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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정 : 애정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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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애정지도
전시장소 : 갤러리 도스 /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115-52 / 02 737 4678www.gallerydos.com
전시일정 : 2012년 12월 26일 ~ 1213년 1월 1일
관람시간 : am 11:00 ~pm 06:00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배미정 작가노트
 
내 작업의 대부분은 대상과 대상간의 관계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결국 우리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점은 아주 미묘한 공간을 유발 시킨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타인의 일상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나의 작업방식이다. 그들의 일상에 다가가기 위한 공간은 멀찍이 물러난 나의 시선에 의해 환상의 것이 된다.
그들의 삶에 끼어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내 자신의 시선뿐 아니라 또 다른 마음 둘 곳 없는 자들이 어떤 공간을 바라보고 애착을 가지고 위안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만의 마음의 장소이지만 실재하는 공간을 알아보고 그 장소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받았다. GPS좌표를 활용하여 그 공간을 직접 발로 다니며 드로잉으로 ‘애정지도’ 를 만들고 그 장소들을 회화로 옮겼다.
사람들과의 인터뷰 과정 속에서 그들이 말한 공간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보려 하지만 결국 그 장소에서 내가 느낀 나의 이기적 시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가 관계 속 거리감이 되고 새로운 공간이 된다. 일상의 모습을 배경으로 신기루처럼 있지만 있지 않기도 한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서

이선영 | 미술평론가

 

배미정의 ‘애정지도’ 전은 인터뷰를 통해 상대가 애정을 가지는 장소를 취재하고 그 장소를 작품화하는 작업이다. 모르는 이를 포함한 수 십 명과의 쉽지 않았을 인터뷰는 그녀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늦게나마 어릴 적 꿈을 찾아 회화를 전공했던 개인사적 이력이 반영되어 있다. 지인부터 모르는 이까지 타자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되며, 작품은 공감과 차이가 드러나는 장이다. 그러나 그들이 애착을 가지는 공간을 제3자가 재구성하는 것에는 간격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공간은 성큼성큼 도약하는 불연속성이 두드러진다. 시간성 또한 불연속적이다. 분리된 것들은 각각의 속도로 흘러가고 각각의 방향으로 떠돈다. 그녀의 그림은 국부화 된 시간과 국부화 된 공간들이 충돌하는 장이다. 국부화 된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지각과 기억 또한 단편적이다. 지각과 기억의 산물인 인간 역시 비슷한 운명이다. 그들은 너무나 작게 그려져 있거나 낡은 사진처럼 고정되어 있다.


그들은 이전 시대의 전인(全人)적 성격을 잃었다. 작품 속 시공간은 연속성을 잃고, 서로 공존하는 이질적인 요소들로 나타난다. 풍경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떠 있는 상태이다. 그 간극에서 관객 또한 대화와 상상을 시작하게 될 터이다. 작가는 ‘그들이 말한 공간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보려 하지만’, ‘시선의 차이가 관계 속 거리감이 되고 새로운 공간이 된다’(작가노트)고 밝힌다. 간격과 차이는 타자와의 장벽이 아니라, 대화적 상상력을 작동시킬 수 있는 자극제이자 창조적 요소이다. 배미정의 작품은 인터뷰로 알아낸 장소를 그들의 기억에 기대어 시시콜콜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는 자기만의 방같이 실재하는 공간은 물론이고, 가상공간에서 지금은 사라진 공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작가는 20여명의 인터뷰 대상자에게 ‘현재 마음이 쓰이는 장소’를 물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게 하였다. 즉각적인 답변에의 요구는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장소를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생각지 못하다가, 이 질문을 계기로 그때부터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배미정의 작업은 마치 현상학처럼, 존재의 의식에로의 나타남을 탐색한다. 이 전시에서 나타남의 대상은 바로 공간이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중간에 보존된 풍경은 객관/주관이라는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현상학적 방식을 보여준다. 모니카 랭어는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서 현상학적 방법은 과학적인 설명과 분석적인 반성을 피하고, 그 대신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재구축의 근저에 있는 원초적 경험을 일깨우도록 고안된 기술(desciption)로 향한다고 말한다. 현상학이 세계와 마주해 있는 경이감을 되찾는데 주력한 것과 달리, 배미정이 되찾은 시공간은 첫 개인전 제목에 포함된 형용사처럼 스산하다. 그곳은 오롯한 추억의 공간이기 보다는, 자리에 대한 상실감이 압도적이다. 근대화를 통해 개인이 속해있던 전통적인 자리는 상실되었지만, 자리를 대치한 추상적인 공간은 개인을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있는 익명적 원자로 해체했다.


