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구성은 크게 네가지로 나누워 집니다. 피카소의 드로잉, 피카소의 판화, 피카소의 도자기, 피카소의 흔적(사진)으로 국내에서 최대 규모인 약 160점 규모로 전시가 이루워집니다.
□피카소의 드로잉
피카소의 1970년대의 드로잉 원본작품이다.
□피카소의 판화
피카소의 판화는 오리지널과 에디션으로 18점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주로 1940~1960년대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수년간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던 피카소가 1945년 브라크의 소개로 파리에 공방을 가지고 있던 페르낭 무를로를 만나면서 석판화작업에 빠져든다. 피카소는 작업실에서 직공들의 기술을 습득하고, 그 바탕 위에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하며, 석판화 작업에 몰두하여 판화사에 길이 남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피카소는 일생을 통해 사람, 특히 여인의 초상을 많이 그렸다. 피카소의 여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 에바구엘, 올가 코흘로바, 마리 테레즈 발테르, 도라 마르, 프랑수아즈 질로, 자클린 로크 이 외에도 그의 작품 속에는 많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피카소의 위대한 예술세계의 탄생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선천적 기질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그에게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여인들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석판화로 제작된 <검은 배경에 단순화된 여인의 얼굴>과 <검은 배경에 여인 얼굴>에서는 여인의 얼굴과 구성이 매우 간결하여, 추상적인 형태를 띤다. 피카소는 가장 추상적인 것이야말로 현실성의 정점에 있다고 말했듯이 이러한 현대적인 추상미가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드로잉 실력과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구했던 개척정신이 뒷받침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작품들은 그의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1921 를 그린 석판화 작품들이다. 프랑수아즈는 법대를 졸업하고 화가의 길을 걷던 아름답고 명석한 여인으로 피카소와는 1943년 그녀의 첫 전시회에서 만났으며 이후 10년간 함께 살며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았으나 끝내 결별했다. 그녀는 피카소의 전형적인 예술가적 삶에 염증을 느끼고 먼저 그를 떠난 유일한 여자다. 세 작품이 제작된 시기는 피카소에게 있어서 프랑수아즈와의 사랑과 아들 클로드의 출산으로 가족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삶의 기쁨이 충만하던 시기였다. 피카소는 프랑수아즈를 만나는 동안 주로 가족과의 사랑, 평화, 삶의 기쁨 등을 주제로 작업하였으며, 이 초상작품들 또한 그의 정신적 안정을 대변하듯 매우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레용과 블랙 잉크, 그리고 펜으로 작업한 이 석판화 작품들은 매우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묘사가 인상적이다. 피카소는 부드러운 크레용으로 문지르듯 만들어낸 선과 펜 선, 그리고 물기를 머금은 붓을 사용하여 명암과 운동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마치 한편의 회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피카소는 다양한 양식적 표현으로 그의 연인 프랑수아즈의 초상을 다수 남겼다. 고민 없이 한 번에 그려낸 단순한 선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특징과 여성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석판화는 평평한 석판이나 아연판에 유성재료인 크레용이나 유성잉크를 이용하여 밑그림을 그린 다음 물과 기름의 반발작용으로 이미지를 얻어내는 기법이다. 석판화 특유의 부드러운 유화적 표현 효과가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자세한 묘사보다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현대적이며 마치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필치로 인물을 표현했다. 피카소는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나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평생을 소비했다.” 고 회고한 바 있듯이, 대상의 실제적인 표현보다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감각과 표현성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어린 시절 아카데믹한 완벽한 데생 실력을 갖추었던 피카소가 오랜 세월을 통해 전통적 표현 방식을 탈피하는 개혁을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프랑수아즈의 모습을 피카소가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를 주어 28개의 시리즈로 작업한 그림 중 하나이다. 작품 속의 프랑수아즈는 피카소가 폴란드에 다녀와서 그녀에게 선물해 준 어깨선이 커다랗고 자수가 놓아진 옷을 입고 있다. 옷에 수가 놓아진 패턴이나 몸의 형태가 사실적 표현에서 발전된 평면적 선과 도형들로 구성되어 있어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머리카락을 표현한 선들의 양식적 표현에서도 인물의 유연한 사실적 아름다움보다는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현대미술에서 입체주의cubism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여 20세기 미술사를 새로이 썼다. 이 작품은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을 하나의 화면에 중첩시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표현 방법을 제시한 입체주의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거의 모든 대상을 해체하고 분해하여 정면의 모습과 측면의 모습, 혹은 다각도의 모습을 한 화면 속에서 재구성하였다. 전통적 형식을 완전히 탈피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이루며 피카소는 당시로서는 매우 새롭고 파격적인 양식을 선도하였다. 이 작품은 인물의 각 부분마다 해체된 얼굴, 각각 정면과 측면의 눈이며 비뚤어진 코, 그리고 측면에서 바라본 입술이 하나의 얼굴을 이루며, 회화를 더 이상 2차원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지극히 단순화된 머리카락과 기호화된 몸에서는 극대화된 추상성을 볼 수 있다.
