 여 간 작품활동을 이어 온 작가는 산천에 피어나는 색색의 꽃과 나비, 동물과 같은 생물체를 통해 생동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을 표현한다. 크고 작게, 붉거나 노랗고 더러는 파랗게 물든 꽃들은 생명이 태동하는 땅과 물 위로 곳곳으로 피어나가며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몽환적인 분위기를 발전적으로 이어가는 동시에 늘 자연과 함께 하기를 그려 온 작가의 이상을 품고 있다.
작가의 자연에 대한 동경은 한지 활용의 변화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한지는 인간과 가장 오래한 재료 중의 하나로 끈기있는 정성과 노력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의 스밈과 번짐의 과정을 통해야만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하다. 작가는 단순히 한지를 재료로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닥나무를 갈아서 종이죽으로 만들고 직접 만든 형틀 위에 성형한 후 서서히 건조하고 채색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거칠고 투박하지만 모나지 않고 구불거리는 선과 겹으로 이어진 외형과 오랜 기다림으로 우러나오는 색감을 통해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유려함을 그대로 이어 받으며 깊이 있는 사유와 여유의 미학을 담아내는 물성으로 발전시켰다. 인위적인 것을 배제한 채 손 끝에서 한지로 피어나는 꽃과 산으로 대변되는 자연은 그가 작가로서 가장 완전하게 이룰 수 있는 자연과의 교감을 담아내는 방식일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위한 목표를 다짐하는 12월, 자연의청아하고 맑은 기운이 생동하는 작품 속에서 새로운 기약을 다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평론
차영규
김상철
한지를 지지체로 삼아 명료한 색채들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채집하여 표현해내는 작가의 작업은 삶에 대한 긍정과 작업에 대한 열의가 물씬 배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관조이자 자연의 외경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다. 한국화가가 지니고 있는 경직된 형식에서 벗어나 분방하고 자유롭게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그 지향은 극히 본질적인 것으로의 접근이라 여겨진다.
한지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그 가치와 의미
김상철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미술평론)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을 기록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때로는 담대한 시대적 담론을 담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극히 개인적인 소소한 사연들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내용들이 축적되고 융합하여 특정한 시대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시대적 감성과 이상을 표출해내기 마련이다.
그간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작가 차영규의 작업은 명징한 채색이 본령을 이루는 것이었다. 수용성 안료를 반복적으로 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은근하고 부드러우며 독특한 깊이를 지닌 채색의 심미는 그의 작업을 견인하는 핵심적인 가치였다. 그것은 흔히 전통적이라는 말로 형용되는 회화 원칙에 충실한 색채심미이자 조형관의 발현이었다. 이러한 작업으로 일관하던 작가의 작업은 최근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진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전혀 새로운 조형적 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작가 개인의 작품에서의 변화를 드러내는 동시에 변화하는 시공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작가와 같이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굳건하게 구축된 자신의 조형세계를 일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야말로 파격적인 변화를 통해 그 면모를 일신하였다. 그것은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근본적인 정체성을 견지하고,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호흡한다는 역설적인 가치관의 실천을 통해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의 새로운 변화는 한지라는 새로운 매재를 통해 촉발되고 구현된다. 작가에게 있어서 한지, 혹은 한지로 대변되는 독특한 물성은 단순한 재료와 형식이라는 소극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업의 본질이자 내용을 이루는 핵심적인 가치로 이해되고 있음이 여실하다. 형상을 그리고 색채를 칠한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매체 자체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의 신장과 확대를 통해 자신의 조형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일종의 조형에 가까운 것이다. 한지가 지니고 있는 물성의 강한 개성을 수용하고 용인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로의 출구를 확보한 작가의 심미 이상은 결국 그간 전통적인 채색작업을 통해 확보되었던 정체성에 대한 궁극적인 접근과 확인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간 우리미술의 특질로 줄곧 회자되는 자연미, 천연성, 무기교적 분방함 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지라는 새로운 매재와의 조우는 작가의 작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둔탁하고 질박한 한지 특유의 물성과 작가의 정제된 감성이 결합한 비정형의 자유롭고 분방한 화면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재료와 표현이라는 말단적인 것에 의한 변화라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조형관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위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상황과 상태를 수용할 수 있음은 작가의 심미 영역이 그만큼 확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통하여 자신의 심미 이상을 구현하고자 함은 바로 우리미술이 지니고 있는 정체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재료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개성과 작가의 조형 의지가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게 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작위와 무작위,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의지를 반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거둬들임으로써 비로소 확보되는 또 다른 가치이자 조형의 묘미이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인간과 자연으로서의 한지가 만나는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독특한 심미 가치이다.
한지와의 조우 이후 일변하였던 작가의 작업은 그 물성과 심미적 특질에의 경도를 여실히 드러내었었다. 한지 특유의 물성을 십분 살린 작업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함을 통해 기존의 작업들에서 견지되었던 형식과 내용에서 탈피한 새로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이에 더하여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또 다른 변화 양태를 통해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새로운 시공과 그의 사유를 표출해 내고 있다. 이전의 작업들이 한지라는 물성과 그 수용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라면, 이번 신작들은 매재와 작가와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통한 개별화가 두드러진다. 한지 고유의 물성은 수용하되 명징한 원색들로 이루어진 강렬한 색채 표현을 통해 작가의 조형의지를 적극 개진하고 있는 신작들은 보다 감각적이고 보다 조형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이는 작가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색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특유의 감성이 반영된 것으로, 한지로 대변되는 우리미술의 특질과 채색으로 상징되는 자기 정체성의 조화를 시도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21세기는 흔히 디지털 시대라 일컬어진다.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라는 기계문명의 절정에서 인간적인 아날로그적 가치는 오로지 예술에 의해서 존중되고 보존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정치하고 감성적인 채색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용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은 바로 당시의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 새로운 문명 상황에서 작가가 제시되고 있는 새로운 조형들은 바로 새로운 문명 상황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성찰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것은 작가가 한지라는 새로운 매재를 통해 발견하고 확인한 자연이라는 또 다른 절대 가치와의 만남이며, 이를 통해 아날로그적 가치를 포착하고 표출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시공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과거 문명과는 달리 선도적이고 독점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평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질서에 의해 다양성과 차별성이 인정되는 시대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과 개인의 사유를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면, 작가는 바로 한지를 통해 촉발된 우리미술의 특질과 자신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정체성의 확인을 통해 자신이 속한 시공을 당당히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의 과감한 변신과 추구의 내용, 그리고 그 구체적인 성과와 지향 등을 새로운 시대 상황과 연계해 보면 그 의미는 보다 극명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