현대인의 삶은 자리 없음, 그리고 자리 찾기에 대한 거대한 여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배미정의 작품 속 인물들 역시 행복한 추억의 주인공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장소와 정체성은 비슷한 분위기로 한 묶음 된다. ‘애정지도’에 나타난 장소는 대화 상대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애호하는 장소를 알면 그 사람 또한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이력이나 생활동선 동선 뿐 아니라, 기억과 무의식, 꿈과 희망 등이 드러난다. 어떤 시절 매일 드나들다 시피한 장소도 있을 수 있고, 그 장소를 생각하면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그 장소가 생각나기도 한다. 또는 서울 역 부근의 고가도로에서 ‘은하철도 999’를 생각한다는 어떤 사람처럼, 장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독특하다. 필자는 작가와 만난 신도림 역에서 어릴 때 상상했던 ‘서기 2000년’이라는 미래의 모습을 본다. 대체로 몸을 담는 장소는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해 있다. 미지의 장소나 최후에 몸을 누일 관 같은 공간을 떠올리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장소는 몸처럼 다소간 관성적이며, 보수적이다. 지각과 기억이 얽혀있는 장소는 씁쓸함, 행복함, 그리움 등 여러 감정을 낳는다.


특히 한국처럼 장소의 안정성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대부분 지금은 사라진, 또는 기억 속의 그때 그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공간일 경우가 많다. 과거는 물론 현재도 그자체의 모습으로 의식에 현상되지는 않는다. 베르그송이 [물질과 기억]에서 말하듯이, 지각은 결코 정신과 현재 대상과의 단순한 접촉이 아니다. 지각에는 그것을 해석하면서 완성시키는 이미지-회상이 전적으로 배어있다. 그런데 회상은 정확히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려진다.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확 열려진 공간이 특징적인 배미정의 작품은 현상학처럼 ‘세계와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 이외에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의식’(리오타르)을 드러낸다. 그 공간 속의 주인공들은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려진 존재들이지만, ‘단지 가능하기만 한 존재’, 그리고 ‘진정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마침내 존재하기를 그치는 생생한 있음’(블량쇼)이다. ‘스산한 기쁨’이라는 1회 개인전 부제는 박탈감과 충만함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체험을 지시한다.


몸을 담는 공간, 그 공간의 위기는 주체의 위기를 반영한다. 장소가 추상화되는 만큼 주체 또한 추상화된다. 늘 상 좌표를 갱신하는 추상적 체계 속에 안전한 개인이란 없다. 그래서 추상적 공간은 중성적이고 익명적이지만, 그자체로 스산한 느낌을 준다. 작품 속 인간은 매우 익명적이고, 서로 친밀하게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외따로 떨어져 있으며,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유령 같은 모습으로 좌표가 불확실한 공간을 배회한다. 장소는 당사자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형되어 있다. 작품제목에는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이나 그 장소에 대한 GPS 위치 정보 등도 담겨있는데, 구글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장소 정보는 현대인이 몸담고 있는 추상적 좌표를 단면을 알려준다. 누군가에겐 자리인 곳이 다른 이에게는 단지 공간일 수 있다. 작품 속 장소는 단단하게 내디딜 수 있는 바닥이 부재하며, 건물과 인물 등 풍경을 이루는 요소들은 대상과 의미를 떨궈 낸 기표처럼 떠돈다. 모든 것이 심연 같은 공간 속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붕 떠 있다.


‘애정지도’에 기대될법한 아늑한 ‘비밀의 화원’같은 내밀한 장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이 기억한 공간은 사방에서 공격당하고 있다. 그런 것이 애초에 없거나, 형성되기 힘든 시공간대를 주파하며 살아온 상황을 드러내는 듯하다. 추상적인 공간과 구체적인 자리와의 간극은 배미정의 작품에서 극대화된다. 사라지는 장소성과 추상화된 인간은 공동운명을 겪는다. 물론 작가 당사자에게도 그러한 장소가 있다. 2011년 첫 개인전 [스산한 기쁨] 전에서 작가는 작업실이 있는 신길동 재개발 단지의 스산한 풍경을 그렸다. 그 동네는 서울에 올라와서 10년 정도 생활한 곳이며,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도 나중에 가장 먼저 생각이 날 장소가 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온 고향 역시 4대강 사업으로 다 파헤쳐져서 시멘트가 발라진 상황이며, 지금 사는 곳 역시 자신을 포함하여 외지인들이 많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과도기적 장소이다. 장소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에게도 먼지처럼 떠도는 삶에 대해 상징적 자리를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지축 역 근방 재 개발지를 소재로 그린 3개의 연작 [그렇게 가고, 또 오고]는 산자락 아래의 아파트와 전경의 반파된 주택이 대조된다. 이 장소에는 무너져가는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토사물처럼 흘러내리는 폐기물은 이질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러면서도 폭죽처럼 화려하고 활기차다. 장소의 변형과 파괴에 대한 작가의 조형적 표현은 역설적이다. 추억의 공간은 그 잔해나 흔적마저도 아름다워서일까. 등장인물들은 이미 거기에 없는 향수적 도상들로 보이며 익명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건축적 구조 안팎의 떠도는 선들은 이 장소가 사라지고 있는 중임을 알려준다. 도심 근교의 재개발지 뿐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도 과도기적 장소들이 산재해 있다. 작품 [어디 가서 쉬라고!]에는 문래동과 신길동을 잇는 고가도로를 소재로 한 것인데, 고가 도로의 기둥 아래의 빈 공간에 쌓인 물건들과 양손에 짐을 든 사람이 가고 있는 장면이 결합되어 있다. 누군가의 작은 휴식공간이 사라져 버린 모습이다.