<화관을 쓴 여인>과 <꽃 모자를 쓴 여인>은 피카소의 말년인 81세에 프랑스 무쟁에서 작업한 채색 리놀륨판화이다. 리놀륨은 값이 저렴하고, 목판 대용으로 사용되며 부드럽고 쉽게 판을 조각할 수 있기 때문에 원래 교육용 판화재료로 사용되던 볼록판 형식의 판화재료이다. 피카소는 1959년부터 다년간 독창적인 채색 리놀륨판화 작품들을 제작한다.
피카소는 리놀륨판화를 제작하면서 각각의 색깔마다 판을 작성하고 겹쳐 찍는 기존의 방식 대신에 한 장의 판에 다색을 찍어내는 기발한 방식을 개발한다. 하나의 기법이나 매체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피카소의 열정적 창조정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작품들은 피카소의 당시 부인이자 생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자클린 로크1927-1985를 그린 작품으로 그녀는 피카소가 말년에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하며 그가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킨 여인이다. 피카소는 당시 몇 주에 걸쳐 자클린 로크의 초상을 리놀륨판화로 제작했는데, 조각칼로 둥근 홈을 파고 잉킹Inking을 통해 컬러의 변화를 실험하며 형태와 기법의 다양성을 주었다. 피카소는 <꽃 모자를 쓴 여인> 또한 1961년부터 1962년까지 수 십 점의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하였다. 피카소는 자클린 로크를 그릴 때,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 주변에 잔잔한 꽃들을 그려주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의 나이 84세인 1965년에 제작한 어릿광대를 그린 채색 리놀륨판화이다. 피카소에게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중반까지는 과거를 회상하던 시기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예전에 좋아하던 주제를 다시 그리면서 젊음을 추억하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사색했다. 이 작품 또한 그가 예전에 좋아하던 주제 중의 하나인 어릿광대를 그린 작품이다. 어릴 적부터 서커스나 연극과 같은 공연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피카소는 파리 몽마르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서커스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을 즐겼다. 당시에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외로운 사람들로 삶의 어두운 부분을 간직한 존재라는 점이 피카소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피카소가 좋아했던 어릿광대는 작품 속에서 주로 피카소의 또 다른 자아로 표현되기도 한다.
피카소는 옛 대가들의 작품을 바꿔 그리는 변주variation작업을 즐겨하였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렘브란트, 드가, 앵그르, 들라크루아, 그리고 스페인의 벨라스케즈, 고야, 엘그레코 등 대가들의 작품들을 주제로 다루었다. 그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자세와 구성은 그대로 따르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변형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재해석했다.
이 작품들은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1798~1863의 <알제리의 여인들>1834을 변형시킨 판화이다. 들라크루아가 1832년 모로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알제리에서 본 여인들을 그린 작품으로 동방의 이국적 풍광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표현한 것이다. <알제리의 여인들>은 후대에 쇠라, 시냑과 같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해 마티스와 피카소까지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변형시킨 15점의 작품을 남겼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4개의 석판화 연속과정이 개개의 작품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완성된 최종 스테이트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았다면 피카소는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 자체를 작품화하는 ‘스테이트의 변화’를 즐긴 것이다. 여기서 스테이트란, 본 에디션에 들어가기 전 단계로 찍어보는 판화를 뜻한다. 이전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기법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던 피카소의 열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작품이 전개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세세한 부분의 변화까지 관찰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는 간결한 선이었다가 과정의 후반에서 덩어리감을 느낄 수 있는 명암의 표현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인물>과 <구성> 두 작품은 극도로 추상화된 인물의 초상으로 화면에서 고전적인 원근법은 철저히 배제하고, 평면적 선과 도형들로 양식화된다. 이 작품들은 사실적 표현을 중시했던 전통적인 미의 규범을 완전히 벗어나 모든 것을 상징과 기하학적 단면으로 해체시켜버리는 전혀 새로운 미술로의 변혁을 추구한 입체주의에서 발전된 것이다. 특히 <구성>에서 인물은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이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조형언어로 탈바꿈되었다. 인물을 그렸다고 할 만한 단서가 되는 점은 단추처럼 표현한 두 눈과 화면의 중심적 구성 요소인 코, 그리고 그 밑의 입과 길게 뻗은 목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피카소는 “그림은 파괴의 집적이다. 나는 그린다. 그리고 곧 파괴한다.”고 말했듯 그는 끊임없이 변화와 파괴를 통해 예술을 재창조했다.
이 작품은 반인반수, 즉 말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을 가진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인 켄타우로스를 그린 석판화이다. 피카소는 켄타우로스 외에도 미노타우로스, 사티로스 등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켄타우로스의 몸에서 말 부분은 태양에 속하는 남성적인 힘을 나타내고 이 힘을 다스리는 정신은 인간의 상반신이다. 켄타우로스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부분이자 동물적 본성, 남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이는 피카소가 즐겨 그린 반인반수인간의 몸에 얼굴과 꼬리는 황소 인 미노타우로스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신화적 인물들은 피카소 자신의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담고 있다. 사랑이든 예술이든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열정을 쏟아 부었던 피카소의 야수적인 기질과 개인적인 성적 욕망 등이 모두 담겨있는 주제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신화적 인물이 폭력적 괴수나 호색한과 같은 성적욕망을 표출하는 인물로 많이 묘사가 되었던 반면에, 이 작품에서는 검은 배경에 춤추는 켄타우로스로 비교적 온순하게 표현되었다. 커다란 달빛이 비추는 밤, 켄타우로스가 두 손을 벌리며 춤을 추고 있고, 피카소가 즐겨 그리던 또 하나의 주제인 염소가 등장하여 환락의 밤을 그리고 있다.
□피카소의 도자기
피카소는 인물화를 많이 그린 화가이다. 도자기에서도 다양한 모습의 인물들을 표현하였는데, 도자기에 나타난 그의 인물화는 크게 전신상과 두상으로 나뉜다. 도자기의 형태에 따라 얼굴만 그린 경우도 있고, 몸체를 사람의 전신으로 만든 경우도 있으며, 인물상과 함께 부수적인 요소들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마부와 말>은 수구 중심에 인물상이 있고, 그 양 옆으로 말의 옆모습을 그려 말을 몰고 가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점들이 있는 얼굴>은 피카소가 사망하기 4년 전 제작된 작품으로 S자형의 도자기 위에 붉은색, 푸른색, 녹색을 사용하여 인물을 그렸는데, 사람의 얼굴처럼 정면, 옆면을 구별 할 수 있게 입체적으로 묘사하였다. 다른 도자기들에 비해 자유로운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긴 몸체를 얼굴로 형상화 하고 있는 <얼굴>은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인물의 얼굴을 단순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수염이 있는 남자의 부인>은 배가 불룩한 형태의 도자기 위에 여인의 얼굴을 검은색, 녹색, 갈색을 주로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인물의 코와 눈 주위에는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음영을 구사하였다. 