주류에 속하는 직장인들 역시 해방구를 필요로 한다. 작품 [휴, 오늘도 무사히 현실도피]에서는 전철 아래로 흐르는 물에서 유유자적하게 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도심 한가운데 난데없는 물줄기은 경쾌한 색채와 터치로 채워진다. 반면 고가 다리의 아래는 구정물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그것은 전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현실 도피적 환상이 투사된 곳이다. 작품 [아! 아늑하여라]는 직장인들의 작은 휴식공간인 옥상정원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식물은 고층빌딩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듯 파국적이다. 많은 사람의 기억의 무대는 심연과도 같은 바닥, 떠도는 기표, 움직임 또는 사라짐을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선들로 나타난다. 선은 유동성을 강조한다. 그것들은 그곳에 영원히 붙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변화하는 중임을 예시한다. 모든 것이 둥 떠 있는 비현실적 공간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변화가 전제되어 있으며, 주체와 독립된 객관적 시공간은 없다는 것을 항변한다. 현실, 또는 얼마 전에 지나간 현실은 안정된 구조를 가지지 못하며 복합적인 그물망으로 변화한다.


공간은 급속히 쇠퇴해가고 또한 생성된다. 실제의 풍경도 그럴 때가 있지만, 무너져 내림과 새로이 건설되는 간의 구별은 불확실하다. 공간은 운동하지만, 주체와 공존, 교류할 시간을 갖지 못하기에 역동성보다는 불안함이 강조된다. 역동성이나 불안함은 그것의 개방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기억의 무대에 바닥은 없으며, 무대장치들은 가변적이다. 화려한 색채가 꽃다발처럼 엉켜서 보글거리는 듯한 추상적 패턴은 강처럼 연속되는 시간성(그리고 공간성)이 아니라 샘처럼 분출하는 시공간성을 예시한다. 모니카 랭어는 지각의 현상학을 해설한 책에서, 시간을 일련의 구별되는 물결들 대신 단일한 물의 분출만이 존재하는 샘과 비교한다. 시간이란 분리된 순간들, 혹은 사건들에 대한 보존된 상들로 이루어진 단일한 선이 아니라, 원초적 지향성으로서의 신체-주체를 그 자신의 중심으로 갖는 그러한 서로 겹치는 지향성들의 망조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의 현재는 폐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현재는 양방향으로 자신의 범위를 뛰어넘는다. 시간성(temporality)으로서의 주체는 그 자신이 항상 세계 속에 놓여있음을 발견한다. 인간 또한 그자체가 하나의 시간성이 된다. 그것은 내가 결국은 ‘하나의 열려진 지향성이기 때문’(리오타르)이다. 이러한 현상학적 사고에서 시간은 외부적인 사건들, 혹은 내적인 상태들의 연쇄가 아니라, 바로 맞물려 있는 현전의 장들의 연쇄이다. 각각의 새로운 현재는 시간적인 망조직을 변형시킨다. 배미정의 ‘애정지도’에는 비시간적이고 초월적인 대상으로서의 공간, 즉 현재적인 명증성을 갖지 못한다. 애정지도 속 공간은 끝없이 생성, 소멸하는 중이다. 이 생멸의 흐름 속에서 공간 또한 체험된다. 그리고 이 체험된 공간은 다른 체험들에 의해 재 맥락화 될 것이다. 시간을 공간화 하는 그림이라는 형식 또한 그러한 변화를 느끼게 해 줄 유력한 체험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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