회화적 요소와 장식적 요소를 적절하게 구성하여 세련되고, 독특한 형식의 피카소 도자기를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는 주로 주전자와 접시를 도자기로 만들었는데 그 중 특히 접시가 많은 수 남아있다. 접시에는 얼굴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아마도 얼굴과 접시가 모두 둥글다는 유사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접시형태의 도자 작품 중 <새겨진 얼굴>은 넓은 접시 중심에 푸른색과 노란색을 사용하여 인물의 얼굴을 간략한 선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노란 바탕에 푸른색으로 얼굴을 그리고 그 주변도 푸른색으로 채색하였다. 또한 접시 둘레를 푸른색 점으로 장식하여 두 가지 색을 사용하여 단조로울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회색얼굴>은 회색 바탕 위에 검은색과 흰색으로 얼굴을 그려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형상이다. 흰 선으로 얼굴의 윤곽선을 그리고, 접시 둘레에는 녹색을 사용하여 태양을 상징하듯 장식하였다. <얼굴> 역시 태양의 형상으로 인물의 얼굴을 그린 작품이다. 흰 점토 위에 검은색과 녹색을 사용하여 태양을 그린다음 유약을 입혀 광택 효과가 나타난다. 접시 테두리를 검은색으로 채색하여 태양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얼굴이 표현된 피카소의 접시작품에는 채색을 하거나, 새기거나, 덧붙이는 등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얼굴마다 그 개성이 드러나고 있다. <얼굴발로리스>는 녹색으로 직선과 둥근 선을 이용하여 간략하게 얼굴을 표현하고, 그 주변을 11각을 만들어 얼굴의 윤곽선을 표현했다. 접시의 테두리는 얼굴의 윤곽선에 따라 11칸을 나누고, 각 칸에 ‘VALLAURIS’ 와 제작한 날짜를 적었다. <남자의 얼굴>은 흰 점토를 긁어서 턱수염과 콧수염이 있는 남자의 얼굴을 만들었다. 접시의 테두리의 긁어낸 선들은 턱수염을 연상시킨다. <얼굴>은 흰 점토 접시 위에 얼굴의 정면과 측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얼굴을 정면과 측면으로 표현한 점은 그의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이다. <격자무늬 얼굴>은 접시 안쪽 바닥 면에 압인기법으로 격자무늬를 만들고, 그 위에 푸른색이 채색되어 있다. 격자 선에 맞추어 눈과 코, 입을 점토로 덧붙이고 그 위에 푸른색을 덧칠하여 사람의 얼굴이 입체적이다. 접시의 테두리는 태양을 묘사한 것과 같은 직선이 있으며, 그 사이의 빈 공간을 푸른색으로 적절하게 장식하였다.
피카소 작품에는 여인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는 여러 연인을 만났고, 연인들을 만날 때 마다 그의 작품은 스타일이 변할 정도로 그의 예술창작에서 여인은 중요한 주제이다. 특히 도자기에는 말년의 연인이었던 프랑수아즈 질로1921~와 자클린 로크가1927~1985가 등장한다. <이젤과 자클린>은 피카소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이젤 앞에 있는 자클린의 모습을 단순하게 그렸다. 이 작품은 피카소와 자클린이 결혼하기 5년 전인 1956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가 말년에 주된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작업실과 당시 함께 지내던 자클린을 조화롭게 묘사하고 있다. 자클린은 얼굴은 옆으로, 몸은 정면을 향해있어 각 부분들이 일관성 없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신체를 부분적으로 인식하여 공통성 없이 그렸던 이집트의 회화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젤 역시 정면으로 그려내어 현실과 상반되는 그림으로 완성하여 피카소만의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에는 신화 속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미노타우로스라는 반인반수의 용맹스런 인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반인반수의 얼굴>은 기하학적으로 인물의 얼굴을 표현하였다. 접시 바닥 면에는 붉은색 마름모 형태의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지고, 그 위에 푸른색으로 좌우가 비대칭인 눈과 눈썹이 표현되었다. 접시 둘레를 푸른색 윤곽선으로 그리고 아랫부분에 짐승의 수염을 교묘하게 표현하였다. 위쪽에는 동물의 뿔을 갈색으로 표현하였다. <반인반수의 마부>는 흰 바탕 위에 반인반수가 말을 타고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접시 바닥 면에는 인물과 말의 모습이 순수하고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접시 테두리에는 사람의 얼굴과 인체를 간략하게 그린 것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을 일정한 간격으로 그리고, 얼굴 주변에는 불규칙적인 점들로 장식하였다. 피카소가 도자기에 표현한 반인반수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순진하고 친근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밝은 색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강인함과 용맹스러움을 찾아 볼 수 없다.
피카소의 도자기 중 투우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원형인 접시의 형태가 투우장을 연상시킨다. 피카소가 8살 때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투우사>라는 점과 투우가 작품의 주된 소재였던 점은 그가 스페인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는 긴 시간동안 타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고향인 스페인의 정취와 향수를 투우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뮬레타로 소를 약올리는 투우사>는 투우사가 뮬레타붉은 망토를 손에 들고 소를 약올리는 장면이다. 노란 바탕 위 간략하게 형상화된 인물과 붉은색으로 채색한 뮬레타, 그리고 뮬레타 옆에는 검은색으로 간략하게 소를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형상을 단순화시켜 어린이의 작품 같은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인물과 소 주변에는 점을 찍어 투우장면을 보는 관객들을 묘사하고 있다. <창으로 소를 찌르는 투우사>는 인물이 창을 가지고 소를 찌르고 있는 장면이다. 인물과 소는 점토를 덧붙여서 형체의 윤곽선을 만들었고, 그 위에 인물은 노란색을 소는 갈색을 사용하여 채색하였다. 그리고 인물과 소의 형체 위에 푸른색의 점이 찍혀 있어 입체감을 주었다. 피카소의 투우시리즈는 도자기를 하나의 캔버스로 여기면서 투우장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이것은 도자기에 회화적인 요소를 나타내는 것으로 도자기와 회화의 경계를, 즉 장르의 구분을 허물고자 했던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에는 비둘기, 부엉이, 황소, 염소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주제로 등장한다. <푸른 물고기>는 물고기 한 마리가 접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등지느러미는 녹색으로 표현되어 있고, 몸통의 비늘은 회색으로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접시의 바탕이 푸른색으로 되어 있어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형상화 하고 있다. <잔디밭의 새>는 잔디 위의 한 마리 새를 검은색으로 간략하게 그렸다. 잔디는 몇 개의 점으로, 새의 모습은 단순하면서 익살스럽게 표현하였다. <황소의 옆얼굴>은 흰 점토 위에 검은색으로 황소의 윤곽선을 묘사한 다음 채색하였다. 전체적으로 저돌적인 황소의 모습보다는 순하면서 얌전한 느낌이다.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즐겨 보던 산양을 자주 표현하기도 하였다. <옆모습의 염소 얼굴>은 타원형 접시 위에 적색의 바탕과 갈색, 녹색을 사용한 염소의 옆모습이 있다. 접시의 테두리는 꽃문양으로 장식 하였다. 전체적으로 붓 터치가 자유롭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그의 자연스러움이 드러난다.
피카소는 1946년에 부엉이를 선물로 받아 애완동물로 함께 지냈다. 그 이후로 작품에 부엉이가 자주 등장하게 된다. <반짝이는 부엉이>는 접시 바닥 면의 전체를 부엉이의 몸체로 형상화 하고, 접시의 테두리는 별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이 작품은 검은 바탕위에 부엉이를 그리고, 주변에 별을 장식하여 밤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회화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회화의 기본 소재인 풍경과 정물을 피카소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묘사하였다.
<풍경>시리즈는 저녁 풍경을 회화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먼저 초승달이 있는 <풍경>은 검은색 바탕 위 정 가운데 집 한 채가 표현되어 있고, 주변에는 별의 형상을 그려 밤하늘과 집의 절묘한 조화가 나타나는 작품이다. 짙은 푸른색 바탕에 흰색 선으로 마을을 표현한 <풍경>은 어두운 밤에 나타나는 마을풍경을 적절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접시의 테두리는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단순하게 장식하였다. 그림이 있는 부분과 접시의 테두리 부분에 흰색 선이 구획된 것이 마치 액자인 듯하다. <정물>은 검은색바탕 위에 붉은색, 녹색 등으로 사과와 컵 등을 부드러운 붓 터치로 묘사하였다. 접시 테두리는 지그재그 선과 점으로 장식하여 실제로 접시 위에 담겨 있는 것처럼 나타냈다.
이 작품은 기하학적인 모양이나 독특한 형상을 표현한 도예작품이다. <나선 모양의 소재>는 검은 바탕 위에 푸른색, 노란색, 흰 색 등의 에나멜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형태로 묘사하였다. 가운데 둥근 원을 중심으로 태양을 상징하듯 그렸으며, 곳곳에는 노란색, 검은색으로 빛을 형상화하여 밝은 빛의 기운이 뻗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접시의 문양은 원시시대에 그려진 동심원과 유사하다. 전통적인 기호와 문양 등을 자신의 작품으로 완벽하게 소화시켰던 피카소의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피카소의 흔적 (사진)
피카소의 모습은 여러 사진작가들이 찍었는데 발로리스와 칸에서 작업하던 시기에는 주로 앙드레 빌레르1930~가 그의 사진을 찍었다. 피카소는 1953년 봄 발로리스에서 빌레르를 만났는데 그 둘은 친구가 되었고, 피카소는 빌레르에게 본인의 작업실과 얼굴을 사진 찍는 것을 허락했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피카소의 모습을 통해 작가로서의 대답함과 강인함, 그리고 삶과 예술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던 그의 도전정신이 강하게 느껴진다.
아뜰리에에서 작업 중인 피카소
빌레르는 피카소의 아뜰리에를 자주 찾아가 작업하는 피카소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 피카소와 빌레르는 49세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공동 작업까지 함께 하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빌레르가 찍은 사진은 작업실에 진열된 미술도구와 미완성된 작품들을 배경으로 작업중인 장면, 작업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 이젤 앞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장면, 이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연속으로 촬영한 장면들, 공방에서 도자기 표면에 채색하고 있는 장면, 벽화를 그리는 장면 등이 있다. 다양한 장르마다 각각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던 피카소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사진 속 장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피카소의 아뜰리에
피카소는 1955년 칸에 있는 라 칼리포르니를 작업실로 사용하였다. 19세기 저택인 라 칼리포르니의 웅장한 내부 장식에서 영감을 얻어 1950년대 이후 작업실을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발로리스와 칸을 오가면서 작업을 했다. 빌레르가 찍은 그의 작업실 사진에는 화려한 천장 장식이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피카소가 창시했던 입체주의 작품들과 소품들이 배치된 장면, 작업실 내부에 보이는 여인을 그린 작품, 작업실의 소품과 작품이 전시된 장면, 1946년 부엉이를 선물 받으면서 즐겨 그리게 된 부엉이 작품사진, 그가 사용했던 화구들이 담겨있다. 피카소의 작품사진은 자화상을 찍듯이 드라마틱하게 재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품과 작업실을 그의 모습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실은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제작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열정을 최대한 발휘한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한 피카소
피카소의 본인이 직접 연출한 후 사진을 찍었는데 투우사 모자를 쓴 모습, 터키의상을 입은 모습, 줄무늬 티셔츠에 게리쿠퍼가 선물한 모자와 권총을 들고 있는 독특한 모습과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익살스럽게 찰리 채플린으로 변장한 모습, 뽀빠이를 흉내 내는 모습 등이 있다. 피카소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장난기가 넘치고, 화가로서의 강인함보다는 유머러스하며 친숙한 느낌이다. 거장으로서의 이미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피카소였지만 그 이면의 평범한 일상은 매우 순수하고 인간적이었음을 이 사진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피카소의 가족과 친구
피카소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겼는데 특히 작가, 시인, 사진가, 무용가, 영화감독, 도예가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여러 모임을 즐겼다. 여러 사람들과 찍은 사진 중에는 샹송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작사한 유명한 시인 자크 프레베르1900~1977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피카소의 모습, 어느 식당 안 테이블 앞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 등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도 사진으로 남았는데 1954년 자클린 로크와 프랑수아즈 질로의 아이들 클로드와 팔로마를 데리고 발로리스에서 지냈는데 그 시절 자클린과 함께 있은 모습, 클로드와 팔로마와 함께 찍은 모습, 가위로 종이를 자르고 있는 피카소와 그를 바라보고 있는 클로드와 팔로마의 모습, 잠자는 어린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있다. 이런 사진들을 통해 피카소의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 등을 읽을 수 있다.